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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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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2
고국 생각

Editor’s Note

 

-잊을래야 잊을 없는

-모든 일이 풀리길 바랄 뿐   

 

                                          한국의 아름다운 봄날

 

 시골출신인 저는 어릴적 주로 자연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어른들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라곤 아주  단순 소박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람이 출세하려면 판.검사, 또는 군인(장군)만 있는 줄 알았고 나도 크면 그런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당연히 이순신 장군이요, 그때로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야말로 최고의 영웅이요 우상이었지요.      

 

0…이래서 나의 꿈은 장차 군인(장군)이 되는 것이었고, 고교부터 일찌감치 진로도 사관학교로 정해졌습니다.

 공부는 어느정도 했기에 육사에 상위권으로 입학했고 출발은 순탄했습니다.

 멋진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올리는 저를 보고 면회 오신 어머니와 형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습니다.

0…그런데 그때는 제가 막 사춘기에서 벗어날 무렵이었지요. 말하자면 내면의 자아(自我)가 깨어나기 시작할 때였던 것입니다.       

 사관생도 시절 주말외출을 나갔는데,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불과 수개월 사이에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더라구요.

 법과 정의와 역사가 어떻고, 문학과 철학이 무엇이며, 장차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까지 얘기를 하는데 나는 별로 끼여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0…내무반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할지 무수한 번민의 시간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당시만 해도 많은 젊은이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관학교를 1년 만에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재수를 하여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부터 책도 많이 읽기 시작했죠.   

0…하지만 1970년대 중반 당시의 대학은 낭만과 토론이 흐르는 상아탑만은 아니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상화되다시피한 전쟁터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마침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던 ‘각하’의 이면을 알게 되면서 모든 우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개발 이면에 가려진 무수한 노동자들의 희생과 어린 여공(女工)들의 눈물이 너무도 무심히 간과되고 있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0…이때 청계천과 전태일과 YH와 조영래를 알게 됐고 세상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대학 배지도 이때부터 떼어 던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거대한 빌딩 숲을 보면 멋지다는 감탄보다 저런 건물을 짓느라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을까, 이런 생각이 떠올라 하나도 즐겁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하질 않아 외국의 거대한 유적지를 가보면 절대군주의 폭정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참 유치하고 순진한(naive)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0…아무튼 세월은 흘러 어찌어찌 대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군에 입대했습니다.

 한때 사관학교까지 다녔는데 사병으로는 가기 싫어 해군장교 시험을 보았는데 문과출신인지라 해병대로 떨어졌습니다.

 말만 들어도 무서운 해병대! 저에게 다른 건 몰라도 해병대의 의리와 충성심만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0…여기서 충성심을 잘못 해석하면 안됩니다.

 충성이란 상관의 정당한 지시와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는 뜻이지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 따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도 한창 진행중인 ‘채상병 사건’의 중심에 선 박정훈 대령이 있잖습니까. 그야말로 모든 일처리를 정석대로 처리하고 상관(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한 충성스런 해병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항명죄라는어마무시한 죄를 씌워 옭아매려는 행위가 올바른 것인가요.  

 

0…아무튼, 군 제대 후 대기업 생활도 해보았고 그후 언론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그놈의 알량한 정의감과 의리 때문에 수난도 꽤 겪었습니다.  

 특히 직업의 특성상 비판의식이 더 깊어졌습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비판의식이 없으면 들어서서는 안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0…저는 인천의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를 출입하다 이민을 떠나 왔습니다.

 올해로 이민살이 24년째를 맞습니다.

 타국에 살고 있으니 이젠 이곳 삶에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아직도 왠지 남의 옷을 걸친 것 같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국 뉴스부터 체크합니다.

 

0…엊그제 총선을 전후해선 더욱 그랬습니다.  제발 나라가 정상화되면 좋겠는데…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마침내 결과가 나오고 저는 “역시 국민들 뜻은 무섭구나!”란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0…외국에 나와서까지 고국 지도자를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현 지도자는 정말로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겠지요. 현명하신 동포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실테니까요.

 

0…차제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잘못한 행위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진보니 좌파니 함부로 매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 보수, 진보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한국민의 절대다수가 선택한 이번 민심도 ‘좌빨’의 득세로 몰아갈 건가요.

0…이제 한국민은 그리 무지하지도 우매하지도 않습니다. 잘못한 행태에 대해서는 아주 현명하게 회초리를 들줄 아는 선진국민입니다. 

 야권 192석. 참 절묘한 숫자입니다. 지도자가 잘못 했으되 아주 쫓아내지는 않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뜻 아닌가요.

0…꿈결에도 떠오르는 고국의 산하. 아무 것도 기여할 길이 없는 해외동포이기에 그저 모든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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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사월이 오면

Editor’s Note

-지고지순한 순백의 계절

 

-아픈 상처 딛고 화사한 꽃으로 

 

                                                      고창 선운사 동백꽃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네…)

 

 난해하기로 유명한 T.S. 엘리어트의 ‘The Waste Land’(황무지). 위의 첫 구절은 ‘The Burial of the Dead’(죽은 자의 매장)로 4월이 오면 많은 이들이 즐겨 인용한다. 
0…희망과 꿈으로 부풀어야 할 사월이 왜 잔인한 계절로 인식되었을까. 
각자 속으로 느낄 나름이겠지만, 추운 겨울 끝에 봄이 오면 무언가 좋은 일만 있을 것처럼 기대가 넘쳤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기에 그런 것 아닐까. 
특히 한국에서 4월은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4.19학생혁명(1960)을 비롯해 제주 4.3 비극(1948)을 거쳐 4.16 세월호 참사(2014)까지, 봄을 찬양만 하기엔 처연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다. 
이래서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4월은 특히 잔인한 달로 여겨졌다. 

