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랑] 안개 낀 아침에

나는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안개는 세상의 모서리로부터

나를 숨겨주며 

말없이 나를 감싸안는다

 

천천히 내 이름을 지운다

나의 모든 잘못도

나의 모든 부끄러움도

잠시 지운다

 

아 

이대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편안함이여

 

가까이 있던 건물들도

한 걸음씩 물러서고

 

가까이 있던 길도

제 모습을 잠시 숨긴다

 

너희들은 왜 숨니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안개 속으로 숨니

 

나는 희미해진 풍경 속을 걸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햇살 한 줄기 나오면

안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세상 밖으로 들어내 버린다

 

안개를 벗은 

세상은 더욱 선명하고

 

잠시 길을 잃었던 

햇살은 맑게 웃는다

 

세상이 환하다

나도 덩달아

환해진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어둠을 비춰 주는

한 줌 햇살이 되고 싶다

 

적어도 

가기 전

한 번만이라도

토론토 거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