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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취 의사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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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월이 넘게 기다리던 남편의 의사와의 예약일이 다가왔다. 오랫동안 앓아오던 신병에다 약 2년 전부터 걸음을 걷는데 다리의 아픔과 허리 통증으로 심한 고통을 앓고 있지만 남편은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답답한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아내인 내 쪽이다.


 지금까지 함께해 온 운동에서 모두 제한을 받게 되고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하나둘씩 줄어들게 되니 나는 혼자 외톨이가 되어 걷게 된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래서 남편을 재촉하여 가정의사와 예약날짜를 정한 후 운전사겸 남편을 따라 의사 사무실을 방문한 후 이루어진 예약 날짜가 바로 오늘로 다가왔다.


 별 설명 없이 Dr. X와 약속일이 잡혔으니 노스욕 병원으로 가라는 가정의사의 비서 목소리가 자동 메세지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이 의사가 누군지 어떤 의사인지도 잘 모르고 가야하는 것이 조금은 편치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 전화를 해 알아본 결과 그 사람이 마취의사라 일러주었다.


 오랜 기다림에 약속일이 오늘이라 나는 일주일에 한번 나가는 병원일이 겹쳐서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끝내고 헐레벌떡 지하철을 나와 뛰어서 집으로 달려와 보니 남편은 이미 집을 떠난 후였다. 


 숨쉴 겨를도 없이 또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접수실 여 직원에게 남편이름을 대고 접수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도착해서 대기실로 갔다고 일러주었다.


 내가 병원이란 거대한 체제 속에서 한평생을 살다보니 어느 병원을 가나 모든 글자가 눈에 익숙하고 내집처럼 찾아가는데 큰 불편 없는것은 오랜 세월동안 이런 환경에서 살아온 덕분이리라. 내가 그 세계에서 내 인생의 뼈가 굵어졌기에 낯설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쓰이는 용어에서부터 그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일들의 과정을 내 머릿속에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에 나는 그들과 편히 대화를 하게 된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모든 절차를 다 끝내고 대기실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만났다. 혼자서 어떻게 이곳까지 걸어 왔는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편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도 병원과는 평생 동안 인연이 많아서 어느 병원을 가나 자기 이웃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이 65세 때에 마지막 척추 수술(5시간 이상)을 받고 그래도 덕분에 휠체어 타지 않고 이렇게 다니고 있으니 남편의 은인인 세계적으로 권위자인 신경계 의사 Dr. T에게 평생 동안 감사하고 살아간다. 


 3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나는 조금씩 인내심의 한계가 머리를 들기 시작했고, 초조해지면서 아무런 안내 없이 기약 없이 의사를 기다리는 것조차 못 마땅해 오기 시작했다. 의사가 온다는 외래 간호실로 가보았다. 혹시나 해서 오늘 우리 예약시간이 몇 시인데 의사가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열명이 넘는 환자가 그 의사로부터 척추에 주사를 맞기 위해서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실, 대합실을 오가며 그곳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동안 체구가 자그마한 중국인이 푸른 수술방 덮개 모자와 때묻은 운동화 차림으로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를 끌고 그곳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 후 얼마 안되어서 대기실 환자가 하나씩 호명되어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호명되어 나가보니 아까 그 초라했던 모습의 중국인이 남편에게 주사를 놓아줄 의사였다.


 남편은 큰방에 커튼으로 칸막이를 친 곳으로 불려가서 순서에 따라 의사를 기다려야 했다. 알고 보니 열명이 넘는 환자가 모두 같은 시간에 병원 편리한대로 예약을 해놓고 의사가 차례차례로 환자를 보는 게 아닌가! 


 병원시간만 생각을 하지 환자들이 얼마나 불편한 몸으로 와서 기다리는지, 주차비를 얼마나 지불하는 등은 그들의 관심 밖인 듯하였다. 한편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기다렸던 시간이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백인 부부는 아마 이 초라하게 보였던 중국의사를 못 믿어서 그런지 의사가 주사를 놓기 전에 많은 불필요한 질문을 하는 등 기다리는 다른 환자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같은 질문을 계속하고 또 하여 정말 더 이상 나에게는 인내라는 것이 없는 상태에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에게 다가온 이 의사는 Hello Mr. Baik하고 이름을 명쾌하게 부르면서 나의 남편 쪽으로 다가왔다.


 첫 질문이 남편에게 건강에 다른 문제가 없느냐고 묻자 남편은 쉼도 없이 ‘파이브로 마알지아’(Fibromyalgia) 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대답을 하는 순간 그의 대답이 즉흥적으로 튀어나왔다.


 ”당신은 악처와 살아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너는 좋은 부인을 두어서 다행“이라고 하여 한바탕 통쾌한 웃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남편의 병력을 상세히 기록을 해서 그가 들어오자마자 그것을 보였더니 예상밖의 일이라 나에게 그렇게 점수를 후하게 준 듯했다.


 그 말 한마디는 우리를 위로하는데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순간 쌓였던 불쾌함이 순식간에 해소되는 듯... 처음에 우리가 생각한 그의 첫인상을 얼마나 잘못 판단했나하는 생각을 대화를 하면서, 그의 노련한 모습과 의술을 보면서 겉모습으로 판단한 우리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외모만 보고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섰다.


 너무나 솔직하고 시원한 대답에 우리는 안심하고 그에게 남편의 척추를 내 맡겼다. 그의 오랜 세월 체득한 노련한 시술에서 다시 놀랐고, 그의 유머는 공포와 불안한 환자에게 커다란 안심을 주었다. 남편은 시술이 끝난 후 바로 불편없이 걸어서 집에 왔으니 약의 힘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를 재삼 느끼면서 의사의 그 유모에 감사했다.


 도착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의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아무 일 없느냐고 물어왔다.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자기가 시술한 환자에게 집에까지 전화를 해 상태를 묻고 안심을 시켜주는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부분의 의사들은 절대로 개인전화번호는 비밀인데 이 의사는 사무실 전화, 손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일러주었다.


 집에 돌아온 우리 부부는 그의 뛰어난 유머가 환자의 불안을 제거해주고 신뢰를 준 것에 감사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경우 사람을 바깥 모습으로 잘못 판단하는가. 그런 잘못된 사고에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오랜 체험과 숙달된 시술에서 나온 유머는, 척추 속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긴 주사바늘에 대한 공포 속에 있는 남편에게 커다란 신뢰와 함께 긴장감을 없애줬다. 


 오랜 세월동안 수련하여 터득한 넉넉함이 그런 유머로 나와 불안해하는 환자의 마음을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재치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의사들이 Dr. H 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다면 고통도 반으로 절감될 수 있을 텐데... 


 환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자기의 전문에 노련한 의사를 만난 것은 우리의 행운이었다. (2012, 06, 01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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