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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재해석- 베네치아 &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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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초상화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해에 면한 베네치아. 이탈리아 전체가 그렇듯 베네치아는 문화와 예술, 신성한 종교와 탐미적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의 시기라 일컫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물과 정신의 수혜자이며 신화와 실재가 병존했던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이탈리아어로 베네치아(Venezia), 영어로 베니스(Venice)인 이 도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상(水上) 도시로 꼽힌다. 운하와 수상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차가 다니지 않아 배와 보행자의 천국이다.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물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가면의 도시’ 등으로 부르며 중세부터 그 아름다움을 축복해 왔다.

 

 하지만 찬란한 도시라는 수사(修辭) 이면엔 타민족 침입을 피해 생존하기 위해 만든 인공섬이라는 눈물어린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여행객은 신기할지 몰라도 살기에도 불편하다. 물이 마루까지 차오른다고 생각해보라.  

 

 0…벼르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니 감미로운 여운이 오래 간다.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이긴 했지만 나름 알찼다. 이번에 돌아본 도시들 모두 특색이 있었는데 그중 베네치아가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초기 정착민이 살던 베네치아만은 습지대로 땅이 진흙투성이 개펄로 지반이 단단하지 못했다. 이후 훈족 등 외적을 피해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인구가 늘자 도시면적을 늘릴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베네치아인들은 개펄에 참나무를 촘촘히 박고 나무로 된 기단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신비하고 특별한 인공섬을 만든 것이다.

 

 이로써 베네치아는 110여 개의 섬이 400여 개 다리로 연결됐다. 섬의 모양이나 역사 자체가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0…베네치아는 중세들어 본격적으로 부흥했다. 십자군전쟁이 기폭제였다. 유럽에서 중동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수백 년간 지속된 십자군전쟁의 군수기지로서, 또 동로마.중동.인도와의 무역에서 중계상 역할을 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베네치아를 지배하는 귀족 가문들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했다. 상술(商術)에 뛰어난 이들은 아름다운 궁전과 성당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예술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아 당시 베네치아는 많은 예술가들이 귀족 가문의 후원으로 인류 문화유산이 될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안토니오 비발디도 그중 한명이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는 성직자이자 작곡가였다. 그의 불멸의 곡 ‘사계’는 4대의 바이올린으로 이루어진 협주곡으로 그동안 귀족과 성직자들 전유물이던 음악의 대중화를 시도했다.

 

0…베네치아 출신의 한 유명인이 있다. 어쩌면 이 남성은 가장 베네치아다운 삶을 살다간 인물이라 하겠다. 18세기 베네치아가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우던 시기에 태어난 그는 베네치아가 수세기 동안 누렸던 풍요, 향락, 문화, 예술 등 세속적인 모든 것을 향유하다 갔다. 바로 조반니 카사노바다.

 

 그의 출생에서부터 어두운 성장과정, 귀족가문으로의 입양, 사교계 입문, 화려한 여성편력, 떠돌이 신세, 비참하게 사라져간 그 모든 것이 한편의 스토리텔링감으로 으뜸이다. 인간이 이처럼 다양한 삶과 재주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독특한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희대의 바람둥이’, ‘호색한(好色漢)’ 정도로 알고 있는 카사노바.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0…카사노바는 1725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배우, 어머니는 유명 성악가였다.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방대한 책을 읽은 그는 수학, 과학, 역사, 언어, 철학, 예술은 물론 펜싱과 체육 등에도 능했다.

 

 카사노바는 분명 남들과 차별되는 ‘다름’이 있었다. 수려한 외모도 한몫했지만 그의 주무기는 박식함과 달변이었다. 17세에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각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언어에서는 거의 천재였다.

 

 귀족의 상징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히브리어까지 능통했다. 춤도  뛰어났고 바이올린, 승마 등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종사한 직업만 성직자, 작가, 음악가, 배우, 연금술사 외에 간첩, 도박꾼, 사업가 등 수십가지였다.

 

 특히 그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한 번 본 사람은 절대로 잊지 않았고 심지어 당시 상황과 대화와 행동도 기억할 정도였다.

 

0…시쳇말로 바람 피울 수 있는 능력 중 으뜸은 기억력이라고 한다. 즉 여러 여성과 동시에 교제할 수 있는 능력, 그것도 ‘진정성을 주면서’라는 조건에 카사노바는 그야말로 천부적으로 부합했다.

 

 하지만 카사노바를 진정으로 빛낸 것은 그가 어떤 여성을 만나 한 순간 사랑을 하더라도 진정을 다했고 상대 역시 카사노바의 진정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그는 체코의 보헤미아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History Of My Life)는 18세기 당대 베네치아 뿐 아니라 유럽 사회의 관습과 예술, 문화, 종교 등에 관한 생생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카사노바는 책의 서두에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일이 설령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 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한다”고 적었다.

 

0…시대를 초월해 자유를 만끽했던 ‘진정한 자유인’ 카사노바. 어쩌면 그는 천부 인권론적 사고, 즉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 권리인 감정과 표현 그리고 행동의 자유를 실천했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지 모른다.

 

 카사노바를 다시 보면서 위선에 가려진 인간의 본능적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겨 본다.   

 

*사족(蛇足): 카사노바 정도의 능력이 없는 사람(박식함, 달변, 매너, 기억력, 배려심, 재력, 인물…)은 바람 피울 생각 꿈도 꾸지 말고 가정에 충실할 것.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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