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ho2017
칼럼니스트
국제펜클럽회원

416-871-3428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26 전체: 666,934 )
알제리 배경 영화(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5)
youngho2017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리틀 오마르가 차도르를 걸친 여자로 변장한 자파르 일행을 안내한다. 그러나 군화를 신은 발을 보고 제지하는 프랑스 공수부대와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지고 자파르와 알리는 가까스로 어느 민간인 집으로 숨어든다. 주인 여자는 "형제여 들어오세요, 신이 도우실 겁니다"며 그들을 우물 속에 숨겨준다.

 

 1, 2, 3 조직이 무너지고 이제 제4조직만 남아있는 상황! 1957년 2월 25일. 경마장에 폭발이 일어나 무수한 관람객이 다치고 죽는데 격분한 프랑스인이 알제리 어린이를 공격한다.

 

1957년 3월 4일. 라르비 벤 미디가 체포돼 기자들의 인터뷰에 나온다. 기자가 질문한다.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폭탄을 운반하는데 여자의 바구니와 핸드백을 사용한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요?"

 

 벤 미디의 대답.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네이팜 폭탄으로 방어력 없는 마을을 공격하는 것이 더 비겁하지 않은가요? 분명히 우리에게 비행기가 있었다면 더 수월했을 겁니다. 우리에게 당신네 폭탄을 주십시오. 그럼 당신네에게 우리 바구니를 주지요."

 

 다음 기자의 질문. 영어로 질문하고 불어로 통역한다. "FLN은 프랑스를 이길 기회가 있는지요?"

 

 벤 미디의 답변. "프랑스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보다 FLN이 프랑스군대를 쳐부술 기회가 더 많습니다."

 

 여기자의 질문. "매튜 대령의 발표에 따르면, 당신은 우연히 체포됐다는데 정말 실수인지요? 왜 드비시 길의 아파트에 있었는지 말해주시겠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서 잡히지 않길 바랬다는 것입니다."

 

 매튜 대령이 시간이 늦었고 우린 할 일이 있다며 기자회견의 종료를 알린다. 그러자 "그럼 쇼는 끝났소?"라는 벤 미디의 물음에 "역효과가 나기 전에 끝났소"라고 대답하는 매튜 대령.

 

 장면은 프랑스군이 카스바 주민들에게 방송을 통해 호소한다. "폭동자들을 쫓아내라. 폭동조직과 연계를 끊어라. (프랑스)군대가 당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를 믿어라."

 

 이 방송과는 달리 곳곳에서 시민들은 체포되고 죽고 부모를 잃은 어린애들은 울고 있고….

 

 별도의 매튜 대령의 단독 기자회견 장면. 한 기자가 묻는다. "벤 미디가 도망 못 치게 손과 발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셔츠로 줄을 만들어 자기 감방에서 창문난간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게 가능한 얘기인가요?"

 

 이에 "그는 용기있고 실천성있는 사람이며 그의 사상을 칭찬하고 싶다."고 에둘러 대답하는 매튜 대령.

 

 다른 기자의 질문. "공수부대의 작전의 결과뿐만 아니라 방법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요?" "결과는 그 방법의 결과물입니다. 서로 연관이 있지요." 그때 한 기자가 일어서서 단도직입적으로 '고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매튜 대령의 대답. "'고문'이란 용어는 우리 명령에 없습니다. 우리는 경찰방식처럼 정당한 심문을 합니다. FLN은 모든 조직에게 잡혔을 경우 24시간 침묵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FLN이 어떠한 정보도 쓸모없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FLN은 악랄한 집단입니다. 우린 단지 몇몇 문제 때문에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미치광이가 아닐뿐더러 가학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군인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되레 질문을 하겠습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 머물러야 하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모든 결과를 인정해야 합니다." [註: 1957년 3월4일 알제리 경찰본부에 근무하던 FLN의 첩보원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벤 미디를 체포한 마르셀 비제아르 중령은 심문과정에서 그가 존경할 만한 전사라는 이유로 고문하지 말도록 했는데, 상관인 자크 마쉬 장군이 별 성과가 없자 그를 프랑스의 고문 기술자 폴 오사르스(Paul Aussaresses, 1918~2013) 대위에게 송치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불복한 비제아르는 더 이상 벤 미디를 보호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날 밤에 벤 미디를 처형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오사르스는 벤 미디를 고문한 후 알제에서 18km 떨어진 남부의 어느 농장으로 데려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목을 매달았다. 3월6일 벤 미디가 옷을 찢어 헝겊 줄을 만들어 스스로 목매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자크 마쉬는 벤 미디가 밤 사이에 전기 플렉스줄로 목을 맺기 때문에 시신이 말로병원(Maillot hospital)에 도착했을 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2000년에 오사르스 장군은 벤 미디가 '국가'에 의해 살해됐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벤 미디를 존경했던 비제아르 장군은 프랑스군대가 그를 암살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오늘날 벤 미디는 알제리의 국민적 영웅이며 프랑스 식민지주의를 종료시킨 혁명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편 알제리에서 야만적 고문 체제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만들었던 폴 오사르스는 그의 치명적인 고문 기술을 미국의 CIA와 칠레 피노체트의 비밀 경찰 등에게 전수했다.]

 

 장면은 바뀌어 숱한 알제리인들을 공개적으로 고문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를 보는 여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물고문, 불고문, 전기고문 등등. 프랑스군인들은 담배를 피우며 미소짓고 있다. [註: 알제리 전쟁 당시 고문은 공공연히 행해졌다. 특히 작은 발전기의 전선을 남녀의 생식기에 연결하여 실토를 할 때까지 전압을 올리는, 이른바 '제제느(gegene)'라는 고문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알제리 전쟁 중 이러한 고문으로 얻은 정보에 의해 제10공수부대는 약 24,000명의 무슬림 용의자를 체포하였고 그 중 약 4,000명이 살해됐는데 완곡하게 '실종'되었다고 발표했다. 고문센터는 알제 교외에 있는 '빌라 세시니' 건물이었다고 한다.]

 

 1957년 8월26일. 라멜, 시 무라드의 은신처를 포위한 매튜 대령은 확성기로 "항복하라. 정당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서면으로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라. 그러면 항복하고 바구니로 총을 내려주겠다"고 대답하는 라멜. 이에 서면약속서를 쓰는 대령과 바구니를 준비하는 라멜.

 

 라멜과 시 무라드는 바구니에 총과 함께 30초짜리 시한폭탄을 넣어 내려 보낸다. 그러나 가까이 오던 매튜 대령이 폭발 직전에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무위로 끝난다.

 

 1957년 9월24일.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서류를 불태우는 자파르와 할리마. 한편 매튜 대령은 자파르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자키아'라는 여인을 은신처로 보내면서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집과 모두를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자파르는 항복하지 않겠으니 폭파하라고 말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