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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맞는 봄비- 더불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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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신영복 교수가 쓴 ‘함께 맞는 비' 붓글씨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뜨락에 서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잔디와 튤립 새싹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거센 눈보라와 얼어붙은 대지의 땅을 뚫고 기어이 올라 오고야 마는 그 놀라운 생명력에 새삼 경외감을 느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엔 우산없이 그냥 거리를 걸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시인은 ‘여름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지만 봄비는 둥글둥글 내리는 꿀비, 단비, 약비, 복비… 풀 나뭇잎 파릇파릇 돋우는 녹우(綠雨)’라고 했잖은가.

 

0…우산 없이 처량하게 비를 맞고 간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실연(失戀) 당한 사람? 마음이 몹시 울적한 사람? 혼자 비를 맞고 가는 사람은 그다지 행복한 상황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우산이지만 함께 쓰도록 받쳐줄까, 아니면…

 

 이에 고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 비를 맞고 가면 처량합니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맞으며 걸어가면 덜 처량합니다.” 즉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그와 같은 처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처지가 같지 않고 정이 같지 않은 사람의 동정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흔히 본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에게, 또는 극도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무조건 ‘힘을 내라’고만 하면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함께 실컷 울어주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

 

 한 계단도 오르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하면 된다”고 몰아부치는 것은 도움도 격려도 아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다른 우회길을 함께 이야기 하면서 가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다. 

 

 신교수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면 우선 당장은 작은 위안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정받는 사람에게 상심(傷心)이 된다 했다. 동정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동정받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래서 ‘함께 맞는 비'는 신교수가 즐겨 쓰던 붓글씨 문구였다.

0…지난 2016년 1월에 세상을 뜬 시대의 참 지성 신영복 교수. 논어, 맹자, 장자, 노자를 비롯해 동서양의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고뇌어린 성찰과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투영해낸 그의 저술은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금언(金言)이다. 그 중에도 신교수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와 관계’였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37℃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더 절망적인 것으로 만든다.

 

 신교수의 말대로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0…신교수는 생전에 늘 ‘관계와 연대’를 강조했다. 그중에도 ‘처지와 입장의 동일함’이야말로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역설했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관계, 깨닫게 해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고인이 중시한 것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가슴으로 함께 나누는 공부였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도 처한 입장이 같아야 진정성을 담게 된다.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처지가 다르면서 돕거나 위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함께 맞는 비는 누굴 도와도 그 정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0…서예가로도 명성이 높았던 신교수.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 ‘북악은 5천년간 무심하고, 한수는 유정하게 700리를 흐른다’. 서울 정도(定道) 600주년을 기념해 쓴 작품이다.

 

 북악은 왕조권력을,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상징한다. 왕조권력은 권력투쟁에 몰두해 백성들의 애환에 무심하지만 한강 물은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유정하게 흘러간다는 의미다. 현 위정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0…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친구와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 진정한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봄꽃도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황석영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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