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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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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紫海) 김복례 여사님의 명복을 기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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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紫海), 자주빛깔의 구름과 바다, 제가 여사님의 아호를 지은 해는 2005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 해 늦은 봄, 강릉으로 해돋이 관광을 갔었습니다. 그곳 동해바다의 여명에 해돋이를 보고자 바닷가 모래사장 길을 홀로 걸었습니다.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 그 끝간데 없는 지구의 저편, 우주의 저편, 말이 없이 철썩이는 바다의 풍랑과 해풍의 조화, 그 조화를 만끽하는 아름다움을 어이 필로 표현하오리까. 그 때 태양은 떠 올랐고 태양빛 따라 바닷새의 울음소리 따라 여사님의 환영이 떠올랐습니다. 태양은 곧장 바다와 육지와 저를 삼키며 태양의 주변에 자주색 구름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 인연의 조화일까, 그 때 여행을 떠나기 전에 회장님의 아호를 지어달라시던 말씀이 저의 뇌리를 엄습해 왔습니다. 항시 인자하시고 자상하시며 사람냄새만 풍겨주시던 님과 바다와 태양 육지와 인간세상의 인연들을 생각하니 여사님의 얼굴이 아름다운 파도로 저의 뇌 신경을 두들겨 왔습니다. 


앞뒤 생각 없는 순수한 마음 한마디 우리 복례 문우님의 아호를 자줏빛 바다와 태양,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아호일까를 생각하며 자해라는 아호를 제 마음대로 지어 보았습니다. 캐나다로 귀국하여 저의 뜻을 전했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 그 모습에 당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님을 보내고 나니 어이 이다지 아름다우면서도 부족한 저를 너무나 끔찍이 생각해주시던 추억만이 저의 심장을 자맥질해 오기에 오늘은 그 영원불멸(Immortal)의 이야기만 하고자 합니다


2006년 현 국제문예에 여사님의 수필을 추천하여 등단을 하셨다고 좋아하시던 모습. 여고시절부터 꿈을 꾸어오시던 등단의 꿈을 이루셨다며 천진난만이 기뻐하시던 모습이 새롭습니다. 첨언하여 한국의 5대문예지로서 책이 출간이 되면 매 회마다 500부가 정부의 문화 공보부에 납품이 되는 아주 훌륭한 문예지라는 설명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자부심을 갖게 해드리고자 한국의 250여 문예지 중 다섯 개의 유명 문예지라는 설명을 드렸던 추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문협회장 직에서 물러나겠다 했더니. 회장님이 문협을 이끌지 않으면 누가 문협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느냐면서 흐느껴 우셨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저의 어머니만이 슬피 울어줄 그 울음소리 지금도 잊을 길이 없습니다. 창립에서부터 6년이란 세월을 이끌어온 문협, 메말라가는 동포사회의 정서함양과 민족의 정체성 고양에 일조를 하고자 애를 태우는 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으셨던 여사님이었습니다. 그 때 여사님께 말씀했었습니다. 울음을 그치시면 한번만 더 봉사하겠다 하였더니 울음을 그치시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어이 저 생애에서 잊을 수 있는 일이 되겠습니까.


지난 8년간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저의 조그마한 건강에도 신경을 써주시던 여사님. “회장님 제가 이 세상 떠나면 꼭 조사를 써주셔야 합니다”란 말씀을 몇 번을 하셨지요. 회장님이 계실 때 제가 세상을 떠나야 조사를 써주실 텐데, 를 반복하시던 모습 어이 제가 잊을 수 있습니까. 아 부끄럽고 부끄러운 생을 영위하는 이유식 이를 그렇게도 끔찍이 사랑하시고 격려해 주시던 여사님은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길을 떠나셨습니다.


훌륭한 수필을 쓰신 자해 여사님 제가 주장하는 수필의 진수는 살아가면서 엮는 생존의 애환을 진솔하게 파헤쳐, 깊고 얕은 곳과 슬프고 기쁜 곳 외롭고 소외된 부분을 용광로에 녹여 풀무질을 하는 것이라는 것, 즉 내 것을 털어내고 비우면 남의 것이 더해지고 커지며 그 속에서 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저의 지론대로 수필을 쓰신 자해 여사님 존경과 경의를 드립니다.


아울러 설한에서 피운 꽃이라는 첫 수필집에서 "타인의 나라에 살면서"라는 주제의 글에서 여사님은 첫째, 한국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며 살아가자. 둘째, 이 캐나다의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자. 셋째,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리라. 넷째, 나의 건강을 잘 지키자, 라는 생존의 좌우명을 천명하시면서 살아오셨는데 이렇게 황망히 저의 곁을 떠나심의 애절함을 한편의 조시로 대신코자 하니 송구함뿐입니다.


자해 여사님의 영면에 명복을 기원 드리며,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저의 이야기만 했다고 돌멩이를 날려도 우리의 인연의 소중함을 고이고이 간직하고자 인생길 산책의 필을 놓습니다. 

 

 

 


자해여사님 영전에 받치는 조시

 

 

로키산의 여명

 

 


로키산의 바다와 자색 빛 석양노을
파아란 하늘 위에 자줏빛 구름의 눈물이 쌓여 갑니다.
자상하시고 자애로운 사랑의 천사
내 자신의 병마와 고통 속에서도
남의 건강과 고난을 걱정하시는 자애의 천사
저에게 눈물만 남기고 님은 저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승길 저승길의 석양에서
저의 애절한 마음은 바람으로 온 천지를 유영한답니다.
인연의 갈대밭에서 휘날리는 꽃잎의 연가
심금을 울려주는 사무치는 따스한 웃음
그 웃음 그 목소리 잊지 못하는 이 마음을 누군들 알까마는
허공에 아롱지는 그 자태를 부둥켜 안고 슬픔에 젖어보나 
메아리 소리는 눈물의 바다로 출렁일 따름입니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을 반추하며 
이제 제가 남을 위하여 사랑하고 베풀면서 살아갈 날이 몇 날일까를 생각하니 
저의 심장도 님의 곁에서 멈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공수래 공수거의 생존을 절감하며 
최근 제가 읽은 글 중 <정목> 시인의 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페러디해 봅니다.

 

가신 님을 그리며 저 자신의 생존은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 합니다.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남을 위한 사랑만 베풀며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님은 해 맑은 미소로 남을 위한 사랑으로 한 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기쁜 소식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나 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 이틀이 가고 있었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베풂의 사랑만 주면서 나의 생존을 저울질을 하니 
이유 없는 눈물만 흐르는 잠자리의 베갯잇
님은 그렇게 살아 오셨습니다.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는 남을 위하여 얼마나 울어줄 수 있을까
하루는 길고 길어도 일주일 한달 십년 이십년은 
어이 아침 저녁같이 바뀌어지는지 
나 자신의 생존이 얼마나 남았고
보기만해도 따뜻한 눈동자를 마주볼 수 있는 사람들
석양에 꼴깍 해가 떨어지듯 우리의 생존도 
갈 곳을 모르는 보해미안이 되었습니다.

 

생존의 뒤안길에 남겨진 보람찬 눈동자
님의 환상이 천상에서 빛날 날을 기다리며
봄 꽃 아지랑이의 아롱거림 속에 님의 영靈이 환생할 그 날
우리 다시 만나자 약속을 하며 허허로이 떠나신 님이여 
님과 저의 생존의 파노라마에 눈물 자욱이 선연 합니다 
제가 그리는 업보는 천상에서 피어난 사랑의 꽃 입니다 
님이여 부디 부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곳에서 근심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영면을 하소서.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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