 

0…추억컨대, 매년 이맘때 캠퍼스 언덕에 흐드러지게 피던 하얀 목련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시인 묵객(墨客)들이 가장 많이 소재로 삼은 계절은 봄, 월별로는 4월, 꽃으로는 목련이 아닐까 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박목월 시인의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4월이 오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0…봄의 전령사 목련(木蓮)은 이른 봄 하얗게 피는 꽃이 마치 나무에 피는 연(蓮)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보라와 찬바람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 목련은 단아한 유백색(乳白色)의 꽃을 피운다. 하얗고 커다란 꽃잎은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기에 고결한 기품이 더 돋보인다.
0…목련은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옥같이 깨끗한 나무라 해서 옥수(玉樹), 꼭 오므리고 있는 꽃망울 모습이 붓을 닮았다 해서 목필(木筆),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 해서 영춘화(迎春花), 보라색의 자목련은 봄이 끝나갈 무렵에 핀다 하여 망춘화(亡春花)라 한다. 
 대부분의 꽃들이 태양을 바라보며 남쪽을 향해 피는 것과 달리 목련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꽃봉오리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빠르고 튼튼하게 자란 탓에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게 된다고 한다. 

 

0…‘선운사 고랑으로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이민 떠나오기 전, 고국의 자연산천을 머릿속에 담아가겠다며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나 하는 감상(感傷)에 젖어 가는 곳마다 예외없이 술에 젖어 어줍잖은 싯구절을 읊조리곤 했다.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봄날 섬진강의 복사꽃과 매화, 산수유는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웠다. 

 

0…특히 고즈넉한 산사(山寺)에 피어나는 빨간 동백꽃은 나의 마음을 읽는 듯 핏빛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함께 동백은 대표적인 봄꽃 중 하나다. 
 겨울이 지나는 자리에 피어나는 붉은 빛의 동백은 강렬한 이미지를 전해준다. 그래서 시인과 묵객들은 봄이 오면 동백꽃이 피어나길 손꼽아 기다린다. 
 동백꽃은 붉은 ‘색’이라 하지 않는다. 붉은 ‘빛’이라 표현한다. 그만큼 처연하고 강렬하다. 개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과 동백(冬柏)으로 나뉘는데, 한국의 대부분의 동백꽃은 2월 중순에서 3월초 개화하는 ‘동백’인데 비해 고창 선운사의 동백은 4월 중순에 피는 ‘춘백’이다. 

 

0…동백나무는 좀처럼 불에 타지 않는 강한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산사에서는 동백나무를 법당 뒤에 즐겨 심는다. 혹시 모를 산불이 전각(殿閣)에 옮겨 붙지 못하도록 심은 방재림의 일종인 셈이다. 
 초봄이면 붉은 꽃을 피워 사찰을 ‘장엄(莊嚴)’(불교용어로 ‘꾸미고 장식한다’는 뜻)하는 역할도 한다. 

 

0…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듯,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순간처럼 왔다 속절없이 가고 마는 짧은 생명이 인간사 모습과 닮았다.
 어쩌면 삶이란 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인지도 모른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0…고국에서 총선거가 치러졌다. 결과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애써 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고국. 이제는 사월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련과 동백의 계절로만 기억되면 좋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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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군중 속의 고독

 

Editor’s Note

 

-이러저리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 누구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리스먼(David Riesman:1909~2002)의 저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 1950)’에서 유래한 말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사회 속의 현대인은 자기 주위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는 그들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다. 즉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 다른 내면적인 고정감과의 충돌로 번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고독하다.”

 

0…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와 교류하며 가깝게 지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자기 내면의 외로움이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자기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0…인간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나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쌓고 있다.  하지만 나 또한 군중 속의 고독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속성으로 인해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0…많은 이들이 나 보고 아는 사람도 많고 발이 넓어서 외롭지 않겠다며 항상 분주하게 사는 줄 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언론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리저리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대부분이 피상적으로 알고 지내기 때문이다.          

 

0…이민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속내까지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일테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이민 1세는 언어 소통과 문화 차이로 인해 더욱 그렇다. 이래서 결국은 동족사회로 돌아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0…나도 24년 전에 이민 와선 전원도시에 살면서 현지 이웃가족과 어울리며 정을 쌓아가곤 했다. 하지만 속 깊은 인간관계에까지 이르기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생계문제로 도시로 나오면서 그나마 현지인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내 동족끼리 어울리는 생활이 시작됐고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인생살이가 펼쳐졌다.

0…동족과 어울리며 주변에 나이가 비슷한 동년배(同年輩)끼리 친구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란 것이 그렇다. 친구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진정으로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그런 사이인데 이민사회에서는 이런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성장과정이나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특히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0…동족끼리 어울리면 일단 말이 통하니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간에 허물이 없어지고 그것이 더 진전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사라지면서 사람을 막 대하게 된다.

 나의 경우 꽤 많은 한인모임에 참여했었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 결국엔 다 해체되고 말았다. 남은 건 마음의 상처 뿐.         

0…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처음엔 간이라도 빼줄 듯 가까이 지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존경심이 사라지고 흠결만 보이면서 이내 관계가 소원해지고 만다.

 이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0…내가 평생 잊지 못할 친구가 셋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학교 동창도 아니고 같은 고향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 일생에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내 고교 친구의 중학교 동창인데 언젠가 모임에서 한번 만난 후 급격히 가까워졌다.     

