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시와 오솔길

bh2000
194956DE-1B43-412F-803C-6D83867AFFD2
56502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5
,
전체: 20,598
정봉희
(시인)
lilyhjjung@daum.net

메뉴 열기
bh2000
bh2000
72367
9207
2019-01-14
애상(哀傷)

 
애상(哀傷)   
 

 

 

멀리 있어도 함께 밥을 먹는다
수저와 젓가락 가지런히 놓고
뭇국에  가라앉은 고기 한덩어리 건져 올리다
해 떨어지는 기별이 오면  
먼지 옷을 터는 휘청이는 팔을 위해
수북하게  밥상을 차린다

 

혼자 밥을 먹으라는 말 
집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니
뭇국 위에 떠 있는 기름을 건져내며
희미한 물빛으로 돌아 앉아
따뜻한 국밥으로 마음을 지우고 나면
누군가 수저 소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한 밤을 돌아나온 적 있으나
어둠에게 밀려 밥상을 치워 본 적 없다
서늘한 며칠을  보냈지만 
사랑은 어디서든 노래가 되어
빈자리  적막을 감당하게 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2155
9207
2018-12-20
날씨 단상

 
날씨 단상 


 

 

크리스마스를 한 주 남겨둔 날씨치곤 대박이다

 

포근한 햇살 
성격좋은 바람까지 불어주니 얼쑤 좋다 
덤으로 얻은  할인매장 쿠폰같은 날  
나목들은 예기치 않은 햇살에 벗은 몸을 감추느라 왁자하고
겨울 집으로 돌아가던 벌레들 긴 행렬은 느려지고 있다

 

이런날 겨울 파카를 벗어 던지고  달리고 싶어
초록의 잎사귀로 잠 못 이룬 불면을 옆에 끼고 
내 생에 얼마나 남았을까
저리 푸르고 싱싱한 날들
아직 살아있는 날들을  위해
달린다

 

곧  닥쳐올 이순
의미 없는 일에 동기를 부여한 후회와 자책감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은 하나씩 늘었다
흐리고 구름낀 날씨로 정의한다면
지난날 기억은  스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음습한 창고 벽 푸른 곰팡이로 피어나던 날들, 그러나
낯선 땅 질긴 생이었으므로  

 

 12월 햇살에는 아직 뿌연 생이  매달려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2069
9207
2018-12-15
마법에 걸린 벽시계

 
마법에 걸린 벽시계 
 

 

 

 

벽시계가 멈췄다
잃어버린 기억 저편 
시계바늘이 말뚝처럼 서 있다 
너싱홈 뒤뜰 나무벤치 위에 녹다만 잔설들  
시간을 가리키는  초침이 기억을 내려놓을 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알전구의 불빛이 흐려진다

 

기억을 저당잡힌 치매 너싱홈 벽시계 바늘은 옆으로 누웠다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움푹한 시선

 

날이 저물자 입상처럼 그림자 길어진다

 

네모난 벽에 한자리 차지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싶었지만 
텅 비어가는 하얀 기억은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지우개로 지워버린  세포들은  재생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머물다 갔던 햇살과 바람
고통과 불행까지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마법에 걸린 시계 위에  푸른 곰팡이가 피어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980
9207
2018-12-12
중년 증후군

 
중년 증후군  
 

 

 

간 치지 않은
뭇국처럼 싱겁다 
이 맛 저 맛도 아니다


 
엷은 어둠 속 
허허로운 결핍 애써 감추며
무거운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당신은 밥을 먹고 나는
돌을 먹는 저녁 만찬
둘 만의 단출한 저녁인데 
서로 입을 봉한 채
데면데면  낯설다

 

내가 당신을 낯설어 하듯
당신도 엉거주춤 낯설어서 
아무도 눈치 못 채는 위험한 음모 
한번쯤 꿈꾸었을 것이다


 
음모에 가담을 신청했던 건
순전히 간 치지 않은 
뭇국 때문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909
9207
2018-12-03
바람의 뒤편

 
바람의 뒤편    
 

 

 

 

한밤중 깨어 바람소리 듣는다
바람은 밤에도 자지 않고 
어둔 길 위를 끊임없이 돌아 다니다
늦은 밤 이집 저집 창을 흔들어댄다

 

어둠의 등을 밀고 가는 숨가뿐 소리
불안을 식별하는 것엔 소리들이 더 치명적인걸까
비탈길 앞질러 가는 바람 소리 등에 업혀
아, 숨막히게 떠밀려가는 삶
그 소리의 뒤편에는 벽에 기댄 채 
어깨를 들썩이는 숱한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지던 인사 
막다른 골목에서 울부짖던 비명 
문을 열고 나서면
붉은 눈시울이 저녁 별빛에 옷소매를 묻고
점점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불끄지 못하는 하얀 방 
근래에 부쩍 많아진 듯 
눈발을 타고 떠도는 축축한 소식 들으며
처마밑에 쭈그리고 앉아  
그 아픔을 아프게  듣는 겨울밤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벽을 껴안은 채 
바람의 뒤편을 지켜보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819
9207
2018-11-25
거목 눕다-고 이상묵 시인께 드리는 시

 
거목 눕다 
- 고 이상묵 시인께 드리는 시 
 

 

