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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6)
Imsoonsook

 

'용서의 언덕'과 천의 얼굴 십자가(5일차)
(자리키에기~마네루 / 18km)

 

 


 간헐적으로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또 어떤 그림들이 내 안으로 들어 올까.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하체에 비해 머릿속은 장밋빛으로 내달렸다. 길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 단순한 일상이지만 수많은 만남이 함께 하고 있어 내심 기대되는 첫 걸음이다. 


 대도시 팜플로나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유입되었는지 까미노는 전에 없이 활기가 넘쳤다.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의 힘찬 움직임 사이로 5일차 선배들이 약간 지친 몸짓으로 묵묵하게 줄을 잇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어제 다리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S와 J가 우리보다 훨씬 위 지점에 있어 안심이 되었다.


 해발 770m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일명 '용서의 언덕'이라 명명된 연유는 순수한 자기 자신을 찾기 전에 마음 속 앙금부터 지우라는 의미일 게다. 한 발 두 발 산을 오르면서 무질서하게 떠오르는 영상들을 반추해 본다. 


특별히 누군가를 용서하기 보다 오히려 내 자신이 미흡하여 용서 받아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너와 나의 불편한 관계를 정리라도 하라는 듯 성당의 종소리가 가깝게 울려왔다. 순도 백 프로의 청량한 울림에 그저 감사함으로 응답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사해야 할 요인들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지를 미쳐 깨닫지 못한 우매함에 코끝이 시큰했다. 


 사방이 확 트인 산 꼭대기에 순례자들의 여정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누군 말을 타고, 또 어떤 이는 달리기를 하며 다다르고 싶은 그곳은 산티아고 보다 더 간절한 어느 곳이 아닐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순례자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조각상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늘씬한 영국 청년 매튜는 우리 부부의 사진을 찍어준 게 인연이 되어 한동안 서로 길동무가 되었다. 까미노의 큰 매력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가서고 친구가 된다는 점이 아닐까. 


하산 길은 평지가 나올 때까지 자갈이 깔려 있어 꽤나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발바닥 물집과 골반 결림 그리고 힘에 부치는 배낭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몽니였기에 감히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중세 시대의 다리 이름이 곧 도시명이 된 레이나에서 스페인 대표 음식 빠에야와 생맥주로 모처럼 제대로 된 점심 식사를 했다. 주 재료가 우리에게 익숙한 쌀과 해산물로 요리된 빠에야는 친숙한 듯 하면서도 겉도는 묘한 느낌의 음식이었다. 마치 유럽과 동양의 차이만큼 이랄까.


 식사 후엔 봄 기운이 만연한 숲길을 기분 좋게 걸었다. 되도록이면 길 위에서 오래 머물며 천천히 걷고 싶은 우리와 달리 사람들은 빠르게 그들의 길을 재촉한 끝이라 자연히 숲은 독차지가 되었다. 덕택에 여유롭게 새소리, 숲의 적막함을 마음껏 누리며 마지막 능선에 올랐다. 


잔잔하게 끝날 것 같았던 오늘의 여정은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예비하고 있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철조망에 매달린 각기 다른 모양의 십자가들, 자연에서 채취한 비슷한 소재로 엮어 만든 천의 얼굴, 순례자들의 소망이 빈틈없이 매달려 있었다. 이 구간을 걷는 내내 그들의 열망대로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바래며 숙소지 마네루에 입성했다.


 동네 깊숙이 자리한 마네루 공립 알베르게는 6유로의 저렴한 숙박비에 비해 환경이나 시설이 다른 곳보다 월등했다. 무엇보다 깔끔한 부엌이 마음에 들어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마켓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나 조용한 동네 분위기는 일요일은 무조건 쉰다는 암약이 있었음이리라. 


빈손으로 돌아 온 우리는 알베르게 주인장 마리오네에게 무조건 매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에게서 수제비 재료들을 제대로 구입하여 모처럼 땀 흘리며 흡족하게 한 그릇씩 비웠다. 주인장 마리오네 아저씨도 우리의 수제비 맛에 반해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간절히 원하던 한 끼 음식으로 행복이 극에 달했던 하루의 끝이 이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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