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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삶과여유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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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문자 수: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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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카나다에 유학와 귀와 입이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알버타 주립 대학에 들어가 기계공학 학사를 마치고 워터루 공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토론토 인근 원자력 발전소 연방정부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하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그의 신조를 바탕으로 이룩해 놓은 그의 발자취를 실어본다. 현재까지 그의 삶의 발자취는 에드몬톤->워터루->미시사가->대전->밴쿠버->오타와->리치몬드 힐이다. 현재 그는 다음 삶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궁금해 하면서 다람쥐 체바퀴처럼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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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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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3
은퇴후 5년 산 나이아가라 집

2017년 부터 은퇴인들이 원하는 나이아가라에서의 은퇴 생활을 하기 위해 우연히 찾은 디자이너 집으로 인도 여의사가 운치있게 설계한 집으로 그지역 잡지에 소개된 집이다. Loft Bangalow지만, 2층에도 방이 3개 있고, 1층엔 마스터 베드룸과 서재가 있으며, walkout 지하는 또 방이 2개가 더 있었다. 1,2층이 5500 sq ft이고 지하는 또 2500 sq ft가 되니  총 8000 sq ft가 되는 집이다. Fonthill동네에서 제일 크고, 주민들이 부러워했던 집이었고, 여행객들도 우리집 화단에서 사진을 찍고 했던 집이었다. 우린 또 하나의 행운을 얻어 두배로 팔고, 둘째 딸이 있는 토론토에 가볍게 입성할 수 있었다. 토론토에 multi-offer가 기승을 부리던 때, 떠났다가 돈을 만들고, 외곽으로 빠지면 토론토에 다시 발붙일수 없다는 원리를 깨고, 쉽게 들어온 셈이었다. 탱큐, My House!

bo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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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3
나의 50대가 산 리치몬드힐 집

중국인들이 노리는 리치몬드힐 Bayview & 16th Ave 던칸길에 3car 가라지가 있고 이태리 빌더가 지은 견실한 집이었다. 직장, 월급이 든든해 은행서 많은 돈을 빌려주어 샀고, 은퇴할 시점 값이 2배로 오른걸 알고 팔았다. 지하실은 안되어 있는 걸 2년에 걸쳐 퇴근후 일하며 내가 직접 꾸며 팔았다. 젊은 50대 중반의 혈기 왕성한 나의 전성기였다.

bo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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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9
와싱톤 디씨에서

큰딸 아이가 다리가 다쳐 기브스하고 있다해 놀라 운전해 달려오니, 시간만 지나면 완쾌돤다하여 다행이다. 내가 사는 오로라지역은 이번주 내내 영도지만 여긴 20도를 넘도는 기분좋은 날씨이다.

 

-계속-

thealla
the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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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8
대단하신듯해요

우연히 들렸어요

 

이 싸이트의 소개가 맘에 듭니다.

 

제가 배울점이 많아요.

 

ㅎㅎㅎ 지금은 어디 계시나요?

