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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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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

 

-캐나다를 떠나며 동포들께 올립니다-

 

 

 캐나다에 이민 온지가 근 25년, 반반 세기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캐나다가 제2의 조국이 되었다. 그런데 내 나이 80세에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니 미국이 마지막으로 제3의 조국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사료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주시니라”(잠16: 9).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하였다. 나의 생애에 이민이란 두 글자가 마음속에 있지도 아니 하였는데 두 번씩이나 이민을 하게 되니 인생사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무나 많은 은혜를 베푸시며 나의 가는 길을 인도 하시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온 몸으로 느끼며 수시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린다.

 

 나의 생애를 살펴보면 1959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1년 후 1960년 4월 19일 부정부패, 부정선거, 독재 등의 이유로 학생운동이 일어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셨다. 본인도 깊은 뜻도 모르는 채 광화문까지 앞장서서 데모하였다. 그리하여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의 제2공화국이 들어섰다.

 

 이 두 분은 같은 당이면서 신, 구파로 나뉘어 분쟁 속에 각파에서 1명씩 각각 선출됨으로써 화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수행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국가와 사회의 혼난 속에 북한의 공작 등으로 국가유지가 어려운 상태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2공화국이 설립된 지 1년이 지난 1961년 5월 16일 서울관할 제6관구사령관 박정희 육군소장의 군사쿠데타로 군사정부가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4.19와 5.16은 한국 현대사의 두 개의 큰 정변이었다.

 

 나이에 비해 2년 늦게 대학에 입학하게 되니 3학년 때 지정된 대학교에 초임장교 배출을 위한 ROTC 학도군사훈련 제도가 설립되어, 1963년에 ROTC 제1기로 소위에 임관하고, 2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65년에 전역하였다. 전역한 후 내가 앞으로 진로에 대하여 몹시 고민하였다. 물리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중, 고등학교 교사밖에는 기회가 없었다.

 

 고민 끝에 직접 국가를 위해 정부 공직에서 일하고 싶어 독학으로 공부하여 마침내 1966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정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제2차 계획 때부터 실무자로 참석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근무 중 1968년에 UN산하 UNDP 계획에 따라 이태리에 TURIN 훈련센터에서 개발도상국 30여 개국으로부터 선발된 대상자로 6개월간 훈련을 받았다. 훈련과정 중 2개월 동안은 영국 등 5개국의 선진국 산업단지를 견학하게 되어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먹고 살기도 힘든 미개발국가로 언제 이렇게 잘 살수가 있을까? 하며 얼마나 부러워하였는지!

 

 근 30년간 공직에서 일하면서 3개국 대사관에서도 근무 하였고 국내에서는 주로 경제개발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캐나다로 이민 오게 되었다.

 

 다행히 경제개발이 성공되어 세계가 놀라는 짧은 기간에 10대 경제대국으로 변모한 조국을 뒤에 두고 캐나다로 이민 오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의 고국상황을 보면 얼마 유지 못하고 다시 빈국으로, 아니 국가의 존망까지도 위험한 상태이니 믿는 자들이여 조국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캐나다에 이민 직전의 큰 고민은 캐나다에서의 교회신앙 생활에 대한 문제이었다. 고국에서는 오직 정동 제일감리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캐나다에서는 어찌할 것인가? 처와 함께 고민하며 기도 하였다. 솔직히 정동제일 감리교회를 떠나는 것이 제일 안타까웠다. 정동제일 감리교회는 1885년 10월 11일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하고 초대 목사로 부임 하면서 132년의 전통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다.

 

 벧엘예배당이 1897년에 건축되어 현재 대한민국 사적 제256호로 제정되어 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 정동교회의 시무장로로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출석 하셨고 내가 출석할 때는 프란체스카 여사와 양자인 이인수 권사와 함께 예배를 드렸으며 이인수 권사는 전주이씨 가문으로 또한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매우 인연 깊게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두 아들(호상, 헌상)이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은 교회로 잊을 수가 없는 나의 영원한 교회이다. 제 4대 담임목사 최병현, 제 5대 담임목사 현순, 제6대 담임목사 손성도, 제 7대 담임목사 이필주 등 역대목사님들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들이다. 특히 이필주 담임목사는 전도사 박동완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에 적극 동참 하였다.

