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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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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칼과 저울-무너지는 사법부 권위


 

▲정의의 여신 디케(Dike) 상. 법의 여신이라고도 불린다. 

 

 

 

 예전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꼭 빠짐없이 들어가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판,검사였다. 판,검사야말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직업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그것은 다른 세습적인 부(富)를 누릴 수 없는 일반 흙수저들이 금수저 반열에 오르는 가장 빠른 신분상승의 수단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죽어라 일해도 권력과 부를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은 달리 없었다. 그래서 시골 출신의 가난한 대학생들이 육법전서(六法全書)를 싸들고 고시공부 하러 깊은 산의 절로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개중에는 운과 ‘암기력’이 좋아 수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하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십년 가까이 절간에서 청춘을 허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사법고시 관문을 통과한 선택받은 사법연수원생 주변엔 온갖 유혹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선 돈 많은 집안으로부터 혼담(婚談)이 쇄도하고 이를 연결해주기 위한 ‘마담뚜’까지 등장하며, 권력과 연줄을 대려는 어두운 손길들도 줄을 잇는다. 


 학창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부당한 정치권력에 항거하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법조문 외우기에 매달려 마침내 입신(立身)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 나같은 세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도서관과 절간에서 법조문만 외우던 사람들에게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자세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또한 자신도 흙수저 출신이면서 일단 현직에 들어가면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조직에서 크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다. 이런 상황에서 공평무사한 판결이나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0…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 ‘디케(Dike)’다. 디케는 정의(正義) 또는 정도(正道)라는 뜻이다. 이것이 로마시대에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대체됐는데, 정의를 뜻하는 영어 저스티스(Justice)는 여기서 유래했다. 디케는 처음엔 두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티아는 여기에 저울이 더해졌다.


 즉, 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칼은 정확한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한다. 또한 디케에 눈가리개를 두른 것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기 위한 것이란 뜻이다. 즉,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편견이나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각에서는 눈가리개에 대한 다른 해석도 생겨났다. 즉,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왜곡된 판결이 양산되는 세태에 대한 풍자라는 것이다. 사법부의 부패와 정직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다. 


 법과 정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엄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힘없는 사람에겐 가장 위험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법은 강자의 이익이라는 역설이 생긴 연유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신(神)이라도 눈을 가리고 있으면 공정하기 어렵다. 사람을 심판하는 법관은 저울이 과연 공정한 저울인가부터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0…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법원 앞에 세워져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았고 손에 칼도 없다. 이에 대해 세인들은 법관이 먼저 상대(피고)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그 지위에 따라 유,무죄를 판별하고, 권세가들에게는 큰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이래서 생겨났다. 


 특히 보수정부에서 민감한 시국사건의 판결을 보면 과연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최근 불거진 전 정부의 사법부 행태는 그 존재의미를 무색케 한다. 최고 수장(首長)인 대법원장이란 사람이 무능한 대통령과 짜고 해고 노동자 등 소수약자가 관련된 재판을 멋대로 뒤집고 지연시키는 ‘거래’를 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추락시켰다. 국민들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사법부는 자멸의 길을 택했다. 약자의 피눈물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정권유지에 도움되는 판결만 하도록 했으니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자임한 꼴이다.


 판사에 대한 영어가 서양에선 정의를 강조한 Justice를 주로 쓰는 반면 한국에선 판정을 강조하는 Judge로 쓴다. 정의를 앞세우기보다 개인의 판단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매우 권위적이다. 판사의 이런 의식구조에서는 올바른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 


0…사법부의 권위가 추락한 것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온주 보수당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이른바 ‘Notwithstanding’(예외조항)을 적용해 기어코 토론토시의원 정수를 줄이려고 혈안이다. 이것이 과연 삼권분립이 보장된 민주 선진국가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의원 수를 줄여 서민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야 백번 찬동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특히 법원 판결까지 뒤엎어버리는 처사가 문제인 것이다. 다수정권으로 승리한 주 총리는 “법원 판사는 임명직이지만 주의원은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직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밀어부치기 식으로 나가고 있다.   


 이것이 선례가 될 경우 법원의 판결이 권위를 잃고 법질서 경시 풍조가 만연할 지도 모른다. 자라나는 세대는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이래저래 사법부의 권위는 무너져 가고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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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ME를 아십니까-행복 찾기의 숨은 비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한자성어가 있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도 꿈은 달리 꾼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도 속 마음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이를 부부생활에 적용해보면 함께 잠을 자도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서로간에 진실한 대화가 없으면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부부 사이는 촌수(寸數)가 없다. 그만큼 가깝다는 뜻도 되는 반면, 헤어지면 완전히 남이라는 뜻도 된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사랑해서 죽고 못살 때는 ‘님’이지만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고 마는 것이 부부관계다. 부부 사이처럼 가깝고도 먼 관계도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올해로 결혼생활 31년을 맞는다. 그동안 우리는 주변에 꽤 소문난 ‘잉꼬부부’로 알려져왔다. 어딜 가나 함께 가고 애정표현도 잘 하고 서로 칭찬도 잘해주는 편이다. 티격태격 소소한 토닥거림이 없을 수 없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칼로 물베기 정도의 트러블로 치부하고 대충 화해하고 일상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의사소통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함을 피부로 느끼는 횟수가 잦아졌고 정도도 약간씩 더해갔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화를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경우가 점점 늘었다. 그런 나 자신이 싫었다. 밖에선 다정한 척 하면서 실제론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해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위선적인 내 모습이 싫어졌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0…성당의 후배들 중에 ME라는 모임을 다녀온 후배들이 우리만 만나면 “선배님 부부도 꼭 참여해보시라”고 권하는데 솔직히 귀찮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다시피 우리 부부는 너무도 사이가 좋은데 그런델 왜 가? 오히려 더 나빠지면 어떡하라고?”라며 둘러대곤 했다. 실제로, 금슬 좋던 부부가 ME에 갔다가 오히려 서먹해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는지, 어느 주일 미사 후 친교실에서 친한 선배님이 ‘곧 ME주말이 있을테니 이번에 꼭 참여해보라’는 말에 두말 않고 예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내가 되레 놀라며 “당신 정말이에요? 그렇게 버티더니 웬일이에요?” 하는 것이다. “아니, 다들 이렇게 강하게 권하는데 한번 가보자구…”    


