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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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1)-로댕미술관의 ‘영원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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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오늘 아침 인터넷 신문에 미국의 ‘티보잉(Tebowing) 열풍’ 기사가 났다. 현대 미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 스타인 프로 미식축구선수 팀 티보(덴버 브롱코스)가 경기 전과 터치다운 이후에 취하는 기도 자세가 마치 조각가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 한다는 것.  
이를 흉내 내는 젊은이들과 플레이보이의 모델까지 집이나 여러 장소에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처럼 티보잉하는 사진을 붙여놓는다는 것. 극한상항에서 기도하는 듯한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 ‘티보잉’이란 단어가 영어사전에까지 공식등록 될 예정이란다.
 지난 초가을에 필라델피아에서 남편 민석홍 장로가 참여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각 나라에서 날아온 대표들과 하루 종일 토론하고, 다음 모임 장소를 정한 다음에 헤어졌다. 우리 부부는 동생 민열홍 장로 집에 며칠 더 머물며 로댕미술관과 결혼 후 10년 만에 첫 선물로 내 밤색 털코트를 사준 워나메이커백화점, 리딩 테라스란 멋진 이름이 붙은 이탈리안 야시장, 그리고 윌리엄 펜의 동상이 보이는 시내와 독립기념관의 ‘자유의 종’까지 둘러본 다음 델라웨어 강가의 달밤을 산책하고 다음날 일찍 로댕 미술관에 두 번째 방문을 했다.
 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름을 따서 만든 파크웨이에 있다. 전시관은 마침 공사 중이라 문이 닫혀 있었고, 2012년 2월에 다시 문을 연다는 것이다. 미술관 밖의 공원에 서 있는 백향나무 그늘 아래 흰 대리석 받침대 위에 옷을 벗은 채 턱을 괴고 앉아있는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걸작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로댕미술관은 자선사업가인 줄 마스터바움(Jules Mastbaum)이 로댕의 작품을 수집해서 아름다운 공원 안에 1929년 개관했다. 파리의 로댕미술관 다음으로 로댕의 작품이 많다. 로댕의 등 뒤로 파르테논 신전 풍의 미술관 지붕에 어린 천사들이 책을 읽으며 놀고 있는 조각을 새긴 세모난 박공이 보인다. 그 문을 들어서면 시원한 분수를 뿜는 네모난 연못과 로댕의 청동 조각작품인 ‘지옥의문(The Gate of Hell)’이 일직선으로 보인다.


 


이끼가 낀 듯 푸르뎅뎅한 이 ‘지옥의문’은 바티칸시의 시스티나 성당에 걸려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생각나게 한다. 로댕은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두 작품 모두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삼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작품에 잔소리를 한 추기경을 지옥으로 보내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지옥의 심판자 미노스로 그렸다. 자신의 초상화는 몸의 피부를 칼로 벗기듯 순교당한 바르톨로메오(이 그림 이후에 그는 성인반열에 오른다)의 가죽껍질에 달린 얼굴로 그려 넣었다. 이 프레스코화를 시스티나 성당에서 보았을 때의 전율이 잊혀지지 않는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한 성당 안에 최후심판의 메시지와 공포와 증오가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로댕은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천국에 갈 수 없는 군상들을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지나치게 아름답게 조각해 넣었다. 저렇게 사랑스런 모습으로 지옥에 있다면 갈 만하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너비 4미터에 높이 7미터가 넘는 청동빛 ‘지옥의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두 문짝엔 186명이나 되는 로댕의 작품모델들이 조각돼 있다. 맨 꼭대기엔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이 세 가지 망령의 모습으로 서있다. 바로 아래 칸엔 입구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조금 작은 로댕이 지옥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 전에 자신의 운명과 내면의 삶을 생각하며 참회하는 듯이 앉아 있다. 그 옆에선 한 순교자가 거꾸로 떨어지고 있고. 그 아래에 우골골리노와 그의 아들들의 비극이, 또 그 아래는 아름다운 ‘Kiss’ 조각상이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욕정’의 모델이다.

 


여러해 전 이 ‘지옥의문’을 지나 천당같이 환한 전시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영원한 봄’이었다. 유리창 밖에 봄의 절정인 듯 녹음이 우거져서 대리석 조각상은 분홍빛을 띠며 더 선정적으로 보였다.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가 이 작품을 두고 말한 “사랑, 우주의 숨결”을 부제목으로 붙이면 어떨까. 우리 부부의 사랑도 이렇듯 영원히 아름답고 따뜻한 봄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작품은 로댕의 조수이며 모델이었고 로댕 못지않은 조각가로 성장한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사쿤달라’에서 풍기는 정염의 분위기와 구조가 너무나 흡사해서 클로델의 작품이 아닌가 느껴졌다. 그 순간 로댕에게서 버림받은 클로델의 순탄치 않은 인생여정이 떠올랐다. 
‘지옥의문’을 작업할 무렵인 43세의 절정기인 로댕과 사랑에 빠진 클로델에겐 로댕과의 행복했던 시간, 로댕을 떠나 자신의 세계를 일으켜보려고 한 처절한 몸부림의 기간,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30년을 보낸 비운의 종말이 있을 뿐이었다.
 클로델과 아주 비슷한 또 한명의 여인은 로댕과 비슷한 시기에 ‘헝가리 환상곡’으로 온 유럽을 휩쓴 피아니스트 리스트(1811-1886)의 연인 마리아 듀플레시다. 그 여인의 운명도 클로델과 비슷했다. 
리스트와 동거하던 마리아의 화려한 집 살롱엔 음악가와 시인들의 음유시 낭독과 연주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마리아 자신도 피아노연주에 열중했다.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그녀를 두려워한 리스트는 그의 명성에 그림자를 느끼며 사교계의 별인 그녀가 병들자 버린다.


 


“나는 병이 깊어져 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를 당신이 좋은 곳이면 어디고 데려가줘요. 괴롭히지 않을게요. 낮엔 자고 저녁엔 나를 극장에 데려가 줘요. 그리고 밤엔 당신 마음껏 나를 가지세요.” 이런 애절한 편지에, 가을이면 그녀에게 돌아와 콘스탄티노플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한 리스트는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결절성 병으로 23세의 나이에 죽고 만다. 
 카미유 클로델이 자신의 작품 ‘성숙’에서처럼 로댕에게 매달리자 “전람회가 끝나면 우리는 이탈리아로 가서 여섯 달 동안 머물며 마드무아젤 카미유는 나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그녀에게 더없는 사랑을 고백한 로댕은 이 약속을 아주 쉽게 깨고 그녀를 버리고 만다. 
더 나아가 클로델은 유부남의 정부가 아닌 한 예술가로 독립하려던 의지마저 무참히 꺾이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간호사들에 끌려 정신병원에 갇히고 30년이란 긴 마지막 생애를 그곳에서 마감하고 만 것이다. 같은 예술의 분야를 걸어야 할 부부나 연인들의 질투심일까.
‘지옥의문’에 조각한 연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참회하려는 듯, 한 쪽 구석에 청동주형으로 조각한 ‘성당(Cathedral)’이라는 작품이 두 손을 모아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사랑과 우주의 숨결을 뿜는 듯하는 ‘영원한 봄’을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영원한 봄’ 대신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살고 간 클로델을 생각하며 미술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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