0…그는 소위 ‘고졸’의 대기업 말단직원이었다. 장차 직장에서 승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의 최강 무기는 인간성, 그것 하나였다.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친구는 한결같이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겼고, 궂은 일엔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정석인지 몸으로 보여준 전형이었다. 

 

0…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딜 놀러가면 그 친구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밥을 짓고 상을 차려놓고 우릴 기다렸다.

 “넌 잠도 없니?” 하고 물으면 그저 싱긋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더 있나?” 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0…친구는 결국 학력 장벽에 막혀 대기업을 퇴사해야 했고,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는 고교친구가 경영하는 주유소의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내가 수년 전 한국에 나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그 친구였고 그는 여전히 활기차고 의연하게 일하고 있었다.       

 친구는 나의 데미안이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과 충격을 안겨준 나의 우상…

 

0…나는 가끔 ‘이런 상황이라면 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친구가 행동하는대로 하면 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인생을 다시 태어나는 기분일 것이다.

0…그 친구가 갈수록 그리워지는 것은 이민사회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뜻맞는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젠 인간관계가 무섭게만 느껴진다. 또 언제 어떻게 상처를 받을지 두렵기 때문이다.

이래서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더욱 쓸쓸한지 모르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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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

 

Editor’s Note

 

-더러운 진흙에서 자라지만

-청초롭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 ‘그 꽃’ 전문)

한국에서 잘 나가던 중견 정치인이 선거에 낙선하고 난 뒤 등산으로 울분을 달래던 어느날 나와 대폿집에 마주 앉아 들려준 시다.

그는 말했다. “나 자신을 돌아볼 겨를없이 바쁘게 생활할 땐 오로지 목표만 보였을 뿐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니 안 보이던 일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가끔은 하산하는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0…17자의 짧은 위 시 구절에 인생의 많은 의미가 함축돼있다.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거나 인생에서 한창 오르막일 때는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한다. 산이 아름다운 줄도, 곁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정상에서 내려와 비로소 한숨 돌리고 나면 안 보이던 상황도 보이는 것이다.

 

0…올해 91세가 되는 고은 시인.

그의 1980년대 저항시들이 투쟁적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시적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랫동안 선시(禪詩)같은 서정시를 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고한 시인이 수년전 전세계를 강타한 ‘미투(#MeToo) 열풍에 휩쓸려 한순간에 모든 영예와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0…사람이 정상에 서면 주변의 모든 것이 만만하고 하찮게 보이는가 싶다. 고은 시인이 그대로만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

어쨌든 그의 시 작품만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용되고 있다. 

 

0…검사 이성윤.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대한민국 최고위급 검찰 간부였다. 요즘 이 사람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음에도 평생 몸담았던 검찰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매우 서정적인 책을 썼다. 이름 하여 ‘꽃은 무죄다’.

0…스스로를 ‘꽃개’라 자처하는 전 서울고검장 이성윤의 ‘꽃 이야기’. 들판의 야생화들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꽃을 통해 살피게 된 세상사를 담담히 서술했다.

그런데 꽃과 야생화들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각각의 학명(學名)에서부터 서식처와 계절, 고유의 생태습관 등 전문 생물학자 못지 않다.

 

0…검찰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엄청 바빴을텐데 언제 이런 자연 공부를 했을까. 이는 꽃에 관심 많은 아내와 함께 온천지를 헤집고 다니며 발굴해낸 그의 고유 역작이다.  

외지고 비탈진 구석에 주로 사는 야생화를 찾아 꼼꼼히 관찰한 성정(性情)이 참 섬세하다.   

0…그가 언급한 식물들은 생소하면서도 다정스럽다.

양지꽃, 개망초, 금강초롱꽃,  큰구슬붕이, 강아지풀, 꽃마리, 병아리풀, 인동덩굴꽃, 구절초, 물봉선, 엘레지, 영춘화, 낙우송, 히어리, 노루귀, 처녀치마, 금잔옥대(수선화)…

 

0…문장력과 묘사력 역시 어느 전문작가 못지않게 유려하면서도 읽는데 편안하다. 아내가 그린 그림, 본인이 찍은 사진, 모두모두 깔끔하다. 아주 준수하다.

미물인 꽃 한 송이로도 충분히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0…그는 ‘닭의장풀’을 보며 하늘의 별이 된 어머니를 떠올린다. 팽나무를 보며 팽목항의 비극과 악몽이 떠올라 가지마다 주렁주렁 걸린 아픔에 짓눌린다.

더러운 진흙에서도 고운 존재로 피어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상징인 연꽃을 그는 사랑한다.

 

0…’노랑망태버섯’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버섯을 보고 그는 이렇게 썼다.

“겉은 화려하지만 어떤 것도 포용할 수 없고 내용물도 없으며 세상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 품을 수 없는 그 텅 빈 화려함…”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내실은 없어 일시에 쓰러져 녹아내리는 그런 세태를 일갈한 것이다. 

 

0…자신이 책임자로 재직했던 서울중앙지검에 출두당하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역천(逆天)의 무도(無道)함을 허용 않겠다는 믿음의 뿌리는 바로 야생화에 있다.

오염된 세상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만 하는 사람은 지은이가 보기에 속이 텅 비어 실속이 없는 꽃 ‘박새’와 다르지 않다.

권력에 취한 자와 그 하수인의 성정을 하나로 뭉쳐 놓은 듯한 독초 박새를 보며 ‘꽃개’는 화(火) 내지 않는다. 대신 화(花) 낼 태세를 가다듬는다.

