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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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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에이젼트 Jaiki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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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jakim
55120
8049
2013-08-27
“보기나 하세요”
나이가 들어가니 새벽에 자주 깨는데 억지로 자느니 가끔 일찍 일어나 다음 날 할 일을 미리 준비하거나 밀린 일들을 처리하면 하루를 훨씬 더 보람차게 보낼 수가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고 억지로 자려고 하면 요즈음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이 주로 생각나지만 전날 본 드라마나 방송 프로그램이 머릿 속에서 계속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엔 한국식품에서 비디오를 잔뜩 빌려다 밤새들 보곤 했는데 화질도 안 좋고 또한 그것에 중독되면 일하는데 지장이 있기도 하거니와 원래 영화니 연극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저는 거의 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한국 드라마가 사실 상당히 조잡해서 별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자기는 조잡해도 다른 것이 조잡한 건 못 보니까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어느 여학생이 연극 티켓 두 장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 당시 제 여친에게 “혹시 재기씨와 같이 가면 안 되겠냐”고 하자 "얘, Mr. Kim은 영화관만 들어가면 자는데 연극을 좋아하겠니?"해서 못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위의 말에서 우리가 몇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왜 자겠습니까, 아까운 돈내고 들어왔는데. 영화를 그냥 보기만 하면 좋은데(가끔 골프도 보기만이라도 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당연하죠, 지금도 잘 못 알아 듣는데 이민온 지 얼마됐다고)은 꼭 저에게 물어봐요.
 
"자기야, 쟤가 뭐라고 하는거야" "어? 어, 딴 생각하느라고 깜빡 못 들었어" 못 들을리가 있나요, 못 알아들었지. 그런데 같은 핑계도 한두번이지 맨날 딴 생각만 할 수 없으니까 처음에 들어가서 조금 보는 척하다가 난해한 부분이 나오면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다가 그만 잠이 한번 들어버리기 시작하니까 나중엔 무엇을 보든 클라이막스가 시작되려고 하면 잠이 쏟아집니다.
이게 한번 버릇이 되니까 TV를 보더라도 야구중계도 5회 정도 되거나 골프도 마지막 조 10홀부터 제일 재미있는 장면은 꼭 잠이 들어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 외에 다른 여자와 있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이국화가 되는 게 아니고 한국화가 되어 가는 겁니다.
음식도 전엔 양식도 잘 먹고 김치없이도 며칠은 견뎠는데 요즈음은 한식아니면 도저히 먹질 못하겠고, 김치가 없으면 속이 느글거리고, 예전엔 영화배우도 코가 크고 눈이 큰 금발의 서양배우들이 이뻤었는데 요즈음은 그들보다 김태희, 한예슬 등 한국배우들이 훨씬 예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요즈음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장면 장면마다 너무 아름답고 스토리 전개가 매우 흥미진진해 어떨 땐 밖에서 동무들이 보자고 해도 그냥 집에서 TV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곧 잠이 들어 버리긴 하지만.
 
저는 매일 보는 게 아니고 띄엄띄엄 보니까 스토리 전개가 잘 이해가 안될 때 제 안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안사람은 빼놓치 않고 보니까요. "여보, 쟤가 왜 저러는 거야?" "그냥 보기나 해요" "골프치냐? 보기나 하게" 물론 스토리 중간에 몰두해 있는데 귀찮겠죠, 하지만 자기가 날 자는 버릇 들게끔 한 것은 어쩌고.
 
좌우지간 제가 요즈음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불후의 명곡, 각시탈, 세바퀴, 개그콘서트, 무신 등 여럿인데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추적자'와 '빛과 그림자'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한국 분들은 제목을 줄여 부르는 게 유행입니다. 가령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일밤', '우리 결혼했어요"를 '우결', '남자의 자격'을 '남격', '개그 콘서트'를 '개콘' 뭐 이런 식인데 그러면 작년에 한 프로그램이 나와 사람들이 뭐라고 줄여 부를까 제가 무척 긴장한 적이 있습니다.
 
부잣집 사촌지간인 총각 둘과 한 부하 여직원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그린 '보스를 지켜라'. 다행히 그 프로가 인기가 없이 끝나는 바람에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만약 줄여 부른다면 뭐가 됐을까요?
 
얼마 전 동무와 저녁 때 먹을 건 없고 소주 생각도 나서 노스욕 식당에 들렸습니다. 아가씨가 주문받으러 왔습니다. "뭐 드실래요?" "소주 한 병하고 오라 콤보로 주세요" 아가씨와 동무가 저를 쳐다봅니다, '뭐라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아가씨가 제 동무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물어봅니다. "오라가 뭐예요?" "오라? 오징어 뎀푸라지" 두 사람이 박장대소하며 웃습니다. 이렇게 줄여서 부르면 안 되나요? 꼭 앞 대가리로만 줄일 필요는 없잖아요.
 
요즈음 이곳에서도 한국 대통령 선거로 떠들썩합니다. 투표하러 가면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내가 뽑아야 할 사람 옆에 X표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X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X표는 나쁜 뜻으로 사용하는 건데. 아하, 알았습니다. 어차피 정치가는 뽑히고 나면 나쁜 사람이 된다…이런 뜻 아닐까요? 아니면 어차피 처음부터 내가 싫은 사람을 뽑는 건지....
 
