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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배경 영화 (I)-'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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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민족해방전선(FLN) 강령 1: 알제리 동포들이여! 우리는 식민주의통치에 대항한다. 우리 목표는 독립이며 알제리 국가의 재건설이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알제리인의 존엄 회복 및 종교·인종에 관계 없이 기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유혈사태를 막고자 우리는 프랑스에 알제리 자결권 협상을 제의한다. 알제리 동포여, 조국을 지키고 자유를 되찾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나아가라 형제여! 단결하라! 무장하라!

 

 알리 암마르(Ali Ammar, 1930~1957), 1930년 1월 15일 밀리아나 라 프안트(La Pointe, Miliana) 출생. 별명 알리 라 프안트. 노동자, 야바위꾼, 권투선수로 주직업 없음. 군에서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했고, 1942년 반사회죄 재활 2년 형으로 알제리 소년원을 거쳐, 1944년 폭행죄 2년을 선고받고 오랑 소년원에 있었으며, 1949년 공무집행 경찰 폭행으로 알제리 법원에서 8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이와 같이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었던 그는 실직 상태의 문맹인데다 공공기물 파괴, 치안문란 행위, 매춘 알선, 공무 집행 방해 등 잡범으로서의 범죄경력이 화려했다.

 

 어느 날 야바위를 하다 경찰에 들켜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알리는 자신을 넘어뜨리고 조롱하는 프랑스 남자와 드잡이를 하다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알라 신은 위대하다! 알제리 만세!"를 외치며 끌려가던 정치범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것을 감방 창을 통해 눈도 깜빡하지 않고 지켜본 것이다. [註: 이 감옥은 알제에 있는 세르카지 감옥(Serkadji Prison)으로, 당시에는 바버루스 감옥(Barberousse Prison)으로 불렸으며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유명했다. 당시 58명이 길로틴으로 처형됐으며 장차 역사박물관으로 개조될 예정이라고 함.]

 

 그로부터 5개월 후 석방된 알리는 어느 소년(모하메드 벤 카쎈)이 전해준 편지를 못 읽어 그로 하여금 대신 읽게 한다. [註: 이 소년의 별명이 '작은 오마르(Petit Omar)'로 본명은 오마르 야세프(Omar Yacef, 1944~1957). 그는 사디 야세프의 사촌으로 알리 라 프안트 등과 함께 타일벽 속에 숨어있다 1957년 10월8일 프랑스군의 폭파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13세 때였다.]

 

 "카스바 랜던에 무어인의 카페가 있는데 주인 메라비가 경찰 끄나풀이다. 매일 5시에 프랑스 경찰이 잠깐 들러서 커피 마시고 정보를 얻는다. 떠나면 그 경찰을 죽여라. 실수해선 안 된다. 카페 오른쪽에 바구니를 든 여자가 있을 것이다. 둘 다 경찰을 뒤따른다. 그리고 그녀가 총을 건네주면 제때에 즉시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장면은 이 편지의 내용대로 보여주는데 막상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없다. 알리는 경찰을 주먹으로 녹다운시킨 다음 도망치는 여자를 뒤쫓아간다.

 

 여자의 안내로 엘하디 자파르(사디 야세프)를 만나는 알리. 자파르는 알리를 경찰의 끄나풀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그랬다며, 만일 메라비를 죽였거나 경찰을 죽이지 못했다면 경찰 끄나풀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자파르는 증명이 된 알리에게 이제 조직을 강화하고 은신처를 보호해야만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조직을 깨끗하게 하여 나라를 조직화해야 적을 쳐부술 수 있다고 역설한다. [註: 사디 야세프(Saadi Yacef, 1928~2021)는 FLN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알제리 국민의회의 상원위원을 지냈다. 1957년 9월24일 여성지도자 조라 드리프와 함께 체포되어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다음해 샤를 드 골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야세프는 비록 문맹이었지만 1962년에 옥중원고인 '알제리 전쟁의 기억(Souvenirs de la Bataille d'Alger)'을 출간하여 이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장면은 1956년 4월로 바뀐다.

