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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배경영화 (III) -'모정(慕情)' (5·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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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장면은 한국 전선. 유엔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어느 날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타자기에 흰 나비 한 마리가 앉는다. 이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그녀를 떠올리며 행복해 하는 마크.

 

 한편 노라의 집에 기거하고 있는 수인은 마크를 위한 축수 기도문을 적묵(赤墨) 붓으로 정성스레 쓰고 있다. 부질 없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작성하고 있다고 노라에게 말하고는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편지를 꺼내 다시 읽어보는 수인.

 

 장면은 또 한국 전장.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모두들 방공호로 대피한다. 북한전투기가 폭탄을 투하하는 순간, 수인의 적묵을 담은 종지그릇이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오노가 잘못해 떨어진 것이지만 마크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노라의 집 라디오에서 '유엔군은 부산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의 공격이 예상…' 하고 방송이 나오는데 수인이 이런 건 그만 듣자고 해서 끈다.

 

 마크의 편지가 방금 배달됨과 동시에 친구 앤이 노라의 집에 급히 찾아오는데 표정이 심상찮다. 들고 있던 신문을 등 뒤로 숨기는 앤을 보고 뺏다시피 읽어본 신문에는 그가 전사한 것이 아닌가!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

 

 도착한 마크의 편지에는 "난 인생을 모르지만 이것만은 알겠소. 가장 큰 비극은 사랑 받지 못하는 것. 신은 우리에게 관대하셨소." 그제서야 "그이는 갔어. 하지만 아직 편지는 남았어. 한 장 또 한 장 계속 내게 날아올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수인.

 

 마크의 음성이 들린다. "하늘 아래 공평한 것도 불공평한 것도 없다오. …신은 우리에게 관대하셨소.… 당신은 불행이 닥쳐도 남을 외면하지 않겠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오."

 

 그녀는 둘이 만나던 장소인 사랑의 추억이 깃든 '모정의 언덕'으로 달려간다. 그가 나타나 손을 흔들며 '손 이리 줘요'라던 환영에 끌려 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간 그녀는 그제서야 오열한다.

 

 또 마크의 음성이 들린다. "인간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당신의 그 능력이 부러웠소. 고통을 치료하면서 진정으로 도울 수 있잖소. 난 그저 구경할 뿐인데." 그때 호랑나비 한 마리가 마치 그의 넋인 양 나무에 앉았다 날아가 버린다. "우린 무엇 하나 놓치지 않았소.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을 누렸소."…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곡만으로 변주되면서 흐르던 주제곡이 엔딩 장면에서 합창으로 나온다.

 

 "사랑은 아름다워라. 초봄에 피어난 4월의 장미처럼. 사랑은 삶에 의미를 주는 자연의 섭리. 범부를 왕으로 만드는 황금의 왕관. 바람 부는 높은 언덕에서 아침 안개 속에 연인이 입 맞추네. 세상도 숨을 멈추네. 그대 손이 와 닿아 내 고요한 가슴 노래하네. 진실한 사랑은 아름다워라!"

 

 우리말 제목 '모정'은 사모할 모(慕)와 뜻 정(情), 즉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란 뜻으로 지었는데 정말 잘 붙인 것 같다.

 

 윌리엄 홀든(William Holden, 1918~1981)은 '모정' 전 해인 1954년 마크 롭슨 감독의 '원한의 도곡리 다리'에서도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주연하여 한국전쟁과 관련한 영화에 연거푸 두 편이나 출연하여 죽는 기록을 남긴 셈이다. [註: 윌리엄 홀든에 대하여는 2020년 5월1일자 '원한의 도곡리 다리' 하편 참조.]

