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가치의 무가치

‘복음’을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복된 소식’을 이용해 모든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겠다는 심보요, 계산이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자유의지의 발산이다. 복음으로 자신의 빈 공간을 가득 채우려는 욕망이다. 구원과 영생은 보너스로 생각한다. 주인공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그런 자들이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는 내 마음에 쏙 들어야 한다. 편안하고,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돼 있어야 하며, 마음먹은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복음에 장악 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이다. 삶을 통해 손과 발이 묶인 것을 안다. 그들에게 자유는 말씀에 끌려가는 삶이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복음이 주체가 되어 거칠게 끌고간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주인공의 자리에서 객체로 내려간 자들이다. 세상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 시간표는 모르지만, 온 세상이 불태워질 종말의 현실은 알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이 오직 유일하신 그분에게만 귀속되며, 그 말씀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일생 동안 체험한다. 세상이 합의한 가치의 무가치함을 조금씩 알게 된다. 세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들이다.

복음을 마음껏 요리하고 싶은 생각은 자유지만, 실행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자원해서 복음에 끌려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말씀에 장악 당하는 것은 사람의 소원에서 비롯되지 않고, 순전히 날벼락처럼 피동적이다. 인간이 말씀에 접근하는 길도 실상은 이미 차단됐다. 자꾸 사람들의 욕심과 욕망으로 복음을 쟁취하려 하기에 수많은 기독교 이단이 판을 치게 된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장) 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뒤에도 40일간 세상에 머무시며,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사도행전 1장3절)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자체가 ‘하나님 나라’ 선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3년 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을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도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사도행전 1장6절, 표준새번역) 하고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질문을 했다. ‘이스라엘 나라 회복’에 대해 여쭌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인 제자들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은 곧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들어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충분히 있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장6~7절).

아기로 태어나신 하나님을 제자들은 3년여 간 직접 목격했다. 그분은 수많은 이적을 일으켰고, 심지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이해했을 때, 다윗의 왕좌를 차지하고, 그 나라를 굳게 세우기에 그 분 만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없다. 그래서 물었던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이사야 11장11~12절) 라고 기록했다. 

이 11장에서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는 전제 아래, 기가 막힌 평화의 왕국이 도래할 것임을 예언했다. 이 말씀을 예수께 적용했을 때 한 치도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질문은 훨씬 타당하다. 

제자들은 에스겔 37장의 말씀도 알고 있었다. 마른 뼈의 환상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그 때에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 뼈들이 바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 한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의 무덤을 열고 그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낼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으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주가 말하고 그대로 이룬 줄을 알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11~14절. 표준새번역)

‘죽었던 예수께서 살아나셨으니, 마른 뼈 같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살아나 고토(본토)를 완전히 회복할 차례’라고 제자들이 믿는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

율법을 붙들고,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추상적 세계가 아니었다. 메시아가 오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다윗 솔로몬 시대와 같은 물리적, 정치적 독립을 이룰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더구나 예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장4절) 말씀하셨다면, 이제는 정말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울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제자들이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회복에는 마음 속 불순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내내 누가 큰 자인가 다투었고, 예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때 좌우편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지 궁금했다. 죽음을 말씀하시며,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조차 왕권 회복에 대한 기대로 충만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똑같다.

그들이 놓친 한 가지는 ‘십자가’였다. 나 때문에 예수께서 대신 죽으시고, 내 죄가 예수를 죽게 했으며,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회복, 그런 것 자체가 없다”고 꾸짖는 대신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장 7~8절) 하셨다. 

십자가의 구원 능력은 이스라엘을 넘어 땅 끝까지 퍼져 나갈 것이고,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그 과정에 동참하는 자들의 삶을 말한다. 그것이 이스라엘 지경을 넘어 이방인의 땅까지 침투하는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자격은 예수께서 설명하셨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 18장3~4절)

고대 유대사회에서 어린이는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아버지의 권위 아래 종속된 존재였다. 아버지는 자녀의 생사여탈권에 가까운 강력한 훈육권을 가졌다. 성경의 인구조사 장면을 보면 어린이는 성인 남성과 달리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회적 발언권이나 법적 책임 능력이 없는 상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 천국에 들어가는 어린이는 오직 예수 자신이다. 그분은 하나님께 100% 복종하는 존재로 사람이 되어 오셨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벌레요 사람이 아닌 존재로 자기를 낮추신 것이다. 그 예수가 계신 곳이 ‘하나님 나라’다. 그 나라는 저 멀리 어떤 이상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이후 이 역사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이미 존재한다. 

말씀에 장악 당한 사람들, 이미 ‘하나님 나라’에 머무는 자들이 평생 전하는 복음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사도행전 2장) 하는 대목에 모아진다. (편집인)

아래는 필자가 출연한 캐나다토론토한인기독교방송.

부동산캐나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