nhok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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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겸손
춘추시대 초나라의 명재상 ‘손숙오’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관직에 오래 있으면 선비들이 질투하고, 봉록이 많아지면 백성들이 원망하며, 벼슬이 높아지면 군왕이 미워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대인은 관직에 오른 지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봉록도 많고 자리도 높습니다. 하지만 초나라 임금과 선비, 백성 중 대인을 미워하는 자가 없습니다. 어찌 그렇습니까?” 손숙오는 “나는 지금 초나라의 재상 자리를 세 번째하고 있지만, 더욱 겸손하려고 노력하네. 봉록이 높아질 때마다 더 많이 베풀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주변 사람에게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네”라고 대답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겸손한 사람은 결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설령 훌륭한 능력을 갖췄더라도 그 사실을 스스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학식이 높고 능력도 출중한데 그만큼 훌륭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겸손하지 못하면 그 능력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사람은 지식과 능력을 키워 자신감이 충만하고 참된 사랑으로 채워질 때 진정으로 겸손해질 수 있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듯이 겸손이 없는 자는 내실도 없다. 진정으로 겸손을 실천하려면 그만큼 능력을 키워야 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가슴을 채워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겸손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첫째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논어에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구절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중 분명히 배울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 항상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곧 겸손을 실천하는 길이다.   둘째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를 대할 때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오늘날은 '자기 PR시대'라고도 하지만 겸손이 자리 잡고 있지 못하면 교만과 오만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적극적인 역지사지 자세로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표현이다. 겸손은 역지사지에서 나온다.   셋째는 미.죄.고.감.내의 실천이다. 일상생활을 통해 미안합니다(미), 죄송합니다(죄), 고맙습니다(고), 감사합니다(감), 내 탓입니다(내)를 언행으로 실천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습관화하면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를 세우는 것이다. 열정으로 키워온 능력과 성취는 겸손이라는 조명을 받을 때 더욱 화려한 빛을 발할 수 있다. 겸손으로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사회를 밝게 하는 그대는 정녕 아름다운 등불이어라!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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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둘째딸과의 여행
나는 해외 여행은 시차적응어려움이 있어 피해왔는 데, 최근 아내의 요청으로 2주이상 집을 떠나 스페인, 포르투칼을 둘째딸과 같이 다녀와야 했다. 둘째딸을 보호하고, escort하는 차원에서 간 것이기에 여행 목적지나 스케쥴은 딸이 정했고 묵는 호텔도 딸에게 위임했다. 사실 아내를 남기고 간 다는 것이 뭔가 잘못을 하는 것 같았고, 같이 살 날이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돈을 들여 혼자 떠난다는 것이 죄스러웠다. 떠나는 날까지 나는 가고 싶지않았으나, 아내는 딸이 결혼하기전 아버지로서 같이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내는 마지막기회가 될지모르니 딴 생각말고 다녀오라고 등을 밀었다. 사실 이젠 다커서 각자 돈 벌어 따로 나가 혼자 살고있는 처녀들이라, 같이 호텔 한방에서 잘것도 이상했거니와 별다른 할 말이 있을가 싶었다. 아빠가 자주 미적미적하는 것 같으니까, 딸은 :아빠, 진짜 나와 같이 가고 싶은거야, 아니면 싫은 거야?" 