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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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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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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의 기원은 솟대· 선돌· 신목(神木) 등과 함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물로서 유목·농경 문화의 소산으로 파악된다. 일종의 수호신상으로서 씨족·부족민의 공통적 염원을 담은 제정일치 시기 지배이념의 표상으로서 기능하다가 삼국 시대 들어 중앙집권적 국가 기틀이 마련되고 불교·도교·유교 등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됨에 따라 불교의 습합되어 전승하게 된다.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승은 민간신앙의 저변으로 흘러 들었을 뿐 불교라는 제도권에 안착되지는 않았다. 불교는 장승의 의미를 약화시켜 사찰의 경계표시나 호법신(護法神)으로 축소시킨다. 외래신앙이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전래의 민속신앙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처럼 불교와 무관한 장승이 사찰에 등장한 것이다. 이는 장승이 민중의 삶과 정서 속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반증해 준다.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 사대부사회의 통치이념인 유교가 현세적 도덕규범의 성격이 강함에 따라 생산, 죽음이나 질병, 고통 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장승 신앙이 부활할 소지가 생겨난다.궁중에서도 일정하게 역할을 한 무속적인 금장군(金將軍)·갑장군(甲將軍)이라 불리는 세화(歲畵)의 등장이나 용호(龍虎) 그림 등의 유행도 그 기운을 읽게 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이는 지배층문화에서 소외된 불교·도교가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신석기 이래의 민속적 장승신앙이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새로운 장승문화에서 그 이름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상원주장군· 하원당장군 등으로 붙여진 것이다. 이처럼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면면히 이어온 장승은 16∼17세기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