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그 정체성의 차이
양경춘
이민오기전 까지만 해도 캐나다는 미국위에 붙어있는 위성국가 정도쯤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막상 캐나다에 와 살면서도 한동안은 미국과 별 차이를 못느꼈었다. CNN은 물론 미국의 주요 TV프로그램들이 캐나다에서 그대로 같은 시간에 방영되고 있고 인기있는 스포츠는 물론 미국가수들의 대중가요나 할리우드 영화가 가감없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20여년 가까이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면서 미국방문을 자주 해 보면서도 양국의 정체성 차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과연 미국과 차별화되는 캐나다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토론토에서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을 여행할 때서야 비로소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캐나다의 정체성이 미국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은 실감하곤 했다.
역사적으로 캐나다는 프랑스와 영국의 핏줄이 섞인 반면, 미국은 영국과 스페인의 피가 섞인 문화적 차이점이 있다. 또한 북 아메리카를 남북으로 거의 양분하고 있는 양국의 정치제도, 지형, 기후, 인구분포, 이민정책, 국민소득, 보유자원 등 다른 점이 있으므로 정체성도 분명히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대미교역 의존도가 높고 북미방공망 등 국방도 미국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외교정책 등 자국의 정책에 거슬리는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캐나다 정체성의 일부일 것이다.
한 국가의 정체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된 공룡처럼 강대했던 로마제국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이민와 발 딛고 세금내고 살아가는, 세계에서 두번 째로 넓은 나라 ‘캐나다’와 이웃의 초강대국 ‘미국’의 정체성 차이에 대해 정리해 본다.
대박을 터트린 “아이 엠 캐네디언” 광고
저명한 사학자 프랭크 언더힐은 “캐네디언은 최초의 ‘반미주의자’이자 가장 이상적 반미주의자”라고 지적한 바 있다. 1968년 당시의 캐나다의 반미감정을 잘 표현해준 말이다.
비록 캐네디언들은 대부분 여건상 미국 문화를 향유하고 있을지라도 자신들은 그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마치 미국인이 겉과 속 모두 노랗다면 캐네디언은 겉보기엔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처럼……
2001년에 ‘골드 퀼’ 광고대상을 수상하고 대박을 터트린 ‘몰슨 캐네디언’사의 TV광고 ‘아이 엠 캐네디언(I am Canadian)’은 대다수의 캐나다 한인들을 포함한 소수민족 이민자들에게도 낯익은 동영상이다.
‘I am Canadian’은 3천3백만 캐네디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일종의 국가정체성을 강조한 공익광고로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는 미국과 다른 캐나다인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목재상도 모피상도 아닌 캐나다인이다. 이글루에서 살지도 않고 고래를 먹지도 않고 개 썰매도 끌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세계인들의 캐네디언들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이해’에 대해 정곡을 찌르며 도전한다. “캐나다에는 대통령이 아닌 수상이 있고 미국어가 아닌 영어와 프랑스어를 쓴다”며 캐나다가 미국과 다르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는)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평화를 수호한다”는 내용이 미국과 차별성을 부각시켜 수많은 캐네디언들을 환호케 했다. 특히 캐나다 국민들의 애국심을 부추긴 것은 이 광고의 마지막 부분이다.
“캐나다는 세계에서(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이고, 제1의 아이스하키 국가이며, 북미 대륙 중 가장 좋은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이다.
내 이름은 ‘조(Joe)’이며, 나는 캐네디언이다”
수많은 캐네디언들은 이 광고에 열광했으며 전문가들도 “역사상 캐나다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광고”라고 극찬했다.
미국 ‘스타벅스’를 물리 친 캐나다의 ‘팀홀튼’
군용기에 실려 캐나다군에 긴급공수되고 있는 팀홀튼 커피 분점시설
몇 년 전 캐나다군 200여명이 소말리아에 파견됐을 때 현지병사들이 ‘팀홀튼’커피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강력히 요구한 적이 있다.