하고 묻길래 마음속에 있는 심정을 솔직히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내에게 등이 밀려 떠난 15일간의 여행은 끝이 나고 나는 아직 시차가 바뀌지않은 멍한 상태에서 이글을 쓴다. 객지에서 사고 먹고 돌아다니면서 확실하게 느낀것은 지금 내가 사는 카나다 토론토에서의 삶이 나에겐 축복받은 삶이라는 것이라, 고개를 구부려 순간순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해야 할 처지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칼 두나라에서 나는 길거리나 지하철 관광지에서 동양인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많은 일본인 관광객도 보기가 힘들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보이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인데, 여기서는 보이지를 않았다. 북미 도시에서는 차이나 타운이 있는 데 여기서는 중국음식점도 발 보이지를 않았다. 단지 우연히 들어간 가게가 중국인이 운영하는 달라 스토어가 고작이었다. 이들은 관광지에 BAZAR STORE라고 간판을 붙이고 마치 만물상을 방불케라는 각종 달라 아이템을 중국에서 들여와 식구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 그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처럼 처다보고, 관광지를 가면 영어 못하는 아시아인으로 대접하려고 했다. 이점에서는 불편한점이 많았다. 여기 토론토에서는 중국인이 쌓여있어 서로들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나는 우선 토론토가 천국임에 틀림없다. 시장 선거에 나오는 후보자들이 우리 추석잔치에 와서 인사하지 않는가. 또하나는 길거리나 공공건물에 대중 화장실이 적어, 우리딸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 설사 찾아내도 가보면 휴지가 없어 휴지를 가지러 다시와야 했다. 변기 커버가 없는 것은 흔하고 동전을 넣어야 들어갈수있지 않나, 맥도날드 햄버거 변소는 항상 줄을 사고 있었으니, 나도 급한 경우는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계속-------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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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6
구사일생-선량한 카나디언들
어제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모면해야 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계기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카나다인들중에는 정말 흰눈처럼 마음이 께끗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기치는 한국 교민들도 주위에 있지만 이런 사람들도 주위에 동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다. 딸들이 성당해 우리곁은 떠난 지금, 주말이면 아내와 둘이 엤날 연애 시절로 돌아가 주말이면 동네를 같이 뛰고, 아침일찍 남쪽나라로 가지못하고 남아있는 청둥오리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한다. 얼음이 얼어 굶어 죽을것같아, 우린 자식대신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번 주말은 스토빌(Stouffville)에 짓는 콘도 모델을 보러 간 후, 내친 김에 피커링,에이젝스 지역 북쪽에서 길을 잃어 Bloomington Rd 에서 U-turn을 하다가 갓길에 눈이 쌓여 차가 갓길 아래로 미끌어진 것이다. 차가 약 30도이상 눈 속에서 기울어져 버렸으니, 아내는 문을 열지도 목하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꼼짝없이 차 안에 갇혀 버리게 되었다. 피커링 북쪽이라 국도이어서 차가 많지도 않은 길이었다. 차는 렉서스 승용차니 전륜구동이라 바퀴만 헛돌고, 눈속을 빠져나올수없었다. 집 차고엔 전륜구동 4x4 가 있는 데 왜 하필 이 차를 타고 나왔을 까? 해결 방안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1분 정도 앉아 있는 데, 지나가던 차가 우리 차가 빠진 것을 보았는 지, 시키지도 않았는 데, 차가 서고, 남자 두명이 내려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버지와 아들관계로 보인 이 지역 사는 시골 사람처럼 보였다. 이 남자는 CAA 멤버이면 토잉 차를 공짜로 부를수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멤버가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이 근처 garage에 연락해 토잉 차를 부를 수 있는 데, 경찰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성가시다고 했다. 아마 2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하지않을 까 했다. 여기저기 전화해야 하고... 그 사람은 이 비역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철에 갓길 운전이 위험하고, 유턴은 돌아가더라도 교차로에서 하지 길 가다 중앙에서 하지않는 다고 했다. 