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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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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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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조선여행을 마치며 이렇게 썼다.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조선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처음 조선에 대해 내가 느꼈던 혐오감은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전의 어떤 여행보다도 친밀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


 나는 눈이 오는 날,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겨울 아침의 푸른 대기 속에서 서울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 다음날 조그만 증기선인 하이에닉(Hyenic) 호를 타고 강한 북풍을 가르며 상해를 향해 떠났다. 배가 증기를 뿜으며 서서히 나아갈 때 나부끼는 조선 깃발이 내게 묘한 흥미와 의문을 주었다.''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한국에서 유명한 조선말기 여행기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여행기를 남겼지만 특히 1894∼97년 사이에 4차례 조선을 방문하고 1898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조선의 풍경, 생활상, 사람들에 대해 서구인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낀 소회를 기록했다. 


그는 영국 지리학회의 최초 여성회원일 만큼 학구적이어서 조선의 현실과 그 뒤에 숨겨진 역사를 보려고 애썼다. 더럽고, 냄새 나고, 덮개 없는 하수구에 오물이 널려있는 부산의 첫 인상이 그 후 한양, 송도, 평양, 원산을 거치며 별 다름없이 이어지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아름다운 산천, 허물어진 관아, 산속에 쓰러져가는 사찰, 퇴색된 궁전, 쇠락한 지난 문명의 잔영을 본다.


 저자는 아마도 이에 안타까운 연민의 정을 느꼈는지 모른다. 조선 땅을 밟으며, 처음 느꼈던 혐오감이 애정으로 바뀌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저자는 조선에 대해 기묘한 흥미와 애정을 느꼈다고 쓰고 있다.


 내년에 3.1절 100주년을 맞아 지난 날을 되새겨본다. 왜, 조선은 실패하였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본론


 당시 63세의 영국 여행가는 부유한 성공회 신부인 아버지의 유산이 있어 널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조선에 온 이유는 아마도 동양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에 조선을 들리게 된다. 


1894년2월, 시모노세기에서 부산에 첫 발을 디디고, 영국인으로 처음 조선을 여행한 비숍 여사가 본 조선의 인상기를 쓴다. 다시 배를 타고 제물포, 한양, 그리고 나룻배로 한강을 거슬러 올라 단양을 거쳐 금강산, 원산으로, 다시 배를 타고 우라디보스독을 거쳐, 두만강 훈춘에서 만주로 들어간다.


 필자는 만주,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내의 비참한 조선인들과는 달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히려 유복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는 조선 이주민을 본다. ''아! 수탈만 없다면, 이들도 유복하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구나''하며, 게으르고 무감각하고 더럽다는 첫인상과는 다른 새로운 조선인을 본다.


 그리고 다시 대동강을 따라 (진)남포까지 내려간다. 한양에서는 왕, 왕비, 황태자를 4번이나 알현하고 청일전쟁 중의 일본, 청나라 군인 모습도 본다. 민비 시해도 가까이에서 접하여 역사책에 없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시내 여행시는 조랑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장거리는 조랑말을 타고 영국 영사관 직원, 영어를 하는 조선인 통역, 마부 그리고 짐을 실은 나귀와 함께 여행했다. 험한 길을 가다가 팔이 부러지는 사고도 당하고, 야간에는 호랑이, 늑대가 무서워 외출을 삼갔다.


 1. 조선의 첫 인상


 가. 부산


1894년 1월 나가사기에서 히고마루를 타고 15시간 항해 후 부산에 닿았다. 선창에서 본 갈색의 민둥산이 강렬하게 첫인상으로 남았다. 부산에 닻을 내리며 만난 사람은 조선 사람이 아니라 일본사람이었다. 배의 정박을 도운 사람도, 부두에 점등하는 사람도 일본사람이었다. 세관원은 영국인이었다. 그는 조선의 관세세입 업무를 돕기 위해 중국세관에서 파견한 인물이었다.


 부산은 1883년 외국무역에 개방되었고, 그때부터 부산은 현저하게 발전되었다. 그 해 외국인은 1500명이었으나, 1897년에는 5500명이 되었다.


부산의 외국인 거주지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고, 시내는 일본인 상점과 더불어 각종의 영국식, 일본식 건물과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꽤 좋아 보이는 일본풍의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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