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제 5 장 : 결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현대과학의 공통점은 그 모두가,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연합설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일즉다, 다즉일이라는 우주와의 총체적 관계에서 정의하고, 기독교 역시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하나님은 농부”라는 총체성에 기초하고, 과학에서도 사람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사람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발견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은 인간의 지각과 판단이 우주와 공유하게 되어 있는 인간의 본심 또는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본질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理事)무애법계, 사사(事事)무애법계로 나누어 ; 사(事)와 이(理)가 서로 어떻게 서로 의존하여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불교의 화엄사법계는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과학 간에 발견되는 사람과 우주, 사람과 창조주 하나님의 관계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事)법계란 사람의 몸과 감각기관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또한 반응할 수 있는 현상계다. 사람은 보통 사법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법계에서 경험되고, 느껴지고, 생각되는 대로 살아간다.
이(理)법계는 비록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작은 현상이라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만한 어떤 조건과 법칙, 즉 이(理) 안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물리적 화학적 현상 이면에서 작용하는 원리를 찾아내려는 것도 이것이고, 심리학자들이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변화 이면 작용하는 법칙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하는 것도 이 이(理)다.
이(理)는 인간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우주자연의 법칙이다. 불교에서는 이 법칙을 연기의 이법이라 부르고, 과학에서는 연합이라 부른다. 이사무애법계는 이와 사가 서로 분리된 형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은 어떤 장애도 없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창조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또한 멸하기도 하는 진실한 모습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설한다.
예를 들어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 이면에는 만유인력이라는 이(理)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줌과 같다. 이사무애법계가 사(事)의 본질이 곧 이(理)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사사무애법계는 이사무애법계의 다른 측면으로서 사(事)와 사(事)가 서로 인과관계에 있게 됨을 말한다. 바람이 일어나면 구름이 밀려가게 되는 것과 같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나비효과” 역시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지 않고 지은 바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엄사법계에 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이(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이(理)에 따라 살게 되어있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란 말씀 역시 사람의 본질이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하여 살게 되어있음을 지적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우린 예수님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모든 행적의 이면에서 화엄사법계를 본다. 이(理)와 사(事)의 관계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숨으로 숨을 쉰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한다.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까지도 우주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통제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이(理)로서의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라고 하시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사람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포도나무 가지가 봄에 푸른 잎을 내고 여름 동안 번성하여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포도나무 동치에 붙어 있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야 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포도나무 둥치는 본체로서의 이(理)고 포도나무 가지는 지체로서의 사(事)다.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은 각각 머리나 몸통이나 손이나 발이나 눈이나 코로 서로 다른 모양과 책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한 차이를 선악이나 미추나 귀천으로 나눌 수 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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