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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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급 왕 시삭의 예루살렘 점령 - 르호보암의 죄악을 응징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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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왕으로서 많은 위대한 업적들을 남겼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첫 단계를 실현시킨 임금이며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하기도 했지만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시편, 잠언서, 아가서, 전도서 등에 그가 기록한 지혜의 말씀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와 격려의 근원이 되어 그들이 참되고 보람된 인생을 살게 인도한 지침서라는 것 또한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1,000명에 달하는 아내를 거느렸던 그에겐 수많은 왕자들과 공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려는 왕자들 간의 다툼이 없었다는 건 신기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그가 죽은 후 왕위계승을 위한 아들들 간의 싸움이 극심할 것이라 예상한 솔로몬이 그가 제일 사랑한 암몬 여인 나아마가 낳은 르호보암을 세자로 확정해 두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어쨌든 솔로몬이 죽자 르호보암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60km 정도 떨어진 세검으로 간다. 수도 예루살렘에서 즉위하지 않고 거기까지 간 이유는 그곳에서 북부의 열 지파까지 끌어들여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왕이 되기 위함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애급에 망명해 있던 여로보암도 세검으로 간다. 북부 열 지파가 그를 지지하고 있는 줄은 알지만 혈통으로 따지면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정통 왕위계승자이기 때문에 일단 세검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며 처신하기 위함이었다.

 세검에 집결한 백성들의 대표들은 여로보암을 앞세우고 르호보암에게 솔로몬이 그들을 혹사시키며 지워준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솔로몬의 통치기간 동안 나라가 부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민들의 생활은 윤택하지도 못했고, 편하지도 못했다. 각종 대규모 국책사업의 수행을 위해 백성들은 엄청난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며, 성전과 궁궐을 건축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노역에 시달려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솔로몬을 계승하여 왕이 되려는 르호보암에게 감세조처와 부역을 감해줄 것을 청원한 것이다.

 르호보암이 그들의 요구에 답하기 전에 원로들과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가 원로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섬길 자세를 가추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이 옳다는 충고를 묵살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 약속대로 3일 후에 그를 다시 찾은 대표들에게 르호보암이 솔로몬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겠다고 하자 여로보암을 주축으로 한 백성들의 대표들은 그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르호보암은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고,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청원에 귀 기우리지 않고 그들에게 버림받는 길을 택한 것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왕상 11:29-39).

 르호보암을 떠난 북부 지파 대표들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다스리는 유다 왕 (남이스라엘) 이 된다. 애급을 탈출한 후 40년 간 광야를 횡단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죄악과 배반과 회개와 용서”가 되풀이 된 사사시대를 거처 왕정을 수립한 이스라엘이 사울, 다윗, 솔로몬 3대 만에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민족의 비극이 일어난 원인제공을 한 르호보암은 그때까지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북부 지파들의 그에 대한 지지도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지 그의 사람 아도람을 북부로 보내 세금을 징수코자한다. 그러나 그들은 르호보암이 보낸 아도람을 돌로 쳐 죽인다. 일이 그렇게 되자 르호보암은 신변의 위험을 느껴 급히 세검을 빠져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즉시 18만 명의 군사들을 모집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으려는 북부 열 지파를 공격하려 한다. 그들의 행위가 국가반역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다윗 왕조를 떠나 그들끼리 나라를 세운다는 건 이적행위이기에 르호보암의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르호보암은 일이 그렇게까지 된 것은 북부 지파들을 끌어않을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한 그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출전을 앞둔 르호보암의 병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너희 형제 이스라엘과 싸우지 말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내 뜻이다.”라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것을 허락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밝히신 것이다. 이때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그의 결단 아닌 하나님의 역사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 공략을 중단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그를 돕기 시작한다. 그 결과 불안하고 혼란스럽던 정국이 안정되고, 국력도 제법 강해진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닌 자신의 영도력 때문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어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잠 16:18) 르호보암은 잊어버린 것이다. 백성들도 왕을 본받아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리고 도처에 산당과 우상의 상들을 세웠고, 우상 신전에는 남창들까지 득실거리는 죄악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유다 백성들이 이방족속들 보다 더 심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들자 진노하신 하나님 애급 왕 시삭을 통해 르호보암을 징계하신다. 로호보암 왕 5년에 시삭이 전차 1,200대와 마병 60,000명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한 것이다. 이때 시삭은 수많은 리비아와 숙과 구스 병사들로 편성된 연합군까지 통솔하고 있었다. 이처럼 막강한 시삭의 침략군은 파죽지세로 유다전역의 주요성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에 이른다. 
 르호보암은 5년 전 세검에서 북부 열지파와 결별한 후 베들레헴, 에담, 드고야 등 15개 성읍들을 완전히 요새화하고 각 성마다 유능한 장수들을 배치하고 식량과 무기를 비축하며 유다의 방어체제를 강화한 바 있다. 그러나 숱한 전차와 마병들을 앞세우고 진군하는 시삭의 군대는 요새화된 유다의 성들을 모두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이때 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르호보암과 유다 지도자들에게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버린 까닭이라고 알려준다. 르호보암과 그의 신하들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 한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죄과를 뉘우친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범한 죄의 대가로 유다는 매년 시삭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를 섬겨야 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의 백성들을 이방민족 애급에게 넘겨준 것은 “세상과 여호와” 중 무엇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삭은 예루살렘까지 함락시키고 성전과 궁궐의 모든 보물은 물론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까지 약탈한다. 르호보암은 다윗과 솔로몬 때부터 모아둔 나라의 모든 재물을 빼앗기고 이스라엘의 번영의 상징인 솔로몬의 금방패까지 강탈당해 놋방패를 사용해야 하는 모욕과 수치를 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삭을 사용해 르호보암의 죄를 징계하시면서도 유다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봉헌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적에게 패한 후 이 성전에서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면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 기도 때문이다(대하 6:24-25) 또 하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대로 유다를 보존하신 까닭이다(왕상 11:13,32,36).

 애급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침범한 사건을 통해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첫째 교훈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시지 않으시면 건축자들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다.”(시 127;1)는 사실이다. 르호보암이 외침에 대비하여 구축한 열다섯 이나 되는 성들이 시삭의 침략군에게 무참하게 유린당한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들을 지켜주지 않으신 까닭인 것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범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지만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듯이 찾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처벌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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