 

 정동교회 평신도인 유관순 열사도 3.1운동에 참여하여 옥사 하였으며 YMCA 윤치호 회장도 정동교회 시무장로로, 독립협회의 전위대를 창설한 서재필 박사도 정동 교인이었다. 정동교회가 애국애족의 진실한 교인들을 배출함으로써 역사에 기록되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동교회에서 편찬된 “정동제일교회역사”에서 발취하여 서술하였다.

 

 캐나다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고민 끝에 전통적인 교회생활에 대한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기로 하고 개척교회나 미 자립교회에서 봉사하며 복음을 전파하기로 하였으나 나의 믿음부족으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내외의 재능으로는 도저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다.

 

 부득이 교회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영락교회가 60세로 장로정년이 변경됨에 따라 영락교회 담임목사 송민호 목사님을 직접 방문하고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애원한 끝에 허락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교회에 봉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이 교회를 설립하고 부흥시킨 교인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하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하면 또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될지? 우리 내외같이 많은 교회를 전전하며 파란만장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공직 근무 중 3차에 걸친 공관생활로 공관국가마다의 교회생활, 이민 후 이사로 인해, 또한 자의타의에 의해 교회가 바뀌게 되다 보니 성지순례가 아닌 교회 순례라고 자조석인 말을 하고 있다. 교회 순례의 신앙생활을 통해 오히려 우리 부부의 신앙이 교파까지 초월한 신앙으로 굳건해졌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결론적으로 4.19와 5.16은 한국의 두 개의 정변으로 4.19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하셨고, 그 후 57년이 지난 2017년 3월 10일 국민의 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으로 하야되었으니 이는 본인의 잘못보다는 대통령을 모시는 비선조직의 일부의 과잉충성으로 본인들은 물론 국가의 막대한 손실이 아닌가 한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불신과 반목, 그리고 분리와 대립으로 정치, 경제, 국방, 문화, 교육, 준법정신 등 앞날이 매우 걱정된다. 세상을 전전하며 살다보니 형편상 우리내외만 캐나다에 살고, 모든 가족이 미국에 살고 있다. 일찍 부모 모시기를 원한 큰 아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지내 왔으나 나이가 점점 들고 보니 함께 살기로 이민을 결정하였다.

 

 큰아들의 효심에 항상 고맙게 여기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가는 소식을 먼저 독자 여러분께, 그리고 토론토 영락교회 송민호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모든 목사님, 성도 여러분, 그간 함께한 동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별히 나의 글을 게재해준 이용우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감사표현”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1993년 캐나다 이민오기 전부터 3년간 극동방송국에서 매주 목요일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 왔는데 조찬기도회가 실제적으로 극동방송국 운영회로 교계, 정계, 재계 등 50여 명의 교인으로 구성되어 기도와 찬송, 성경말씀, 주제토론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중공 등의 통신선교현항 소식을 전하면서 여기서 성경말씀은 송용필 목사님이, 주제발표는 김장환 목사님이 담당 하시고 예배가 끝나면 깔끔한 한식조찬이 매우 즐거웠다.

 

 어느 날 주제가 인간간의 감사표현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각자의 의견을 교환한 결과 감사는 마음속 깊이 마음에 간직한 채 상대방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표현이 안되므로 외적으로는 부담이 안가는 기념품이나 간단한 선물을 전하는 것이 감사의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 외적의 표현이 온전한 감사표현이라는 결론이다.

 

 존경하는 여러분께 감사한 모든 것을 가슴에 간직하였으나 외적 감사선물은 글로 대신하오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바라옵기는 너무나 긴 글로 횡설수설 하였으며 불손한 오만으로 가득한데 제가 책을 발간한지가 오래 되었고 다음 책을 발간할 때 원고로 하여 우리가문의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실례를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리며 우리 믿는 자들은 언제고 하늘나라에서 반드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오 주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그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며 걷는 자의 걸음을 인도하는 것이 그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나이다”(렘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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