 

0…담쟁이가 그에게 속삭이는 평화의 언어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벽에 붙어 힘겹게 살지만 너도 힘을 냈으면 해. 세상은 더디 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거야.”

비록 몸이 통째로 뜯겨 나갔어도 삶의 흔적을 남기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담쟁이와 줄기가 꺾여도 기어이 꽃을 피우는 개망초처럼 순리를 따르는 평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0…‘심어진 곳에서 꽃 피우라(bloom where you are planted)’는 좌우명으로 그는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만약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승승장구했더라면 이런 소중한 책을 낼 수 있었을까.

주옥같은 명저(名著)들이 대부분 유배지에서 탄생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0…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짧은 주례사는 “너를 보니 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잘 살아라” 였다고 한다.

자주 주례를 섰던 저자는 이를 원용(援用)해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살아보라”고 했다.

‘꽃은 평화이고 소통이며 순리이자 희망이다. 그러기에 꽃은 언제나 무죄(innocent)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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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아침형 인간

Editor’s Note

 

-어느새 다시 서머타임 시즌       

-생체조절 잘해서 건강한 삶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남구만 ‘동창이 밝았느냐’).

 이 시조에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늦잠에 빠져있는 게으른 머슴의 모습이 목가적(牧歌的)으로 잘 그려져 있다.

 

 

0…예전 농경시대 사람들은 하루종일 논밭에 나가 일하다 저녁 때 집에 돌아오면 밥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곤한 잠에 빠졌다.

그 시대엔 달리 오락거리도 없었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을 터이기도 하다.

지금도 대체로 시골 출신들이 초저녁 잠이 많은 것은 아마도 자라온 집안의 내력과 생활습관 영향이 큰 때문일 것이다.

 

0…나는 충청도 시골 출신에다 나이까지 들어가는 탓인지 초저녁 잠이 무척 많다.

아내나 딸아이들은 보통 밤 12시~1시경에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영화 한편을 다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찌감치 머리를 꾸벅댄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재미없는 시골 출신”이라며 투덜대기도 한다.

 예전엔 초저녁 잠이 많으면 잘 산다고 했다. 그것은 낮에 부지런히 일을 하기에 저녁엔 무척 고단하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런 얘기를 하면 꼰대같은 소리라고 핀잔이나 듣기 쉽다. 

 

0…나는 저녁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덕분에 아침엔 일찍 일어난다. 가끔 전날 술자리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엔 꼭 일찍 일어난다.

 이 때문에 직장에 지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알람시계를 맞춰놓을 것도 없이 새벽에 눈을 뜨면 정확히 5시50분 경이다.

 이래서 나는 직장이든 어떤 약속이든 지각하거나 늦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게을러 보이고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는 것이다.

 

0…머리 회전도 아침에 훨씬 잘 돌아간다. 저녁엔 그저 나른하게 졸리워서 기억력도 현격히 떨어지거니와 아무 생각도 하기가 싫다.

 그래서 골치 아픈 일이나 꼭 기억해내야 할 일들은 다음날 아침에 생각하면 대개는 쏙쏙 떠오른다.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할 정도다.

 골프도 오전에 치면 점수가 훨씬 잘 나온다. 그래서 누가 오후에 골프를 치자고 하면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인 것이다.  

 

0…예전부터 아침형 인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말이 더 많다. 서양에도 여러 격언이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겐 건강, 부귀, 지혜가 따른다’(Early to Bed and Early to Rise Makes a Man Healthy, Wealthy, and Wise).

 수년 전 토론토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lark)족’은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올빼미(owl)족’보다 전반적으로 행복도가 높았다.

 올빼미형 인간은 늦은 저녁까지의 활동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만 종달새족은 일찍 일어나 여유로운 시간으로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기 때문에 긍정적인 감성을 갖게 되고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0…아침형 인간은 대체로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나 절제도 강하다. 그래서 그런지 성공한 사람 중에는 대체로 아침형 인간이 많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의 금언(金言)이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도 인간은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자연스럽고 건강에도 좋다고 강조한다.

 

 0…일본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아침형 인간>의 저자 사이쇼 히로시는 “아침을 경영하는 사람이 인생을 경영한다. 아침형 인간의 성공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도록 싫은가? 매일 반복되는 출근 전쟁에서 탈출하고 싶은가? 하루가 한없이 길고 고된가? 직장생활이 두려움의 연속인가? 밤이면 내일 또다시 출근할 생각에 걱정부터 앞서는가? 그렇다면 그 모든 고민을 한방에 날려 버릴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라. 내일 아침부터 딱 30분만 일찍 일어나 보라. 30분 일찍 일어나 당신의 아침, 당신의 하루, 나아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는 첫날의 감동을 맛보라.”

 

0…지난 일요일부터 캐나다에서 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 서머타임)가 시작됐다.

 이에 아침잠이 많은 분들이 적응하려면 고생 좀 할 것이다. 한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걱정이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0…서머타임은 1905년 미국의 한 건설업자에 의해 제안돼 1차대전을 거쳐 유럽에서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효율성을 놓고 찬반의견이 엇갈려 시행과 폐지를 반복하다 2007년부터 본격 실시됐다.

그러나 주(州)에 따라서는 이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미국 하와이, 아리조나, 캐나다 사스캐처완 등).

0…서머타임은 낮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 일년에 두 차례씩 시계를 인위적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불편함과 아울러 사람의 생체리듬에도 이롭지 않으니 이를 폐지 또는 영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에 온타리오주 의회는 수년 전 서머타임을 영구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것이 시행되려면 같은 시간대인 퀘벡주와 뉴욕주 등이 동의해야 한다.

