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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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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유니온 역(Union Station) 플랫폼에서 세인트 죠지역(St. George Station)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살배기 손자를 데이케어(daycare)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전철이 정차하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대충 내리기를 기다리는데, 내리는 사람들의 잡담 속에서 ‘아웃 어브 서비스…’하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냥 흘려들었을 뿐, 내릴 사람들이 다 내린 후에 여느 날과 같이 플랫폼과 전철 사이의 틈을 조심시키느라고 허리를 굽혀 손자를 감싸 안고 전철 안으로 막 들어서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살짝 건드리는 느낌에 무심코 돌아봤다. 방금 내린 듯 한 젊은 청년이 ‘아웃어브 서비스!’하고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다들 나오고 있는 물결의 끝에 우리 조손(祖孫)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안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제야 흘려들었던 잡담이(?) 바로 그 내용이었구나 하고 짐작되었다. 다시 플랫폼에 서서 다음 차를 기다리는 동안 뇌 속에서 복잡한 미로(迷路)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만사 열리지 않는 귀와 눈 때문에 허둥대고 헤매는 일이 많은데, 그나마 영어까지 길을 막다니! 세상에 아무리 좋은 말들도 지혜의 귀가 열리지 않으면 다 ‘쇠귀의 경’이 되고 말 터. 알고 있으면서 새기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헛일. 마음을 열면 귀가 열릴 것이고, 귀가 열리면 자연의 소리, 순리의 말씀, 세상의 이치를 다 헤아리는 지혜가 생길 것이다.
 

영어라고 다를 리 없지 않은가. 그 이치를 다 알면서 왜 게으름을 부렸을까.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전력투구하지 못했다. 전력투구는 고사하고 정식으로 시작도 못했고, 열심 한 번 낸 일이 없으니 귀가 열리지 않는다고 불평할 자격조차 없다.
 

어쩌다 시작 비슷하게 했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했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결론은 끈기부족이다. 아니, 언제 받은 영어교육인데 지금 단어 몇 개라고 살아남아있는 것도 고마운 일, 귀가 열리는 것은 그만두고, 떴던 눈마저 어두워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 아닌가. 새로 담기는커녕 잊어버리는 것이 더 많지 않은가.
 

자책과 자괴감이 스쳐 지나가고, 영어든 삶이든, 노력하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지금이라도 시작해보자. 시작은 작으나 그 끝은 크려니... 가까스로 바닥에 깔리는 기분을 그렇게 건져 올렸다. 
 그래도 그동안 영어 때문에 사건이 될 만큼 큰 불편은 아직 겪진 않았다. 짧은 실력으로나마 병원에도 혼자 갔고, 쇼핑도 혼자 하고, 캐나다인 친구도 서넛 생겼다. 오, 바디 랭귀지! 다소 답답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용케도 헤쳐 나갔다. 
 

두어 번 스트리트카가 도로상에서 고장이 나서 멈춰 섰을 때 안내방송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사람들 눈치 보며 내렸다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눈치껏 다음 차를 갈아타고 바쁜 시간을 대체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사정으로 돌아서 간다고 했던 말을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내리는 사람 따라 행동했던 일도 있긴 하다.
 

그렇게 좌충우돌, 서툰 영어실력으로 버벅대는 나를 식구들이 놀리기도 한다. ‘워낙 고급영어를 구사하시니까 본토 영어가 딸리잖아요!’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어라면 전문가의 뺨도 칠 자신이 있지만 영어 앞에서야 맥을 못 추다니, 쯧! 생각해보니, 갑자기 한국말을 잘하는 캐네디언 친구가 밉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처음엔 편했지만 영어의 갈급함을 못 느끼게 했으니 나에겐 오히려 걸림돌이 아닌가, 이젠 절교다! 잘되면 제 덕, 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이 비열함이라니, 이래서 인간성 변하는 것 순식간이 아닌가 하며 쿡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토론토에 살게 되면서 ‘원서를 읽고 싶은 꿈’이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영어문맹인 지금의 내 앞엔 물 건너간 꿈으로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포기해야 하나? 싫어! 그래도 영어를 아예 안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런 정도의 깜냥에도 가장 어려운 것이 리스닝(listening)이다. 리스닝만 어느 정도 되면 궁색한 단어로라도 땜질을 해보겠는데. 리스닝(listening), 영어의 산 입구에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바위다. 그 바위를 넘기 위해서 대보름날 아침에 마신 귀밝이술의 영험으로라도 귀가 빨리 열렸으면 좋으련만. 
 

한글자막이 있는 영화를 볼 때도 어쩌다 들리는 대사도 아, 맞아. 두 박자 쯤 늦게 몇 초전에 지나간 영어대사가 리와인드 되기도 한다. 왜 안 들릴까? 그래서 이젠 최소한 서바이벌 영어수준이라도 되어야겠다고 꿈의 수위를 낮췄다. 오, 게으른 자의 비겁한 몸짓이여!
 

꿀꿀한 기분의 그날 오후, 손자를 데려오는 길이었다. 집근처 역에서 내렸을 때 녀석이 쉬를 하고 싶다고 보챈다. 바로 집 가까이 오긴 했지만 아이가 보채니 어쩔 수 없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대형 수퍼마켓 소비즈(Sobeys)의 문을 밀고 들어가 급하게 아이를 앞세우고 화장실을 찾아갔다. 늘 다니는 곳이라 익숙한 공간이라도 화장실 사용은 처음이었다.
 

오 마이! ‘out of service!’ 화장실 문에 붙어있는 종이에 쓰여 있었다. 고장이라고? 손자 녀석을 참게하며 동당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와야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영어가 게으른 나를 혼내주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아웃 어브 서비스! ‘서비스중단’이 아니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들렸다. 꿈틀꿈틀 채찍으로 변하더니 훈계하기 시작했다. 어디 영어가 식은 죽인 줄 알았나? 불평하지 말고, 이유도 대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라! 일단 시작하면 전력투구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나니, 먼저 너 스스로 너를 도우라! 스스로를 돕지 않으면 영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니. 영어의 세상에서 낯설게 시작한 이민생활도 의미가 없으려니! 

 가족들 사이에서 5순위가 문제가 아냐. 사회에서 등외(等外)야. 낙오자란 말이야. 꿈을 잊으면 미래를 잃는 법, 원서를 읽고 영어로 글을 써보겠다는 그 야무진 꿈은 다 어디로 날렸니?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려, 후회도 소용없어! 늦다고 생각한 그 시간이 가장 빠른 시간이야! 알겠니? 이 돌대가리야!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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