 

 제니퍼 존스(Jennifer Jones, 1919~2009)는 오클라호마 툴사 출신으로 1939년 서부극 '뉴 프론티어'에 존 웨인의 상대역으로 데뷔했다. 그 후 당시 헐리우드를 주무르던 대 프로듀서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어 1943년 그가 제작한 '성처녀'(원제 '베르나데트의 노래')에 주연으로 발탁되어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및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헐리우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발돋움한다. [註: 그녀는 데이비드 O. 셀즈닉(David O. Selznick, 1902~1965)과 1949년 결혼하여 1954년에 딸을 낳았으나 그 딸이 22살 때인 1976년 5월11일 20층 창문에서 투신, 자살했다.]

 

 동양적이고 고전적인 외모로 그 후 '러브 레터(1945)', 조셉 코튼, 그레고리 펙, 라이오넬 배리모어 등과 공연한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1946)', '제니의 초상(1948)' '마담 보바리(1949)', 로렌스 올리비에, 에디 앨버트와 공연한 '황혼(Carrie·1952)',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공연한 '종착역(1953)', '모정(1955)', 록 허드슨과 공연한 '무기여 잘 있거라(1957)' 등에 출연하였으며, 그녀의 마지막 출연작이 1974년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이었다.

 

 '모정'의 원작자인 한수인(1917~2012)의 본명은 저우광후(周光瑚)로 중국 허난성(河南省) 신양(信陽) 출신. 한수인(韓素音)은 ‘중국인이 영국인이 됐다’는 의미의 ‘한속영(漢屬英)’을 음역한 필명이다.

 

 그녀의 부친은 하카인 중국인으로 벨기에서 공부한 엔지니어인 저우웨이(周?), 어머니는 벨기에인. 한수인은 1933년 베이징(北京)대학의 전신인 옌징(燕京) 대학에 입학했으나 유라시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함을 인식하고 1935년 벨기에 브뤼셀로 가서 의학을 공부한 후 1938년 중국으로 돌아온다.

 

 귀국한 그 해에 중국 국민당 장교(나중에 장군이 됨)인 탕파오황(唐保璜, ?~1947)과 결혼한다. 1942년부터 남편이 무관(武官)으로 근무하던 런던을 1944년 입양한 딸 탕영메이와 함께 방문한 수인은 로열 프리 병원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한다.

 

 남편 탕파오황은 그 후 국공내전이 가장 치열하던 만주 최전방에 배치돼 전사한다.

 

 수인은 1948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에 홍콩으로 돌아와 퀸 메리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게 된다. 이때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이안 모리슨(Ian Morrison, 1913~1950) 타임지 기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를 바탕으로 1952년에 펴낸 소설 "A Many Splendored Thing"이 본 영화의 원작이 되었다. 그녀는 말년을 보내던 스위스 로잔에 있는 자택에서 2012년 11월3일 95세로 타계했다.

 

※ 군더더기: 이안 모리슨은, 타임지 최초의 중국 특파원이었던 호주 출신 부친 조지 어니스트 모리슨(1862~1920)이 베이징(北京)에 주재하고 있을 때 태어났다. 1919년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이안은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41년 오스트리아계 마리아 테레제 노이바우어(1909~1976)와 홍콩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두었다. 1950년 8월12일 지프차를 타고 가다 지뢰가 터져 즉사하여 그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첫 번째 기자로 기록되었다. (끝)
 

▲ 한국전선에서 타자기에 앉은 흰 나비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사랑하는 수인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는 마크. 그러나 그 순간…
 

▲ 친구 노라(수 영)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크를 위한 축수 기도문을 적묵(赤墨) 붓으로 정성스레 쓰고 있는 수인(제니퍼 존스).
 

▲ 북한전투기가 폭탄을 투하하는 순간, 수인의 적묵을 담은 종지그릇이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오노가 잘못해 떨어진 것이지만 마크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 신문에서 마크가 전사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믿기지 않는 듯 방금 도착한 그의 편지를 읽어보는 수인!
 

▲ 약속장소인 '모정의 언덕'에 올라간 수인은 그제서야 오열한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마치 그의 넋인 양 나무에 앉았다 날아가 버린다. "우린 무엇 하나 놓치지 않았소.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을 누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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