 FLN 강령 24: 알제리 국민들이여! 식민지정부는 우리 국민들을 궁핍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근면성을 잃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부패, 타락케 하고 있다. FLN은 이 불행을 뿌리째 뽑기 위해 켐페인을 이끌고 국민의 도움과 협조를 요청한다. 이것은 독립을 향한 첫걸음이다. 오늘로서 FLN은 알제리 국민의 육체적·윤리적 건강을 위해 책임을 통감하고 일체의 마약과 술의 판매 및 사용, 그리고 매춘행위를 금하기로 결정했다. 제공자는 반역으로 처벌될 것이며 죽음으로 처형될 것이다.

 

 FLN요원으로 거듭난 알리는 골목에서 옛 잡범들의 보스로 활약하던 놈팽이를 만난다. 그는 예처럼 거만한 태도로 알리를 비웃으며 다시 합류하길 권한다. 하지만 옛날의 알리가 아니다. 코트 속에 감추어둔 기관총으로 그를 사살하고 나머지 똘마니들에게 FLN을 위해 일하라고 훈시하는 알리!

 

 장면은 1956년 6월10일. 마무드(프랑코 모루치)와 파티하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이슬람식으로 모두가 축복한다. 주례는 "FLN의 이름으로 축하한다"고 말한다. [註: 마무드 부하미디(Mahmoud 'Hamid' Bouhamidi)는 파티하와 1956년 프랑스 지배하에서 첫 번째로 공개 결혼을 했는데, 결혼 1년여 만인 1957년 10월8일에 알리 라 프안트 등과 함께 카스바의 압데라메스 5번가 집의 타일벽 속에 숨어있다 프랑스군의 폭파로 사망했다.]

 

 장면은 1956년 6월20일 10시32분. 한 사내가 시내를 순찰하고 있는 프랑스 경찰을 칼로 찔러 죽이고 권총을 빼앗아 도망친다. [註: 이 영화는 연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까지 표기함으로써, 마치 '기록영화' 같은 사실감을 더해준다.]

 

 11시40분. 한 무리가 경찰서로 몰려와 서장을 뵙기를 청한다. 조금 후 서장과 안내하던 경찰을 사살하고 무기와 권총을 강탈해 달아난다.

 

 15시30분. 차를 타고가면서 프랑스 경찰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FLN대원들. 그러나 무장경찰에 의해 한 명이 사살된다.

 

 16시15분. 정부포고령이 내린다.

 1항: 총기 부상자 치료를 위한 약품 구매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항: 부상자 치료 병원은 경찰서에 통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질서를 잡기 위해 경찰은 아랍인 거주지역을 봉쇄키로 결정하고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린다. 진입로에는 바리케이드 및 검문소가 설치되고 시민들은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며 검사에 응해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 끌려가던 정치범이 '알제리 만세'를 외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끔찍한 장면을 감방 창을 통해 목격한 알리는 이후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 석방된 일자무식의 알리 라 프안트(브라힘 하쟈즈)는 어느 소년, 즉 '작은 오마르'(모하메드 벤 카쎈)가 전해준 편지를 못 읽어 그로 하여금 대신 읽게 한다.

 

▲ 바구니 든 여자가 건네준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없다. 알리는 경찰을 주먹으로 녹다운시킨 다음 도망치는 여자를 뒤쫓아가는데…

 

▲ 여자의 안내로 엘하디 자파르(사디 야세프)를 만나는 알리. 자파르는 알리를 경찰의 끄나풀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그랬다며 이제 FLN요원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지침을 설명해준다.

 

▲ 마무드(프랑코 모루치)와 파티하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이슬람식으로 모두가 축복한다. 주례는 "FLN의 이름으로 축하한다"고 말한다.

 

▲ 경찰서로 몰려와 서장을 만나기를 청한 후 잠시 뒤 서장과 안내하던 경찰을 사살하고 무기와 권총을 강탈해 달아나는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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