 우리말로 ‘부부 일치’ ‘부부의 참 만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ME(Marriage Encounter)는 1950년대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에 의해 착안됐다고 한다. 그 당시 문제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던 칼보 신부는 대부분의 가정 문제가 불안정한 부부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깨닫고 참된 부부관계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는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62년 최초의 ME행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됐고, 당시 실험적으로 28쌍의 가난한 노동자 부부들이 참가했다. 그 후 ME는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현재 ME는 미국과 캐나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식명칭도 Worldwide Marriage Encounter다. 


0…ME는 한마디로 혼인 부부들이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ME 참여 부부들은 독특한 대화방법을 통해 각자 마음속에 있는 서로에 대한 느낌과 관심이 어떠한가를 체험한다. 주어진 주제에 맞춰 각자의 부부생활을 서술해보고 대화하는 가운데 부부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다만 구체적인 진행내용이나 참석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사항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것이 묵계(默契)다.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말과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는 다르다. 말은 많이 해도 대화는 없는 부부도 많다. 속마음을 터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부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다. 얘기를 하면서도 언제 서로 눈을 맞추고 했는지 기억조차 없는 부부, 방에 단 둘만 있으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는 부부, 모두가 평소에 진솔한 대화가 없는 탓이다. 서로 두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는 부부가 적지 않다.     


 나도 평소에 아내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속마음과 섬세한 느낌까지는 몰랐음을 이번 기회에 절감했다. 그 느낌을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더 잘 해줄 수 있었을텐데…    


0…ME 참여 부부는 대체로 가톨릭 신자가 많지만 그렇다고 종교적인 프로그램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원하는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다. 부부간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서로의 상처를 공감하게 하고 그 응어리를 풀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면 처음엔 서먹하게 앉아있던 부부들의 마음이 어느새 하나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ME교육은 부부가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떠나 서로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도록 한다. 그렇다고 ME가 결혼문제 상담소는 아니며 그룹토의 모임도 아니다. 종교교육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생명력 있고 활기찬 결혼생활을 위해 부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됨으로써 행복한 부부생활을 지속하게 한다.
우리 부부의 ME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그 여운이 아주 오래 갈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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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마지막 편지-소창길 목사님을 그리며

 

▲소창길 목사가 별세 일주일여 전인 지난 8월 21일 본인에게 보내온 편지 

 


 
 보름여 전, 신문사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주소를 보니 낯익은 이름. 서둘러 뜯어보니 또박또박 육필로 잘 쓰여진 글이 담겨 있었다.    


 “… 그간 격조하였지요. 제 근황을 말씀드리고 좁은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펜을 잡았습니다. 제가 지난 5월 모국 방문 당시 CT 스캔을 했는데, 그 결과 양쪽 폐의 암세포들이 계속 번지고 있다는 판정이 나와 그동안 해온 표적치료투여가 취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Chemotherapy로 2개월간 진료를 받은 결과는 참담하여 암세포가 여러 곳으로 전이됐고, 2~3개월 사이에 제 건강은 호흡 곤란, 심한 기침, 보행 곤란 등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회고해보건대, 지난 29년간 토론토 생활은 소중한 기회였고, 그 이면에는 이사장님 같은 지인들의 온정과 배려가 큰 힘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특히 이사장님과는 언론사 시절부터 끈끈한 유대로 이어져 왔지요. 우리가 함께 친하게 지낸 임태호 선생과의 추억담은 후일로 미루어야겠네요. 저를 만날 때마다 100세 장수하실 거라며 격려해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건승과 평안을 기원드리며… 소창길.”          

  
 편지를 읽고 나도 답장 편지를 띄울까 하다가 사정이 급한 듯하여 이메일로 즉석에서 썼다. 


 “존경하는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엽서를 받고 오히려 무덤덤합니다. 목사님의 몸이 불편하시다는 말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았는데, 가끔 한인행사장에서 목사님을 뵐 때마다 몸이 불편하신 분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외양과 속은 다르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편찮으신 분의 안색이나 거동은 표가 나는 법인데, 목사님에게서는 그런 기색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인품을 지니신 목사님, 왜 그렇게 약하신 말씀을 하세요?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곤 하지만, 때론 어이없는 오진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는 것이 인간세상이잖아요. 목사님을 진단하신 분이 어느 의사분인지 모르나, 저는 인간의 오류임을 확신합니다. 때론 외양적 판단이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제 판단에 목사님은 앞으로 최소한 십수년은 더 사십니다. 그러니 목사님, 나약하신 마음 잡숫지 마세요. 


 제가 즐겨보는 한국 방송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거길 보면 입산(入山)의 연유도 참 다양한데, 많은 분이 질병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자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와 유유자적 지내다 보니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완치가 됐다는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목사님, 이런 체험은 어떠실까요?


 목사님, 제발 연약하신 마음 접으시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세요. 그까짓 병? 그게 뭔데? 나는 하느님이 보내주신 사람의 아들이다. 무섭거나 두려울 것 하나도 없다! 고…” 


 이것이 목사님과 나눈 생애 마지막 편지가 됐다. 이 편지를 육필로 써서 배달을 기다렸더라면 목사님은 아마 읽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을 것이다.  