갓길 면적이 충분하지 않을 걸 알고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 주민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두사람은 자기들이 앞에서 밀어볼테니 한번 시도해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도참가해 남자 셋이서 앞에서 밀고 아내가 운전해보아도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워낙 눈이 많으니... 다시 2-3분 후, 승용차를 탄 노인이 서더니, 미는 데 합세하였다. 남자 넷이 밀고 이 노인이 미는 방법을 알려줘 10cm정도 움직일 수 있었으나, 잠시후 포기하고 떠났다. 다시 1-2분 후, 낡은 트럭이 하나 서더니, 진짜 하얀 수염만 노인 부부가 차를 세우고, 다가와, 나보고 이 지역 사느냐고 물었다. 초라한 트레이닝 복을 입은 할아버지는 자기 차로 가더니 체인을 들고와 내 차 밑 눈으로 엎드려 들어가더니, 바퀴쪽에 묶고, 한 쪽은 Ford Explorer 뒤에 묶었다. 두 남자는 서로 상의 하더니, 나보고 차안에서 neutral로 놓고 핸들만 틀으라고 했다. 그 차가 끌기 시작하더니 금새 내차가 눈에서 기적처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내 아내는 너무 고마워 전화 번호와 주솔르 달라고 했더니 그 할아버지는 밀톤에 사는 트럭 운전사라고 했고, 주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좋은 일 하는 더라면서.. 아들과 같이 온 아저씨는 아들이 토론토대 졸업해 OPG에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고, 전화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아들이 직장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시골에 사는 그 남자는 내 아내의 헤어 스타일이 신기한 지, beauty shop에서 일하냐고 물었다. 사실 농사짓는 사람들이 머리에 신경 쓸리 만무하다. 요즘 아내가 사용하는 댕기 머리 샴푸가 작용 하나보다. 자, 여기서 내가 느낀 사항은 다음과 같다. - 토박이 카나디언들은 이민자들보다 몸에 밴 자동차관련 지식이 많다 (나는 기계공학 전공자이지만 이들은 눈에서 바퀴가 빠져나올려면, DSC 스위치를 turn-off 하라고 했다. 빠려나올려는 데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고 한다) - 1분간마다 지나가는 차량이 도와주려 서는 걸 보면 서로 동반자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눈에 빠진 차, 고장난 차, 사고난 차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이런 일에 간과했던가. 사고난 차량, 눈에 빠진 차량들을 담넘어 불 보듯 했으니. - 남을 도와 주기위해서라도 혹은 내가 도움받기 위해서 간단한 체인은 차 트렁크에 넣고 다녀야 했다. 지나가는 4x4 차량은 내 차를 끌수있고 내 4x4도 다른 승용차를 끌수 있으니까.. 나라면 그 광경을 목격하고 그녕 지나쳤을 것이다. 곧 경찰이 오겠지 하고 말이다. 이 시골사람들은 경찰을 불러도 꼼짝하지 않고 차안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CAA 멤버가 아니면 토잉값을 엄청나게 청구하니 조심하라고 했다. 다시말해 자기집 식구가 곤경에 처한 것처럼 그 입장에서 이야기 해 주었다. 이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시간이 금인 세상에 노임도 비싼 세상에 차밑에 기어 들어가 몸에 흙 묻히고, 눈에 발이 적도록 밀다가 차가 나오니 기쁜 마음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부턴, 나도 내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야 겠다. 특히, 카나다에서 도로변에서 고장나거나 사고난 차량이 있다면 말이다. 물론 카나다 말고 미국이면 조금 조심해야 겠지만 말이다. 나쁜 사기꾼도 주변에 있지만 좋은 사람들도 내 주변에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젠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 내가 그 아들의 OPG 취직에 도움을 주어야 겠다.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숨어있다니, 참 기분나는 일이다. 인종, 언어에 관계없이 우리가 눈에서 차를 끌어 내려고 만난 짧은 시간들이 참 귀중할 뿐이다. 또, ㄱ,런 시간을 갖기 위해 준비해 보자.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엔돌핀이 넘치는 순간들을 말이다.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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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캐나다에서도 "깎아 주세요" 가 통하는 가?
