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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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이 싸운 전쟁들- 아사의 신앙운동과 그가 싸운 전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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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야의 뒤를 이어 유다의 3대 임금이 된 아사는 모든 행위와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나라를 다스린 왕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끈임 없이 계속되는 남북 간의 분쟁과 갈등으로 불안과 긴장 가운데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아사가 왕이 되면서 유다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사 왕이 하나님의 의를 따라 옳고 선한 일들을 행했기 때문이다. 


 아사는 이방 신상과 제단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법도와 명령에 순종할 것을 명하였다. 이를 본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평안과 평화를 누리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개인도 국가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만 복된 삶을 살며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아사가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주리며 유다를 10년 간 통치했을 때 에디오피아 왕 세라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전차 300대를 앞세우고 쳐들어온다. 이때 아사에게도 58만 명의 군사들이 있었다. 10년간 전쟁이 없는 동안 유다의 성들을 증축하며 훈련시킨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100만에 달하는 적에 비하면 엄청난 열세였다. 그러나 아사는 위풍당당하게 스바다 골짜기로 나가 진영을 이루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려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대하 5:11). 

 

 1차 남북전쟁 시 유다 군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80만의 북왕국 군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군사들은 한 목소리로 외침으로 여호와의 도움을 간청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기도였다. 병력과 무장 면에서 상대할 수 없이 월등한 적이지만 여호와께서 싸워주시면 승리는 그의 것임을 확신하며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로 마감한 아사의 기도를 들으셔서 하나님은 세라의 100만 대군을 격퇴시키신다. 유다 군은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전멸시키고 숱한 전리품을 노획한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사의 기도는 미국독립전쟁 시 조지 워싱턴 장군이 펜실바니아 주 포즈 골짜기에서 영국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눈 속에 무릎 꿇고 기도드리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워싱턴 장군은 그의 민병대가 수적으로나 무장으로나 월등한 영국군 정예부대와 전투를 시작하기 전 눈 쌓인 포즈 골짜기에 들어가 백마에서 내려 철모를 벗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는 그 전투에서 승리했고, 많은 미국 사람들은 그때 워싱턴이 드린 “포즈 골짜기의 기도” (The Prayer of Valley Forge)의 힘이 얼마나 컸던 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사가 세라의 대군을 물리치고 개선하자 선지자 아사랴가 그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음은 여호와께서 그를 위해 싸워주셨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그가 여호와를 찾으며 그의 능력에만 의지하면 그와 유다의 앞날은 평탄할 것이라 들려준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아사는 크게 기뻐하며 마음을 담대히 하여 솔로몬 말기로부터 르호보암과 아비야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유다에 성행되어온 우상숭배를 뿌리 뽑기 시작한다. 그는 유다 전역과 세라의 침략군을 몰아낼 때 빼앗은 모든 성들에서 우상들을 제거하고, 성전 앞의 여호와의 단을 수리한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심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이런 아사의 신앙개혁은 그간 도입되고 세워진 우상들을 없애버린 것에 그치지 않고 우상숭배정책 자체를 폐지하였다. 그 정책 하에서 기생했던 이방제단과 산당, 주상과 아세라 상 등을 모조리 파괴했으며, 아세라 숭배를 위해 존속했던 남창을 없애버린 것이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지 않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처형하겠다고 공포한다. 


 아사는 우상을 섬기는 대가가 어떠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그의 할머니 마아가가 만든 우상을 기드론 시내 가에서 불살라 버리고, 그녀를 대왕대비 자리에서 폐위시킨다. 이 같은 아사의 신앙개혁은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들의 전용물인 것처럼 사용해온 형식적이고 포면적인 행위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근본적인 개혁이며 진정한 회개였다.

 

 그러나 아사가 우상 산당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아사는 왕이 되면서 예루살렘 근방의 산당들을 모두 허물었다(대하 14:3). 그러나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던 산당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우상숭배 자체를 금하였기에 그대로 두어도 별다른 영향이 없으리라 생각 했는지는 몰라도 아사의 큰 착각 이였다. 나중에 그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다시 부패하게 되고, 아사의 혁명적인 회개운동과 신앙개혁이 허망하게 무산되기 때문이다. 

 

 세라의 침략 후 유다는 내란도, 외침도 없이 20여 년을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아사 왕 36년에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침공해 온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나답 휘하의 장수였는데 나답이 블레셋 땅인 깁브돈을 공략하는 중에 그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나답은 아버지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향하여 백성들을 죄의 길로 인도한 왕이었다. 그러기에 그가 신하인 바아사의 권좌를 향한 욕망의 희생물이 되어 재위 2년 만에 살해당한 것은 하나님의 그에 대한 징계였다. 


 왕위를 찬탈한 바아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여로보암의 집안을 멸족시킨 것이다. 그의 왕권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여로보암의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국으로 만든 그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이다(왕상14:7-10).

 

 유다로 진군한 바아사가 향한 곳은 라마였다.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그 당시 이스라엘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고, 전략적 요충지였다. 원래 라마는 북왕국에 속했었는데 1차 남북전쟁 때 여로로암이 아비야에게 패하면서 유다의 차지가 된 성이다. 바아사는 라마를 통해 그의 백성들이 유다로 자유로이 왕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드나들면서 아사의 신앙개혁에 영향을 받을 것을 두려워 한 까닭이다. 바아사가 라마를 차지하고 요새화하기 시작한 것은 그런 까닭으로 인한 것이었다.

 

 아사는 바아사의 그런 의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시리아 왕 벤하닷에게 협조를 구한다. 세라의 100만 대군이 유다로 침공해 들어올 때 여호와의 능력에 의존했던 믿음의 사람답지 않은 졸렬하고 세속적인 처사였다. 더욱이 아사가 성전과 궁궐에 보관된 금과 은을 모아 벤하닷에게 보내며 라마를 요새화하고 있는 바아사의 군사들을 철수시킬 조처를 취해 달라 청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였다. 여호와의 전에 바쳐진 성물을 뇌물로 사용하여 벤하닷과 바아사 사이에 맺고 있는 우호동맹의 파기를 종용한 것은 비겁하고 불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사의 뇌물을 받은 벤하닷은 바아사와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북방의 보급창고들을 습격한다. 이렇게 되자 바아사는 라마 성 군축을 포기하고 철수한다. 아사의 비겁하고 저속한 방법이 일단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하나니를 보내 어째서 여호와를 떠나 인간을 의지했느냐고 아사를 책망하신다. 


 이때 아사가 여호와 앞에 눈물의 참회를 했으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왕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때 다윗과 같이 의로운 왕으로 여겨졌던 아사는 범한 죄를 지적받고 즉시 회개한 다윗의 믿음과 신앙에는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하나님 대신 인간의 힘에 의존하는 망령된 행실을 책망하는 선지자 하나니를 투옥시키기 때문이다.

 

 아사가 하나니를 쇠사슬에 묶어 옥에 가두자 하나님은 그를 병마라는 사슬로 묶으신다. 하지만 이것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아닌 그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자비였다. 그러나 아사는 하나님이 내미시는 자비의 손길을 외면한 채 발병이 발명한지 2년 만에, 그가 왕위에 오른 지 41년 되던 해에 생을 마감한다. 

 

 아사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며 범국민적 신앙개혁운동을 단행하고, 방황하는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의롭고 선한 임금 이였다. 100만이나 되는 에디오피아 침략군을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격퇴한 믿음의 용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집권 후반부터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자기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하다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불행한 왕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친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이 아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그를 향한 첫사랑을 간직하고 계속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들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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