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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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그 사이에 어머니
Hwanghyunsoo

 

 몇 년 전, 지리산에서 실종 40시간 만에 구조된 초등학교 4학년 정희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년은 밤이 되어 무서울 때 “우리나라 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바위틈에서 잤다고 한다. 밤에 비가 내리자 “산에서 비 맞고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죽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 나 침낭을 뒤집어쓴 채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고비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려 무사히 가족 품에 안긴 소년도 장하지만, 평소 침낭이 든 무거운 배낭을 소년에게 직접 메워 산길에 앞장 세우고, 틈틈이 산행의 요령과 바른 자세를 일깨워 준 그 아버지가 더 궁금했다.

 

산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던 40시간 동안 부모의 속이 어땠을까?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야 아무리 걱정 없는 듯했어도 속으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소년에게는 평소 산행 때마다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어두운 밤의 불빛처럼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었다는 아들의 듬직한 신뢰가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믿음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말씀이니까 옳고, 내 아들은 그럴 리 없다는 신뢰 속에는 오랜 기간 쌓이고 다져진 존경과 사랑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렇듯 좋은 가정은 흔치 않은 듯하다. 특히 이민자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차츰 커가며 이민 온 나라에 잘 적응하는 모습이 흐뭇도 하지만, 한편으론 문화적 갈등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항상 품 속에서 보호받던 아들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반대로 아들에게 물어보거나 도움 받아야 할 일이 많아진다. 아버지의 권위는 차츰 흔들리고, 이쯤 되면 어머니는 아버지 보다 아들을 더 신뢰하는 가정이 많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잘 지켜주는 어머니의 지혜가 필요하다.

 

모국의 사정도 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좀 복잡하고 미묘하다. 마음에 들던 못마땅하던 무조건 사랑하는 어머니와는 다르다. 잘난 아버지는 잘난 아버지대로, 못난 아버지는 못난 아버지 대로 불화가 있다.

 

특히 아버지가 많이 배우고 사회적 위상이 높을수록 아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다. 아들 입장에서는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문턱이 높은 존재이지만, 나름 이해 못할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을 잘 표현한 영화 ‘사도’

 

영화 ‘사도’는 이런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을 잘 표현했다. 천한 신분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영조(송강호)는 조선왕조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민한 군주다. 그런 아버지는 웬만한 아들(유아인)이 눈에 차지 않는다.

 

영조는 한 번도 아들을 칭찬하거나 인정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무엇을 해도 야단치고 꾸중했다. 아들은 점점 될 대로 돼라 하는 식의 해괴한 행동을 함으로써 더욱더 아버지 눈 밖에 나고 만다.

 

영조는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책임질 미래의 군주인 아들이 영 못마땅했고, 정신 질환으로 미쳐 날뛰는 그의 살기를 보며 앞으로 나라의 장래가 걱정됐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는 극단적 결단을 내린다. 영조는 적임자가 아닌 세자가 계속 자리에 있을 경우 불행이 올 것 같았다. 아들보다 더 자격 있다고 판단되는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영화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의 아들, 3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만약에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으면 역사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 씨(1696~1764)는 후궁이었지만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 6녀를 두었을 만큼 왕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그녀가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사도세자를 낳았을 때 영조가 직접 그 곁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늦도록 아들이 없어 걱정이 많았던 영조의 기쁨이 무척 컸고 그만큼 기대도 많았다. 그래서 생후 1년 만에 왕세자로 책봉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며 아버지에게 반항하거나 주위의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등의 포악한 행동을 계속하는 사도세자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어머니는 역모의 가능성까지 느껴, 며느리와 손자를 지키기 위해 친아들을 죽여 달라고 눈물로 간청한다.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본 영빈 이 씨는 사도세자의 3년 상이 끝난 바로 다음날 세상을 떠난다. 사도세자가 죽은 뒤 하루라도 마음 편히 숨 쉬는 날이 있었을까? 짐작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당시 사도세자의 생모는 아들의 죽음을 막거나 완화시키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지 어머니의 역할은 둘 사이의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 영화 '사도'를 보며, 나 또한 아버지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반성했다.

 

지나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지켜보아 주고 응원하는 지혜로운 아버지가 되는 일은 어렵다. 자식이 성인이 된 지금도 영원한 숙제로만 느껴진다. 2015년 가을에 노스욕 시네플렉스에서도 상영된 이 '사도'를 아들과 나, 그 사이에 아내가 자리해 함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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