 

어젯밤 거목이 쓰러졌다
밤새 내린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뿌리가  뽑힌 채 누워 있다

 

두 팔로 안고 
감은 눈, 다문 입을 애써 벌려보지만 
나무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78년 지켜온 숲에는 햇빛과 바람이 
오랜 단골처럼 수시로 넘나들어 외롭지 않겠지만
눈 쌓인 나목에 앉았다 가는 새 한마리가 당신인 줄 알고
푸드득 푸드득 깃 치는 숲속 시집 한 권 들고    
눈발을 달리는 슬픈 서정으로         
11월에 떠난 나무를 그리워할 것이다 

 

쓰러진 나무 한 그루 
마른 잎사귀 괴고 더러는 몇 흘려두고 
빈손으로 가는 오래 쓸쓸한 불임의 시간

 

그 숲에는 울음이  노래처럼 지나가고
가늘고 야윈 잔뿌리가 흙을 더듬는 동안
나무는 구름과 바람의 높이에 닿고자 
먼 별에게 이미 당도한 걸 알아차린다

 

조금만 견디면 불현듯 그리워질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736
9207
2018-11-18
낙엽 득도(得道)

 
낙엽 득도(得道)
 

 

 

파르르 몸을 떠는 목숨 하나 
나무 꼭대기에서 겁에 질린 누런 얼굴로
밑을 내려다 보고 있는 저 눈빛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감기약을 먹고 누워있을 때에도
마른잎들은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커튼은 반쯤 열려 있었고 
달랑, 떨어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네게
고슬고슬하게 지은 고봉밥 한 그릇 먹이고   
가볍고 따순 페딩 잠바 한 벌 건네면서  
언제 떠나와 어떻게 살았느냐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묻고 싶은데 

 

 태양과 달을 한 번도 거역한 적  없는
한없이 착해지고픈 단골  배역을 위해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져야 하는  
연기파 조연 배우의  붉은 거사가  늘 궁금했다

 

바스락 바스락   
내가 잠든 사이 밖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594
9207
2018-11-14
울타리의 공법

 
울타리의 공법 
 

 

 

 

허물어져가는 담장 아래 
등을 맞댄 어깨들이 지탱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바람의 저항 앞에 각을 세우고 있다 

 

오른손을 등에 얹고
왼손을 어깨 위에 올리기만 해도 울타리의 
기본 자세는 갖추어진 셈인데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이골이 난 등뼈들은
어깨의 온기가 식어갈 즈음 
울타리의 표정을 금방 알아차리고 
우울한 팔의 근육을 풀어 
잠시 바람의 시간을 배회해 보는 것이다 

 

바람의 틈새로 목을 젖히고
깍지 낀 어깨로 등을 받쳐주는 자세는 울타리의 공법 
등을 댄 뼈들의 식지 않은 온기만으로 
어깨와 휘어진 등의 거리는 좁혀지고 
저 헐한  어깨들의 아름다운 협업이 

 

겨울 들판을 지킬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436
9207
2018-11-06
붉은 담쟁이 담을 넘는 저녁

 
붉은 담쟁이 담을 넘는 저녁

 

 

 

야가 왜 이리 늦다냐 
채근하시는 아버지 안달에 발 벗은 어머니
담장 너머로 깨금발하는 어스름 저녁
밭일 마친 저녁상 위로 뭇국 식어가고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 눈 달고 계시는데 
열살 계집  주전자에 목 축이며 재 넘어 오는 길 
걸음이 비틀거릴 때마다 사발 목 길어진다

 

붉은 담쟁이 넝쿨  담을 넘는 가을날
주막집은 5리쯤 떨어진 사거리 골목길에 있다
누구 아부지는 단골잉께 한 사발 더 간다 
주모의 싸구려 립스틱이 주전자의 몸을 핥았다
계집의 벌건 이마를 바람이 스쳐 지나고
굴뚝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주전자의 홀쭉한 뱃살을 눈치 챈 당신이 웃는다  
그런 당신은 말없이 막걸리잔을 채운다
주름진 손이 염소의 젖처럼 처진  
아버지의 세월을  기억 저편    
불혹을 넘긴 계집은 훌쩍이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bh2000
71515
9207
2018-11-03
이맘쯤 새벽 퇴근

 
이맘쯤 새벽 퇴근 
 

 

 

 

새벽에 퇴근을 한다.
불 켜진 아이방에 책장 넘기는 소리
철컥, 대문 여는 소리에 내려오는 발소리 
늦은 귀가를 마중해주는 굵은 손이 축축해져온다

 

발꿈치 세운 발걸음 건너방 불빛을 비켜간다.
계단  바닥에 머물던 어둠들 책 읽는 소리에 적막해진다.
새벽 이슬이 풀잎에 몸을 떨고 있는 시간
 아이들 손 씻는 물소리를  엿듣는다
빛에 실종된 푸석한 얼굴이 거울앞에 돌아와 세안을 하는 시간   
 그럴수록 발꿈치 세운 자는 책장의 눈치를 살핀다

 

불빛 새어 나오는 창 너머 
두개의 별이 지상의 어둠을 밝힌다 
여전히 아이들 책상과 논다
이맘쯤 새벽 퇴근은 희망으로 도배되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