나는 요즘 여기가 한국인가, 카나다인가하는 혼동을 겪으며 살아간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물건을 사면 깍아 주세요를 요구하면 대개는 기다렸다는 둣이 가게 주인들이 깍아주는 게 통례인데, 밴쿠버, 에드몬톤, 오타와에서 생활할때는 겪자 못했던 일들을 요즘 나는 겪고 있다. 오늘은 그간 벼르고 별렀던 로저스 케이블+전화+인터넷+한국방송을 모두 취소하고, primus 회사것으로 대체할려고 비교 저사를 해보았더니, 현재 170$내는 걸 한국방송 위성접시+전화+인터넷으로 하려면 110$ 로 가능하고 primus는 한짐에 전화 번호를 여러개 갖을 수있고, 북미 및 외국이 다 로컬 전화가 되는 브로드 밴드 상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확인 작업으로 로저스를 걸어 CEO Ted Rogers 의 죽음도 애도를 표하면서 내 의사를 이야기했다. 사실 몇일전 금요일 저녁 5시 회사 퇴근하면 집에와 이메일을 보내는 데, 너무 느려 매달 170불을 내면서 사용자가 많아 인터넷 속도가 늦어지는 걸 짜증내고 로저스 아니면 못사나하고 홀로 서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내가 Primus로 옮긴다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담당자가 벌금으로 그간 제공한 15% DC를 오늘시점까지 backpay해야 한다고 했다. 우스운일이나 정상적인 발상이다. 주위에서 로저스의 악담을 많이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우스웠다, 그러더니, 갑자기 offer를 주었다. 매달 전화 10$, 인터넸 10$, 테이블 10$, 총 30$ DC를 1년간 주겠다고 했다. 아니, 이게 왠 가뭄에 콩나는 일인가. 전화 안했으면 공짜 떡을 못 얻어 먹을 뻔 했다. 모뎀 바꾸고 서비스 맨이 집에 오는 것 기다리는 것등 번거로와 그 오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은 한치 앞을 바라볼수없는 상황이니, 1년이면 또 강산도 변하겠지. 그때 또 생각하기로 하고, 받아 들였다. 다시한번 생각해봐도, 불평안했으면 나만 바보가 될뻔 했다. 앞으로 1년간 360$을 전화 한통에 벌었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집이 자기네들 오래 사용한 소비자라는 걸 알고 있었고 연체료 없이 또박 지불한 사람이라는 것을 체크한 후에 오퍼를 준것이다. 또 한 가지 이야기하련다. 나는 딸들이 사고내 혼다 CRV를 폐기 처분하고, 중고 BMW를 산적이 있다. 만인들이 갖고 싶은 걸 갑자기 갖게되어 첫날 경찰에 걸리는 등 차가 너무 힘이 좋아 속도위반을 할 정도였다. 그간 잘 타고 다니는 데, 서비스 라이트가 켜져 딜러에 가지고가야만 했다. 미리 예약을 하고 렌트카도 무료로 해주는 등 왕을 모시는 신하처럼 모든 직원이 잘 해주더니, 서비스 직원이 전화가 와서 O2 센서가 죽어서 바꾸어야 하고 워런티에 커버가 안되니, 세금포함 1000불을 말했다, 나는 딜러가 비싸다는 말은 들었지만 센서 하나 가는 데 이건 너무했다. 그래서 돈이 갑자기 준비가 안되어 안 고치고 그냥 나오면 어떠냐고 검사비로 150불을 내야 한다는 거다. 차는 고쳐지지 않은 상태는 물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어, 내 차를 판 한인 세일즈 워먼한테 푸념을 늘어놓았다. 카나다에서 20여년 살면서 혼다 , 토요다, GM, FORD차를 문전해보았지만 BMW딜러 수수료는 너무 비싸다는 것을 전했다. 렉서스의 경우는 O2센서도 자기들이 와사 차를 가지고 가서 워런티로 교쳐준 기억도 있었다. 한참후, 그 세일즈 워먼이 내 뜻을 전달했는지 서비스 매니저가 전화와 O2센서는 스파크 플러그같이 소보품이라 워런티에 포함이 안된다고 전화가 와서 그러면 카나디어 ㄴ타이어는 검사비를 나중에 수선비로 전환해주는 데 너희들도 그렇게 하니 물으니 천불정도 수선비라면 그헣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서비스 직원이 다시 전화와 우습게시리 오퍼를 내게 던졌다. 약 500불에 해주겠다고. 아니 처음에 천불하더니 이젠 절반으로 깎였다. 불평 한 사람만 깎아주는 나라인가? 안 하면 돈만 뜾기는 순진한 바보이고.. 딜러가 이러니, 소규모 가라지는 더 할 것이다. 그래도 딜러는 딜러인데 자존심을 지켜야지... 아뭏든 오퍼를 받아도 기분이 나빴다. 이런 식의 상도는 말이다... 오퍼를 뿌리치고 고치지도 않고 그냥나왔다. 그리고 내자신이 직접 BMW 메나닉이 되겠다고 내 자신에게 선언했다. BMW차를 기계적으로 사랑하나, 이를 미끼로 고치는 장사하는 딜러 차고는 더 이상 믿지 않으련다. 그리고, 나는 15000마일을 견디는 synthetic 오일을 사서 직접 오일을 바꾸었고 오일 필터도 독일산 정품을 12$에 주고 샀다. 총 50불미만에 가장좋은 모바일 1 오일로 바꾸었다. 딜러가면 150불이상 들을 것이다. 그러나 오일 질(Castrol) 이 떨어진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이다. BMW동호회에서 손재주있는 회원들이 사진까지 찍어 집에서 고치는 법을 게시한다. 그후 나는 정품 Bosch O2 센서가 마이에미에 있는 걸 배달로 집에서 받아 60불 정도를 주었고, 내 차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곤 홍콩에 있는 서비스 라이트 reset tool, oil change interval reset tool이 겸비된 걸 인터넷으로 30불에 사서 배달을 기다리는 중이고, 엔진 스캔을 실시간 하는 tool을 홍콩에서 30불에 사서 역시 배달 중이다. 이걸 갖으면 어디에서 이상이 있는 지, 엔진 상태 체크가 되고 딜러에 가면 검사만 140불내라는 걸 안해도 된다. 좋은 차를 팔아놓고, 엔진 서비스등이 켜져 무슨 큰 고장 났는 지 겁을 집어 먹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딜러 건물 전시장이 번듯하게 차려놓곤 overhead 비용을 customer 에게 청구하는 그런 dealer 는 이젠 갈 필요가 없다. 나는 그래도 기계적인 것을 알기에 그 함정을 회피해 갈 수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냉가슴 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왠만한 수선비는 천불이 넘을 텐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가진 간단한 장비로 간단 한건 무료로 해주고 싶은마음이다. 동호회라도 만들어서 말이다.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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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
