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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배경영화 (V) - '추격기' (The Hunters)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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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로버트 미첨의 대표작은 '네바다(1944)' '마카오(1952)' '돌아오지 않는 강(1954)' '상과 하(1957)' '선다우너스(1960)' 등을 비롯해 '케이프 피어(1962)' '엘도라도(1966)' '라이언의 딸(1970)' 등이지만 상복이 없어 1945년 'GI Joe 이야기'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한번 지명된 것이 전부였다.

 

 그는 1917년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철도 노무자로 일하던 아버지를 열차사고로 잃고 계부 밑에서 성장했다. 1937년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 있던 아마추어 연극단에 들어가 연기인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학교도 때려치우고 광부 갑판원 인부 권투선수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밑바닥 인생을 섭렵했다.

 

 그는 14살 때 만났던 도로시 스펜스(Dorothy Spence, 1919~2014)와 결혼하여 57년을 해로하였으며, 1997년 7월2일 부인과 두 아들 짐과 크리스토퍼, 딸 트리나, 그리고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9세로 타계했다.

 

 로버트 와그너(Robert Wagner·90)는 영화보다 TV스타로 더 유명한 배우이다. It Takes a Thief (ABC TV, 1968–1970), Switch (CBS TV, 1975–1978) 그리고 Hart to Hart (ABC TV, 1979–1984) 등 TV시리즈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영화에서는 '죽음 전의 키스(A Kiss Before Dying·1956)'에서 주연을 맡았고, 그 후 '오스틴 파워즈' 3부작(1997, 1999, 2002)에서 'No.2' 역, '핑크 팬더(1963)' '하퍼(1966)' '타워링(1974)' 등에 조연급으로 출연하였다.

 

 그는 1957년, 27세 때 19살인 나탈리 우드(Natalie Wood, 1938~1981)와 결혼하여 5년 후인 1962년 이혼했다. 여자 관계가 복잡했던 그도 40줄이 넘어서니 더 이상 짝 찾기가 힘들었던지 1972년, 6개월에 걸친 구애 끝에 그 해 7월16일에 나탈리 우드와 재결합하여 1974년에 딸 코트니를 낳았다.

 

 그런데 1981년 11월28일, 와그너 부부가 크리스토퍼 월켄과 함께 카탈리나 섬에 요트 여행을 떠났다가 나탈리가 익사체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나탈리 우드가 43세로 사망한지 29년만인 2010년에 동생 라나 우드(74)와 당시 요트 선장이었던 데니스 대번(72, 2006년 'Goodbye Natalie, Goodbye Splendour' 저자)이 나탈리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2018년 2월 로버트 와그너를 처음으로 '용의자'로 지목해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배경영화 5편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 외에 우리나라 및 외국 영화가 많이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일일이 다 소개할 수 없어 한국전쟁 배경영화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을 맺고 이제 전체적인 마무리를 할까 한다.

 

 70년 전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한 북한은 절대적 우위에 있던 화력을 앞세워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전면전을 내세워 부산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을 장악함으로써, 그 해 9월은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전선마저 극도로 위급해진 상황이었다.

 

 이때 한국군 참전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은 8월28일에서야 미합참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어내고, 9월15일 미 제2육군사단과 제5해병연대를 인천에 상륙시키는 '크로마이트 작전'을 개시하여 남쪽으로 80% 이상 몰려 있던 인민군의 허리를 자른다.

 

 이리하여 유엔군과 국군은 9월28일 서울을 수복(收復)하고 북진을 계속하여 10월1일에는 거의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 하였다. 인민군이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데 81일이 걸렸지만, 인천상륙 이후 아군이 38선까지 돌아오는데 15일이 걸렸으니 적의 배후를 불시에 공격한 인천상륙작전은 커다란 성과였다.

 

 이를 배경으로 2016년 개봉한 영화가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런데 007시리즈 1편 '닥터 노'와 2편 '위기일발'을 제작한 거장 테렌스 영 감독이 만든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Inchon(1981)'은 쫄딱 망한 영화다.

 

 한편 중국에는 딱 2명의 '특급영웅'이 있는데 황계광(黃繼光, 1931~1952)과 양근사(楊根思, 1922~1950)다. 둘 다 중국인민지원군으로 항미원조(抗美援朝, 북한을 도와 미국과 싸운 전쟁), 즉 한국전쟁 중 전사했다. 잘 아는 조선족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대뜸 중국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중국인이라면 다 아는 '전설적인 영웅'이라고 했다.