   
0…토론토 한인교계의 큰별이 졌다. 75세라면 아직 이른 연세인데… 목사님은 수년 전부터 지병(폐암)을 앓아오다 최근들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자 주변 지인들에게 이 생애 마지막으로 작별의 편지를 보내는 등 조용히 신변을 정리해왔다. 


 소창길 목사님은 내가 이민 와서 신문사에 근무할 때부터 인연을 맺어 왔다. 단단하고 다부진 체격에 서글서글한 매너가 사람을 편하게 했다. 그런데 임태호 선생(전 한인양자회장)이 2008년 별세하자 그때부터 이미 당신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고,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사회 정의파로 알려진 고인은 진보신학의 산실인 한신대 출신으로 1989년 캐나다로 건너온 이래 한인교회에서 사역하는 한편, 심장병어린이후원회, 한인사회봉사회, 맹인후원회, 한인YMCA 등 동포사회 전반에 걸쳐 헌신적인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결핵제로운동본부 대표를 맡아 모금운동을 통해 10만여 달러를 모아 북한 환자들을 위해 전달하는가 하면.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한가족선교회의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고 한국문화 보존과 2세 교육에도 큰 관심을 보이며 행동으로 실천했다. 


 특히 캐나다양자회를 이끌었고 한인교회협의회 회장도 지냈으며, 성서 원리대로 살자는 성시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벤 진 후보 후원회 등 한인들의 정치권 진출을 위해 애쓰기도 했다. 이런 분이기에 인간적으로 깊이있는 교류를 꾸준히 이어온 분들이 많다. 


 “받지만 말고 주자” “먼데 가는 것만 선교가 아니다. 선교는 가까운 곳,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부터 이뤄진다. 캐나다사회로부터 ‘코리안 크리스찬’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사회 속 한인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고인의 소신이었다.  


0…책상 위에 있는 소 목사님의 마지막 편지를 보니 문득 6년여 전 돌아가신 이재락(당시 83세) 박사님 생각이 난다. 내과의사이셨던 이 박사님 역시 자신의 마지막 운명이 다가옴을 깨닫자 평소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을 초대한 가운데 화사한 ‘이별파티’를 열었다. 이 박사의 말씀대로, 죽어서 장례식은 별 의미가 없는지 모른다. 살아 있을 때 생의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도 운명에 순응하는(順命)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한다. 소창길 목사님, 명복을 빕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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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병원 문을 나서며

 

 세상 살면서 드나들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곳이 있다 했다. 경찰서, 법원, 병원이 그곳이다. 죄를 짓지 말고, 송사(訟事)에 휘말리지 말며, 또한 병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경구다. 그런데 경찰서나 법원은 착하고 정직하게만 살면 안 가도 될 곳이지만, 병원은 가고 싶지 않다고 안 가도 되는 곳이 아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종종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 병원이다.

 

 

 

 


 굳이 병원(Hospital)이라고까지 말하면 어디가 많이 편찮은 듯 들리니, 여기선 가정의(家庭醫, Family Doctor)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해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가정의를 변경하게 됐고, 인사 겸해서 들르니 의사는 우리 집안의 가족력(家族歷) 등을 물은 뒤 혈액과 소변검사 등 기초검사를 받으라 했다. 많은 한국남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디가 아프지 않은데 굳이 건강검진을 받으라면 귀찮아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도 못 이기는 체하고 검사에 응했다.  


 검사 후 별 이상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데 무슨 이상이 있으면 의사로부터 면담요청이 온다. 나의 경우 검사 후 나흘째 되는 날, 가정의 사무실로부터 “잠깐 면담 좀 하자”는 전화가 왔고, 이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엇이 잘못 됐을까. 혹시 간에 문제가? 아니면 콜레스테롤? 전립선?. 여러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면담 전날, 잠을 설치며 뒤척이는 밤이 무척 길고 어두웠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우연히 검진을 받아보니 중병에 걸렸더라는 이야기가 흔치 않던가. 만약 내 몸에 문제가 있다면? 나 자신이야 상관 없지만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두 딸은 어찌 되는 건가…  


 다음날, 가정의 사무실의 1인용 진료실에서 대기하는 5분여 동안이 마치 몇시간은 되는 것처럼 초조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심각한 증세라도…?” 라고 묻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이에 의사가 하는 말, “콜레스테롤이 좀 높고 전립선 수치(PSA)도 좀 높아요. 그러니…” 하며 처방전을 써주었다. 먼저 콜레스테롤 약을 사서 복용하고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이며, 또한 비뇨기과 전문의(Specialist)를 찾아 상담을 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특히 뒷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요즘 따라 주변에 왜 그리도 전립선 질환자가 많은지, 아는 선배님 중에도 세 분이나 이 질환으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통해 전립선에 대해 이것저것 뒤적여보았다. 수치가 대략 3 정도면 정상이고 그 이상이면 주의를 요한다는데, 나는 정상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의에게 진료예약을 하고 기다리는데 1개월 반 정도가 걸렸다. 그 시간동안 솔직히 의기가 소침해지는데,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의욕도 나질 않았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아(암!?)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깨면 다시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장수(長壽)하는 집안도 아니어서 더 그렇다. 요즘같은 시대에 적어도 손자손녀 몇 정도는 보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는 좋아하는 술도 멀리 하기 시작했다. 


0…마침내 검진일이 왔고 전문의를 만났다. 중동계로 보이는 백인의사는 투박한 인상과는 달리 부드러운 매너로 평소 불편한 점이 있는지 등을 묻고 진료기록을 살피더니 알기 쉽게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었다. 얘기인 즉, PSA 수치가 정상보다 약간 높긴 하지만(4.3), 수치가 수년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앞으로 1년에 한번 정도 검진을 하면서 꾸준히 관찰을 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는 기분은 매우 가벼웠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늘 갖는 기분이 있다. 몸에 이상이 없는 것만 확인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기분. 그리고 다짐도 한다. 앞으로 세상 다시 태어나는 각오로 살리라. 남을 위해 봉사도 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것도 즐기면서. 그런데 막상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조금 전의 철석같던 결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나태한 습관으로 복귀한다. 


