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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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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하버드대 보건학 석사, 컬럼비아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졸업(치의학 박사), MIT 공학석사, UC 버클리대학교 학사. 현재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아이비치과’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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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코로나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코로나의 여파로 이미 세상이 여러 방면으로 달라졌다는 것은 우리 모두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는 무엇일까요?

 

 우선 Power-law(멱급수 법칙)가 진행되면서 각 분야의 마켓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습니다. 즉, 각 마켓에서 대부분의 경쟁자가 서서히 사라지고, 극소수의 살아남은 자들만이 떠나간 이들의 자리까지 잠식해 더욱더 덩치를 불리면서 마켓의 대부분을 차지해가고 있습니다.

 

 이 Power-law Distribution(멱급수 법칙 분포)은, 마켓의 한정된 크기에 비해 경쟁자가 너무 많으면 생기는 사회경제적 현상입니다. 결국 거의 다 퇴장하고 극소수만 살아남게 되지만, 그 살아남은 극소수는 극단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현재 몇몇 세계적인 공룡기업들이 마켓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Tech 마켓의 분포도 바로 Power-law Distribution에 기인합니다.

 

 제가 몸담은 치과 마켓만 해도, 미국의 경우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지원을 받는 대형 체인들이  서서히 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며 개인 치과가 그들의 지붕 밖에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캐나다도 결국은 비슷해지리라 예측합니다.

 

 우리 병원만 해도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서 얼핏 보면 매우 달콤할 수도 있는 인수 제안을 몇 차례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부 다 거절하긴 했지만, 이런 제안에 응해 그들의 우산 아래 들어가게 되는 개인병원이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코로나 이후의 사회로 가면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사회경제적 변화는 바로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 다소 염려스럽습니다. 어느 정도 균형잡힌 부의 배분이 있어야 건강한 복지 사회가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습니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자금력이 있던 사람들은 최적의 투자를 통해 자산을 더욱더 불릴 기회를 찾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자금의 규모가 클수록 정보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를 찾게 되면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Power-law의 역사를 조금만 조사해봐도 알 수 있듯이, 남들보다 더 큰 자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그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더욱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판단력을 소유한 사람은 Power-law Distribution이 진행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가장 강하게 살아남을 것입니다. 좋은 판단력을 소유한 사람이 어느 때보다도 큰 빛을 보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연말에 감사하게도 일부 독자분들이 저를 잊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쓸데없이 바쁜 척을 하느라, 하나하나 답장을 드릴 시간이 부족했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중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인 변화로 실직을 하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보내주셨던 분께는, 답장 대신 제가 오래전 즐겨 듣던 노래의 가사 일부를 올려드리면서 이번 칼럼을 마칩니다.

 

지금껏 쌓아온 게

모두 사라진 것 같아도

괜찮아요 금세 다시 일어날 거예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알 수 없어요

 

서두르지 말아요

이제 당신의 때가 와요

괜찮아요 앉은 김에 조금 더 쉬어요

 

누구나 두렵겠죠

이 거친 세상에선

괜찮아요 생각대로 계속해 나가요

 

설움이 복받칠 땐

그냥 소리 내서 울어요

괜찮아요 그 누구도 비웃지 않아요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게 삶의 일부죠

긴 세월이 지나가면

모두 다 흐릿해질 거예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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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5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그리고 건강한 감정과 지능

 

 지난 칼럼에서는 과거 성추행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로 학업에 집중을 못 하는 자녀에 대한 사연을 보내주신 독자분의 케이스를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독자분과 자녀분께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을 개시해서 정의를 구현할 것을 조언해드렸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그 조언을 드리면서 다시 한번 들게 된  오래된 죄책감에 대한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작년 12 회 칼럼에서 다루었던 건강한 감정과 지능에 대한 관계를 다시 한번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어떤 지인이 어린 여자아이를 성추행하는 것을 제가 우연히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수년 전 그 지인과 연락을 끊고 절연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경찰이나 피해자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으며, 그 가해자에게 제가 목격했다는 것조차 대면하지 못했습니다. 가해자인 S모씨는 제가 성추행을 목격했다는 것을 현재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가해자가 누구인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성추행을 했는지, 그리고 다른 목격자가 있는지는, 이 성추행 사건의 공개 방식에 대해서 현재 여러 법적인 사항들 및 피해자 가족이 받을 충격 등을 제가 검토하고 있기에 이 지면에서 알려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할 생각입니다.

