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 전체: 525,588 )
죄짐 맡은 우리 구주
daekim

 

토론토에서 401 동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달리다 28 고속도로를 만나 북으로 조금 올라가면 보들리(Bewdley)에 이르게 된다. 보들리 직전에서 동편으로 난 샛길을 따라 몇 킬로 들어가면 왼쪽에 펜겔리 집안의 가족묘지가 있다. 거기 “죄짐 맡은 우리 구주”(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를 작사한 죠셉 스크리븐(Joseph Scriven) 목사님이 잠들어 있다.

포장도 안 된 좁은 시골길 옆에 자리 잡은 묘지입구에는 스크리븐의 생애가 새겨져 있는 동판이 붙어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스크리븐이 살았던 낡고 조그마한 집이 있고, 몇 발짝 더 옮기면 그 초라한 집의 정원처럼 보이는 잡초들이 무성한 공간에 몇 개의 무덤이 있는데, 제일 오른쪽에 돌 비석이 서있는 곳이 스트리븐의 잠든 묘소다. 다른 무덤들보다 조금 크기는 하지만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난 그 앞에 설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스크리븐이 작사한 찬송을 3절까지 부르곤 한다.

언젠가 교우들과 함께 그 곳에 갔을 때는 그의 무덤 앞에 둘러서서 간단한 예배를 드렸는데, “죄짐 맡은 우리 주구 어찌 좋은 친군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도 있었다. 부를 때마다 우리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평안을 안겨주는 이 찬송을 작사한 죠셉 스크리븐은 1819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불린에서 부유한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해군 대령이었던 아버지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군인 체질이 아님을 알게 되자 당시 아일랜드의 최대 명문대학이었던 트리니티(Trinity College)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절에 스크리븐은 인생의 길벗이 될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1843년 결혼식 전날 그의 약혼녀가 그를 만나려 오다 강에 빠져 익사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강 건너편에서 그녀가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다 떨어져 강물에 빠지는 광경을 지켜본 스크리븐이 받은 충격은 참으로 컸다. 슬픔과 실의에 빠져 살아갈 의욕조차 잃어버렸던 그는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온다. 낯선 땅이기는 하지만 온타리오의 라이스 호수((Rice Lake) 근처의 보들리에서 펜겔리 집안의 가정교사로 지내면서 결혼 전날에 신부를 잃어버린 상처를 달래던 스크리븐은 펜겔리 부인의 질녀 엘리자 로슈(Eliza Roche)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엘리자가 결혼준비 과정의 하나로 리이스 호수에 온 몸을 담그는 세례를 받은 후 폐렴에 걸려 죽게 된다. 두 번째로 결혼을 앞두고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 보내는 슬픔을 당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멀리 아일랜드에 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접한 스크리븐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아일랜드에서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를 위로해 주시고, 그녀를 병마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그에게 들려온 예수님의 음성을 종이에 옮겨 쓴 찬송 시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가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스크리븐은 이 찬송 시를 발표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먼 고향에서 병으로 누워계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다 쓴 어머니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찬송 시는 “예수님과 함께 쓴” 것이었다. 이 사실은 스크리븐 자신이 밝힌 바 있다. 그가 병들어 누워있을 때 그를 찾아온 친구가 침대 옆에 이 찬송 시가 적힌 종이가 놓인 것을 보고 누가 이것을 썼느냐고 묻자 스크리븐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썼다.”고 답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친구가 스크리븐을 권유하고 허락을 받아 “쉬지 말고 기도하세요.”(Pray without ceasing)이란 제목으로 그 지방 신문에 발표했으며, 후에 작곡자 촤일스 콘버스(Charles Converse)가 곡을 붙여 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숱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과 소망을 안겨주는 찬송가로 된 것이다.

시험과 걱정, 슬픔과 아픔, 낭패와 좌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스크리븐 만큼 무겁고 힘든 인생의 짐을 지고 살다 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결혼을 하루 앞두고 그를 만나러 오던 약혼녀가 낙마하여 강물에 빠져 죽는 광경을 목도한 스크리븐 이었다. 그 쓰라린 고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캐나다로 이민 와서 만나게 된 또 하나의 여인과 결혼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녀까지 떠나 보내는 슬픔과 좌절을 맛본 그였다.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된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스크리븐 이었음을 상기하면 그가 걸은 인생길이 얼마나 험하고 삭막하며 괴로웠을까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찬바람 불고,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는 인생행로를 걸으면서 스크리븐은 그와 함께 동행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가난하고 비천하기에 세상으로부터 소외 당하고 멸시 받는 불우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며 살았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예수님의 “산상수훈대로 사는 사람”이라며 존경했다. 1896년 10월 10일 심신이 극도로 연약해진 스크리븐이 집 근처 연못에 빠져 죽자 라이스 호수 주변 주민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슬퍼하며 애통했다.

66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온갖 인생의 고초를 당하면서도 자기보다 못한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섬기며 살다 생을 마감한 스크리븐의 장례식에 5,000여 명의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펜겔리 가족묘지와 라이스 호수 사이에 펼쳐진 넓은 초원에 원근각처에서 도보로 혹은 마차를 타고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광화문 일대에 100만 이상의 군중이 집결하는 것보다 힘들 일이었을 것이다.

죠셉 스크리븐의 묘소를 찾을 때마다 그의 장례식 날, 그가 잠든 무덤에서 바라보이는 푸른 초원에 모인 5,000여 명이 우산을 바쳐 들고 (그날 비가 내렸다고 한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을 부르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그러면서 스크리븐이 예수님과 함께 쓴 찬송을 3절까지 부른다. 그러면 무겁기만 한 내 인생의 짐을 져주시는 예수님의 위로와 평강이 마음속에 넘쳐흐르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옴을 느낀다.

우리를 억누르는 인생의 짐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우리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세상 친구들로 인해 위축되거나 상처받지 말고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으며” 천성문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