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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나를 스쳐간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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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

 

 밤에 침대에 들어도 쉽게 잠이 안오는 때가 있다. 이런저런 세상사 번뇌로 몸을 뒤척일 때 그렇다. 그럴 땐 아름답던 과거를 회상하면 마음이 봄눈 녹듯 사르르 가라앉으며 꿀잠에 빠져든다.

 

 자주 떠오르는 것은 어린시절 뛰놀던 시골 동네 어귀와 친구들. 고민없고 눈물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돈다.

 

 가끔은 이제껏 나를 스쳐간 여인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자라온 나이대로 돌이켜 보면 지금도 이름들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건 아내와의 사랑과는 별개로 인생의 감미로운 활력소다. 

 

0…먼저 초등학교 시절. 얼굴이 유난히 발그스레 하얗고 보조개가 예뻤던 김00이 기억난다. 도시쪽에 살던 그 아이는 옷도 잘 입고 다녔는데 남자애들이 서로 관심을 끌어보려고 졸졸 따라 다니며 놀리면 눈을 살짝 흘기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학교 졸업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났는데 언젠가 서로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거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반가워서 다방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는데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살이 통통하게 쪘고 고혹적(蠱惑的)이던 눈흘김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고교시절 만난 여학생. 흔히들 얘기하는 나의 첫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고2때 시내버스 안에서 만난 그녀는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두 갈래로 딴 청초한 모습에 나는 첫눈에 넋을 잃었다. 애간장 태우는 무수한 편지 던지기 끝에 마침내 함께 극장에도 가고 공원에도 놀러다니며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고3이 되자 진로문제로 고민하면서부터 만날 여유가 없어졌다. 결국 내가 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녀와도 자연히 멀어져 갔다.

 

0…대학 1학년 시절. 비가 내리는 봄날 아침 등굣길에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옆으로 다가와 “우산이 하나 있는데 쓰세요”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우산을 되돌려준다는 핑계로 다음날 우리는 학교 앞 다방에서 만났고 이내 데이트로 이어졌다.

 

 그녀는 학교 앞 개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창경원 벚꽃놀이도 다니며 달콤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봄꽃이 필 즈음이면 다소곳이 우산을 받쳐주던 그녀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도 인연이 없었는지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만남 횟수도 줄었다. 무엇보다 내가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 주인집 여학생을 학교 축제 등에 초대한 사건이 그녀와 멀어지게 했다.

 

 입주 가정교사를 했던 미아리 집엔 내 또래의 재수생 H 와 고 3 여동생이 함께 생활하였고 그런 환경이라면 어떻게든 인연이란 것이 맺어질 수도 있었건만 하늘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집을 나오면서 모든 인연도 끝이 났다.

 

0…자유분방한 대학시절엔 이들 외에도 여러 여학생을 만났다. 대부분 꼭히 교제라고 할 것도 없고 그저 친구사이였지만 그중엔 기억에 남는 여학생이 몇 있다.

 

 먼저, 캠퍼스에서 만난 간호학과 H.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난 여인 중엔 이상하게 간호학과에 H씨가 많았다). 다소 수줍어 하는 타입의 그녀는 외모가 꽤 아름다웠다. 우리는 학교 축제와 스포츠경기 등에 함께 다니며 점점 정이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장래 진로문제로 고민하면서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었고, 그래서 스스로 그녀를 보내야 했다. 우선 생활이 안정되고 난 후에야 누군가와 사귀어도 사귀어야 할 것 같았다. 

 

 그 H에 앞서 여름방학 때 고향(대전)에 내려가서 만나 사귀게 된 L은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녀는 지방대학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에게 무슨 영문책을 번역 좀 해달라고 부탁해서 만남이 시작됐다.

 

 그녀는 내가 현재의 아내를 만나기 전 장래 배우자감으로 생각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아마 당시 내가 확신이 있었더라면 그녀와 결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유학을 떠난다고 준비하며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런 상태로는 또다시 누구에게도 책임 못질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는 무척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다(한편으론 바보 같았다!).

 

0…이런 순진한 몇몇 여성편력(遍歷) 끝에 나는 마침내 외모나 지성, 인성, 품성, 사려분별 등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한 여성을 만났다. 사랑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이런저런 유형의 여성들과 스치고 지나다 보니 현재의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된 것 같다.   

 

 감미로운 인연들 중에는 봄에 맺어졌던 인연이 많았다. 지금도 양희은의 ‘하얀 목련’을 들으면 그 당시 추억들이 꿈결처럼 스쳐간다. 아, 그녀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풍진(風塵)과도 같은 세상, 달콤한 추억 한가지도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따분한 일상에서 때론 아름다운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삶에 활기를 되찾게 해줄 것이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