 

 뒤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그 S씨는 겉과 속이 극도로 다른 사이코패스(psychopathy) 성향 및 여러 종류의 인격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현저히 큽니다. S씨의 그런 내면을 자세히 모르는 그의 수많은 친구들은 겉으로는 매우 치밀할 정도로 교양있게 행동하는 그를 좋은 사람으로 대부분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S씨는 자신이 가하지 않은 다른 아동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도리어 명백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저급한 언행으로 아동 성추행에 대한 인식이 정상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일관되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추가로 알게 된 그의 가정폭력과 그 공범(들)에 대해서는 이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전 12회 칼럼에서 “자녀의 지능은 성공에 얼마나 중요할까”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지능이 높은데 감정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의외로 사회/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있으려면 얼핏 감정이 없고 냉정해야 할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팩트를 팩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과 정비례하며 이는 건강한 감정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감정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예상과 다른 현실을 접할 때, 그 상황에서 오는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현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인 성공을 하기가 현저히 어려워집니다.

 

 S씨의 케이스를 보면 이 분석이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S씨는 여러가지로 추정해보았을 때 높은 지능의 소유자이며 학력도 높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건강하지 못하기에 현실을 늘 왜곡되게 받아들였으며, 이러한 잘못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최악의 판단들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성공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이런 저급한 행동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치밀한 위선에 저도 속아서 잠시나마 지인으로 알고 지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스럽습니다. 사회적 정의를 늦게나마 구현하는데 일조할 것임을 약속드리면서 이번 칼럼을 마칩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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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과거 성추행 피해로 자녀가 학업에 집중을 못 합니다”

 

 오랜만에 지면에서 다시 뵙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몇 달 전에  한 독자분이 저에게 주셨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해 드립니다. 현재 대학생인 자녀가 과거 성추행에서 받은 피해로 인해 학업에 집중을 못 해서 걱정이라는 어느 학부모님의 가슴 아픈 고민이셨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사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당시 업무상 바빴던 관계로 죄송하게도 답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제 삶에 잠시 여유가 생겨서, 뒤늦게 이 사연에 대해 독자분과 현재 성인인 자녀분에게 익명을 전제로 동의를 구해 이번 칼럼에서 제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주제넘게, 저보다 자식을 훨씬 더 오래 키워 보신 독자분에게 감히 조언을 드려보겠습니다.

 

 첫째, 과거 성추행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녀가 학업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셨던 바로 그 부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업도 아니고, 집중력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유일한 큰 문제는 과거 성추행의 피해로 자녀분이 아직도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한 문제해결이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 트라우마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졌을 수는 있겠지만, 수치와 통계상으로 보았을 때 자녀분의 학업 성적 자체는 피해 당시 잠깐만 하락했으며, 그 이후에는 오히려 그 피해를 보기 이전보다도 더 높은 성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업 성적 자체가 전혀 아닙니다.

 

 자녀분이 안 좋았던 경험으로부터 오는 트라우마에 굴하지 않고 이에 맞서 용기 있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우리를 더욱 더 강하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That which does not kill us, makes us stronger”). 자녀분이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셋째, 나쁜 사람으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보았을 때, 그 트라우마를 최대한 치유하는 방법은 단 한 개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1)당신이 그 피해로 인해서, 세상의 객관적인 잣대로만 보았을 때는 오히려 더 성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2)그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법적 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자녀분은 놀라운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보여주고 있고, 학업 성적까지 오히려 향상되면서 1번 조건을 충족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2번 조건이 아직 충족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가해자는 형사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판결문을 읽어본 결과, 재판부는 여러 정황상 성추행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가지만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도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고, 오히려 피해자만 계속해서 큰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독자분은 용서를 통한 마음의 치유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객관적으로 나쁜 사람한테서 큰 피해를 본 경우에는, 이를 용서하는 것도 좋은 길이 아닙니다.

 

 넷째, 적법한 방법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차원적인 복수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성추행을 당한 것은 적어도 캐나다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연을 들어보니, 독자분이 걱정하시는 것과는 오히려 반대로, 현재 자녀분은 이 문제를 그냥 과거의 안 좋았던 일로 덮어두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녀분은 이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오히려 선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정점에는 바로 공개적인 민사소송(civil litigation) 및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현재 자녀분의 나이와 정신적 회복 탄력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자녀분은 이 소송을 함께, 그리고 길게 진행하실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영리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가족분들도 그런 소송을 함께 진행할만한 시간적,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인 여유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형사소송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려면 어떠한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도 없어야(“Beyond reasonable doubt”) 하지만, 민사소송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사소송은 잘못했을 확률이 잘못하지 않았을 확률보다 단지 더 높기만 하면(“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이깁니다. 즉, 피고가 잘못했을 확률이 50%만 넘으면 원고가 승소합니다.

