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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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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내 인생의 봄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오가는 차 안에서 홀로 이 노래를 듣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지고 아련한 옛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처연하고 구성진 곡조도 그렇거니와, 가사 또한 빼어난 서정시 못지 않아 어느땐 코끝이 찡해진다.    

 

 수년 전 한국의 시인 100명에게 자신의 애창곡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 ‘봄날은 간다’를 제일 많이 꼽았다고 한다. 어떤 시인은 “이 노래만 부르면 괜스레 목이 멘다”고 했다. 정선(精選)된 단어만을 골라 쓰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로 예전 대중가요 가사를 선정한 것은 그만큼 이 노래가 품격이 있다는 뜻이리라. 

 

 ‘봄날은 간다’는 요즘같은 계절에 딱 어울리거니와, 한층 더 시적(詩的)인 2절 가사를 나는 특히 좋아한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노랫말이 어쩌면 한 폭의 그림이요, 가슴 뭉클한 서정시다. 이처럼 아름다운 대중가요를 누가 감히 ‘딴따라’라 비하하겠는가. 국민가요라 불러도 손색없는 이 노래는 6.25전쟁 직후인 1953년 백설희씨에 의해 발표된 이후 60여 년 이상을 한국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주로 불리던 이 노래는 가왕(歌王) 조용필과 이미자, 장사익, 심수봉 등이 잇달아  리메이크 하기도 했으며, 동명(同名)의 영화와 악극으로 만들어져 히트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 노래를 즐겨 불렀던 기억이 선하다. 시대(군사정권 시절)가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청년기의 허무주의에 빠져 그랬는지 모르지만, 애상(哀傷)적인 곡조가 가슴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차 안 같은 데서 혼자서 흥얼거리곤 한다. 

 

 이 노래가 특히 아린 것은 십수년 전 이맘때 어머니와 큰형님을 1년 간격으로 잇달아 저 세상으로 보낸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봄은 환희보다는 아련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 노래를 부른 백설희씨도 7년 전 이즈음 세상을 떠났다. 이름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졌던 고인은 이 노래를 비롯해 '물새 우는 강 언덕' ‘가는 봄, 오는 봄’ '청포도 피는 밤' 등 수많은 히트 곡을 발표했고,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 등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50~6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0…4월은 목련과 함께 핀다. 목련 중에도 백목련이 제격이다. 단아한 기품의 백목련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그래서 꽃이 추락하는 모습은 처연하다. ‘나무에 피는 연꽃’인 목련(木蓮)은 초봄의 전령사이며, 송이가 크고 향기도 좋아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선지 이름도 다양하다. 난초 같은 나무라 해서 ‘목란’, 옥 같은 꽃에 난의 향기가 있다 해서 ‘옥란’,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 해서 ‘옥수’,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했다 해서 ‘북향화’, 붓끝을 닮았다 해서 ‘목필’ 등...

 

 목련과 함께 찾아왔던 봄이 어느새 낙화(落花)되어 지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듯,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순간처럼 왔다 속절없이 지고 마는 짧은 생명이 인간사 모습과 닮았다. 흐드러진 벚꽃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고 말았다. 

 

 지고 마는 것이 어디 세월뿐인가. 인간사 모든 기억들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만다. 불과 한 두달 전만 해도 대한민국을 온통 소용돌이 치게 했던 혼란스런 정국도 이제 서서히 세인들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다. 대형 사고 앞에서 도저히 못 살듯 울부짖던 사람들도 이내 일상으로 돌아와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싸우며 살아간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 (최영미 ‘선운사에서’)

 

0…우리는 흔히 근심걱정 없이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한다. 봄날은 그렇게 포근하고 감미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계절이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옛날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아련한 봄날처럼 느껴진다. 밭일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가 시냇가에서 개울 치고 가재를 잡던 어린시절, 이상과 꿈도 많던 사춘기 시절을 거쳐 청춘이 만개(滿開)했던 대학시절, 예쁜 아내를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지낸 신혼시절… 이제 그런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물질적으론 빈한했지만 그것이 별로 불편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았고 마음이 평화로웠던 시절.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부족할게 별로 없건만 끝없이 욕심을 내면서 스스로를 불만족 속으로 몰아넣는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추억들이 가슴 아리게 그리운 것은 그런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힘들고 어려운 지금 이 순간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게 그립고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회상하게 될 것이다.

 

‘나 찾다가/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예쁜 여자랑 손잡고/섬진강 봄물을 따라/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 ‘봄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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