결국 현지에 캐나다 팀홀튼 본사에서 분점을 설치해 캐나다군의 사기를 진작시켰던 일화가 있을 정도로 캐나다에선 팀홀튼이 국민커피로 자리잡고 있다. 캐나다의 한 언론기관에서 ‘어떤 커피를 즐겨 마시는가?’ 라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캐나다 국민의 80% 이상이 미국계의 스타벅스가 아닌 ‘Tim Hortons!’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Tim Hortons! Of course! Hey, we're Canadians”
캐네디언이기에 팀홀튼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캐네디언들에게서 자국의 제품을 사용하고자 하는 애국심의 발로를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쟁쟁한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를 물리치고 팀홀튼은 국민 커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캐나다 하키선수 이름을 딴 ‘팀홀튼’에는 캐나다 국민의 사랑과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팀홀튼 광고에서는 ‘True Canadian, It's Tim Hortons’ 등 민족적 자긍심을 연상시키는 문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캐나다 문화를 미국 문화에 흡수시켜 인식하는 세계적 편견 때문일까? 캐나다 국민들은 자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팀홀튼의 마케팅에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용광로와 모자이크
미국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민자들을 모아 용광로에 넣고 다시 녹여내 하나의 ‘미국 정신’으로 만드는 ‘용광로’문화라면, 캐나다는 영어와 불어 이중언어를 쓰며 이민자들의 복합문화를 존중하는 ‘모자이크’문화로 표현된다. 한편 많은 미국인들을 만나보면 캐네디언들을 시골사람들로 생각하며 캐나다를 자기네 변방의 한 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캐네디언들은 비록 미국과 유사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미국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자신들만의 그 ‘무엇’을 갖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다수의 캐네디언들은 캐나다가 미국보다 인종차별이 덜하고, 안전하고, 자연환경에 애착을 갖고 잘 보전하고 있으며 삶의 질이 더 높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앵글로 색슨계의 뿌리를 공유하며 건국 역사가 2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캐-미 양국의 정체성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자치국가를 이루어 냈다. 이로 인해 캐네디언들은 스스로 미국인과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어서 캐네디언으로서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짧은 역사를 가진 캐나다는 고유 문화가 아닌 영국계와 프랑스계 등 복합 다중의 문화 기반 위에서 형성됐고 초강대국이자 인접 국가인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새뮤얼 헌팅톤에 따르면 한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인종, 민족, 언어와 종교를 포함한 문화 그리고 이념 등 네가지를 들고 있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정착한 미국의 경우 인종과 민족의 개념은 이제 의미가 퇴색해 더 이상 정체성 요소로서 변수가 될 수 없다.
문화의 변수도 퇴색해 가고 소련의 경우에서 보듯이 원천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이념만으로 묶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같은 앵글로 색슨계의 뿌리로 비슷한 시기에 북미주에 이웃으로 개국한 미국과 캐나다, 양국의 정체성 구성요소는 무엇이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애증이 교차하는 이웃 - 갈등과 화해의 역사
캐나다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비방위로 접하고 있는 이웃 국가로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역사적, 문화적 뿌리와 배경이 비슷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캐네디언들은 “당신은 미국 사람과 같다”는 말을 싫어하며 자신들의 문화적 독창성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영국을 뿌리로 둔 두나라는 각각 왕당파와 독립파의 갈등으로 인하여 북미주에서 미국과 캐나다로 분리되었다. 또한 캐나다는 건국은 물론 국가 운영과정에서 영국 세력과 프랑스 세력 간의 충돌로 미국보다 훨씬 복잡한 국가를 구성하게 되었다. 과거 일부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은 북미 전역이 미국 통치하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었다. 이들은 “캐나다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캐나다가 영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으로서 바로 이웃에 또 하나의 영국 식민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캐나다인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거만함이 비위에 거슬렸다.
미국과 캐나다는 건국 초기에 소위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1812년 전쟁’을 치러 상대국 수도인 오타와와 워싱톤을 각각 점거해 크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캐나다-영국-원주민을 주축으로 한 영국령 캐나다 연합군이 승승장구하던 신생 강대국 미국의 수도 워싱톤을 침공하여 대통령궁을 불태워 버린, 미국으로서는 사상 최대의 치욕의 역사도 있다.
불타는 미국대통령궁 1812(그림)
이 후 미국 대통령궁을 재건하여 하얗게 페인트를 칠해 지금까지 ‘백악관(White House)’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는 캐나다와 선린외교로 절친한 친구관계가 됐지만 미국은 ‘1812년 전쟁’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1812년 전쟁’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캐나다와 달리 미국측에서는 침묵하고 있어 ‘잊혀진 전쟁’이라 불릴 정도이다.
한편 1차대전 중인 1917년 캐나다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때 미국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토머스 화이트 캐나다 재무장관은 미국의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우리 생애에선 캐나다와 미국은 항상 좋은 이웃이었다. 물론 때때로 말다툼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서로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적 자유에 대한 시각,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양국 국민들의 생각은 비슷하며, 세계의 다른 어느 국민들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함께 ‘북미’를 구성하는 국가로서 서로 돕고 살자는 화이트의 메시지를 받은 미국은 서슴치 않고 재정지원을 전달했었다.
