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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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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태어났다. 제프 출산 당시 어머니는 고교생이었다. 그녀는 제프가 태어난지 얼마 안돼 결혼생활을 끝내고 싱글맘이 됐다. 제프의 생부(生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고, 제프에게 ‘베조스’라는 성을 물려준 사람은 양아버지(미겔 베조스)였다.

 

 

그는 1962년 쿠바에서 탈출한 이민자였다. 미겔은 쿠바 난민에게 장학금을 주는 앨버커키대를 다니고 밤엔 은행에서 근무했는데, 제프 어머니도 이 은행을 다니던 중 미겔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제프가 네 살 되던 해 결혼식을 올렸다.


 제프는 이후 생부를 만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양부(養父) 미겔이 그의 롤모델이 됐다. 미겔은 특유의 성실함과 명석한 두뇌로 훗날 엑손의 경영진에 올랐으며, 제프가 사업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제프는 “미겔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제프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자아와 총기(聰氣)를 나타냈다. 세 살 때 이미 아기 침대 대신 어른 침대를 써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자신이 직접 드라이버를 들고 아기 침대를 분리해 일반 침대로 바꾸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방 출입문에 임시 사이렌을 달아 어린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특출한 재능으로 초등학교 영재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과학과 모험은 어린 제프의 상상력을 무한 증폭시켰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스스로 만드는’ 전자키트를 사주며 격려했다. 조숙한 제프의 또 다른 영웅은 외할아버지(프레스톤 기스)였다. 미국 핵에너지위원회의 고위공직자였던 그는 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외손자 제프를 발명의 세계로 이끌었다. 제프는 마이애미 팔메토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하며 당시 지역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우주에 호텔과 놀이공원을 짓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교졸업 후 제프는 유일하게 프린스턴대에만 응시했다. “거기에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처럼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생애 최초의 좌절을 경험한다. 뛰어난 물리학과 학생들 틈에서 자신은 잘해야 중간 수준의 물리학자가 되리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프린스턴대를 수석 졸업한 그에게 벨, 인텔 등 최고기업들이 입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제프가 택한 곳은 뉴욕 맨해튼의 벤처기업 피텔(Fitel). 첫 직장의 선택기준은 안정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이었다. 글로벌 주식거래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피텔에서 기술담당 이사를 맡은 제프는 23세의 나이에 세계를 누비며 영국, 일본, 호주 등지의 계정을 관리했다. 


 그후 제프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뱅커스 트러스트)으로 자리를 옮겼다. IT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이 임무였다. 26세에 그는 역대 최연소 부사장에 올랐다. 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에 곧 싫증을 느꼈다. 


 그런 제프를 사로잡은 이가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회사를 이끌던 데이빗 쇼였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박사인 데이빗은 제프에게 지적 감화를 주었다. 제프는 1990년 D.E.쇼앤컴퍼니의 부사장으로 입사한다. 제프는 이때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프린스턴대 출신의 매킨지 터틀을 만나 결혼했다. 아내에게 끌린 이유에 대해 제프는 “창의적이지 못한 이들과 함께 보내기에 인생은 짧다. 배우자도 창의력이 풍부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제프는 그러나 이 회사와도 결별하게 된다. 이유는 온라인 서점에 대한 견해차 때문. 신규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제프는 웹의 가능성에 매혹됐고 책이야말로 전자상거래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란 결론을 얻었다. 보관과 운반이 쉽고 비용도 싸게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이빗 쇼는 그의 제안을 현실성 없다며 거절했다. 


0…1994년 제프는 연봉 100만불짜리 직장을 미련없이 떠났다. 아내와 미국횡단 여행을 하며 차 안에서 사업계획서를 썼다. ‘오프라인 서점 중 가장 큰 서점보다 열 배 이상 큰 초대형 온라인 서점을 만든다’는… 마침내 아마존의 전신인 ‘카다브라’가 탄생한 것은 같은해 7월. 제프는 시애틀에 집을 한 채 구해 사무실로 썼고 여기서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함께 일할 최고의 인재를 구하는데 골몰했다. 


 이듬해 회사설립 등록을 한 제프는 그 이름을 ‘아마존닷컴’이라 붙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강은 아마존 다음으로 큰 강보다 10배나 크다. 제프는 차등 경쟁자보다 10배 이상 큰 회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업자금 모금은 쉽지 않았다. 창업하겠다며 100만달러를 구하는 20대 젊은이에게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 리 만무했다. 당시(1995년)만 해도 인터넷의 상업성에 대해 부정적 인식도 많았다. 하지만 서류 한 장 보지 않고 10만달러를 선뜻 투자한 사람도 있었다. 창업자의 뛰어난 자질을 높이 산, 바로 제프의 부모였다. 제프는 이때 실패 가능성을 대비해 가족에게 “10만달러를 모두 날릴 지도 모른다”고 미리 경고했다.


0…‘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의 자질은 오늘날의 제프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떠나 성공이 불확실한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강심장은 많지 않다. 위험천만한, 끊임없는 시도에 대해 제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래의 어느 순간,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기회를 살려야 한다.” 


 2016년 기준 매출 1,360억달러, 미국 가정 58%가 이용, 주가 1,000달러 돌파.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1997년 나스닥 상장을 기점으로 20년 동안 달성한 지표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아마존의 급성장세는 오프라인까지 종횡무진 이어지고 있다. 현재 7,500만명의 아마존 프라임 회원은 2021년까지 2억명에 달할 전망이다. 계산원 없는 식료품 매장 ‘아마존고’에 이어 모바일 앱으로 주문한 신선식품을 지정한 시간에 수령 가능한 ‘프레시 픽업’ 매장도 열었다. 


 지난달엔 미국 최대 유기농식품 체인점 홀푸드를 137억 달러에 인수했다. 1980년 설립된 홀푸드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서 46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에 성공한 제프의 자산은 846억 달러(약 96조원)까지 치솟으면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896억 달러)에 이어 세계 부호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존의 몸집 불리기는 기존 온라인 영역에서도 계속 진행중이다. 두바이 온라인 유통업체 인수, 동영상 서비스 기업 흡수, 로봇 물류 자동화업체, 온라인 의류판매 업체 인수… 아마존은 현재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을 제치고 2027년 가장 먼저 1조 달러에 등극할 기업으로 꼽힌다. 


 제프는 언론에도 손을 뻗쳐 2013년 8월 경영난에 허덕이던 미국 3대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2억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제프의 지휘 아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등 비즈니스가 가능한 모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검색한 제품은 물론, 애플 아이폰도 아마존에서 구입한다.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등과의 경쟁에서 최종 승자는 결국 아마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금껏 한 번도 혁신을 멈춘 적이 없는 기업인’.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제프 베조스를 일컬어 표현한 말이다. 94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 서점을 선보인 이래 제프는 우리 삶의 양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제프 베조스를 보면 ‘꿈의 크기는 성공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남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전력투구해왔기 때문이다.


 절대 강자만이 지배하는 시대, 그런데 솔직히 살이 떨린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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