 그날 저녁도 나는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한동안 입에 대지 않던 와인잔을 잇달아 들이켰다. 새로운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겠다던 다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러니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가.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을 모르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해치는 일을 해댄다.      

 
0…건강검진에 대한 얘기는 전에도 몇 번 쓴 적이 있다. 검진을 받고나서 찜찜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결론은, 적절히 자신을 절제하고 관리하며, 낙천적으로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인 가족을 비롯해 많은 인간관계 속에 살아간다. 따라서 내 몸은 혼자가 아니라 주위의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 몸이 아프면 나의 고통뿐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평소 자기 관리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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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행복은 파도를 넘어-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푸라 비다’

 

 

 

 가끔 언론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또는 도시라든가, 각국 국민들의 행복지수 같은 것이 발표되곤 한다. 그런 통계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실제 살아보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캐나다는 분명 살기 좋은 나라 상위권에 속하고, 그중 토론토도 결코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각 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살기 좋은 국가, 살기 좋은 도시에서 산다고 모두가 같이 체감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내가 처음 이민 와서 느낀 캐나다는 분명 천국이었다. 그것도 지금같은 한여름이었으니, 아름다운 자연만 감상해도 절로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먹고 살 일을 찾아 나서다 보니 그림같은 자연도 그저 무덤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가니 차라리 한국의 시골 농촌 정경(情景)이 더 그리울 때가 많다. 


 이처럼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가 한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지만 마음은 마냥 행복했던 옛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  

  
0…영국의 민간단체인 신경제재단(NEF)이 매년 발표하는 지구행복지수(HPI)에서 자주 상위권에, 어느땐 1위에 오르기도 하는 나라가 있다. 세계에 잘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은 그렇다 치고, 중미의 자그마한 섬나라가 상위에 오르는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바로 코스타리카(Costa Rica)란 나라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이 나라가 행복지수 상위에 오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나라 이름의 뜻은 해변을 일컫는 코스타(Costa)와 부유함을 뜻하는 리카(Rica)를 합한 것이다. 즉, 해양자원이 풍부한 해변가에 위치한 나라란 뜻이다. 코스타리카는 1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전통과 착실한 경제성장,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갖춘, 중남미에서 보기 드문 나라다. 국민들이 축구를 사랑하고, 맛있는 커피를 생산하는 곳으로도 손꼽힌다.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 면적에 약 48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만 보면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평균 수준이다. 이런 면으로 보아도 국가 경제수준이 반드시 국민들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1949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를 없앴다. 보통 군대가 맡는 국경 경비를 이 나라에서는 경찰이 맡는다. 국민적 합의로 군대를 없애면서 국방비에 들어갈 돈을 보건과 교육 분야에 돌렸다. 군대가 없으니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흔히 겪었던 군부 쿠데타나 군사 독재를 걱정할 일도 없다. 이웃나라인 엘살바도르나 니카라과, 파나마 등이 숱한 군부독재, 내전 등에 시달려온 것을 고려하면 코스타리카의 정치적 안정은 놀라운 일이다.


0…특히 코스타리카 국토의 4분의 1 이상은 국립공원 등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잘 보존된 자연환경 덕분에 코스타리카는 생태관광의 천국이다. 한해 외국인 관광객이 250만 명 이상이다. 안정된 정치, 사회적 환경, 잘 보전된 자연환경 등으로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스위스’라고도 불린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코스타리카 국가경제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는 소규모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전체 경제활동인구 130만명 가운데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일하는 인원이 전체 고용의 약 16%를 차지하고 있다.


 소규모 커피농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연대함으로써 더 나은 조건에서 생산•판매하고, 생산된 커피를 최고 품질의 상품으로 세계에 유통시켜 조합원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실에서도 협동조합에서 커피를 공급받아 코스타리카를 방문한 국빈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코스타리카는 국가정책을 연구하거나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나라가 됐다.   


0…이런 외적 요소들 말고 국민행복지수가 높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마음가짐에 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푸라 비다’(Pura Vida)란 말이 있다. 이는 스페인어로 ‘순수한 삶’(pure life)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기쁨이 충만한 삶’, ‘진짜 인생’, ‘풍요로운 인생’ 등 여러 의미로 다양하게 쓰인다. 나아가 “인생은 좋은 것”, 혹은 “다 잘될 거야”라는, 다분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뜻이 담겨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처럼 현실의 삶을 찬미하는 인사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통상적인 안부를 물을 때나, 또는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도 대답은 “푸라 비다”다. 이는 “괜찮아”, 혹은 “인생이 그렇지 뭐”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런 여유있고 낙천적인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군대가 없고 큰 전쟁이나 독재를 겪어보지 않은 대다수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충돌이나 갈등도 가급적 피하려 한다. 그래서 속으로는 괜찮지 않아도 겉으론 괜찮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면 그것으로 그와의 인간관계는 끝이라고 한다. 


 각박한 삶에 찌든 사람이라면 가끔 ‘푸라 비다’를 외쳐보자. 행복은 저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못 본척 눈감으며 외면하고/지나간 날들을 가난이라 여기며/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보낸다/비 적신 꽃잎의 깨끗한 기억마저/휘파람 불며 하늘로 날리며/행복은 멀리 파도를 넘는다’ (이수만 ‘행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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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육신의 병보다 더 깊은 내 마음의 장애

 
 
 
 

▲장애인연합 재활여름캠프 공연순서에서 유홍선(오른쪽 가운데) 회장 등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토론토의 성인장애인공동체(대표 유홍선)와 밀알선교단(단장 김신기)이 공동 주최한 제11회 장애인 연합 재활 여름캠프가 지난 8일~11일(토)까지 토론토 북쪽 심코호수변에 위치한 구세군 잭슨스포인트컨퍼런스센터(1890 Metro Rd. N. Jacksons Point)에서 열렸다. 나는 그동안 마음만 있었지 한번도 직접 참가를 못했었는데, 올해는 다른 일 제쳐두고 잠시나마 시간을 냈다.  