1917년의 이같은 진실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는 있다. 역사학자 그래냇스틴은 ‘1812년 전쟁 이후 양국이 100년 이상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신화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최근 위키리크스의 공개 문서를 보면 이웃 사촌을 넘어 형제같이 오누이같이 친밀한 관계로 보이던 양국관계도 볼협화음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미 국무부에 보낸 캐나다 주재 미국 대사관의 기밀 전문에 따르면 캐나다가 갈수록 미국을 불신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는 상호 교역 규모가 연간 5천억 달러를 넘고,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비방위로 공유하고 있는 두 나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함께 군대를 보내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혈맹의 나라로서는 놀라운 현상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9년째 집권하고 있는 캐나다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수상은 올해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기 취임을 축하하는 공식 성명서에서 “ … 우리 두 나라 사이의 오랜 협력 관계는 많은 공통점에 의해 정의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최대의 무역 관계와 세계에서 가장 긴 비방위 국경 및 자유, 인권과 법에 상호 헌신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관계의 성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 라고 현재 양국의 밀월관계를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개별 현안에서는 캐나다 원목 수출, 국경 출입, 오일수송용 파이프라인 건설 등 여러 문제로 부딪히고 있으며 현재도 끊임없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스티븐 하퍼 수상이 팀 홀튼 커피를 마시고 있다
역대 캐나다 정부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내면적으로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국민 정서를 고려,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의 정치가들은 미국과 항상 친한 관계를, 그러나 너무 친하지 않은 관계처럼 보여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캐-미 두 나라는 한ㆍ일 관계나 한ㆍ미 관계와도 비슷하게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미국과 협력하며 겨루는 이율 배반적인 캐나다?
캐나다는 제국적인 통치 지배에 저항하며 싸워서 쟁취한 미국의 독립과 달리 저항하지 않고 타협하는 중도노선을 취한 특이한 역사를 갖고 있다. 캐나다의 국가적 자아개념은 1세기에 가까운 영국 식민지 시기를 거쳐 1867년 영국으로부터 평화적으로 자치정부를 획득한 이후부터 정립되어 왔다.
캐나다의 정체성은 사실상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으며 1965년 이전까지의 캐나다 정책은 미국과 협력하면서 동시에 겨루는 이율 배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확대해 나가자 그 때까지의 캐나다의 상대적 열등감은 도덕적인 정당성을 바탕으로 우월감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더그 비어즐리는 “캐네디언들은 뚜렷한 국가 정체성을 원하지 않는다. 대부분 돈과 평범함을 숭상하는 이 냉담한 나라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열망마저도 그저 일시적인 국면인 듯 한 세대에 한 번 몰려왔다가 바위투성이 해변을 쓸고 나가는 따스한 파도인 듯 여길 뿐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마가릿 애트우드는 ‘캐네디언,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캐네디언 한 사람이 느끼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캐나다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미국의 정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캐나다는 미국과 다른 그 무엇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오 캐나다’와 ‘성조기여 영원하라’
캐나다와 미국의 애국심을 비교할 때 두 나라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국가(國歌), ‘오 캐나다’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자주 거론된다.
성조기여 영원하라 The Star Spangled Banner
동이 트는 오늘 새벽에도
어젯밤 석양 빛 속에도 가슴깊이 환호하고 있던 깃발을 자랑스럽게 본다.
그 누구의 광활한 띠이며 빛나는 별들인가.
우리를 감싸는 성조기는 치열한 전투중 우리가 사수한 성벽 위에서도 의연히 나부끼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며 작렬하는 포화와 치열한 폭탄 속에서도 우리의 성조기가 우뚝 서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오! 자유의 땅,
용감한 백성의 땅 위에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다.
Oh,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u the perilous fight,
O'er the ramparts
we watched were so gallantly streaming?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Oh, say does that star-spangled banner yet wave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오 캐나다 O Canada
오 캐나다!
나의 고향이자 선조들의 땅.
왕들의 명령속에 진정한 애국심.
타오르는 가슴으로 조국의 비상을 보노라,
강하고 자유로운 진정한 북녘의 나라여.
저 광활하고 넓은 오, 캐나다!
우리는 그대를 지키러 일어서리!
신께서 영광스럽고 자유로운 우리의 조국을
지켜 주소서.
오 캐나다!
우리는 그대를 지키려 일어서리!
오 캐나다!
우리는 그대를 위해 지키려 일어서리!
