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ik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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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삶과 죽음(King of P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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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5월에 두 스타가 같은 날 사망했다. 70년대에 미모로 찰리스 앤절스란 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특유의 헤어스타일로 젊은층들을 사로잡았던 페라 포셋, 그리고 문워커(moon walker)라는 특유한 춤과 팝의 음악세계를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들을 사랑하던 모든 이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마이클의 죽음을 놓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 세상이 알지 못한 그의 사생활, 죽은 후의 그의 비참한 모습, 너무나 일찍이 스타로 탄생하면서 남이 만들어준 인생, 음악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40년이 넘는 무대 생활, 그는 인생을 채 깨닫기도 전에 그렇게 나이 50세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마이클을 알면 알수록 이 시대에 안겨준 춤과 음악의 완벽한 천재라 부르고 싶다. 그는 Moon Walker 란 춤으로 젊은이들에게 환상적으로 다가 왔고 나 역시 그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신비한 모습의 걸음걸이에 때론 매료되어 내 마음이 온통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캐나다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음악, 춤을 통한 창조적인 모습들을 보았다. 우리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금의 힙합 댄스와 팝음악이란 세계의 초석을 닦아놓은 인물이다. 마이클 잭슨은 많은 형제, 자매 속에서 자라면서 음악의 세계가 형제들과 함께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타고난 재질 때문에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삶을 살게 된다.


 어린 나이에 철없이 놀고 친구들과 보내야 할 그런 시간들은 모조리 빼앗겼고, 노래를 하고 무대에 서는 연습과 완벽한 춤, 특유한 몸짓과 훤칠한 키로 마이크를 어떻게 잡아 청중들의 가슴을 사로잡을지 하는 기교를 배우는 하루하루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마이클은 아이로서 그 만이 갖는 음악 세계 속에 평생을 머물게 된다. 그 결과로 엄청난 금전적인 대가가 주어졌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고스란히 잃어버린 채 성장했다. 누구나 태어나서 거쳐야 할 어린 시절, 사랑 받아야 할 철부지 시절이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이 세계에서 엄청난 경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가 차차 상승하므로 마이클은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않았고 대대적인 얼굴 성형에 들어갔다. 흑인의 특유한 콧날을 바꾸는 일은 수십 차례 시행되었다 한다. 그렇게 해서 백인의 모습처럼 되어가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은 입술, 턱, 눈썹 모두를 변형시키는데 엄청난 자금과 고통, 회복의 시간도 소요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동시에 그의 머리스타일도 여자보다 더 긴 모습으로 등장했고, 점점 남자 아닌 여성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갔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열광했고, 그의 피부역시 서서히 백인보다 더 희게 변해갔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소수뿐이다.


 마이클을 관리하는 매니저는 유명세와 돈에 눈먼 자들이었고, 마이클이 공연만 성공적으로 잘 끝내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는 아무도 죽는 날까지 알지 못했다.


 명성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금전적인 풍요로움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환상의 “네버랜드”를 미니 디즈니월드처럼 만들어서 어린 아이들을 초청하고 거기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허탈감을 채워보려고 그런 환상의 놀이터를 제작한 것은 아닐는지… 


 그러나 세상은 마이클이 생각한 것처럼,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 아니 마이클이 갖고자 했던 그 잃어버린 귀한 것들을 빼앗아 갖고, 성추행이란 엄청난 사건으로 몰고 갔다. 그 아이의 부모에게는 원하던 보상금이 지불되었고 마이클은 무대에서, 세상에서 서서히 몇 년을 사라져 갔다. 


 평생을 바쳐서 쌓아온 그의 세계, 그렇게 그는 무너졌고 은둔의 삶이 시작되지만 세상은 잔인하도록 그의 쉼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딴 사람이 되어서 해골처럼 뼈만 남아 우리 앞에 서있었다. 


 다시 재기하려는 그의 모습 속에는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함께 했다. 매 순간마다 고통을 이기려, 잠을 잘 수 있는 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는 주치의를 동반해야만 했고, 그에 따른 보수도 엄청났다. 히포클라테스 선서를 망각한 의사는 그에게 잠을 재우고 고통을 이기게 하는 일이 최선이라며 생명을 앗아가는 약도 두렵지 않게 사용했다. 마이클이 죽기 직전에 사용한 약들은 감히 상식이 있는 의사들은 쓸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이클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자기 주머니가 두툼해지는 것밖에 보이지 않아 약물 과용을 서슴지 않고 시행해 세기에 하나밖에 볼 수없는 팝음악의 왕을 저세상으로 일찍이 보내는데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결국 법은 그 의사에게 평생 동안 의술을 행하지 못하도록 세상 사람들로부터 멀리 격리시켰지만 2차 공판에서 5년으로 줄이고 지역사회 봉사로 끝냈다고 한다.


 우리는 마이클이란 한 인물로 인해 새로이 만들어진 21세기의 음악 세계와 그만이 가졌던 춤 ”문 워크”를 기리며 살아갈 것이다. 마이클이 남기고 간 음악을 젊은 세대를 통해서 보고 즐기면서 그 음악과 춤을 통해 마이클의 영혼이 살아서 내 곁에 스며온다. 


 마이클이 택한 유일한 음악세계는 그의 삶을 바꾸었다. 만약 그가 딴 길을 택했더라면 이 신비스런 춤과 팝 음악을 길이길이 선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디 고통에서 해방되어 편히 잠들기를! (2012,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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