2008-07-25
아, 찾았다, 새 환자 받는 한인의사!
요즘 토론토, 노스욕, 미시사가 지역에서 새로 이주한 사람을 받는 한인의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내겐 이런 의사들이 필요없지만, 팔순노인이신 내 어머니 를 근처로 모시다 보니, 본인이 아픈 곳을 직접 한국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한인 의사가 필요로 했다. 지난 20년간 캐나다 촌구석에서 사시면서 자신의 아픈곳을 의사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셨을 것이다. 이래서 오늘 나는 아침부터 한국 신문에 나온 20여명의 한인에게 각각 전화 를 해서 새 환자를 받는 지를 물었다. 외국인 receptionist 가 받으면 대부 분 "One Moment Please" 하곤 다른 전화를 받는 바쁜 상황이었다. 한인 여성이 전화를 받으면, 에누리없이 새 환자를 안 받는 다고 했다. 노스욕 지역 의 사중 한 곳은 새환자를 받으나, 온지 5년미만된 환자만 받는다고 했다. 이상스런 사례임에 틀림없다. 이민역사가 긴 다운타운 지역소재 한인의사나 최근도 이민자가 도착하는 노스 욕지역 한인의사들도 이젠 한인 환자가 포화 상태가 서비스가 저하되는 건 사 실이다. 여길 비집고 들어갈 이유가 없는 내자신이 감사하나, 내 어미는 어쩔수 가 없었다. 미시사가는 아직 새 환자를 받는 걸 보니 거긴 포화상태가 아닌것 같다. 20여명을 다 걸어본 후, 한 곳이 어머니를 받겠다고 했다. 위치는 스카보로로 내 치과의사가 있는 곳보다 가깝다. 한인 receptionist가 아니나, 내가 의사의 나이를 대충 물어보니, 30대 인것 같았다. 나는 20년전 토론토에서 한시간 떨어진 워터루에 살면서 우리아이들을 돌봐 준 훼미리 닥터를 잊을수가 없다. 갈때마다, 우선 장난감을 주면서 우리 아이 와 이야기를 나눈다. South Africa에서 온 백인이었으며 우리 부모보다 더 자 상했다. 충분한 시간을 대화한 후에 진찰로 들어가는 그의 여유로움은 환자들 의 아픔을 자동으로 낫게 하는 착각을 주었다. 또한 가끔 찬장안에 promotion으로 들어온 약들을 공짜로 주어 약을 사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히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내 family doctor는 중국 인 노인이어서 편하나, 너무 기계적으로 환자를 해치운다. 아마 사무실 운영을 위해서는 의료보험에서 주는 정해진 금액을 타야하기에 그리 바빠야 할까? 같은 서비스라도 작은 도시로 들어가면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질 것을 알면서도, 필요에 의해서 대도시를 못떠나고 이런 저하된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에 한심스럽다. 어서 젊은 한인 의사들이 이 리치몬드 힐에도 개업해 우리를 새 환자로 받아 주면 노스욕으로 내려가 포화상태에서 받는 불친절을 받지 않아도 될텐데 말 이다. 다음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그 한인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한국어로 하게 된다. 어머니의 기대가 궁금하다.. 나역시 간 김에 괜찮으면 내 의사를 바꿀 예정이다.
n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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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78
2049
2008-05-14
생애 기쁜 일 하나
오늘 나는 내 삶중 기쁜일 하나를 맞았다. 윈저에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내 집에 5 시간 고속버스로 타고 오시면 항상 마음속에 안되었던 것이 이젠 해결된 것이다. 그간 2003년에 신청해 놓은 노인아파트가 5년이 되어도 연락이 없고, 매년 기록을 갱신하라는 편지만 오더니, 몇일전에 요크 지역 하우징 당국에 전화해보니 요즘은 7년이 걸린다고 한다. 아니 노인네가 80 세 생일을 맞이하셨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데, 참 답답한 일이다. 개인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않는 이곳 실정에 나도 포기한 체 일반 아파트를 찾는 데도 1베드룸에 거의 1천불이 나갈 것 같다. 노인이 정부에서 받는 돈이 1천불이 안되는 데 방값 제하면 무얼 먹고 사시란 말인가. 그래도 우리가 먹여드리고 일반 아파트를 찾으려해도 리치몬드 힐에 외부 사람들이 많이 정착하는 지 찾기가 힘들다. 5년전 신청해 놓은 노인아파트에 가서 지배인에게 하소연 해 보기도 했으나, 자기네 소관이 아니란다. 