 아무튼 새로 시작되는 시간에 잘 적응해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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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풀잎의 지혜

Editor’s Note
-대세에 순응하는 들풀처럼
-자기중심 지키되 모나지 않게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  '풀')

 

 풀은 어디에나 흔한 미물(微物)이다.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짓밟고 뽑아내도 자꾸자꾸 돋아난다. 
0…풀은 비를 만나면 비를 맞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맞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다른 계절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메마른 빛깔이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바깥에서 오는 것을 긍정한다. 그러기에 오래 살아남는다. 이래서 이어령 교수는 순응하듯 저항하는 ‘풀들의 혁명'이라 했다. 
 아무리 짓밟아도 끝내 일어서고야 만다. 그래서 민초(民草)라 했다.  

 

 

0…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직속 부장으로 근무하던 선배가 있었다. 
초급기자 시절, 매사 의욕에 불타던 시각으로 볼 때 그 선배는 식견이나 사려분별도 그렇고 사건사고에 대한 핵심 파악 등 전반적인 면에서 결코 능력이 뛰어난 언론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기인사 때 보면 그는 언제나 주요 보직을 맡고 승진도 동기생 중 제일 빨랐다. 그런 날이면 우리 부서원들은 예외 없이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가 있었다. 그의 출세비결은 바로 ‘손바닥 비비기’에 있다고. 
 그에겐 손금이 없을 거라고 우린 분기탱천해 떠들었다.   


0…그랬다. 그 선배는 업무능력은 자기 동기들에 비해 다소 떨어졌지만 처세술 하나만은 기가 막혔다. 회사 윗분들이 지시를 하면 군말없이 즉각 그대로 시행에 옮겼다. 
그것이 불합리한 지시임이 분명한데도 일체 토를 달지 않고 오로지 “네, 알겠습니다”였다. 이민 와서 나중에 알아보니 그는 결국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0…이런 사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업무수행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윗사람들과 잘 지내고 그래서 승진도 빠른 케이스를 많이 보는 것이다.  
 이는 곧 인간세상이 반드시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란 의미다. 직장 분위기에 잘 적응하고 상사와 동료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0…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자기 측근을 중책에 기용한다고 언론에서 난리다. 그러나 그런 지적은 다분히 위선적이고 고답(高踏)적이다. 
 생각해보자. 대권의 비전과 이상을 펼치려는데 그 철학을 이해하고 함께 따라줄 사람이 필요하지 이런저런 논리를 내세워 사사건건 입바른 소리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박정희는 왜 이후락과 차지철을, 전두환은 왜 장세동을, 노태우는 왜 박철언을, 김영삼은 왜 최형우와 김동영을, 김대중은 왜 한화갑과 권노갑을, 노무현은 왜 문재인을, 이명박은 왜 최시중을, 박근혜는 왜 유영하를 지근거리에 두고 챙겼겠는가. 
 누가 뭐래도 그들이야말로 나를 이해해주고 평생토록 절대 배신할 것 같지 않은 ‘내 사람’이기 때문이다.

 

0…측근 기용 문제는 언론에서 비판하기 좋은 고리타분한 소재일 뿐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인재라도 소위 ‘코드’가 맞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똑똑한 부하보다는 편안한 충신을 더 선호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능력은 다소 떨어져도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충성스런(loyal) 부하를 더 선호하는 법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세상의 불문율이다.   
0…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는 고사(古事)가 있다. 
 중국 초한시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명장 한신(韓信)은 어릴 적 동네 불량배들이 길을 막고 가랑이 밑을 기어가라고 하자 그대로 했다. 
 그것은 사소한 일로 다툼으로써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일시적 굴욕감을 참고 앞날의 큰 꿈을 이루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그리 했던 것이다. 

 

0…병법(兵法)에서 최고의 전략으로 꼽는 것은 상대방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일단 싸움을 벌이면 이긴 쪽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큰 뜻을 위해서는 일단 몸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생존술의 기본이다. 눈이 내린 빙판길도 허리를 굽혀 지나가면 넘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가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세상사 이치가 이와 같다.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새겨두어야 할 처세술, 그건 바로 풀잎이 되는 것이다. 

 

0…영어에 Don't sweat the small stuff란 말이 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뜻이다. 대의를 지키기 위해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가고 큰 그림(big picture)을 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극한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순간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면 추후 모든 그림이 망가지고 만다.     
 세파에 휘말려 일시적으로 고개를 숙일지라도 자기중심이 뚜렷하고 속마음이 단단하면 반드시 재기한다. 

 

0…바람이 불면 잠시 누웠다가 바람이 그치면 금방 다시 일어나는 풀잎의 지혜를 되새기자. 이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생존의 이치도 바로 이런 것 아닐는지. 
 예전의 그 신문사 선배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그라고 왜 생각이 없었겠나.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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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적당히 거리 두며 살기

 

Editor’s Note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지혜 

 

 

 우리 (큰)사돈댁은 홍콩 출신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말이 매끄럽게 잘 통하는 편은 아니다. 
 두 분이 모두 어느정도 영어를 하긴 하지만 우리와 속내까지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와 영어로 대화할 때는 대충 몸짓 눈짓으로 의사를 주고 받는 식이다.
 외식(外食)에 익숙한 사돈댁은 우리를 종종 중국식당에 초대하는데, 식당에선 주로 바깥사돈이 메뉴를 정하고 우리는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 알아서 맛있는 종류를 시켜준다. 
 우리 입맛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모두가 만족스럽다. 

