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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배경 영화(V)-'망향(望鄕)'(Pepe le Moko)(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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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타니아는 카를로스가 자기에게 폭력을 휘둘러 우울할 땐 '시대를 바꾸기 위해' 젊은 날 자신이 무대에서 불렀던 샹송을 듣는다며 페페에게 축음기를 틀어 한 곡을 들려준다.

 

 "어떤 이는 영화에서 본 미국은 멋진 나라라고 말하네. 그 얘기를 듣고 용기가 나서 울적한 어느 날 떠났다네. 많은 사람이 배를 곯은 채 뉴욕에서 달러를 찾아 헤매네. 거지와 추방 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슬픔에 젖은 이민자들. 이들은 파리를 생각하며 말하네. 어디 갔나? 블랑슈 광장의 풍차여, 담배 가게와 길모퉁이 술집이여. 매일이 일요일 같았는데, 친구들은 모두 어디 있나? 무도회는 다 어디 갔나? 아코디온에 맞춰 추던 자바춤. 먹어도 살찌지 않던 맛있던 음식들, 모두 다 어디 갔나?…"

 

 타니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그때 라르비(마르셀 달리오)가 페페를 찾아와, 피에로가 받은 편지는 어떤 아줌마가 주길래 전혀 의심 안 하고 아이샤에게 전해주었는데, 경찰이 시켜 레지스가 쓴 걸 알았다면 그렇게 안 했을 거라며 자기는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는 경찰의 끄나풀인 건 맞지만 용서해 달라며 인정을 받고 싶단다.

 

 그러면서 카를로스는 므니에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그래서 알레티 호텔로 전해주려던 형님의 편지를 자기가 전해줬는데, 감시가 심해 여자는 오고 싶었지만 빠져 나올 수 없었고 답장을 쓸 수도 없었다며, 대신 내일 아침에 호텔 뒷편 항구쪽 창문을 열어둘 테니 거기로 오라고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에 페페가 카를로스가 지녔던 5천 프랑은 안 챙겼냐고 묻는다. 라르비는 자기는 아니고 루뱅 경찰서장(폴 에스코피에)이 책상서랍 속에 넣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카를로스는 돈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유도심문에 걸린 라르비를 추궁하자 결국 슬리만의 술책임을 자백하고, 그리고 가비는 10시에 파리행 배를 타고 떠날 거란 사실을 실토한다.

 

 이녜스에게 막스(로지 레그리)와 지미를 찾아오라고 명하는 페페. 하지만 이녜스는 격정적인 성격답게 질투에 휩싸여 알레티 호텔로 가서 슬리만 형사에게 페폐가 카스바 밖으로 나갔다고 알려준다.

 

 카스바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갈증을 느끼던 페페는 카스바를 떠나는 순간 경찰에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죽음과도 맞바꿀 만큼 강렬한 가비의 매력에 끌려 제발로 죽음 앞으로 한 발 다가간다.

 

 이미 페페의 마음은 비좁은 카스바의 골목을 벗어나 대양(大洋)으로 향하고 있다. 카스바를 벗어나기만 해도 공기가 다를 듯하다. 경쾌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페페의 발, 골목, 골목, 골목들, 그리고 파도가 치는 바다가 보인다. 카스바의 계단 끝에 선 페페는 시내를 내려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한편 실의에 빠진 가비는 파리행 빌 오랑(Ville d'Oran)호 여객선을 탄다. 이때 뒤쫓아온 이녜스가 고자질한 일을 자책하며 사랑하는 연인 페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도망치라고 종용하지만, 완전히 가비 생각으로 가득찬 페페는 듣지 않는다.

 

 가비의 뒤를 밟은 페페는 출항 직전의 어수선한 배 안을 살피지만 다른 일행들은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가비는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 보던 페페에게 슬리만이 천천히 다가온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다.

 

 페페는 무심한 표정으로 수갑이 채워진 손목을 바라본다. 이미 카스바에서 절망적이었던 그의 마음은 체포되었다고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가비를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녜스는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페페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부두의 쇠창살 문이 닫힌다. 페페는 슬리만에게 출항하는 배를 보게 해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한다. 철문 앞에 선 페페. 저만치 뱃머리 갑판에 나온 가비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페페를 보지 못한다. 카메라는 이런 페페의 마음과도 같이 가비에게 다가간다. 이때 가비 역의 미레유 발랭의 마치 대리석 같은 아름다운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으로 어필된다. [註: 미레유 발랭(Mireille Balin, 1909~1968)은 1930년대 프랑스 영화계의 대스타였으나 남성편력이 많았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파리 점령기(1940-1944) 동안 독일 국방군(Wehrmacht) 장교 비를 다이스뵈크(Birl Deissboeck)와 '적과의 동침'을 통해 나치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파리 해방기에 체포돼 감옥생활을 하고 성폭행을 당하는 등 인생의 말로가 비참했다. 한편 나치 SS정보국 수장인 발터 쉘렌베르크(Walter Schellenberg, 1910~1952) 장군과 협력한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Gabriel Coco Chanel, 1883~1971)은 프랑스 및 영국 상류사회 인맥과 깊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윈스턴 처칠 수상의 외교적 중재로 풀려났다. 이왕 할 바엔 거물을 물어야 개고생 안 한다?!]

 

 페페는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가비는 잠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끼지만 페페의 목소리는 뱃고동소리에 묻히고 만다. 철창 사이로 점점 멀어져 가는 배… 허무한 이별이다!

 

 이제 페페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 품고 있던 칼로 복부를 찔러 자살함으로써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끝내 사랑하는 여인과 주고받던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를 거닐지 못하고….

 

 이녜스가 "페페… 잘못했어. 날 용서해줘!"라고 울부짖는 가운데, 가비를 실은 배가 점점 멀어져 가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분위기 넘치는 풍부한 비쥬얼과 섬세한 연출, 장 가뱅의 인상적인 연기로 인해 쥘리앙 뒤비비에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망향'은 1930년대에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프랑스 영화였으며, 1940년대의 필름 느와르와 네오 리얼리즘의 전조인 '시적(詩的) 리얼리즘'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또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1991)은 "스릴러물을 시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감동적인 영화"라고 평했으며, 이 작품은 그의 소설 및 캐럴 리드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든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1949)'에 큰 영향을 미쳤다. (끝)

 


▲ 친구 카를로스의 부인이며 전직 가수였던 타니아(프레엘)가 축음기를 틀어 젊은 날 자신이 무대에서 불렀던 샹송 한 곡을 들려주며,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 경찰의 끄나풀인 라르비(마르셀 달리오)는 결국 가비가 10시에 파리행 배로 떠난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 부두 철창문 앞에서 떠나가는 가비의 이름을 외쳐보는 페페.
 


▲ 파리행 배 위에서 부두 쪽을 바라보는 가비(미레유 발랭)는 잠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끼지만 뱃고동소리에 묻히고 만다. 마치 대리석 같은 아름다운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 철창 사이로 점점 멀어져 가는 배… 허무한 이별이다! 페페는 품고 있던 칼로 복부를 찔러 자살함으로써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녜스가 "페페… 잘못했어. 날 용서해줘!"라고 울부짖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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