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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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已訝衾枕冷(이아금침냉)/復見窓戶明(부견창호명)/夜深知雪重(야심지설중)/ 時聞折竹聲(시문절죽성)(이부자리 차가움을 이상히 여겨/다시 바라보니 창이 환하네/깊은 밤 많이 내린 눈을 아는 건/이따금 부러지는 대나무 소리)(백거이(白居易)의 ‘설야(夜雪)’) 

 

 1월에 별로 내리지 않았던 눈이 2월 들어 더 자주 내리는 것 같다. 온통 눈세상이었던 지난 주말, 밤에 창밖이 훤해 내다보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설야(夜雪) 풍경이 참 아름답다. 하지만 그림같은 풍광도 잠시, 월요일 출근 걱정에 낭만도 순간이다. 같은 눈인데 금요일에 맞는 눈과 일요일에 맞는 눈은 느낌이 다르다. 

 

 눈은 어릴적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초가집 지붕과 장독에 소복히 쌓인 눈, 저녁나절 눈을 헤치며 동치미를 꺼내시던 어머니. 가족이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먹던 장면… 생각해보면 그리 보잘 것도 없던 그 시절이 나이가 들수록 마냥 그리워지는 것은 이런저런 고민 없던 행복한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염 없이 내리는 눈을 보면 처음 이민 왔을 때가 생각난다. 캐나다 땅에 첫발을 디딘 2000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첫 정착지인 해밀턴 인근 소도시 그림스비(Grimsby)엔 눈이 참 많이 왔다. 나는 그때 동서가 하던 주유소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눈이 하도 많이 내려 휘발유값 표시 간판의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때는 캐나다가 눈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왔기에 으레 그런가 보다 했다.  한번은 눈 쌓인 시골도로를 운전하다 차가 미끄러져 전봇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고 차만 조금 찌그러졌다. 그 때문에 보험료가 조금 오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다. 나는 그때 그림같은 그곳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그냥 눌러 살기로 하고 눈길을 헤치며 비즈니스 거리를 찾아 다녔다. 

 

 이민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 중에 잊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우선 우리의 영어가정교사 펄(Pearl). 낯선 땅에 오자마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무조건 시청을 찾아가 우리 부부를 위해 영어를 가르쳐줄 사람을 찾는다고 하자 이튿날 전화가 왔다.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중년부부였는데, 기꺼이 우리와 말벗이 돼주겠다고 했다. 펄은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인텔리 작가였는데, 원예(horticulture)에 조예가 깊어 은퇴 후그림스비 외곽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번 우리집에 들러 캐나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또박또박 발음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그의 진지했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녀의 부군인 그레이엄(Graham)은 전형적인 영국계 신사로 시청에서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비즈니스 찾기에 도움되는 일이 없을까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들 부부는 눈쌓인 겨울날 자기네 집으로 우리 가족을 초대해 근사한 와인과 치즈를 대접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요즘 세상에 낯선 이민자를 위해 그처럼 시간을 내서 도와주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나이아가라 쪽을 가면 펄이 안내해주던 호숫가의 이곳저곳이 생각난다. 이들과는 한동안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만나곤 했는데, 우리가 이사를 나오면서 이내 잊혀지고 말았다.

 

 그림스비 인근 빔스빌(Beamsville)에 살던 ‘경해’ 씨도 기억에 남아있다. 유학 왔다가 캐네디언과 결혼해 사는 젊은 엄마였는데 한국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니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이런 겨울에 우리는 서로 집을 오가며 정을 나누다 우리가 이사를 오면서 경해씨네와도 이내 멀어지고 말았다.

 

 또 한 분은 K형님. 나와 취향이 비슷해 문학과 풍류와 술을 좋아하는 그 역시 우리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배려해주었다. 그 형님은 오랜만에 인간적인 친구를 만나 반갑다며 무척 좋아 하셨다. 특히 이민살이 첫겨울에 어디 갈 곳도 없는 나는 툭하면 형님집을 오가며 술잔을 나누었다. 그 분은 매우 학구적이고 특히 문학에 애정이 많아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가져다 열심히 탐독하셨다. 그러나 술을 너무 좋아하는게 탈이어서 수년 후 어느 친지의 결혼식장에서 만났을 때 보니 무척 늙어 보였다.        

      

 펄과 경해씨, K형님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이민생활의 초기인 그때가 순수하고 좋았다.  

 

 캐나다 토론토가 세계에서 살기좋은 도시 1위로 선정됐다는 보도가 수시로 나오지만, 글쎄 행복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먹고 사느라 어쩔 수 없이 토론토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도심에 갈 때마다 혼잡한 교통체증에 짜증이 난다. 삶의 질을 따진다면 차라리 그림스비 같은 소도시가 낫지 않을까 한다. 나는 지금도 먹고 살 길만 있다면 기꺼이 교외생활을 하고 싶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제2의 고향인 그림스비를 찾아보곤 하는데, 요즘은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 전원도시로서의 면모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창밖의 하얀 눈을 보면서 행복했던 그림스비 시절을 떠올린다. 비록 시골에서 시작한 타국살이였지만 그때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새처럼 수줍은 그것은/소매를 붙잡으면 이내 날아가고 맙니다/첫눈처럼 보드라운 그것은/움켜쥐면 사르르 녹고 맙니다/그러나 바위처럼 단단한 그것은/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내 안에 있는 행복/찾으면 찾아지지 않고/놓아줄 때 비로소 보여집니다’ (홍수희 ‘내 안에 있는 행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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