 

0…외국 사돈댁을 보면서 우리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즉,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하는지 새삼 감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람들끼리는 얼굴 표정만 봐도 속마음을 훤히 알지만 이 분들은 그렇지가 않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웃으면 그냥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섬세한 감정까지는 모르겠으되 적당히 모른체 하니 오히려 좋다. 이래서 사돈댁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0…사돈이 같은 한국사람이었더라도 그랬을까. 아마 결혼식 절차와 신혼집을 정하는 문제 등에서부터 사돈끼리 다소간 실랑이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의 누구네는 결혼을 앞두고 혼수(婚需)와 신혼집 문제로 사돈 간에 티격대다 결혼식 직전에 혼사 자체가 깨져버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참 다행이다. 
 딸과 사위는 오래 사귄 끝에 결혼을 했기에 시부모님과도 친근하고 사이가 좋다. 그런데 이런 원만한 관계도 외국 시부모들이기에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언어과 관습 등의 차이에서 적당히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0…이처럼 인간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을 때 원만히,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다소 생뚱맞은 말이지만, 나는 친밀한 사이라도 해외여행, 특히 옵션 투어는 가능한 함께 가지 말라고 권한다. 
 평소엔 잘 모르던 서로의 습성이 여러날을 함께 지내면서 속속들이 나타나 실망하는가 하면, 취향도 서로 달라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내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0…수년 전 우리 가족이 한국에 나갔을 때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이민 오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 살았더라도 이렇게 서로가 반가워하고 애틋해 했을까. 아마 가까이 살았더라면 가끔은 토닥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어쩌다 한번씩 보니 반갑고 살가운 것이 아닐까.
 촌수(寸數)가 없다는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살뜰하게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를 너무 가까이 훤히 알다보면 상대방의 허물이 눈에 띄고 그러다보면 가끔은 티격대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남편이 어디 출장이라도 갔다 돌아오면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도 가끔은 서로 떨어져 쉬는 시간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0…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 라는 것이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막기 위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려 깜짝 놀라며 황급히 멀리 떨어진다. 
 그러다 곧 추위를 느끼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픔을 피하려 다시금 멀어진다.
 그들은 추위와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찾게 된다. 즉,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상처입지 않을만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해한다.
 이 이야기는 모든 관계에 있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동물의 세계가 그러하거늘 만물의 영장인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0…우리가 흔히 쓰는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다. 가정이나 사회생활 등에서 ‘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이가 좋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이’라는 것은 한자로 ‘간(間)’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가 빈틈 없이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원만한 인간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사이’에 있다. 

 

0…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관계가 오래, 아름답게 지속될 수 있다. 
 일상에서 많이 쓰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마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을 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아름다웠던 것이 너무 가까이서 보니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던가?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란 옛노래도 있듯이 차라리 그리워하면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아름다운 정을 오래 간직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0…자고로 인간관계는 난로불 대하듯 할 일이다. 너무 다가가면 뜨거워 데이고 너무 떨어지면 추워진다. 
 “오냐 오냐 하면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두 어린아이와 같다. 따라서 타인에 대해 너무 관대해도, 너무 부드러워서도 안 된다.” (쇼펜하우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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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의사, 변호사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위는 의학도들이 의사로서 첫걸음을 내디딜 때 외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의 일부다.

무엇보다 의사는 생명을 존중하고 인류사회에 봉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로부터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 함은 이런 연유에서다.

0…의사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사랑이다.

그들에게 이런 심성이 없다면 수술대에 오른 인체를 마치 나무토막 다루듯 할 것이다.

돈은 그 다음이다. 자기 몸을 고쳐주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보답을 하려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갖다 바치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이다.

의사가 예전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이래서다.    

의사들이 평생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의 정신만 간직한다면 세상은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0…그런데 지금 한국의 의료계 현실을 보면 안타깝고 참담하기 그지 없다.

의사가 부족해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며 ‘뺑뺑이’를 돌고 있는데, 현직 의사들은 그 수가 충분하다며 의대 증원에 죽기살기로 반대하고 있다. 

그 명분이 가관이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들만이 최고의 두뇌를 갖고 최고의 의술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머리는 2류로서 이런 사람들이 의대에 진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천의 소가 웃을 일이다.   

0…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공공의료 시스템인 탓에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정부의 재량이며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이 앞장서 의사 증원을 결사반대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제발 정부 차원에서 의료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는 주요 선진국 모두 마찬가지다.

의사단체의 결사 반대로 18년째 의대 정원을 단 한명도 늘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된다.

0…의사가 절대 부족한 것은 국제적으로 비교한 수치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2명으로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적다.

이런데도 한국의 현직 의사들은 지금도 의사 수가 충분하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그들이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결사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뻔하다.

의사가 적을수록 현재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0…환자의 아픈 몸을 보듬고 싸매줘야 할 의사들이 병상을 걷어차고 나와 머리띠를 둘러맨 채 증원 결사반대를 외치는 모습은 국민들의 혀를 차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환자를 자기 몸처럼 최선을 다해 돌볼 수 있을까.

사람의 몸에 칼을 대면서도 속으론 돈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섬뜩한 일이다.

0…의사들은 인명사고를 내도 수개월의 면허 정지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곧바로 돈벌이에 나선다.          

기고만장한 특권의식과 이기주의에 찌든 사이비 의사들은 다음과 같은 성현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진정한 의사는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히포크라테스

"환자는 몸 안에 자연치유력이라는 의사를 갖고 있다. 환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그 의사에게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의사가 수행해야 할 최상의 임무다." -알버트 슈바이처

0…의사와 함께 돈을 많이 버는 대표적인 직업이 변호사다.