 본보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광역토론토지역 장애인과 가족 및 봉사자 등이 참가해 재활의 용기와 연대의식을 북돋는 연례행사로, 3박4일간 재활세미나, 야외 활동, 스포츠(공원골프 등), 음악공연, 캠프파이어, 바비큐, 어린이 캠프 등으로 진행됐다. 올해 행사에는 지체장애인 그룹 90여 명과 발달장애인 그룹 60 여명, 그리고 자원봉사자 등 모두 170여 명이 참가했다. 


 이에 앞서 토론토 한인사회는 올해 장애인 재활캠프를 위해 십시일반 정성어린 성금을 모았다. 사실 행사에 앞서 운영경비가 2만 달러 이상이나 부족해 주최 측은 발을 굴렀었다. 그러다 언론보도 후 많은 동포들이 현금과 물품 기부 의사를 밝혀왔고, 마침내 최소 목표액(3만3천여 달러)이 모아졌다. 


 장애인공동체의 유홍선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0…이 여름캠프는 장애우와 가족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가슴 설레는 연례행사다. 거동이 불편하고 함께 모일 기회가 적은 이들은 이를 통해 한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함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기타 치고 노래하고 율동할 때 팔딱팔딱 뛰며 즐거워하는 청소년 장애우들의 천진스런 모습에서 이 순간만은 어떤 어려움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분들을 통해 새삼 삶에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이 행사에 왜 굳이 ‘연합’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무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그것은 정신은 아주 총명한데 지체가 부자유스러운 분들과 지체는 괜찮은데 발달장애(뇌성마비, 자폐, 언어장애 등)가 있는 분들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장애는 장애이되 형태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두 장애우 그룹은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     


 우리는 간혹, 한인사회에는 유사한 (장애우)단체가 많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성인장애인공동체, 밀알선교단, 치매협회, 아리랑시니어센터, 무궁화양로원 등… 나도 처음엔 이들 유사단체를 통합해 운영하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장애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합칠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0…요즘 사회시설이 발달하긴 했지만 장애인이 살아가기엔 역시 불편한 점이 많다. 장애인은 근로 여건도 만만찮다. 따라서 생활이 어렵다. 동포사회가 이런 분들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는 것은 공동체로서의 책무다. 그러나 막연한 동정심만으론 소용이 없다. 행동이 따라야 한다. 


 장애우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우리는 장애우들에 대해 값싼 동정이나 보낼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함께 갈 동행(同行)의 자세가 중요하다. 더디 가도 함께 갈 동행…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들이라는 점에서 다 같은 처지이다. 


 특히 우리는 모국이 아닌 외국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장애우들은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더 큰 불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동족으로서 자연스런 의무가 아닐까. 


 이런 행사에 많은 동포들이 관심을 갖고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역시 세상은 아직 따스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한인행사에 단골처럼 나타나는 공관의 높은 사람들이나 그 많은 한인단체 ‘회장님’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유흥행사에는 꼬박꼬박 얼굴을 내미는 사람도 이런 행사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분들 중에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데 단 몇푼 갖고 벌벌 떠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볼 때 참 안타깝다.


0…사지(四肢)가 멀쩡한 사람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은 주변에 나보다 못한 사람, 신체가 성하지 못한 사람이 일상에서 얼마나 큰 불편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돌아보면 불평불만이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육체는 멀쩡해도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장애가 아닐까. 부족한 것 없이 누리고 살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애태우는 나 역시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본다. 세상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이번 캠프의 공연순서에 모두가 하도 신나는 노래를 부르길래 나는 준비해간 노래(찬양곡)가 너무 처질 것 같아 취소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생각에서 아내와 함께 불렀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그렇게 살 순 없을까/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이것은 우리 부부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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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나는 촌놈이다

 
 

 


 
 여름 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못했던 일을 했다. 무스코카에 묵으며 맑은 공기도 마시고 그림같은 호수 주변을 따라 트래킹도 즐기고… 나는 역시 번잡한 도시보다 시원한 매미소리 들리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전원이 좋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맑아지고 육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꿀맛같은 시간을 보내고 귀갓길에 아울렛 쇼핑몰에 들렀는데, 이때부터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오손도손 정답던 가족들과 은근히 신경전도 벌어진다. 나는 애당초 쇼핑몰에 가는 자체가 스트레스이지만 온가족이 들러 가자니 하는 수 없이 따라갈 밖에… 그런데 무심코 따라간 나를 위해 아내와 두 딸은 셔츠, 구두, 바지 등을 들이대며 입어보고 신어보라고 권한다. 지금 입고 신고 있는 것이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멀쩡한데 왜들 이러나,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싫다고 뿌리치니 주위사람들이 흘깃거리며 바라본다.


 민망한 처지에서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가족들 성의를 생각해 이번만 못 이기는체 하고 따라주자. 새 셔츠와 바지, 구두를 신고 보니 거울 속 내 모습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 것이 싫진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한마디 했다. ‘이젠 절대로 이런 짓 하지 마요’.      