노인은 노인대로 이제는 혼자 살기 너무 힘들다 하시고..... 그래 오늘 아침 다시 하우징 당국 담당자에게 전화해 다시 하소연을 했더니 역시 관심이 없다. social housing 담당자들이 본연의 임무를 모르고 남의 일처럼 듣는다. 그래서 마지막에 시중 가격 (market rent) 아파트를 담당하는 분에게 전화해 상황을 이야기하고 시중아파트 가격을 낼테니 빈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여기도 long waiting list가 있단다. 어딜가나 long waiting list가 있다니 참 좋은 제도라도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다른 담당자를 걸었으나 다들 메세지 기계로 돌아가 메세지를 남기고 운좋게 그 중 한명과 통화할 수있었다. 전에도 통화한적 있는 노인인데 자상히 예기해줘 인상에 남는 분이다. 그래서 최근 어머니의 근황을 얘기하고 혼자사시기 힘들어 아들옆으로 모시고 싶은데 시중가격아파트도 얻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곳이 연방 정부관할이니 전화해 보라했다. 나는 하우징당국 컴퓨터에 우리 어머니 사정을 간단히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신체가 많이 노쇠하셔서그헣다고 하니까, 그분은 그걸 써놓으면 아파트 주인이 휠체어 요건등 골치아프다고 오히려 안 받을 테니 차라리 "physically isolated from the family", "desparate"라고 써넣겠다고 했다. 지나가면서 한말인데, 기꺼이 내편에서 써주셨다. 나는 "God bless you", "You are so Kind" 등 내개 할 수있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곤 이곳저곳 일반아파트10개정도 전화해도 다들 빈곳이 없고 그중 단 한곳에서 1천불짜리가 있다고 해서 오후에 보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도 어머니 생활비를 보조해야 하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나, 외로우시다는 데 더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조만간 작은 가게를 운영하자고 했다. 그리곤 한시간후, 모르는 전화 번호가 떴다. 받으니, 아까 얘기한 market rent 일반 아파트 담당자 였다. 그래서 아니, 우린 이미 일반아파트에 대해 얘기 나누지 않았느냐했다. 아마 이 아줌마가 내가 메세지 머신에 남긴 것을 듣고 기계적으로 답변 전화를 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억양이 이태리 인 같은 데 잘 들어보니, 좀 이상했다. 그 분은 나와 나눈 일반아파트 내용을 알고 있었고, 지금 전화건 것은 다른 것 때문이라 했다.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무엇이냐고 했더니, 네 어머니 아파트가 나왔다고 했다. 아니, 아침에는 1-2년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않은가. 이 노인 여자가 다른 사람한데 걸것을 착각하고 걸은 거라 생각했다. 치매의 일종이랄까... 믿는둥 마는 둥, 어디 아파트이야고 했더니, 내가 원하는 우리 집에서 가깝고 Yonge 선상에 있으면서 한아름 마트와 가까운 노인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1년전 첨가 시킨 것으로 쏜힐지역 아파트에서 포기하고 어쩔 수없이 리치몬드 힐로 철수한 것이다. 꿈 같은 일이었다. 나는 자꾸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내 어머니 것이 맞느냐. 아침에는 1-2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냐. 왜 갑자기 주느냐 하곤 물으면서 내 질문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주는 사람이 주었는 데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 분은 친절히 오늘 오후에 그 아파트 503호 방을 보고 곧바로 자기에게 전화해달라고 했다. 큰 하자가 없는 한 수락을 할 예정이다. 내 몸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노인을 윈저에서 모셔올 수있는 방이 생긴 것이다. 5년동안 얼마나 하우징 당국에 전화 했던가.. 아들이 무능력해 콘도도 사드리지 못하고... 불과 한시간 만에 하우징 당국에서 내린 결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 지 그 내막은 알수 없으나, 참 내가 운이 좋다. 1000불 내고 살 아파트를 300여불에 사실수있으니, 어머니도 용돈 여유 생기시고, 우리도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다. 일이 안풀려 어제는 애꿎은 아내, 아이들에게 혼자 와인 두잔 먹고 얼굴 붉히고 화풀이만 했다. 꽤 답답했었다. 어머니와 걷는 데 말수도 적었다. 이젠 그렇지 않다. 머리속에는 윈저에서 이사짐 싣고 렌트 트럭을 몰고 올일만 눈에 선하다. 나의 꿈인 어머니의 23년 윈저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일만 남았고 한인 타운이 성장한 대도시 토론토 생활을 만끽하시고 경로 대학도 다니시고, 노인 친구들도 제발 사귀셔서 이젠 외롭다는 말 듣지 말았으면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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