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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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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만 해도 국립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방학이면 2박3일 지리산 종주에 나서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지리산 계곡은 천왕봉으로 가는 최단코스 입구였다. 계곡 주변에는 여름 내내 텐트가 빼곡했다.

일을 하러 가면 오전에는 주로 야영장 청소를 했는데, 문제는 음식쓰레기였다. 먹다 버린 수박 때문에 특히 골치를 앓았다. 무더운 날씨 탓에 버려진 수박껍데기 주변에는 항상 파리가 들끓었고, 구더기도 어지간히 많았다. 냄새가 하도 역해 정말 코를 막지 않으면 청소가 불가능했다.

 

하루는 태풍예보가 나왔다. 지리산 일대에 폭우가 예상됐기에 등산객, 피서객을 모두 대피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국립공원 직원들과 함께 오후 내내 야영장을 돌면서, 특히 계곡 주변의 피서객들에게 텐트를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기라고 안내했다.

그날 밤새 폭우가 쏟아졌고, 지리산 계곡은 시커먼 흙탕물로 뒤덮였다. 물 흘러가는 굉음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출근했을 때는 이미 비상이 걸려 있었다. 소방관들과 경찰관까지 출동했다. 알고 보니 남녀커플이 대피안내를 무시하고 야영장 건너편 산기슭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샌 것이다. 텐트는 계곡물에 휩쓸렸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그들은 가까스로 산 중턱으로 피신해 나무를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119 구조대는 겨우 계곡 건너편으로 밧줄을 연결했다. 캠핑남녀는 몸에 밧줄을 감고 구조대원과 함께 밧줄에 의지해 계곡을 건너와야 했다. 불어난 계곡물은 여전히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자가 먼저 계곡을 건너왔고, 기다리던 여성이 뒤따랐다.

모르긴 해도, 그 캠핑남녀는 전날의 대피 안내를 농담으로 여겼을 것이다.

 

‘농담’은 구약성경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핵심이자, 주제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 찬 소돔과 고모라에 불을 내려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심판 전에 그곳에 살던 롯과 그 가족을 구해내기 위해 미리 천사들을 보냈다. 천사들이 소돔에 도착했을 때, 온 동네에서 난리가 났다. 롯의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그들은 한시바삐 소돔을 벗어나야 했다. 롯의 두 딸은 소돔의 청년들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예비사위들은 ‘그곳을 속히 떠나야 한다’는 천사들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창세기 19장14절)

 

성경 속에서 ‘농담’의 역사, 또는 그와 관련한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은 농담으로 받았다.

노아가 산에서 방주를 짓는 동안 사람들은 노아가 잠시 정신이 빠져 농담하는 것으로 알았다.

애굽왕 파라오의 압제를 피해 홍해를 건넜던 히브리민족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고 굳게 약속하고도 곧바로 뒤돌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했다. ‘농담성 약속’이었던 것이다.

 

농담의 역사는 신약에서도 이어진다. 예수를 직접 보면서, 그분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도 농담으로 여겼다. 광야에서 보리떡과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칭송했다.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예수께서 “내가 하늘에서 새생명을 주기 위해 내려온 하늘의 떡”이라고 말씀하시자 군중들은 “그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그러더니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렸다. 배고픔을 달려주는 떡은 덥석덥석 날름날름 받아 먹으면서 영생 이야기를 하자 개무시하고 농담으로 취급해버렸다.      

3년 넘게 예수를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농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마가복음 16장11절과 13절, 14절에는 부활 소식을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구절을 일부러 반복해서 기술한다.

 

남아 있는 제일 큰 ‘농담’은 심판이다. 개인에게 닥칠 심판, 남아 있는 인류에게 한꺼번에 닥칠 심판, 모두 다 농담 취급을 받는다. 놀랄 일은 아니다. 아담 이래로 모두 그래왔다.

인간들이 농담으로 시작해 농담으로 끝내고 싶어 해도, 언제나 진심인 분이 있다.

오병이어 내러티브의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그저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취급하는 인간 중에 어떤 무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가도록 이끄시는 것이다.

이 그림이 정확하게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도 그려진다.

사실 소돔에서 구원을 받은 롯도 천사들의 심판 이야기를 농담으로 받았다. 어서 피하라는 재촉에도 불구하고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강제로 그들을 끄집어 내시는 분이 계셨다. 도무지 대책 없는 자들에게도 한없이 자비롭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19장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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