      
0…의복(衣服)에 관한 나의 지론은, 모자는 햇볕만 가려주면 되고, 옷은 찬바람과 햇볕을 막아주면 그만이며, 신발은 발에 흙 안 묻게 감싸주면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내게  아무리 비싼 명품을 갖다 들이대도 난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가 않다. 의복의 기능이란 위처럼 단순 명료하거늘 그것에 뭐 그리 비싼 돈이 필요한가 말이다. 청년시절 대기업에 출근할 때도 아줌마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파는 1천원 짜리 넥타이를 매도 잘 어울리기만 했다. 그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옷걸이가 좋으면 아무거나 걸쳐도 잘 어울린다…”    


 이러다 보니 내 주변엔 대체로 싸구려 물건이 많다. 그래서 쇼핑몰에 가면 가족들과 티격대기 일쑤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 봉급을 타기 시작한 딸들은 아빠에게 어떻게든 좋은 옷과 구두를 사주고 싶어하는데 나는 딸들에게 부담 주기도 싫거니와 애당초 비싼 옷과 구두는 체질에 맞질 않아 꼭 싼 상품만 찾아 다닌다. 그러면 아내의 언성이 높아지고 대개는 몰을 나서는 순간 서로의 기분이 좋질 않다. 언제가는 내가 허름한 세일 셔츠를 집어드니 아내가 휙 나꿔채더니 진열대에 던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좋아서 입는거야. 왜 당신이 상관이야? 라며 한바탕 언쟁이 벌어졌다.    


 나는 의복의 품질보다 우선 가격표부터 들여다본다. 비싸다 생각되면 더 이상 만져보지도 안고 돌아선다. 한번은 구두가 낡기도 해서 어느 잘 알려진 대중 매장에 들어갔더니 작은딸이 이곳은 품질이 떨어지고 발도 불편하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이곳이 편한데’  했더니 굳이 비싼 곳으로 가서 나에겐 거금인 값에 구두를 신어보라 한다. 이에 나는 언성을 높이며  왜 아빠에게는 선택권이 없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더니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었다. 외출할 때의 기분 좋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지고 썰렁해졌다. 


0…그래, 나는 평생을 그리 살아왔다. 옷이나 신발 등 외형적인 것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나의 지론이다. 현대 정주영 창업주가 그랬다던가. 구두 한켤레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고 다녔다고. 내가 이 말을 하면 가족은 ‘지금 그러면 궁상이라고 하지 검소하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글쎄, 검소와 궁상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어쨌든 외형적인 일에 돈을 쓰는 것이 싫다. 남자 대장부가 쫀쫀하게 군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천성이 그런 것을 어쩌랴.        


 다만 ‘싸구려 원칙’은 나 자신에 국한된 것이고 아내나 딸들은 여자라는 점을 감안해 고가품을 인정해준다. 나 자신은 허름하게 다녀도 처자식은 빛나게 해주고 싶은 부정(父情)이 작용한 것이다. 내 눈에 보기엔 우리 처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들이다. 그러기에 조금만 치장을 해도 금방 달라져 효과 만점이다. (어떤 사람은 비싼 명품을 감고 다녀도 표가 나지 않는데 이를 애써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측은하다. 자연스런 모습이 오히려 진실돼 보여 좋을텐데…) 


0…시골 출신인 나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살긴 글렀나 보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고급 스테이크와 와인을 드는 것보다 허름한 주점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것이 편하다. 다만 이렇게 살면서 나보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돕고 사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아직은 팍팍 쓸 형편이 못 되지만 이제 아이들도 제 앞가림을 할 위치가 되었으니 좋은 일 좀 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 나는 시골 촌놈이다. 그게 뭐 잘못되었느냐. 출신성분을 골라서 태어나더냐. 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도 꽤 잘했고 사회생활도 당당하게 해왔다.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상위계층 중 시골출신이 더 많은 것은 왜 그런가. 대자연의 품속에서 자라 인간성이 넉넉하고 포근한 탓이다. 나는 언제나 떳떳하고 자신있게 말한다. 나는 촌놈이다. 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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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결벽증-평생 약자편에 섰던 노회찬

 

 

▲진보정당 외길 30년을 걸은 고 노회찬 의원  

 

 

 

 손을 씻고 또 씻어도 개운치가 않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샤워실부터 달려간다. 속옷이나 티셔츠는 한번만 입어도 바로 빨아야 한다. 집안이 아무리 깨끗해도 빗자루로 계속 쓸고 걸래로 반복해서 문지른다. 밥상 치우기가 무섭게 설거지는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물건이 조금만 삐뚤어져 있거나 정리되지 않으면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완벽주의자일까, 아니면 결벽증 때문일까? 결벽증(潔癖症, Mysophobia)은 지나치게 깔끔함을 추구하는 정신상태를 말한다. 선천적인 성격의 경우 Fastidiousness라는 용어를 쓴다. 굳이 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심리상태가 늘 평온하지 않기 때문에 증상이 심각해지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강박관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심각한 결벽증을 가진 사람은 먼지 한 톨 인정하지 않는 깔끔함은 기본이고, 모든 것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화장실은 수건이 정확한 위치에 있고 수건을 한 장 쓰는 즉시 다른 한 장을 꺼내 수건 수량을 맞춘다. 세면 도구도 완벽하게 놓여져 있으며 심지어 사용한 비누도 헤어 드라이로 말려 물이 고이지 않게 비누통에 보관한다. 


 결벽증은 무질서함도 참지 못한다. 잠자리에 들 때는 이불이 정확히 사각형으로 쫙 펴져 있어야 그 안에 쏙 들어가 잠을 청한다. 결벽증이 심해지면 공포증의 하나로 발전하기도 한다. 특히 현대인은 직장과 사회생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결벽증 증상이 나타난다. 


0…결벽증은 완벽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다. 업무든 환경이든 모든 것이 깨끗하고 완전해야 한다. 그러나 완벽주의 혹은 결벽증을 가진 사람은 가족과 동료 등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 쉽다. 대충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끄집어내어 완벽하게 만들려다 보니 주변인과 부딪히기 쉽다. 