O Canada!
Our home and native land!
True patriot love in all thy sons command.
With glowing hearts we see thee rise,
The True North strong and free!
From far and wide,
O Canada, we stand on guard for thee.
God keep our land glorious and free!
O Canada, we stand on guard for thee.
O Canada, we stand on guard for thee.
내셔널하키리그(NHL) 경기가 열릴 때 관중석을 보라. 미국응원석은 흥분에 들떠 미국 국가(The Star Spangled Banner)를 부른다. 연주소리와 국가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다. 관중들의 우렁찬 합창과 열기가 경기장을 압도한다. 반면 캐나다 응원석에서는 ‘오 캐나다’를 부르는 가수의 노래소리와 연주소리만 요란하게 들리고 관중들은 마지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립싱크하듯 입시늉만 내거나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것이 진정 두 나라의 애국심과 국민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현장일까?
어떤 사람들은 다민족국가인 모자이크식 캐네디언들보다 용광로로 녹여 동화 정책을 펴는 미국 국민들이 더 애국적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미국 국가는 곡 자체가 열정적이고 고음이 많은 반면에 캐나다 국가는 기도하는 듯한 서정적 분위기의 노래라서 그렇다고 반론을 편다. 사실 미국국가가 템포가 빠르고 고음인 점도 있겠지만 캐네디언들은 미국인에 비해 보수적이며 소극적인 기질 차이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캐나다의 국가인 ‘오 캐나다(O Canada)’는 1880년 몬트리올 근교의 베르세즈 출신 피아니스트인 칼릭사 라발리가 퀘벡을 방문했을 때 당시 캐나다의 총독이었던 론 경과 부인 루이 공주에게 의뢰받아 작곡한 곡이다. 프랑스어로 된 원래의 가사는 훗날 퀘벡 주 법원장이 된 아돌프 바질 루티에르 경이 쓴 시이다. 영어 가사는 원래의 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1908년 몬트리올의 법관이자 기록관이던 로버트 스탠리 위어 경이 새로 쓴 것이다.
한편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 Spangled Banner)’에는 자유와 용기에 대한 예찬이 잘 나타나 있으며 미국인들의 개척자적 기질을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용감하게 북미주로 건너 온 미국인들의 건국 역사는 그들의 문화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가깝고도 먼 우방, 같지만 다르게 !
국가 정체성이란 ‘한 개인이 속한 국가와 민족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 및 신념체계’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특정 국가에 소속감을 느끼고 국민의 일원으로서 유대감을 자각하고 있다면 국가 정체성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종교사가 에르네스트 르낭은 ‘민족’이 성립하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소속 의지’가 필수조건이라고 했다. 인종, 언어, 역사, 종교 등 객관적 요소보다는 ‘함께 살려는 주관적 의지’를 더 중시한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퓌스텔 드 쿨랑주가 “조국, 그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관점이다. 이런 국가 정체성은 현실 속에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로 나타난다.
미국과 캐나다는 다민족이 모여 형성된 국가들이다. 따라서 한국처럼 혈통으로 구분할 수는 없고 공통의 국가적 가치관을 공유하면 국민으로 인정한다.
미국의 경우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을 위한 욕구, 행복을 추구하는 믿음 등의 가치가 정체성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는 영어-프랑스어 두개의 공용어 정책, 정부의 사회보장제도, 복합문화주의, 아이스 하키, 평화유지전통, 인도주의 등의 가치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한 국가로서 세계 속에서 영속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어떤 정체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적인 것이 있다면 캐나다적인 것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며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국’, ‘아메리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보이는 ‘캐나다’, ‘캐네디언’의 정체성은 ‘용광로’와 ‘모자이크’의 차이이기도 하다. 한 해 25만여 명 씩 캐나다로 줄을 이어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이 계속 자기네 문화만 고집한다면 캐나다의 기존 정체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민족간에 타협하고 다름을 서로 인정해 주고 화합을 바탕으로 상호 존중해 나가면서 ‘아메리칸’과는 또 다른 진정한 ‘캐네디언’만의 고유한 다문화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캐나다’의 장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이민자들의 원래 문화를 용광로에서 펄펄 끓여 ‘아메리칸’ 무쇠로 개조시키는 미국식 실용주의가 강력하기는 하다. 그러나 다민족들이 모여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며 어울려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어 내는 ‘캐네디언’식 예술작품도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
*위 글은 토론토 영락교회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발행하는 "영락"지 2013 가을호에 동시에 게제되었음.
*사진출처: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