 

 당시 사건은 형사재판부가 판결문에서도 피고가 성추행을 했을 것으로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일부 물증과 목격자의 진술, 그리고 여러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가 있습니다. 이 정도의 케이스라면 민사소송에서는 승소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 하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녀분의 억울함이 어느 정도 풀리고 마음의 상처도 일부 치유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물론 제가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개인적이고, 복잡하고, 무거운 문제이기에, 시간을 어느 정도 더 두고 자녀분과 함께 고민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고민을 시작해 보실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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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3
밀레니얼과 헬리콥터 부모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25)

 

 

 

 


 눈부신 경제 발전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경제와 함께 열심히만 살면 상대적으로 부를 축적하기 쉬웠던 베이비 부머들과는 달리, 밀레니얼은 다른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 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는 부모들 세대의 집값 폭등이 가져온 어려운 주택 소유와, 높은 학자금, 낮은 취업 수준, 적은 수입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어깨가 무거운 세대이기도 합니다.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수십 년 전에 비해서 훨씬 적어졌기 때문에 밀레니얼들은 자수성가 하기 보다는 나에게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려줄 수 있는 “좋은 부모”를 꿈꾸기도 합니다.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극적인 부모의 역할은 항상 중요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좋은 스승과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서 이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현대 부모들의 적극성은 자녀의 학교에서 “치맛바람” “바지바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미국의 아동 심리학자인 하임 지놋(Dr. Haim Ginott) 박사가 처음으로 쓰고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장한  “헬리콥터 부모” 는 하늘에 떠다니면서 자녀를 보고 있다 위험이 닥치면 구하러 가는 양육 스타일을 이야기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와 헬리콥터 부모를 통해서 올바르고 적절한 현대 사회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헬리콥터’ 양육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학자들은 분석합니다. 헬리콥터 부모들은 대학생이 되고 난 자녀에게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대신 정해주기도 하고,  학점을 낮게 받은 과목의 교수에게 항의하기 위해서 부모가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창의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밀레니얼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과보호와 지나친 관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가 한 발짝 뒤에서 건전한 멘토의 역할을 다 할 때 밀레니얼들은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쓴 용어이지만, 취업 설명회에 많은 부모들이 온다는 한국의 현실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힘든 일에 처해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헬리콥터’ 양육 방식의 문제는 자녀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과한 수준”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자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까 봐 미리 방지하고 컨트롤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부모의 좋았던 의도와는 달리 헬리콥터 양육 방식 아래서 자란 학생들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믿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과보호 아래서 자란 학생들은 자기 인생에서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힘들어한다고도 합니다. 부모가 나서 주는 것에 익숙한 자녀라면, 자신이 혼자 할 수 있는 스킬(skill)도 마스터할 수가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모는 평생 자식을 따라다니며 힘든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길러 줄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그릿(GRIT)입니다. 그릿은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인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개념화했습니다. 


 미국 육군 사관학교에 가서 어떤 사관생도가 끝까지 훈련을 마치는지, 어떤 학생이 전국 맞춤법 대회(Spelling Bee Contest)에서 살아남는지, 어떤 세일즈맨이 끝까지 살아남아서 좋은 성과를 내는지를 통계적으로 알아보았는데 그들에게는 모두 그릿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투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단순히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낙담하지 않고 매달리는 끈기를 포함하는 것이 그릿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복력(Resilience)은 마음의 근력 같은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실패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음의 근력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제가 아이비리그를 다녔을 때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스타트업 기업을 세우곤 했습니다. 온갖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업을 키워낸 그들에게는 그릿이 있었습니다. 


 둘째로 부모가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성숙하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항상 그 주위를 맴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녀를 종속적이고 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 뿐입니다. 


 어린 자녀라면 더 많은 지도를 하고 관심을 주어야겠지만 10대가 되면 독립적인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부모는 보호자의 역할보다는 건전한 멘토로서 무엇을 하면 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패나 어려움을 경험할 때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성인으로서의 역량도 길러주어야 하고,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부모가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 어떤 자녀도 “나를 왜 이렇게 독립적으로 키웠느냐”고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독립성은 있으면 좋은 자질이 아니라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어느 세대보다도 창의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밀레니얼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과보호와 지나친 관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가 한 발짝 뒤에서 건전한 멘토의 역할을 다 할 때 밀레니얼들은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기회와 도전 속에서 더 커진다고 합니다.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능력과 독립성 두 가지를 부모에게 배웠다면 밀레니얼 자녀의 성장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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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
2020-01-25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요?”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33)

 

 

 

 교육 칼럼을 쓰면서 독자분들의 고민과 사연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의외로 제가 받는 많은 질문이 교육이나 진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대부분의 케이스들은 제 칼럼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접한 한 독자분의 사연은 진로 문제와 연관이 있기에 그분의 동의를 얻어 이번 칼럼에서 함께 분석해보겠습니다. 