하지만 변호사 역시 세인들의 존경과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이중적인 직업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구세주일 수도 있지만 때론 돈만 밝히는 돈벌레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한국에선 판.검사를 하다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하면 일반서민들이 평생을 죽도록 일해도 상상도 못할 거액을 단 2, 3년 안에 벌어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 뇌리에 서민들을 위한 진실된 변호 의지가 있을 리 없다.   

0…돈벌레 변호사들에게 짧고 굵게 살다간 한 인권변호사의 인생역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길 권한다.

노무현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던 조영래. 그도 여느 법조인처럼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합리한 사회 현실에 눈뜨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자초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길지 않은 생을 일관했다.

0…그의 마흔넷 인생 역정은 약하고 그늘진 인간에 대한 사랑,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현실을 온몸으로 보듬고 고민하며 살다 간 경전(經典)이었다.

조영래는 세속적 부귀영화가 최고의 가치기준인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올바른 삶인가를 가르쳐줬다.

0…의사와 변호사는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기본 소명이다.

아무리 부와 권력이 막강한 사람도 병상에 눕거나 법정에 서면 한없이 약해진다.

몸이 아픈 환자를 치유해주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0…이런 판에 인간사랑이니 정의니 외치는 것은 순진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사와 변호사들부터 그 지독한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와야 혼돈의 이 세상은 비로소 질서를 찾아갈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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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처음처럼

                      ▲신영복 교수의 글씨 ‘처음처럼’

 

 

Editor’s Note

 

-초심만 유지할 있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있으리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신영복 교수 ‘처음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처음처럼’이다.

 한국에서 같은 이름의 소주가 출시된게 2006년 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2016년 1월 작고)의 시 제목과 글씨가 소줏병의 로고로 사용됐다.

 

0…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성 중 한 분인 신 교수가 어떻게 술 이름에 자신의 글씨를 쓰도록 허용했는지 처음엔 의아했다.

 당시 소주회사 관계자도 "신 교수님이 존경받는 학자이신데, 과연 술 이름에 자신의 글을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제의를 들은 신 교수는 의외로 흔쾌히 '처음처럼'의 문구와 글씨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주(大衆酒)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허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침내 신 교수의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줏병에 찍혀 세상에 나왔다.

 

0…신 교수는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소주회사(당시 두산)가 여러 차례 지불을 시도했으나 "나는 돈이 필요치 않다"며 사양했고 결국 회사는 저작권료 대신 신 교수가 몸 담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 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갓 출시된 소주 '처음처럼'의 인기는 돌풍을 일으켰고 그 덕에 이 소주는 시장점유율이 껑충 뛰었다.

 회사 관계자는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것은 글씨에 담긴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과 친근한 이미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0…‘처음처럼’ 소주가 내 눈에 띈 것은 수년 전 토론토의 어느 한식당에서였다. 벽에 예쁜 여자탤런트 사진과 함께 붙어있는 글귀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 후로 소주를 시킬 때면 으레 ‘처음처럼’만 찾곤 했다. 지금도 이 글씨를 볼 때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다.

 

0…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때 이 글씨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한번은 어느 경찰서장이 신 교수의 서예작품 ‘처음처럼’을 서각(書刻, 글씨를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제작해 관할 파출소 등에 내걸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이 작품이 과거 시국사건에 관련된 인사의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초 그 서장은 "초심을 잃지 말고 경찰의 본분을 지키자"는 의미로 신 교수의 허락을 받아 작업을 추진했다.

 ‘처음처럼’ 제목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으로 시작되는 시 구절이 새겨졌으며 미술에 조예있는 한 경찰간부가 제작을 맡았다.

 

0…그러나 경찰은 내부검토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작품을 경찰관서에 게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 계획을 취소했다. 신 교수는 이른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은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보수단체의 민원을 이유로 신 교수가 쓴 정문 현판을 교체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의 편협한 사고를 질타하는 비판여론이 이어졌다.

 

0…‘민체’ 또는 ‘유배체’로 불리는 개성 강한 서체인 ‘처음처럼’은 문장과 서예가 뛰어난 신 교수가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격조높은 서예작품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0…‘처음처럼’은 곧 초심(初心)을 유지하자는 다짐이다. 매사를 처음의 자세로 대하고 겸허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엔 욕심을 내거나 서로 다투고 미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부부가 처음 만나 맺은 사랑의 맹약을 잊지 않는다면 평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다. 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첫 직장에 출근할 때의 철석같은 다짐과 각오만 끝까지 간직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0…친구와의 우정도 처음 만났을 때의 굳은 결의만 유지된다면 도중에 갈라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맹약(盟約)과 배신이 수시로 반복되는 것은 처음의 다짐이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모든게 생각같지 않게 뒤틀려 보이는 것은 처음의 다짐과 각오를 잊은 채 너무 큰 기대치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0…이민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마음자세가 바로 이 ‘처음처럼’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꿋꿋하게 견뎌낼 것이라며 이민봇짐을 쌀 때의 각오만 끝까지 간직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이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처럼’의 자세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이민 초기의 소박했던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든 것이 성에 안차고 불만투성이다.

 웬만하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법도 하건만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마음이 늘 허기져 있다.    