 

 황계광은 통신병으로 강원도 금화군 상감령 고지 전투에서 여러 곳에 부상을 입은 채 몸을 날려 적(연합군)의 기관총 총구를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연 특급영웅으로 추앙됐다. 이 때가 1952년 10월20일이었다. 이를 다룬 중국 영화가 1956년 제작된 '상감령(上甘嶺, Battle on Shangganling Mountain)'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편 1951년 4월14일, 제임스 밴플리트(James Van Fleet, 1892~1992) 장군이 미8군 및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1895~1993) 장군 후임으로 외아들 지미(James Van Fleet Jr., 1925~1952)와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다. 지미 중위는 B-56 전투기 파일럿으로 자원하여 참전했지만 1952년 4월4일 새벽 1시5분에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2시간 후 북한 해주 근처에서 실종되었다.

 

 그러나 오전 10시30분, 미 제5공군 사령관 에베레스트 장군으로부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전쟁에서 희생 당한 16만명 이상의 사상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무와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나는 더 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아버지이기에 앞서 한국전쟁 지상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가슴 아픈 결단이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에 바탕한 용단이었다.

 

 또 한 명의 특급영웅인 양근사는 연대장을 지낸 장교로 1950년 11월29일 장진호(長津湖) 남쪽 하갈우리(下碣隅里) 전투에서 폭탄을 짊어지고 혼자 적의 진지를 공격하여 파괴시킴으로써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는 공로로 특급영웅으로 꼽혔다.

 

 그 무렵 70만의 중공군이 투입되면서 한국전선은 달라졌다. 당시 올리버 P. 스미스(1893~1977) 소장이 이끄는 미 해병 1사단은 칼날 같은 추위에 약 2주 동안 이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끝까지 12만 명의 중공군을 막다가 12월24일 마지막으로 유명한 '흥남 철수'에 성공한다. 이 전투로 미군 7천여 명이 희생되었지만 130여 척의 군함에 탄 10만여 명의 북한 피난민들이 목숨을 건졌다.

 

 흥남 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그리워하며 안부를 전하는 현인(玄仁, 1919~2002)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렇게 탄생했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014)' 첫 장면에서 이를 실감나게 다루었다.

 

 한편 한국전쟁에 참전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 1922~1950)이 11월25일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에서 28세로 전사했고, 모택동의 요청으로 중국이 아닌 북한의 열사능원에 묻혔다. 마오안잉 의 미망인 류숭린(劉松林)은 올해 90세이다.

 

 우리에게는 적이었던 그들이 중국에서는 영웅적 대접을 받고 있는 사실과 인천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우리의 현실 사이에서 의식의 심한 공동화(空洞化)를 느끼는 대목이다. 캐나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Lest We Forget’은 단순한 구호가 아닐진대 모두에게 비극을 안긴 한국전쟁! 잊지 말아야 한다. (끝)


▲ 케이시 존스의 공격을 받은 칼 애보트 중위(리 필립스)는 비상 낙하산으로 탈출하는데…

▲ 성공적인 작전으로 예정대로 공수부대가 투입되는 장면.

▲ 중공군의 에이스 케이시 존스의 미그기를 격추시킨 후 홀로 산과 강을 누비며 에보트 중위를 수색하는 사빌 소령.

▲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사빌(로버트 미첨·앞쪽)과 펠(로버트 외그너)은 인민군 2명을 처치하고 방한복과 음식, 무기 등을 노획한다.

▲ 한국 농부(빅터 센 양)가 성경책을 보여주자 서로를 이해하게 돼 애보트, 사빌, 펠은 안심하고 그들의 보살핌을 받는데….

▲ 왼팔에 총상을 입은 사빌(로버트 미첨)이 앞에서 경계를 서고 펠(로버트 와그너)이 애보트를 실은 수레를 끌고 필사적으로 적진을 탈출한다.

▲ 칼 애보트(리 필립스)는 크리스(메이 브리트)에게 다음 주에 미국으로 후송된다며 함께 가자고 제안하자 그녀는 동의한다.

▲ 다시 한국전선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듯 사빌 소령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나는 전투기 편대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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