 

 온타리오주의 한 대학교 졸업반인 P군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요새는 불면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부유한 주위 친구들은 졸업 후 부모의 사업을 도와주거나, 일 년 학비가 캐나다 달러로 13만 불 정도나 하는 미국의 전문대학원(의대, 치대, 약대, 로스쿨)에 입학하거나, 혹은 아무 걱정 없이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P군은 자신의 적성도 졸업까지 모른 채, 먹고 살기 위해서 적당히 조건 좋은 직장을 잡거나 딱히 관심도 없는 대학원에 지원하는 옵션들을 고민하면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인 입장의 차이는 세상이 매우 불공평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우선, P군의 고민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그리고 둘째,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하나?” 입니다. 

 

 첫 번째 고민인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에 대한 것부터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P군이 세계 최고 복지국가인 캐나다의 명문대에서 인기 전공을 하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가 직접적으로 속한 집단에서 상대적인 비교를 하게 되며, 커뮤니티 전체에서의 절대적인 비교와는 병렬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현실의 룰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들을 하면 됩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P군이 터놓고 고민을 말하지 못해왔던 것입니다.

 

 P군이 사회에 나와보면 더 잘 알게 되겠지만,  P군이 불공평한 케이스로 든 예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매우 흔합니다. 


 캐나다 사회는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공평하고 공정한 축에 속하지만, 이곳에서도 빈부격차는 당연히 있으며 특히 부유한 중국계 학생들이 많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능력과 운은 다르며, 자기를 낳아준 부모의 재산과 경제력도 운에 속합니다. 


 현실에 꼭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세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현실의 룰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들을 하면 됩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나중에 세상에 기여하거나 일부 바꿀 기회들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P군의 두 번째 고민인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의 적성을 모른다면, 특별한 적성이 없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리고 그것이 특이한 케이스인 것도 아닙니다.


 사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진짜 적성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다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기 유리한 전공이나 직업 몇 가지를 정해놓고, 그중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마치 자신의 적성인 양 합리화하면서 진로를 정합니다. 

 

 아직까지도 자신의 적성을 찾지 못했다면, 억지로 찾으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다소 늦었으니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서, 지금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거나 현실적인 진로를 생각해보세요. 


 적당히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식으로 진로를 정했을 가능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습니다. 정작 본인들 스스로는 천직인 양 합리화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적성을 찾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진로로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에 적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음악가가 될 필요는 없으며, 그와 관련된 유사 업종으로 꼭 가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이는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 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수단으로 직업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P군은 스스로에게 매우 솔직하다는 큰 강점이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 때까지도 본인의 적성을 몰라서 진로를 정하기 어렵다면, 적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진로를 통해서 성취하려는 목표가 어떤 것인가를 P군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서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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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교육은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될 수 있을까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32)

 

“교육이 주는 기회의 창이 많이 닫힌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은 여전히 계층 상승을 위한 사다리 수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개천의 용”이라고 불리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었을 것입니다. 주경야독을 하며 독학이든 야간학교에 다녀 성공을 이루어냈다는 이야기에는 항상 그들이 받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집안에서 자란 이들에게 교육은 계층 이동을 위한 주요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화는 이제 막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수저계급론”을 들어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금수저”라 지칭하고,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흙수저”라고 이야기하며 부모의 부가 대물림되는 세태를 설명합니다. 


 북미에서도 이러한 세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대학 교육비와 주택비 때문에 부자 부모를 가졌는지 아닌지에 따라 시작점이 다르고, 그에 따른 결과도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교육은 오랫동안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되었지만, 현재에도 그 기능을 하고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계층을 이동할 필요는 없지만, 계층 이동이 자유로워야 사회 구성원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교육이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되어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교육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고 있고, 교육은 그 계층을 더 고착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공립 교육이 미국보다 많이 상향 평준화된 편이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는 사립 고등학교에는 대부분 부유층 자녀들이 입학합니다. 그런 학교에서는 더 많은 자본으로 훌륭한 교사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학생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미국이나 영국의 명문대로 입학을 하거나, 같은 캐나다 대학교로 입학을 해도 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더욱 좋은 학교에서 더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 후에 의대, 치대, 약대, 로스쿨 등의 전문대학원에 입학해서 고소득 전문직이 되거나, 학부 졸업 후 곧바로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유층 자녀들은 이러한 교육의 사이클을 통해 어렵지 않게 부를 대물림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좋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나 선후배들과 친분을 쌓고 네트워킹 함으로써 여러 면에서 사회적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위 “금수저”들은 피에르 브루뒤에(Pierre Bourdieu)가 말한 경제적 자본(economic capital)을 통하여 좋은 학교에 다니며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비교적 쉽게 축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수시전형, 특별 전형보다는 객관식 시험이 공정하고 공평한 평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교육학자와 사회학자들은 객관식 시험조차 공평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학교에서 글을 읽고 쓰고 배우는 것, 교사들과 이야기 하는 것, 도움을 청하는 것 등 학교에서 필요한 많은 행동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가르쳐 주는 문화방식이라서 상대적으로 부모의 도움과 교육을 못 받은 집에서 자란 아이들과는 이미 출발점이 다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교육에선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교사와 교육기관이 그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지역적으로 소외된 학생들을 챙기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소수 인종, 출신 나라에 따라 쿼터를 만들어서 그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은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이 주는 기회의 창이 많이 닫힌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교육은 계층 상승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대학교 졸업 후 전문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학위와 면허를 습득해야만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있어서 학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다른 분야들의 경우 전통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취업하는 것이 가능은 하겠지만, 대부분은 회사에서 관련 분야 학교나 자격증을 딴 사람들을 뽑기 때문에, 학교를 나오는 것은 그 분야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게다가 교육은 무엇보다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우리가 수백 번은 들어본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역설을 했는데, 자연이나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 경험적이며 실용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되면 종교나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알게 된다면 누군가의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에 기댈 필요가 없이 내가 주체가 되어 사회를 이해하고,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교육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학력이 높을수록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통계 분석에서 볼 수 있는 팩트입니다. 


