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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생각-정의 수호자 vs. 돈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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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말에 개봉된 영화 ‘변호인’

 

 “세상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하지만 바위는 죽은 것이고 계란은 살아있는 것이다. 계란은 언젠가 바위를 뛰어넘을 것이다. 난 절대로 포기 안 한다.” “국가의 법이 힘 약한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데 법조인이 앞장서야지요.” (영화 ‘변호인’ 중)
 

 모진 가난 속에 어렵게 사법고시에 합격한 송우석. 상고 출신에 돈도 빽도 없는 그는 짧은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부동산 등기와 세법전문 변호사로 돈이 되는 일만 쫓아다니던 ‘송변’.


 그러나 그는 대형 시국사건(용공조작)을 접하면서 인생이 180도 변한다. “세상이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분노와 함께 그는 진정한 법조인이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지난 2013년 말 개봉돼 1,138만 관객의 가슴을 적셨다.


0…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노무현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가 조영래였다. 가난한 시골 출신이면서도 뛰어난 수재였던 그도 여느 법조인처럼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합리한 사회 현실에 눈뜨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자초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길지 않은 생을 일관했다.


 그의 마흔 넷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약하고 그늘진 인간에 대한 사랑,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현실을 온몸으로 보듬고 고민하며 살다 간 경전(經典)이었다.


 1970년 자신의 몸을 불살라 열악하기 짝없는 노동현장을 고발한 전태일. 그로 인해 당시 청계천 피복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다. 그러나 전태일의 숭고한 노동자 정신이 체계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조영래라는 걸출한 인권변호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0…김근태, 손학규, 장기표 등 운동권 동지들의 변절 시선을 무릅쓰고 조영래가 뒤늦게 현실 법조에 뛰어든 것도 세상을 반독재 시위나 몇 장의  시국선언문 정도로 변화시킬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고시준비를 하던 절에서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들었으며 이때부터 힘없는 노동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는 전태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젊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동현장을 체험한다.


 전태일의 어머니를 만나 인간 전태일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가 일했던 평화시장을 찾는다. 허리도 펼 수 없는 낮은 다락방 작업대에 앉아 보기도 하고, 열살 남짓의 여공들과 대화도 나눈다.


0…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온통 한자(漢字)투성이인 노동법을 읽을 수 없다는 전태일의 말이었다.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있다면. ”   조영래는 전태일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조영래는 ‘시민공익법률상담소’를 열어 힘센 권력층에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호소조차 못하는 사람들을 변호했다. 망원동 수재(水災)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연탄공장 진폐증사건, 대우어패럴사건 등 대형 시국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사건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되면 무료변론을 자임했다. 조영래는 지식인이, 변호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관되게 보여준 전범(典範)이었다. 세속적 부귀영화가 최고의 가치기준인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올바른 삶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0…변호사는 세인들의 존경과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이중적인 직업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구세주일 수도 있지만 때론 돈만 밝히는 돈벌레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한국에선 판.검사를 하다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하면 일반서민들이 평생을 죽도록 일해도 상상도 못할 거액을 단 2, 3년 안에 벌어들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사람들 안중에 서민들을 위한 변호가 있을 리 없다.       


 특히 변호사는 자격증이기 때문에 잠시 일을 쉬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정치인이 전형적인 예이다. 돈이 있으면 권력을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 정치인 중에 변호사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그런 결과물이다. 이들은 선거에서 낙선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


 한국의 현 국회의원 가운데 법조인(판.검사.변호사) 출신은 모두 46명으로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5%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관료, 기자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0…그러면 이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법률지식을 오히려 악용해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다니며 뇌물을 챙기고 이권에 개입하는 등 민초들의 지탄대상이 되고 있다.  


 캐나다 정계에도 변호사 출신이 많이 포진하고 각료 등 중책을 맡고 있지만 한국의 그들처럼 못된 짓들은 안한다. 변호사란 직업이 한국에서처럼 엄청난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하나의 직업인에 불과하다. 개중에는 사무실 유지하기도 벅찬 변호사도 많다. 실은 그것이 정상인 사회이지만.


 변호사는 문자 그대로 법률지식과 논리적 언변(言辯)을 통해 약자와 억울한 사람을 보호해주는 직업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한국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대장동 개발사업 파문에도 예외없이 변호사와 검사출신이 개입해 법망 빠져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여당 대선후보 이재명, 야당 예비후보 홍준표, 윤석열도 모두 변호사.검사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진정으로 서민편에서 일할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이나 잡아들이던 사람이 국정경험도 없이 곧장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현실이 가당찮아 하는 말이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