 적당한 결벽증은 주변을 청결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그런데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특히 도덕적 결벽증이 지나친 사람은 사소한 과오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의 허물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괴로워 하며 정신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채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온갖 권모술수와 도덕적 가치관이 뒤죽박죽된 정치판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에게 결벽증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0…“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4천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단, 정상적 후원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이는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고 노회찬(62) 정의당 의원은 한국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궈온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한국 최고의 명문고 출신으로 용접공에 노동운동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30여년간 진보정당의 외길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일반인들은 별 관심도 없고 생소한 무슨 ‘드루킹’ 관계자로부터 수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투신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논리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정교한 언어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노회찬. “옆에서 굶고 있는데 갈비 뜯어도 됩니까.” “똑같은 판에다 계속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카맣게 탑니다. 이제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청소할 땐 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라면 됩니까?” 


 날카로운 한마디로 복잡한 정국을 정리하며 촌철살인 어록을 남긴 그는 가난한 살림에도 중학생 때부터 첼로를 배운, 낭만과 위트가 있는 정치인이었다. 평생을 약자 편에 서온 그는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의를 지키는 정치인’으로 통했고, 매년 세계 여성의 날엔 여기자들에게 편지와 장미꽃을 돌리기도 했다.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 폭로로 대법원에서 징역형 판결을 받은 후)
 그는 유서에서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이 10%를 돌파하기까지 배경엔 노 의원의 30년이 있었다. 


0…이번 일을 당하면서 사람들은 이런 일이 왜 진보진영에만 일어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진보 쪽을 바라보는 도덕적 순결이라는 엄격한 잣대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것도 그렇거니와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보수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적 순결이 강요된다. 그들은 철저히 깨끗해야 하며, 검은 돈은 한푼도 받아선 안 된다는 칼날같은 규범. 도덕 결벽증이 뭐기에 양심적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국민들을 눈물나게 하는지. 


 차세대 주자 안희정도 ‘미투’ 한방에 날아간 후 친구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철벽수비를 펼치는 바람에 큰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람은 죄가 명백해도 끝까지 이를 인정치 않는데, 진보인사들은 무조건 깨끗해야 한다, 의혹 하나만으로도 패가망신이다, 보수는 철판을 깔아도 우리는 그래선 안 된다는 논리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노회찬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앞으로 정치권에 더욱 엄격한 도덕률이 적용돼 청결한 풍토가 조성되는 길 뿐이리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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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1
칼을 찬 시인 박용만-이상묵 장편소설 '칼의 길'을 읽고

 
 

‘보던 책 덮어놓고 칼 빼어 높이 들고/닫는 말에 뛰어 올라 앞으로 나아가니/어 좋다 견양 총소리 사나이 몸을’(- 1911년 6월 7일자 <신한민보>에 실린 박용만 시조 '상무혼(尙武魂)'’

 

 

 

 


 토론토의 실력파 문인 이상묵 시인(전 문협회장)이 쓴 장편소설 '칼의 길(부제: 독립지사 박용만과 그의 시대)'을 흥미있게 읽고 있다. 이 작품은 이승만, 안창호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제시대 해외독립운동가들에 비해 그늘에 가려져 있던 박용만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팩션(Faction, 실화소설)으로, 그가 걸었던 사려 깊고 위대한 독립투쟁의 발자취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당시 해외(미국)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노선은 크세 세 갈래로 나뉘었다. 이승만은 외교, 안창호는 교육을 중시했던 반면, 탁월한 언론인이요 정치학도였던 박용만은 조국 독립을 위해선 공허한 탁상공론보다 한 자루의 총과 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파하고 무장투쟁을 실천하는데 헌신했다.


 미주 3대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박용만 선생은 본래 정치학 전공으로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와 하와이의 '국민보' 주필을 지낸 뛰어난 저널리스트였으며,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외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독립운동 노선은 시종일관 무력투쟁이었으며, 네브래스카 주와 하와이에서 해외 최초의 사관학교인 군사학교를 창설해 미주 동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0…저자의 말마따나 박용만 선생의 매력은 그가 '칼을 찬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네브래스카의 소년병 학교에서나 하와이의 대조선 독립군단을 훈련 지휘할 때 군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허리에 긴 훈련도를 찬 모습은 늠름한 무인(武人)의 기상이 넘친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나 소양은 그에 한정되거나 쏠려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상식을 어쩌면 그처럼 뒤집을 수 있는지, 그의 글 솜씨 역시 찬탄을 자아낸다.”고 저자는 탄복했다. 


 박용만 선생은 군사학과 함께 정치학을 전공했기에 해외동포들의 독립투쟁 방향을 제시하고 활동역량을 조직해내는 데 기관차 역할을 했다. 특히 언론인으로서 동포들을 계몽하는 데도 공적이 지대했다. 


 그런 굵직한 자취 말고도 산골물처럼 투명한 문학적 정서와 조선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경탄스러울 뿐이다. ‘야영에 칼을 잡고 홀로 순찰하니/달은 기울고 별은 듬성하니 한밤중이네/한 걸음 내딛고 세 걸음에 멈춰 서니/곳곳의 봉화연기는 모두 구름인 듯 하고나’(野營杖劍獨巡軍/殘月疎星夜己分  /一步徘徊三步立/烽烟處處盡疑雲). 네브래스카주립대에서 ROTC 훈련을 받으며 지었다는 이 한시는 중국의 여느 유명 시인 못잖은 기품과 기상이 이글거린다. 


 선생은 저널리스트로서 명문의 정치논설을 썼을 뿐 아니라 마음속 느낌이나 생각을 아름답고 선명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그는 이처럼 선비로서 탁월한 문학적 소양을 타고 났으나 당시 시대가 한가한 문향(文香)에 빠지게 놓아주질 않았다. 일제치하에서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군사적 대응이었기에 그의 집념은 점차 문(文) 보다 무(武)에 더 기울어갈 수밖에 없었다. 