 기회의 창이 예전만큼 열려 있지는 않지만, 교육을 받아야만 열리는 기회도 많으며,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회문화적 자본도 자산이 됩니다. 교육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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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2020년, 도약을 꿈꾼다면 ? 꿈을 현실로 바꾸는 방법(31)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31)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오면 마치 의식처럼 사람들은 끝나는 해를 아쉬워하고 새해의 희망을 담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나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번 의지만 앞서서 새해 계획을 세웠는데 결국은 작심삼일이 되어 이제는 계획조차도 세우지 않겠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달력의 연도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새로운 출발을 마음먹고 도약을 꿈꾸기에는 새해만큼 좋은 때도 없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2020년에 학업이든, 자신의 분야에서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중요한 정보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소 어렵더라도 현실에서 실현이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는 실현이 불가능한 추상적인 목표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내 중요성을 인정받고 승진을 하겠다”라는 목표는 언뜻 보면 잘 세워진 목표인 듯 하지만 중요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고, 승진하겠다는 것도 내가 주체가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목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올해 3개의 프로젝트에서 90점 이상의  평가를 받고, 회사 안팎에서 네트워킹도 잘하겠다”라고 수정하는 편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합니다. 


 “중요성을 인정받고 승진을 하는 것”은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다 보면 따라올만한 현실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하버드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강의로 평가되는 ‘긍정 심리학’을 만든 탈 벤-샤하르(Tal Ben-Shahar) 교수는 그의 강의에서 “목적지가 없다면 우리는 갈림길에서 주저하고, 끊임없이 망설이고, 걱정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현실에 충실하여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고, 길가에 핀 꽃이나 경치를 감상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다”라고 합니다. 목표를 정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바꾸어 준다고도 말합니다. 


 실현 가능한 목표까지 세우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새로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이 없다면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존 노르크로스(John Norcross, University of Scranton)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으며 소수의 사람만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볼 점은 성공한 소수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행동을 하기 위해 결심한 것을 지속해서 생각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계획과 행동을 위해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목표를 언어로 표현을 하면 그 목표는 미래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계획을 주변에 알려서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응원과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정해진 기간 안에 내 계획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본 다음 반성이나 적절한 보상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정해진 기간은 너무 긴 시간이면 동기가 부여되지 않으니 3일, 5일, 7일 정도로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에게 롤 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정해서 마인드 컨트롤도 해 보고, 전문가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2020년 목표 달성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만들고 싶다면, 5분만 할애해서 다음의 질문들에 답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1) 3개월 이정표: 각 목표에 대해, 당신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3개월 이정표는 무엇일까요?

2) 새로운 연습: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 채택해야 할 습관, 행동 및 태도는 무엇입니까?

3) 필요한 커넥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누구와 관계를 구축하고 깊이 해야 할까요? 이 과정에서 누가 당신을 격려하고, 가르쳐주고, 지원해 줄 수 있나요?

