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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않고 다시 태어난 영웅들
baikkj

 

 

 

 

 어느 시인의 말처럼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에 지금 누군가가 그렇게 기도 합니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성매매 나라로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퍼져나가 제일 국으로 치솟고, 또 중학생에서 노인들까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많은 나라로 연일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국민 앞에 반대로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것도 하느님의 축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인터넷 동영상에서 만나고 있다. 이들은 진정 인생의 향기를 더해주는 사람들이라 생각을 해본다.


 내가 가슴으로 만난 이 두 사람은 Tony Melandez(토니 멜랜데즈)라는 가수이면서 기타리스트와 1968년에 스웨덴에서 태어난 가수 Lena Maria(레나 마리아) 라는 아가씨다.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있다.


 토니란 청년은 두 팔이 없이 태어나서 노래하며 발로 기타를 치는 청년이다. 1987년 9월 LA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셨을 때 교황과 수만 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하며 발로 치는 기타로 교황 환영 연주를 한 사람이다. 


 연주가 끝나자 교황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옮겨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토니에게 악수를 할 수 없으니 그의 볼에 키스를 대신하면서 감격의 목소리로 “토니, 토니, 토니” 세 번을 연발하시고는, 그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다. 아마 토니에게는 일생에 이보다 더한 영광이 없었을 것이다.


 잠시 후에 토니는 청중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When I sing, I hear lord’s voice) 라고 하는 그의 목소리는 천상에서 내려오는 소리처럼 부드럽고 가슴을 파고드는 애원의 목소리처럼 내 귀에 들렸다.


 두발의 발가락으로 기타 줄을 향해서 오르내리는 그 속도는 정상인의 손가락도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소녀 가수 레나 마리아도 태어날 때 두 팔이 없고 다리 하나가 기형으로, 성한 사지라고는 오른쪽 다리뿐이다.


 그래도 3살부터 엄마는 그녀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사지를 다 갖춘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마리아는 물속에서 마치 인어(Mermaid)처럼 움직여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4개나 획득했다. 동영상으로 두발로 하는 뜨개질 모습, 발가락으로 차문을 열어 운전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얼마나 훈련을 해야만 이렇게 달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몇 년 전에 오른 발목을 다쳐서 걸을 수 없을 때 경험한 그 불편들, 손가락 수술 후에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을 때의 그 고충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그녀는 그런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배움에도 열망이 대단하다. 스톡홀름 대학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가스펠 가수로 활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동영상에서 들려준 노래는 너무나 잘 알려진 Amazing Grace 였는데, 얼마나 가슴이 저려오는지. 이 노래는 우리부부가 제일 좋아하는 성가이다. 


 그녀는 가끔 “나는 장애인 이라는 것에 감사한다”고 일러준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가치로 태어났다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 두 팔이 없고 다리가 장애인으로 태어나도 삶에 감사하는 그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그녀가 아픔을 통해서 만난 절대자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녀는 “사람은 태어남에 특별한 목적과 특별한 이유(Special Purpose, Special reason)가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태어남은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한다. 그녀는 청중들에게 “저는 팔이 없지만 목소리를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며 살아갑니다”라고 말했다.


 레나 마리아가 여기에 오기까지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식이 기형으로 태어났을 때 그 충격을 상상해 본다. 내가 임산부를 돌보는 기간에 어떤 유학생의 부부에게 언청이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놓은 엄마를 병실로 찾아 갔을 때 그 부부의 얼굴에 표현할 수 없는 어두움이 가득차 있었는데 내가 갑자기 들어가니 아기를 안고 있던 엄마가 말을 잃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갔을 때 왜 그 부부가 그랬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나 자신도 할말을 잃고 서있었다. 다행이 입술이 갈라진 아이는 쉽게 봉합을 할 수 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금전적인 것이 문제였기에 아동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기억이 새롭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평생 동안 그런 자식들을 세상 밖으로 내 보내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부모들은 어떠한가? 


 매일같이 배움의 길로 향해서 장애인 자녀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일이 그 부모들의 한평생 바친 희생의 시간이었으리라. 또 죄 없이 태어난 그 생명체에 대한 부모의 책임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희생이 얼마나 컸을까? 


 내가 약 15년 전에 처음 임산부 크리닉에서 일할 때 생긴 일이다. 한국에서 온 노처녀와 중동계 남편사이에 중증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엄마의 젖을 빨 수도 없고, 앉지도 못하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모두 부모가 해주어야 살아갈 수 있는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병원생활로 시작하여서 그 어린아이의 위장에 튜브를 집어넣어서 음식을 제공 해야만 했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온 그때 그 엄마가 가야할 태산 같은 고난의 길을 지금 내 기억 속에서 들려주고 있다. 


 나는 아들이 태어나서 알러지로 많은 고생을 할 때 내가 경험한 그 가슴 조이고 마음 아파하던 시간들은 레나나 토니의 부모들이 받는 고난의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때 나에게는 얼마나 힘든 시간들이었는지. 아마도 절대자는 우리가 필요한 이상으로 가지고 살아가지만 언제나 더 추구하고 남과 비교하고 불행한 우리들의 마음 때문에 또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이런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해서 이 같은 토니나 마리아와 같은 사람들을 보내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갖춘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주신 삶을 기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지 않나하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 길이 꼭 택해야만 하는 길인지! 스스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지... 지금 밖에 내리는 눈은 이들 때문에 아파하는 내 마음에 가벼운 바람과 함께 아름답게 춤추면서 내려와 않는다. (20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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