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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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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병폐를 지적할 때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중우정치(衆愚政治)’란 말이다.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다수의 대중에 의해 정치가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뜻한다. 무리 ‘중(衆)’ 자에 어리석을 ‘우(愚)’ 자가 결합됐다. 영어로는 Mobocracy를 쓰는데, 여기엔 다수의 난폭한 시민들이 이끄는 ‘폭민정치’란 뉘앙스가 담겨 있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였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몰락을 보면서, 그 원인으로 중우정치를 꼽았다. 그에 따르면, 중우정치의 병폐는 첫째, 무조건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하는 사회적 병리현상, 둘째, 개인의 능력과 자질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셋째,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에 빠지는 현상, 넷째, 엘리트주의를 부정하고 다중 정치로 변질되는 현상 등이다.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는 바로 중우정치로 몰락했다. 당시 아테네의 지배계층인 시민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플라톤은 이런 민주주의의 타락에 실망했고, <국가론>에서 현명한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철인(哲人)정치를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가장 합리적인 정치 형태로 찬양받았지만, 이런 중우정치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겨주었다. 


0…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말도 안되는 행태에 여전히 환호하는 그룹을 보면서 중우정치의 망령이 살아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앞뒤 가리지 않는 막말과 온갖 추잡한 성추행 폭로, 음담패설 등,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미국의 대선 후보로 올랐을까 황당할 뿐인데도 그의 인기 지분은 여전하다.  


 트럼프는 역대  최악의 ‘꼴통’ 후보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고정 지지층은 흔들림이 없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트럼프는 대선 레이스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그의 콘크리트 지지층 덕에 그는 끝까지 레이스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선거일(11월 8일)을 열흘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다른 대안도 없다.  


 정책대결은 물건너 간지 오래고, 세계는 오로지 트럼프의 입만 쳐다보며 이번엔 또 무슨 엉뚱한 말을 쏟아낼까 흥미진진해 하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성추행 전력 등 벼라별 추잡한 행태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는다. 자당 안에서조차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그가 당선된다면 미국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탄식이 나오지만 지지층은 요지부동이다. 


0…돈만 많은 빈 깡통 트럼프를 대권주자로 만든 계층은 미국의  저학력 저소득 백인층이다. 빈곤층, 건설노동자, 제조업 종사자들이 많은 지역일수록 트럼프 지지율이 높다. 유색인종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이들에겐 트럼프와 관련해 어떤 충격적인 폭로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오래 전에 성희롱을 당했으면 그때 고소했어야지 왜 이제야 잇달아 나타나나”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을 힐러리 측에서 동원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인기 비결은, 직업정치인이 아니란 점, 성공한 사업가라는 점, 위선적이지 않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직격탄으로 날리는 점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세계질서를 어떻게 뒤흔들어 놓든 상관 없다. 내가 꼭 하고 싶었으나 참았던 말을 대신 속시원히 해주니 그것으로 통쾌하다…


 이래서 민주주의가 자칫하면 중우정치가 돼버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는 급기야 이번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에 “그때 가봐야 안다. 애간장을 태우게 할 거다”고 말해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수위마저 넘었다.


 0…트럼프는 여러가지 면에서 올 3월 타계한 랍 포드(46) 전 토론토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포드는 시장시절 코카인 흡입, 만취 난동, 음주운전, 조직폭력과 유착 등 온갖 기행과 스캔들로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지만 지지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늘 30~40% 대에서 변동이 없었다. 


 포드의 지지층 역시 교육수준이 낮고 소득이 적은 백인층이었다. 이들은 연일 터지는 추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포드국민들’(Ford Nation)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그를 추종했다. 이들은 애당초 시민적 가치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똑똑한 척하는 엘리트 정치인보다 차라리 좀 모자란 사람이 낫다는 식이었다. 이에 따라 저변지역에선 포드 스캔들이 터질수록 지지율이 더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마약 좀 했기로 뭐 대순가. 위선적인 정치인이나 잘난 체하는 가방끈 긴 자들보다 그가 더 솔직하고 인간적이라는 식이었다.


0…트럼프처럼 자질과 역량은 형편 없지만 대중적 인기는 높은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대통령선거인단이다. 즉, 직접 대통령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후보를 지지하기로 서약한 선거인단에 투표하는 것이며, 승자독식제(winner-takes-it-all)에 따라 해당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에게 선거인단 전체가 표를 몰아주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다소 복잡하지만 트럼프 같은 최악의 인물이 선출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리라고 보는 시각은 없다. 다만, 힐러리의 비호감도도 5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올해 미 대선은 최선보다 차악(次惡)을 택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는 여론이다. 앞으로 갈수록 정치 냉소주의가 만연될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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