4) 변화해야 할 것 :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해에 버려야 할 습관, 행동 및 태도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들에 대답해 보면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변화와 태도가 필요한가를 독자 여러분께서 스스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실행보다는 유연한 실행이 장기적으로는 더 목표 달성에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한 번 정도 쉬어가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작년 1월에 얼마나 많은 일을 계획하고, 얼마나 많은 목표를 이루셨나요? 내가 가지고 있는 소질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해의 계획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약간의 운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 수립 후에 실현 가능한 전략까지 있으면, 올해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성장하는 소중한 한 해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꿈을 현실로 바꾸고, 도약하는 2020년을 보내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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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하는가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30)

 

 

 


 
 한동안 대학은 상아탑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진리를 탐구하는 곳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가는 것,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학생들의 사명이나 최종적인 목표처럼 여겨지기도 했었고, 북미에서도 최근 수십 년 동안 대학을 가는 것은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대학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서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빌 레딩스(Bill Readings) 교수는 ‘폐허의 대학’(The University in Ruins)이라는 저서에서 대학의 기업화를 논합니다. 그는 대학이 기업을 모델로 삼아서 진리탐구보다는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며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학생은 취업을 위한 상품이 되고, 대학 교육의 결실은 취업으로 마무리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은 전 세계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동화가 인력을 대체하고 있으며, 이미 발전된 분야가 과거보다 현저히 많아서 인력은 오히려 수십 년 전보다 덜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2019년 한국은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으며 명문대를 나오는 것은 더 이상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을 보장해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학가에서는 인구론(인문대 졸업생의 구십 퍼센트는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지 오래고, 스펙(Specification의 준말.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 등)이라는 용어로 학생들은 진리탐구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매기며 취업을 준비합니다. 


 안타깝게도 캐나다의 사정 또한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캐나다에서 최고로 꼽히는 대학을 나와서도 파트 타임으로 사회의 문을 두드리거나, 4년제를 나와서 다시 컬리지에 입학해 취업이 쉬운 학과를 가기도 합니다. 


 
 심지어 대학의 학비 또한 1인당 평균 소득에 비해서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 탐구를 위해 진학을 생각하기보다는 “비용 대비 효율”을 생각하며 대학으로 진학을 고민합니다.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할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대학을 비용 대비 효율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우선 대학이 취업에 효율적이지 않은 측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뿐 아니라 학교에서 요구하는 여러 교양 과목과, 살아 가는데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과목들도 필수적으로 들어야 졸업이 가능합니다. 

 

 

“대학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은 아니겠지만, 
사회적 성공을 더 쉽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 임에는 확실합니다.”

 


 내가 공대생인데도, 철학과 역사에 관련된 수업을 들어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인문대생임에도 불구하고 교양 과목의 레벨에서 과학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왜 그 과목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졸업을 위해서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시험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교육 기관의 최종 목표는 권력을 쥔 권력층을 재생산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즉, 창의성이나 유연성보다는 이미 있는 지식을 배우고, 규범준수를 하는 시민으로 키워내는 데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21세기에 필요한 창의성을 길러 주기보다는 규범을 가르치고, 이미 틀이 잡힌 사회적 지식을 습득하기를 기대받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의 장점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4년 동안 체계적인 커리큘럼에 따라 자신의 전공을 잘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장점입니다. 1, 2학년 때는 전공을 위한 기초를 쌓고,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심화 과정으로 여러 수업을 듣게 됩니다. 


 취업을 하게 되면 그 분야의 지식을 당연히 알고 있기를 기대받는데, 배운 지식이 매우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연관된 부분이 많고, 업무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이 됩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성인이 되어 학교에 다니게 되므로, 사회생활을 배우고 연습하는 계기가 됩니다. 수업을 들으며 그룹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도 하고,  교수, 조교, 선후배와의 관계도 쌓아가며 지식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대학의 장점은 대학이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입니다.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우대하는 것은 현대 사회가 가진 특징입니다. 직업을 구할 때도 대학 졸업자에게만 지원의 기회를 주거나 우대하기도 하고,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으며, 지식은 반드시 학교에서 얻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또한 같은 분야에서 일하게 될 미래의 동료들을 학교에서 알게 되는 네트워킹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즉, 사회적인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인 자본(social capital)을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대학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은 아니겠지만, 사회적 성공을 더 쉽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 임에는 확실합니다. 아이비리그의 일 년 평균 대학 학비는 캐나다 달러로 7만 불 정도 하는데, 생활비까지 추가하면 매년 9만 불에 육박하는 큰 비용입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대학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진학을 하는 이유는 대학이 주는 대학만의 큰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가는 시간적, 경제적인 투자가 그 가치를 발휘하여 결실을 맺으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첫 단추가 많은 이들에게는 대학 교육이고, 그래서 대학은 모두에게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비용 대비 효율이 있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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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
디지털이 뒤집는 교육의 세계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26)
 

 

 

 


 배움을 향한 인류의 노력은 끝이 없었습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배우는 모습은 달랐지만, 교실에 앉아서 교사가 주축이 되어 학생이 배우는 모습은 가장 보편적인 교육 방식입니다. 조선 시대의 서당에서도 훈장이 책을 펴고 학생들 앞에서 글공부를 가르쳤고, 현재도 많은 교육기관에서 선생님이 앞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교실 풍경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IT 기술의 발달로 교육 분야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실의 모습과 교육자의 역할이 바뀌고 있으며, 미래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의 교육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디지털이 바꾸어 놓은 교육의 변화를 짚어보고, 미래의 교육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실 십여 년 전부터 북미의 대학 강의실은 점점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아이비리그 학교들에서 100명~5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듣는 대형 강의는 파워포인트로 강의 노트가 과목 사이트에 업로드가 되어서 학생들은 모든 것을 받아 적기보다는, 다운받은 강의 노트에 몇 가지의 주석을 달곤 했습니다. 


