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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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V)-'거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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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측량기술자 장교(가스통 모도)가 팔부상 중인 마레샬의 발을 씻겨준다. 사실 '측량 엔지니어'가 뭔지를 모르는 마레샬이 대뜸 그에게 로젠탈에 대해 묻는다. 그의 부모님은 로젠탈 은행을 소유하고 있으며 로젠탈은 큰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부유한 유대계 프랑스인이라고 대답하며 한 가지 비밀을 말해주는 장교. 두 달 걸려 밤에 땅굴을 파고 있는데 이제 몇 주만 지나면 자유세계로 갈 수 있다고….

 저녁에 독일군 간수장 아더 상사(베르너 플로리앙)의 점호가 끝나자 의자로 문을 봉쇄하고 창문에 담요를 씌운 후 마루바닥 밑의 땅굴 작업을 시작하는 프랑스군 장교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통과 깡통으로 만든 경고장치까지 구비했다. 흙은 바닥에 버렸지만 이제 남은 공간이 없어 보자기에 담아서 바깥에서 작업할 때 슬쩍 비운다.

 보엘디외와 마레샬 등은 포로수용소에서 프랑스 포로들이 공연할 보드빌을 준비한다. 로젠탈이 주문한 여자의상과 소품들이 도착한다. [註: 보드빌(vaudeville)은 17세기 말엽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된 버라이어티 쇼 형태의 연극 장르로, 보통 정신적·심리적 목적을 배제한 코믹한 상황에 바탕을 둔 희극을 의미한다]

 한편 포로수용소 담장 바깥에 있던 늙은 여자들이 "불쌍한 애들"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나오면서 곧 앳된 소년병의 얼굴이 클로스업 된다. 창문으로 연병장을 내다보던 보엘디외가 "저기 소년들은 군인처럼 행동하고 여기 군인들은 애들처럼 지낸다"고 비꼰다.

 공연 의상 준비를 하고 있던 프랑스군들이 싸우지도 못하고, 집에 갈 날도 모르고 있으니 이곳이 지겨워 미칠 것만 같다고 투덜거린다. 마레샬이 "남들이 힘들어 할 때 내가 여기 있다는 게 싫다"고 말하자 보엘디외는 의외로 간단히 말한다.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테니스장에서는 테니스를, 포로수용소에서는 탈출을!"

 그리고 "자네, 로젠탈 스포츠맨?"하고 이름을 부르자, 로젠탈이 말한다. 그는 프랑스로 귀화한 덴마크 어머니와 폴란드 아버지 사이에서 비엔나에서 태어났다며 "프랑스 혈통 중에는 본국에 영토를 가진 사람이 없어. 35년간 로젠탈 집안은 마음씨 좋은 조상이 남긴 사냥터가 딸린 저택 세 채, 농장, 과수원, 토끼 서식지, 종마 사육장 그리고 화랑 세 곳을 갖고 있지. 그러니 탈출할 가치가 없겠어?"라고 되묻는 로젠탈. [註: 요컨대 로젠탈은 부유한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새로운 중산계급층이다. 르누아르 감독은, 그의 부모가 운영하는 로젠탈 은행은 프랑스의 로스차일드(Rothschild) 은행 가문에 빗댄 것이며 당시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의 반유대인 캠페인의 부상에 대항하는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다. 나아가 부유한 로젠탈이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음식물 소포를 모든 동료들과 나눠 먹는 등 사회계급을 초월하여 발휘하는 인간애의 표상으로 등장시켜 유대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반대하고 있다.]

 바깥 연병장에서는 행진곡을 부르며 행군하는 군화발 소리가 요란하다. 창을 통해 프랑스 포로들이 이를 구경한다.

 장면은 바뀌어 벽보를 보여준다. '1916년 2월26일 기사 ― 독일군 두오몽 요새 탈환'. [註: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동북부 지역, 독일에서 보면 서부전선인 베르됭에서 1916년 2월21일부터 12월20일까지 9개월 3주 6일 동안 벌어진 베르됭 전투(Battle of Verdun)를 말한다. 2월25일에 프랑스 최후의 전방 보루인 두오몽 요새(Fort Douaumont)가 독일 육군에 함락되었다. 이 때 전술이 1,500여 야포에서 30만 발을 쏟아 붓는 압도적인 포격으로 요새를 마비시키고, 대략 1km 단위로 포격과 진격을 반복한 결과 프랑스 육군 사상자가 10만 명 가까이 나오는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고 한다. 이후 두오몽 요새는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지만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철조망과 기관총이 피를 빨아먹는 전형적인 참호전의 양상을 띤 이 전투는 1,200년간 깨지지 않던 전쟁 규모의 세계기록을 갱신한 소모성 전투로 사상 유례 없는 참혹하고 잔인한 지옥 전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와 전쟁과 애국심의 낭만성을 비판한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30)'는 베르됭 전투의 지옥전쟁을 너무나 생생하게 재현한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독일군 장교들과 간수장 아더까지 초청한 공연에서 카티에가 'Si tu veux Marguerite'이란 샹송을 부른다. [註: 이 곡은 1913년 알베르 발지앙(Albert Valsien, 1882~1955)이 작곡하고 뱅상 텔리(Vincent Telly, 1881~1957)가 작사한 곡으로 카티에 역의 줄리앙 카레트(Julien Carette, 1897~1966)가 직접 불렀다. 직역하면 "그래, 그러자, 마가릿"이지만 의역하면 '난 아무래도 좋으니까 너 편한대로 해'라는 뜻.]
 이어서 여자로 분장한 프랑스군의 공연이 진행되는데 마레샬이 프랑스군이 두오몽 요새를 재탈환했다는 신문기사를 알리자 프랑스 포로들은 일제히 일어서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셰예(La Marseillaise)'를 부른다. [註: 딥 포커스로 촬영한 이 장면은 상당한 감동을 주는데 '카사블랑카(1942)'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에 두오몽 요새가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다는 허망한 벽보를 보여준다. 수용소 내 공연을 다룬 이 시퀀스는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예이지만, 프랑스 국가가 나오고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두오몽 요새를 뺏고 뺏기는 과정을 거듭함으로써 다시 국가 간 경계가 세워지는 부정(否定)의 부정이 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음 호에 계속)

 

▲ 측량기술자 장교(가스통 모도)가 팔부상 중인 마레샬(장 가뱅)의 발을 씻겨준다.

▲ 저녁 점호 후 마루바닥 밑의 땅굴 작업을 시작하는 프랑스군 장교들. 깡통에 줄을 이어 만든 경고장치까지 구비했다.

▲ 땅굴 작업을 위해 숨을 쉴 수 있는 공기통을 조립하는 프랑스군 장교들.


▲ 땅굴 작업에서 나온 흙을 보자기에 담아와서 작업할 때 몰래 버리는 프랑스 포로들.


▲ 보드빌 공연을 위해 로젠탈(마르셀 달리오·맨 오른쪽)이 주문한 여자의상과 소품들이 도착한다.

▲ 창문으로 연병장을 내다보던 드 보엘디외 대위가 "저기 소년들은 군인처럼 행동하고 여기 군인들은 애들처럼 지낸다"고 비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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