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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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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따라 부른 것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87년 이맘때, 그러니까 이른바 6월 항쟁을 앞두고 전국에 한창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 때였다. 당시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중항쟁을 맞아 직장생활을 하던 나도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소극적이나마 시위대열에 참여했다. 그때 어느 자리에선가 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듣는데, 서사시 풍의 가사와 함께 선율에 비장미(悲壯美)가 감돌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라는 대목에선 웬일인지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군에도 다녀왔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민주화 열망이 그만큼 컸던 시기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재야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생 김종률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에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작곡했다. 윤상원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졌으며, 박기순은 들불야학 교사로 일하다 희생됐다. 


 이 노래는 1982년 음반(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학생단체 집회 등에서 널리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노래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외국의 운동권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 부를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0…‘임을…’은 5.18을 상징하기에 군부정권 시절인 80년대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일부 보수단체는 노랫말 속 '임'이 북한 김일성을, '새 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단체는 특히 노래의 원곡이 북한이 5.18을 주제로 만든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이고, 작사자 황석영은 불법으로 월북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반체제 인사라며 이 노래는 종북세력이나 부르는 것이라고 비난을 가했다. 


 그러다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997년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정부주관 공식행사로 치러졌고, 행사의 마지막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쳤다. 즉, 이때부터 2008년까지는 별 논란 없이 그저 '운동권 노래' 정도로 간주됐다. 2004년 참여정부 당시 거행된 5.18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가사도 안 보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09년부터 이명박 정부는 5.18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창’ 대신 ‘합창’으로 바꿔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도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노래에 대한 퇴출 논란이 거세졌고 그 중심에서 국가보훈처가 혼란을 부채질했다. 보훈처는 이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정부 행사에서 아예 이 노래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치는 등 갈팡질팡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노래를 제창으로 부를 것을 지시해 올해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임을…’ 노래의 선율이 흐르게 됐다. 이에 앞서, 독불장군식 행동으로 국회에서 두차례나 해임촉구까지 받은 보훈처장은 새 대통령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사표가 수리됐다. 노래 하나 갖고 이처럼 곡절을 겪은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최근 대통령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세대는 물론, 노래 자체가 다소 생소했던 20~ 30대에게까지 전파되면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노래가 되었다. 


0…'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창'이냐 '합창'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한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창(齊唱)은 애국가처럼 참석자 모두가 (의무적으로)부르는 것이고, 합창(合唱)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면 된다. 행사장에서 '제창'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노래가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노래를 통해 행사의 뜻을 되새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창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즉, 행사 참석자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논란은 다분히 감정적 측면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는 종북과는 상관이 없으며 출처 또한 종북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젠 변하는 시대와 함께 우리들의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 날이 올 때까지…’ 나의 카톡 화면에 적힌 문자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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