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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찬 꺼삐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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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삐딴’은 영어 ‘캡틴(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단어다. 1962년 발표된 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6.25전쟁을 거치며 화려한 변신술을 보여준다. 그는 제국대학을 졸업한 외과의사로, 철저하게 황국신민으로 살아가려 한다. 해방 후에는 친일행적이 드러나 감옥살이를 하지만 소련군관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하면서 공산주의 친소련파로 변신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1.4후퇴를 전후로 남한에 정착하면서 이번에는 친미국파가 된다. 휴전이 성사되자 이인국은 뛰어난 처세술로 사회지도층의 자리에 오르고, 평소 친분을 쌓아둔 미국인에게 고려청자를 선물로 주고는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어쩌면 작가 전광용은 해방과 휴전 이후 이런 변절자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현대역사의 아픔을 소설을 통해 통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차기 한국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5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충 이맘때쯤이면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이 발생하고, 차기 주자들이 전면에 나선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까지 50% 안팎으로 여전히 굳건하다.

 

그럼에도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는 주목의 대상이다. 그의 경쾌한 듯 가벼우면서도, 때론 과하다 싶을 만큼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은 기존의 정치인들에게는 찾기 힘든 캐릭터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전광석화처럼 현장을 누비며 방역의 일선에서 뛰는 모습은 지지율 상승에 큰 밑거름이 됐다.

 

최근 벌어진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와의 충돌은 향후 이 지사의 대권행보에 어떤 갈림길이 될 지 궁금하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대선주자 치고는 발언의 수위가 너무 셌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조선일보가 10월 21일 보도한 “이재명, 부동산 오락가락… 이번엔 ‘집값 인위적 억제하면 왜곡’”이라는 기사에 발끈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쓴 “조선일보의 ‘진실 왜곡’ 프레임 공격, 스스로의 오락가락부터 돌아보시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황당한 일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마치 제가 정부여당과 부동산 정책에 대해 각을 세우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오락가락 프레임'으로 저를 원칙없이 좌고우면하는 인물로 폄훼하고, 정부여당의 정책을 공격하려는 정략적 속셈이 너무 뻔히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락가락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조선일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에 비행기까지 헌납하며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오락가락한 것이 조선일보다. 북한군이 침공해 서울까지 밀려들어오자 호외를 발행해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며 오락가락한 것이 바로 조선일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자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이라는 기사를 통해 독재자 만세를 부른 것이 바로 그 조선일보”라고 성토했다. 그는 한발 더 나가 “그동안 조작에만 능한 줄 알았더니, 독해력도 딸리는 모습”이라고 직격했다.

 

조선일보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과거를 낱낱이 까발린 이재명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이 지사의 언급대로라면 조선일보의 역사는 ‘꺼삐딴 리’가 울고 갈 지경이다. 조선일보는 친일과 독재 찬양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공전선에 앞장선 것으로 역사 앞에서 만회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반공의 투사처럼 행세하는 그들의 과거 발자취에 호외까지 발행해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불렀다는 치부가 있다는 것을 이재명 지사가 공개적으로 들춰낸 것은, 조선일보 입장에서 뼈아플 것이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조선일보의 추악한 과거를 알고 있더라도 그들의 위세가 무서워 함부로 입에 담기 힘들다.

 

자존심 센 조선일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이 지사가 조선일보의 향후 예상되는 반격을 몰라서 그런 강성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지지세력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대선주자로서 선명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계산에서 ‘강펀치’를 날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양측의 충돌은 어쩌면 앞으로 훨씬 격해질 것이다.

 

1983년 윤흥길이 발표한 소설 ‘완장’은 권력의 맛을 본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풍자한다. 땅투기로 떼돈을 번 최 사장은 저수지에 양어장을 만들고 동네건달 종술에게 감시원 완장을 채워준다. 종술은 낚시터를 찾은 사람들에게 갖은 행패를 부리고, 양어장과 상관없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차고 거들먹거릴 만큼 권력에 취한다. 나중에는 양어장 사장 일행이 낚시하는 중에도 완장을 차고 나타나 딴지를 건다. 이 때문에 종술은 낚시터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나지만 해고를 당한 이후에도 가뭄 해갈을 위해 저수지 물을 빼려는 수리조합 직원과도 충돌하는 등 ‘완장’의 맛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래도 ‘꺼삐딴 리’ 이인국 박사나 완장 찬 종술은 기껏해야 개인적인 차원의 변신과 일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사회에 끼친 해악도 그리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언론이 시류에 편승해 얼굴을 싹 바꾸고, (사실 이것은 변신이라기보다 둔갑술이라고 해야 적절할 것 같다) 기사와 취재를 무기로 사회적 영향력을 수십 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자신들이 저지른 치욕적인 과오에는 눈을 감은 채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만 외치면 ‘장땡’이라는 인식은 한국사회 건강한 보수세력의 확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완장의 맛에 취했던 종술은 소설 마지막에 정신을 차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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