 매 학기마다 과목의 웹사이트가 만들어졌으며, 토론 게시판이 있어서 학생들끼리 자유로운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수업의 웹사이트가 있었지만, 자료 공유를 위한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했었습니다. 


 지금도 교육기관에서는 교육자가 주축이 되어 학생들을 이끄는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배움의 도구로써 컴퓨터와 교육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아이비리그 강의실에는 강의의 크기에 따라 강의가 녹화되어 바로 웹사이트에 올라가기도 하고,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 다른 학생들과 온라인 접속을 통해 채팅을 할 수도 있으며, 강의에 초청되는 연사는 지구 반대편에서 영상 통화로 연결을 하기도 합니다. 객관식 시험의 경우, 수업 내에 컴퓨터로 접속해서 끝내자마자 자신의 성적을 알 수도 있습니다. 


 20년, 30년 뒤에 디지털은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학교가 사라지리라 예측하는 미래학자들도 있고, 최첨단 기술이 가르쳐 주는 에듀테크(Edu-Tech)가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교육자가 필요하지 않으리라 예측하기도 합니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이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디지털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교육 환경을 만들 것입니다. 


 한 가지 주요한 변화는 교육자의 역할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지식 전달이나 주입식 교육 방식을 통해서 학생들의 지식 습득을 평가했지만, 미래에는 그런 교육 방식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인터넷으로 연결이 가능하기에, 암기해서 지식을 알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전문화된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자가 학습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교육자의 역할은 가르친다기보다는 학습에 어려움이 있을 때 지도하고 조언하는 멘토로서의 역할이 기대될 것입니다. 게다가 온라인으로 다른 교사, 학생들과 연결이 쉬워져서 교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집단 지성(Collective knowledge)를 통한 지식 습득이 더 보편화 될 것입니다. 


 현재 북미의 초/중/고, 대학교에서는 ‘거꾸로 교육’(Flipped Learning)이 실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학생들이 집에서 공부를 미리 하고 와서 학교에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토론하는 방식입니다. 디지털의 발전은 ‘거꾸로 교육’처럼 다른 형태의 교습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지만, 창의성과 통찰력, 예술적 감성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주입식 교육만으론 미래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미래에는 학교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필수적인 평생 학습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저명한 교육학자 조지 시에멘스(George Siemens)는 현대의 과학 기술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은 계속 업데이트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인된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지만, 그 지식은 쉽게 낡은 지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평생 지식을 습득하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기관뿐 아니라  미술관, 과학 센터, 박물관 등등에서 살아 있는 지식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게 됩니다. 


 많은 지식을 암기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뉴 미디어 리터러시(New Media Literacy)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디지털이 가져온 변화 덕분에 지식은 항상 넘쳐나는데,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뉴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옵니다. 


 여기서 리터러시(Literacy)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말하고, 미디어란 TV,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의 매체를 뜻합니다. 즉, 뉴 미디어 리터러시란 단순히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를 분석, 평가하며, 가감 없이 받아들이기보다는 질문을 통해서 정보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뜻합니다. 


 디지털의 발전은 교육환경과 패러다임,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까지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전자계산기를 쉽게 꺼내어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고, 방대한 정보가 인터넷만 접속하면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아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지고, 기계가 하지 못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단순한 문제 풀이나 계산 보다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인간적인 감성 영역도 키워야 합니다. 


 아이비리그의 교육은 미래에 올 변화에 대비하여 학생들의 역량과 평가의 방법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제가 하버드 보건대에서 받은 수업의 평가는 대부분 오픈 북의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버드에서는 책이나 인터넷을 마음껏 참고해서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려고 하였으며, 단편적인 지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적인 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사 결정을 어떻게, 왜,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하는가에 대한 토론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돌아보니 하버드에서 받았던 수업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기계가 가지지 못한 지혜와 통찰력을 키워 주는 교육이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은 교육의 세계를 흔들고, 바꾸고,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사람의 역할을 일부 대체하게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창의성과 통찰력, 예술적 감성, 그리고 감정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주입식 교육으로 성실하게 자란 사람은 이제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디지털이 바꾸어 놓을 미래가 요구하는 자질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 소통, 공감할 수 있고, 지혜와 지식을 통하여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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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yung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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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전 세계가 열광하는 온라인 교육은 과연 학교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SKY 캐슬 신드롬>과 올바른 대학.진로 선택(29)

 

        

 

 

 

 우리가 아이비리그에서 개설되는 저명한 교수의 수업을 컴퓨터로 앉아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면? 풀타임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사나 석사 학위를 온라인으로 취득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꿈만 같을 것입니다. 


