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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홍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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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우사(友史),
서울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미국 콜럼비아대학 경영과정 연수,
전 효성엔지니어링회사 사장,
현재 토론토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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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seok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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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현대판 <종계변무>(宗系辨誣)

                 

종계변무란 태조 이성계의 족보를 잘못 기재한 것을 고쳐줄 것과 조선왕국의 정통성을 인정해 달라고 명나라에 요청했던 사건이다. 


이성계의 정적이던 윤이(尹彛)와 이초(李初)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이성계가 공양왕과 공모해서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고 밀고하면서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인데 고려의 반역자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고 허위로 고했다. 명나라는 이 이야기를 믿고, 그 나라의 법전이며 역사서인 <대명회전>에 그대로 기록하였다. 


조선왕조로서는 왕권의 적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명나라는 왜곡된 <대명회전>을 내세워 외교적으로 복속시키려고 이용하였다. 태조 이성계를 반역자의 아들로 기록해 놨으니 충효사상을 기조로 건국한 조선왕실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200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변무주청사를 명나라에 보내서 고쳐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루지 못하다가 14대 선조 때에 황정욱, 유홍이 특사로 가서 수정된 <대명회전> 사본을 받아 왔고, 1589년에 성절사 윤근수가 정본을 받아옴으로써 비로로 조선왕조가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조선의 에스더와 모르드개    


 조선의 숙원이던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기막힌 사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인신분의 중국어 역관이었던 홍순언(1530-~1598)은 북경에서 조선기생 류씨를 만났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으나 상을 치를 돈이 없어 기생으로 팔려온 신세였다. 홍순언이 그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그녀가 부모 상을 치를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일로 홍순언은 공금유용죄로 감옥에 갇혔다. 


그 후 풀려난 홍순언은 변무주청사로 북경에 가는 황정욱과 유홍을 수행 하였는데 <대명회전>을 담당하는 예부시랑(외부차관) 석성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조선기생 류씨가 석성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석성이 아내를 구해준 홍순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명회전>의 진상을 듣고 마침내 개정하였다는 이야기다. 홍순언과 기생류씨 역할은 에스더를 연상시킨다. 


에스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강제로 끌려간 유대인의 후손으로 벤자민 지파에 속하는 고아였는데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도움을 받아 페르시아왕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가 되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를 통하여 하만이 유대인을 멸족시키려는 음모를 알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에게 고하여 유대민족이 몰살당할뻔한 참변을 모면하였다.


총리대신이 된 모르드개는 유대인의 권리를 지키며 끝내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기념하여 부림절(Purim)로 정하고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는데 금년은 3월20일이다.


재현되는 악몽의 <종계변무>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430년 전에 있었던 종계변무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우리의 친밀한 우방인가 아니면 위세를 부리는 종주국인가? 북한은 3대에 걸쳐 이어온 세습체제를 인정받기 위하여, 핵무기 폐기와 유엔의 가혹한 제재를 모면하기 위하여, 김정은이 지난 2년 동안에 4번씩이나 중국을 방문하여 전적으로 시진핑 주석에게 애원하고 있다. 현대판 <종계변무>인 셈이다. 


<종계변무>로 조선은 외교적 성과를 얻었다고 기뻐했으나 명나라가 종주국의 명분을 굳히며 조선에 많은 해악을 끼쳤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왜적을 물리친 일이 있으나 후금(後金)과 청나라의 미움을 사서 정묘호란(1626년), 병자호란(1637년)을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란을 진압할 능력이 없어서 청군을 끌어들여 청일전쟁을 자초했으며, 끝내 청국은 일본에 패하여 망했고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고종 때인 1883년에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 등과 통상조약을 맺고 서방국가와 외교를 넓히려고 할 때 청나라가 노골적으로 간섭한 내용을 소개한다. 그 내용이 청국은 종주국이며 조선은 청국의 속국임을 과시한 매우 고압적인 외교문서이다. (참조: 국사편찬위원회 발행 한국사료총서 제19윤치호 서한집, 번역 윤경남)

 


 
북양대신 이홍장이 고종임금에게 보낸 문서(1883년)

 

 


‘조선국왕전하, 지난해(1882년) 미국, 영국, 독일정부는 조선과 통상 조약을 체결할 목적으로 전권사절단을 파견했을 때 우리 청국 정부는 이들 공사들을 소개하도록 마씨를 임명했습니다. 그때 귀국정부는 이 나라들에게 조선은 청국의 속국이었음을 알렸고, 우리 황제께는 내가 이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동시에 체결된 조약 초안문을 우리 정부에서 받아 보았습니다. 귀국 외아문(구한말 외교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독판(독판내무부사) 민영목씨로부터 미국과 일본과 각기 최근에 체결된 통상조약문과 관세율에 관한 사본을 제가 후일에 받았습니다. 저는 이 통상조약과 그 이전의 우리와 맺은 조약 사이에 몇 가지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했으나 이의는 달지 않겠습니다. 며칠 전에 영국공사 파크경이 제게 다녀갔는데 그가 새로운 통상조약과 관세율에 관해 협상할 목적으로 조선에 간다는 정보를 전하께 알려드립니다.


 독일 공사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일본에서 한양으로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전하께 권하건대, 통상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전하께서 당연히 적절한 판단을 하실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 사절단과 조급하게 협상을 해서는 안될 것이며 성급하게 협상함으로써 조선은 청국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간과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200년 동안(청제국 이후) 귀국은 우리 황제에게 순종해왔으며 대청제국의 가장 중요한 속국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속국들보다도 유리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셔서 전하를 속이려는 어떤 사람이 있더라도 혹은 부적절한 충고를 하는 그 누구의 이야기라도 듣지 말고, 저(이홍장)에게 그 협상할 사항을 미리 알려주시고, 이들 사절단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이홍장’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강대국들의 각축전은 치열하다. 북한은 주체사상과 세습정권 유지에 명운을 걸고 있다. 한국의 최대 현안이 외교 안보와 북핵문제라면, 조선왕조의 최대 외교 현안은 <종계변무>였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패권다툼에 끼여서 동맹국의 도움 없이는 자주국방은 불가능한데도 국론은 극도로 분열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진 위정자와 정치지도자들은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게 당했던 수치스런 역사를 되새겨 봤는가? 힘에 의한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보위할 신념이 있는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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