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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모도원(日暮途遠)-해는 저물고 일은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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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같은 한자(漢字) 세대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쓰기를 즐긴다. 여러 말 대신 네 글자만 대면 되니 무엇보다 시간상으로 경제적이고, 뜻이 함축적이어서 직설적 어법보다 운치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하니 자연히 배움도 함께 따른다. 


 집안 내력 탓인지 나는 일찍이 어.문학에 취미가 있어 중.고교 시절부터 국어.영어를 비롯해 한문.고전.제2 외국어(독일어) 등에 자신이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엔 영 취미가 없었지만 어.문학 시간만 되면 신이 났다. 학창시절 배운 한자실력에 더해 기자생활을 하면서 더욱 한자를 많이 쓰게 됐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한시(漢詩)를 읆조리곤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한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고 영어를 어학실력의 으뜸으로 치게 됐다.  요즘 젊은세대에게 한자성어를 주절거리면 아마 “OK, Boomer” 소리를 듣기 알맞을 것이다. 이 말은 “알았어요, 아저씨”라는 뜻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고리타분한 구세대, 즉 ‘꼰대’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60대 이상 기성세대는 한자어를 즐겨 쓰는 습관이 있고 나 또한 그러하다. 특히 이즈음 연말이 되면 가는 해를 아쉬워하는 한자어가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교수신문>은 매년 이맘때 사회적으로 유행했던 풍조를 빗댄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0…올해 한국의 대학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말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공명지조는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새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를 풀이하면 ‘목숨을 함께 하는 새’의 뜻이 된다. 즉,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공명조는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가졌다. 이에 다른 머리는 화가 나 어느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성어로 추천한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 같다. 서로 이기려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모두가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사회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공명지조의 뒤를 이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 즉 ‘어목’(물고기 눈)이 진주로 혼동을 일으켜 무엇이 어목이고 진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한다. 올해는 그야말로 무엇이 진짜 어목이고 진주인지 혼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0…나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을 좋아한다. 풀이하면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흔히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시간이 촉박한 상황을 이른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춘추시대, 초 평왕과 그의 신하 오자서 일가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에서 유래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는 오자서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구리채찍으로 300번이나 후려갈긴 후에야 그쳤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가 그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초나라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나무라자 오자서는 “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일축한다.


 즉, 일모도원은 오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였다. 그의 행위는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오늘날 오자서는 불굴의 의지로 춘추시대의 패자를 바꾼 초인이 아닌 ‘복수귀의 대명사’로 더 기억되고 있다. ‘시간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는 구실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많이 횡행하는 일이다.  


 유래야 어쨌든 이즈음엔 ‘일모도원’의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이룬 일 없이 한해를 보내고, 또다시 나이만 먹고, 자꾸만 할일은 눈에 띈다.  


0…‘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란 말도 내가 좋아하는 성어 중 하나다. 제갈량이 했다는 이 말은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지만 이루는 건 하늘이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비슷한 말이지만, 굳이 구분을 하자면 ‘진인사…’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기대를 걸고 하는 말이고 ‘모사재인…’은 결과가 나온 후(대부분 원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에 관한 것이다. 


 이 말의 유래는,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할 때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화공을 펼쳐 궁지로 몰아넣었으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 비가 내려 화공이 실패하고 사마의를 살려보내고 말았다. 이를 두고 과거 적벽에서는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으나 이번에는 소나기로 인해 실패했으니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구나 하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불가강야(不可强也)’,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니 강제로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새삼 이 문구를 떠올리는 것은, 나는 그저 매사에 최선을 다할 뿐, 모든 결과의 주관은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갈수록 실감하기 때문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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