 온라인 수업은 지난 10년간 커다란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는 이러닝(E-learning: Electronic learning)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그 이후의 자기발전을 위한 수업까지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러닝의 가장 흔한 형태는 인터넷 강의이며 미래학자들은 온라인 교육이 전통적인 학교를 대체하는 교육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온라인 교육의 현실, 장.단점을 짚어보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온라인 교육이 과연 미래에는 학교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온라인 교육은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간단히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유튜브(YouTube)나 구글 서치를 통해서 가능하며,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같은 온라인 대중 공개강좌로 여러 대학과 기업이 제휴해 웹사이트 강의를 제공하는 형태도 있습니다. 


 무크의 강력한 선두주자로 꼽히는 유다 시티(Udacity)는 스탠포드대학 교수였던 세바스찬 스런(Sebastian Thrun), 데이비드 스테이븐스(David Stavens), 마이크 소콜스키(Mike Sokolsky)가 2011년에 만든 서비스인데, 이들은 교육의 민주화를 꿈꾸며 양질의 교육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인공지능 입문이라는 스탠포드대학교의 수업을 무료로 온라인에 제공했는데 195개 나라 16만 학생들이 이 강의를 수강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학교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16만이라는 수의 학생들이 이 강의를 수강한 것입니다. 


 제가 다녔던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학교 플랫폼 “앨리슨(Alison)”을 통해 디지털 사진학 강좌를 온라인으로 무료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12개의 강좌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받으면 수료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버드는 세계의 다른 어느 대학보다도 지식을 대중과 나누고 싶어 하는데, 그에 대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학교가 없는 곳에 살았던 학생들이 배우기 위해서 산과 들을 넘고 강을 건너 학교에 갔던 30년, 4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유비쿼터스 러닝(Ubiquitous Learning)은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망에 접근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배움의 형태입니다.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라는 라틴어로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교육을 뜻하며 인터넷에 쉽게 접근 가능한 개인이라면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이 늘어나긴 하지만 수십년 안에 학교를 대체하는 일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그렇다면 온라인 교육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커다란 장점은 이전 단락에서 언급했던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편리성입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경우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의 시간에 짬을 내서 수업을 듣는 것이 가능하며 학생의 경우에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강의만 들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정보 통신망을 통하면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더라도 영국이나 미국의 학교에 다니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온라인 수업은 오프라인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더 경제적이고 부담이 적은 형태입니다. 통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커다란 시간 절약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이런 편리성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미래에는 학교에 굳이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온라인 교육이 가지고 있는 단점과 한계는 많습니다. 지식 자체는 온라인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이나 교류 등이 오프라인에서만큼 원활하지는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토론 과제와 그룹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깊이 있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은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회적인 상호 작용이 제한될 뿐 아니라, 온라인 교육은 동기와 훈련이 부족한 개인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수업을 자신의 속도에 맞게 볼 수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 미뤄두다 듣지 않게 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무크 플랫폼 유다시티(Udacity)에서 16만 학생들이 들었던 수업도 마지막까지 제대로 들은 학생은 전체의 14%인 2만 3천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수업을 강의실에서 들었던 200명의 학생은 100% 전부 다 끝까지 정기과정 수업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학위는 전통적인 대학교에서 수여하는 학위와는 달리, 학위를 따기 쉬울 것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안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몰래 대신해서 시험을 볼 소지도 있고, 시험의 많은 부분이 오픈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얼마나 배웠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고도 합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학위를 취득하려는 경우도 많은데,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받은 학교에서 준 학위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즘은 오프라인, 온라인 교육의 틀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도 합니다. 하이브리드 러닝(Hybrid learning) 또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이라고 하는 형태인데 이는 전통적인 학교의 수업 방식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 할 수 있게 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석사 학위를 딸 때 들어야 할 16과목 중에서 2과목 정도를 온라인에 개설된 수업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온라인 수업과 대학 강의실 수업을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는 교육의 민주화를 가져올 온라인 교육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러닝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배움은 많은 이가 바라던 바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교육은 과연 학교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어쩌면 먼 미래에는 온라인 교육이 더 흔한 형태의 교육 형태가 될 수도 있겠지만, 20년 30년 안에 온라인 교육이 학교를 대체하는 일은 아마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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