 

0…현실이 고달프다고 생각되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결심으로 돌아가 ‘처음처럼’을 되새기자. 신영복 교수 말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또 한해를 맞이한다. 매양 가고 오는 세월 속에 새해가 뭐 그리 대단하랴만 그래도 또 다시 다짐이란 것을 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뜻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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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책을 치우며

 

Editor’s Note

-손때 묻은 소중한 물건들
-버려야 채워지는 세상 이치 
 

 

사람의 ‘직장 성격’엔 두가지 타입이 있다. 사무실을 깨끗하게 정리정돈하고 일을 하는 타입과 비품들을 어수선하게 너질러놓고 일하는 스타일.
 일반적으론, 누가 보아도 깔끔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정신집중도 잘되고 일에도 능률이 오를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매사에 반듯한 언행을 하는 예가 많다.           

0…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사무실의 너저분한 분위기가 실제로는 생각을 더 깊고 명확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의 지아 리우 박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업무효율과 생산성 증가를 위해 깨끗한 사무실을 선호하지만 이는 지저분한 환경이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전통적 관습에 따른 것”이라며 “너저분한 환경과 마음 사이에는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영국의 아동문학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은 어수선한 책상으로 악명이 높았다. 

 

0…평생 기사 쓰는 일이 직업인 나는 예전부터 책상 위에 원고지가 수북히 쌓이고 각종 신문들이 사무실을 온통 뒤덮고 있어야 정신이 집중되고 일도 능률이 올랐다.
 이민 온 후에도 계속해서 언론에 종사하다 보니 상황은 비슷했다. 토론토의 내 사무실을 한번이라도 방문했던 분들은 쓰레기 하치장같은 사무실 분위기를 보고 혀를 차는 분들이 많았다. 
 “이게 뭐야. 정리 좀 하고 살지…” 하지만 이래야 마음이 편안하고 정신도 집중되는걸 어쩌나. 

 

0…그런데 최근 신문사 사무실을 옆방으로 옮기면서 어쩔수 없이 비품정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루 날을 잡아 사무실에 온통 널려있는 신문지와 각종 서류뭉치들을 치우는데, 버리고 또 버려도 끝이 없었다. 
 마침 대형 쓰레기수거박스(Bin)가 있어서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게 없었다면 큰 애를 먹었을 것이다. 

 

0…그런데 다른 허접한 것들은 그냥 버려도 아깝지가 않았으나 그동안 쌓아둔 수 많은 책들은 느낌이 달랐다.   
 특히 지금 갖고 있는 책들은 내가 이민 온 이후 동포 문인과 저자들로부터 건네받은 것들이 많은데 15년 정도를 모으다 보니 분량이 엄청 많았다.  
 이 책들을 쓰느라 고생한 분들을 생각하면 쉽사리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들어갔겠는가. 

 

0…더욱이 이민사회에서 작품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은 더욱이나 어렵다. 
 그런데 책이란 것이 그렇다. 
 책은 인생에서 삶의 좌표를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치유해준다. 
 하지만 책은 이사할 때 가장 큰 두통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다니자니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읽지도 않을 책이면서 그냥 버리기도 아깝다.

 

0…나도 그동안 모아놓은 책들은 좀처럼 버리기가 아까워서 서너번 이사를 하면서도 죽어라고 싸들고 다녔다. 
 이민 올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무거운 책들을 박스에 채곡채곡 챙겨왔다.     
 그러다가 가끔 집수리를 하면서 그동안 별로 읽지 않았던 책들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주섬주섬 헌책들을 보아보니 사과상자로 10개 정도가 됐다. 
 책 중에는 대학시절의 영문시선집(anthology)에서부터 ‘창비’(창작과 비평) 전집, 대하소설류, 각종 문학전집 등이 있었다. 또한 ‘운동권 서적’도 꽤 남아있었다. 
 중국 근대사, 러시아 혁명사, 제3세계론, 교육철학 같이 주제가 무겁고 거창한 것도 있고,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의 머리 아픈 것들도 섞여 있다. 
 이런 책들은 평소 손에 들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이다. 나의 청춘시절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0…언젠가 헌책들을 버리다 보니 문득 장왕록 교수님께서 친필 사인을 해주신 수필집도 있고 그의 따님인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한국에서 친히 보내준 ‘문학의 숲을 거닐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책들을 보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들 부녀(父女) 학자는 비록 이 세상에 안계시지만 그들이 남긴 따스한 문향(文香)들은 두고두고 세인들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것이다.          
 이민 후엔 토론토에서 만난 문인들이 책을 출판해 친필사인을 해주신 것들이 많아졌고 지금 내 책상 위엔 이런 책이 적잖이 쌓여있다. 
 (그 중 ‘출판의 달인’ 이동렬 교수님의 수필집은 예닐곱 권이나 된다.)       

 

0…사실 나는 35년째 언론에 종사하면서 나름 글 좀 쓰려고 노력해왔기에 그 분량이 적지 않다. 이래서 나를 아끼는 분들은 그것들을 모아 책을 내라고 권유하신다. 
 책을 낸다면 아마 10여 권은 족히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책이라고 낼만한 수준도 안되지만 고생해가며 책을 낸들 그것이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엔 특히 온갖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기에 책장을 넘기며 사색에 잠길 여유를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 
 머리엔 그야말로 잡식(雜識)만 가득하고 책의 진정한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0…아무튼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겠다.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아깝지만 책도 그 중 하나다.   
 ‘채우려 하지 말기/있는 것 중 덜어내기/다 비운다는 것은 거짓말/애써 덜어내 가벼워지기/쌓을 때마다 무거워지는 높이/높이만큼 쌓이는 고통/’ (이무원 시인 ‘가벼워지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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