 決志修兵學(병학을 공부하기로 뜻을 정하다)는 시는 그의 결심을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壯志平生好讀兵/蒼磨一劍捧秋聲/互千萬古丈夫業/文武兼全然後成’(장한 뜻으로 평생 병서 읽기를 좋아하며/칼날을 푸르게 가니 가을에 나는 소리 같고/천만년 예부터 장부의 사업이란/문무를 아울러 갖춰야 이뤄지는 것이니라). '칼날을 푸르게 가니 가을에 나는 소리 같고'라는 구절은 마치 서릿발 같다.  


0…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기 무려 8년 반 전에 망명정부 성격을 지닌 ’무형국가’ 설립의 필요성을 주창한 위대한 선각자는 그러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변절자 누명을 쓰고 1928년 동족(의열단원 이해명)의 손에 암살 당한다. 이 장면은 독립운동단체 내부에서조차 동족간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잉걸불 같은 박용만 선생의 삶과 투쟁을 재조명하고자 이 평전을 엮는다고 밝혔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아직도 일각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이승만의 저열한 행태가 가감없이 드러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필요성까지 제기한다. 한때 박용만과 의형제를 맺기도 한 이승만이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해외 한인단체를 주도하기 위해 사익(私益)을 앞세웠다. 


 “이번에 이승만이 일으킨 풍파(1915년 하와이 국민회 전복)는 그 시비의 곡직이 분명한데 아직도 그 불의(不義)를 맹종하는 동포들이 있다. 해외단체의 작은 시비 같으나 민족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며 만일 조국이 광복된 후에 이와 같은 인도자와 민기(民氣)가 있으면 국가와 민족의 비운을 초래할 것이다.” –‘이승만의 다른 얼굴’ 중.  
 저자가 설파하듯, 국가와 민족의 비운에 대해서는 주관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해방 후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서 역부족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승만은 분단 고착화를 온몸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다고 하지만 헌법을 유린하고 3선 개헌을 시도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신 스스로 짓밟으려다 국민의 저항에 의해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박용만은 약 30년 후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언한 셈이다.      

      
 자칫 묻힐 뻔한 위대한 독립사상가를 발굴해 세상에 널리 알린 이상묵 시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저자의 탄탄한 글 실력이야 정평이 나 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이런 문인과 함께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 같은 해외동포, 특히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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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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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실력으로 성공했다는 그대

 

▲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책 표지 

 

 

 

 화투(고스톱)를 치거나 도박을 할 때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쓴다. 즉, 운(運)이 7할이요 기술은 3할쯤 된다는 말로, 매사엔 행운이 따라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려면 운(luck)이 중요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피나는 노력을 해도 행운이 함께 따르지 않으면 주저앉고 마는 경우를 자주 겪고 본다.    

 
 그런데, 이 운(運)이라는 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행운아와 불운아로 나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뱃속에서부터 행운아로 태어난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리된 것으로 착각하며 못사는 사람을 경멸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회풍조인 것이다.        

 
0…한세상 살면서 우리가 바라는 성공을 위해선 노력과 운(運)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미국 코넬대의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H 프랭크 교수의 저서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정태영 옮김)는 인생에서 운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수많은 사례와 실험 결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입증한다.


 저자는 먼저,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부터가 커다란 행운이라고 강조한다.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면 처음부터 희망은 없다. 또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다. 잘 사는 환경에서 지능도 높은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이미 성공의 절반은 다다른 것이다. 이병철의 아들로 태어난 이건희나, 그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용은 이미 성공을 보장받고 태어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노력이니 실력 운운하는 자체가 위선이다.


 이런 분석은 특히 성공의 기준이 부(富)의 축적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그렇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자 자선기부로 칭송받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그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또한 1960년대만 해도 귀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가 있는 사립학교를 안 다녔다면 지금같은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특히, 당시 업계 선두주자 IBM이 게이츠에게 컴퓨터 운영체제(MS-DOS) 개발을 맡기는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게이츠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행운이 큰 몫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은 이처럼 수많은 우연과 행운들에 의해 굴러가고 발전해간다. 순전히 노력으로 결정되는 영역이라 생각되는 스포츠에도 운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월드컵 축구에서도 그런 경우를 흔히 보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순전히 노력과 실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자들은 이를 ‘사후 과잉확신 편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앞날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모든 성공이 자신의 실력(노력) 덕에 당연히 그리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때문이라며 경멸한다. 자신의 성공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운은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0…운이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을 자꾸 하면 맥이 빠져 노력을 쏟아붓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것이 꼭 좋은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경쟁에 무작정 뛰어들어 삶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무책임한 말이다. 이는 ‘노력이 있는 한 불가능은 없다’는 뜻이지만 세상엔 분명히 불가능이 존재하고, 그것을 자꾸 강요하는 것은 위선이다. 어릴적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57년을 살다 타계한 고 장영희 교수는 ‘하면 된다’는 논리가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위압감이나 자괴감을 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리한 자기합리화로 오도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층계를 못 올라가 곤혹스러워 하는 장애인에게 아무리 ‘당신은 할 수 있소’라고 외쳐도 벌떡 일어나 올라갈 리 만무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아무리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힘내라", “절망하지 마라"는 말도 그렇다. 그런 말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그런 말조차 언어폭력일 수가 있다. 누군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싶어 빠졌을까.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럼에도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쉽게 던지는 위로의 말은 자칫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0…성공은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사회가 준 ‘복’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 이를 인정하고 자신도 사회에 기여할 줄 알아야 세상이 더 윤택해진다. 성공한 기업가는 사회가 준 행운이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금내는 걸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태어난 것 자체가 행운인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위 책 저자의 제안이다.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행운을 준 사회에 보답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실력과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는 오만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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