정치하시는 분들 다음부터는 O표 받도록 분발합시다.

jakim
jakim
55118
8049
2013-08-27
힘 쎈 지렁이
1979년도 여름에 친구 장보고와 또 다른 친구 셋이서 Cold Water(콜드 워터)로 낚시를 떠났습니다. 캐나다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고, 이제 조금 캐나다를 알 것 같으니 '넓은 캐나다의 자연을 즐겨 보자.' 하며 원대한 포부하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그래 호수의 천국 온타리오에서 낚시가 최고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들이 재워 주신 갈비와 음식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싣고서, Hwy 400을 타고 올라가다 Hwy 69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콜드 워터에 내려 보트를 빌려 타고 조그마한 바위섬에 도착해 자리를 깔았습니다.
 
온 섬에 우리 셋만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에 '콜드 워터'라는 피서지, 정말 기막힌 선택 아닌가요? 저와 장보고는 그해 여름에 지렁이 잡이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온 섬 하나가 그 순간 내 것이니 (너는 내 것이라)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리를 펴고 우선 새로 산 낚시대를 던지기 위해 지렁이를 낚시바늘에 끼워야 하는데…. 요것들이 꿈틀꿈틀 움직여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야! 장보고, 지렁이 좀 끼워주라."
 
"뭐, 니꺼 니가 끼워라."
 
"움직이니까 못 만지겠다."
 
"너 어제까지 지렁이 잡았는데 왜 그래?"
 
"그거랑 이거랑 달라."
 
"에이 이리 내, 바보같이…."
 
"야! 이왕 끼워주는 거 큰 걸로 끼워주라."
 
우리 착한 장보고 지렁이를 끼워 줍니다. 저쪽에서 불을 지피고 있던 다른 친구가 식사가 거의 됐다고 알려 줍니다. 낚시대를 받침대 두 대 위에 올려 놓고 저쪽으로 가서 고기 굽고 맥주캔 (중학생 시절 선생님들 소풍 갈 때 미제 맥주캔 따서 거품만 먹던 생각이 나네요. 아까와서 그랬겠죠.) 따고 식사를 합니다. 2~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갈비를 먹으려면 큰 맘 먹고 일 년에 한 두어 번 먹었는데, 이거 온전히 완판 갈비가 우리 것이니…. 또한 맥주도 그 당시엔 24개 짜리가 약 $11 정도 했으니 한 캔에 약 50센트. 이거야 말로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며 낄낄거리고 있다가 낚시대 있는 데를 쳐다 보니 제 낚시대가 없어진 것입니다. 장보고의 낚시대는 그대로 있는데 내 낚시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저쪽에서 제 낚시대가 물 밑으로 가라 앉고 있었습니다.
 
"야, 장보고 지렁이가 낚싯대를 끌고 갔다. 오늘 산 새 낚시대를…."
 
"뭐, 지렁이가?"
 
"그래 아까 네가 그 중 가장 큰 지렁이로 끼워 줬잖아. 힘이 엄청 쎈 지렁이인가 봐."
 
"물고기가 끌고 갔겠지, 지렁이가 어떻게 낚시대를 끌고 가니?"
 
"무슨 소리야, 물고기란 본 적도 없고 지렁이가 끼워진 건 우리 모두 봤잖아, 그러니까 지렁이가 끌고 간 거지…."
 
 
사실 저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이고, 바다 고기로는 회를 떠서 먹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선 워낙 고기가 많으니까 먹지 않고 잡았다가 놓아 주면서 마치 은혜를 베푸는 듯 하는데 (꼭 놓아 줄 때는 두 손으로 경건하게), 왜 그럴까요? 그리고 그런 걸 뭐 'sports fishing'이라나 하던가요? 심심풀이로 잡았다가 자비심이 발생해서 풀어 준다나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고기를 잡아서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먹지도 않을 것을 자기들의 쾌락을 위해서 잡았다가 놓아 줬다가 하는 건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 인간보다 한 단계 고등한 생명체가 있다 합시다. 그들이 우리 인간을 덫으로 잡았다가, 자기들 감옥에 가두었다가, 한참 후에 '자 그래 불쌍한 인간들아, 이제 너희 가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너희 가는 발걸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를 원한다.' 하면서 우리를 놓아 준다면 정말 우리 기분이 어떨까요? 게다가 덫에 걸릴 때 다친 발목뼈가 부러진 것 같다면? 모든 물고기도 낚시바늘로 입 안이 다 찢어지고 비늘이 많이 상합니다.
 
 
33년 전 여름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같이 했던 세월이 재미있었고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때 젊었던 우리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노인이 되었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의 셋 모두 얼마 전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 하며 제대로 된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저 애들 키우고 열심히 사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서서히 정리해 가며 나머지 인생을 알차게 꾸며야 하겠습니다. 축구는 후반전이, 야구는 9회말, 골프는 18홀이 가장 중요한 중요한 순간이 아닌가요?
 
건강한 여름, 추억이 있는 여름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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