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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배경영화 (I) -원한의 도곡리 다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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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제독은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전투기들을 바라보면서 잃어버린 부하 세 명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들은 영웅이야. 우리가 어디서 저렇게 훌륭한 사내들을 얻을 수 있을까?…"

 

 마크 롭슨(Mark Robson, 1913~1978) 감독은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1941년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Citizen Kane)'의 편집보조인으로 일하다 감독으로 변신하여 1957년 '페이튼 플레이스(Peyton Place)'로 아카데미상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 후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 및 알제리 전쟁을 다룬 앤서니 퀸, 알랭 들롱, 조지 시걸, 모리스 로네, 미셀 모르강,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 호화 캐스팅의 '로스트 코맨드(1966)', 그 다음해인 1967년에 '인형의 계곡(Valley of the Dolls)'을 제작했다.

 

 특히 1973년 찰턴 헤스턴, 에바 가드너, 조지 케네디 출연의 재난 영화인 '대지진(Earthquake)'의 제작 및 감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때 제트기가 이륙할 때 내는 소리와 맞먹는, 이른바 '센서라운드(Sensurround)' 시스템을 선보여 지진의 엄청난 음향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당시 수익면에서는 이보다 한 해 앞서 출시된 스티브 맥퀸, 폴 뉴먼, 윌리엄 홀든, 페이 더너웨이, 제니퍼 존스 출연의 재난영화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보다는 적었다.

 

 윌리엄 홀든(William Holden, 1918~1981)은 이 영화 제작 다음해에 중국 태생 유라시언 혼혈 의사인 한수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모정(慕情,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1955)'에서 미국 신문 특파원 마크 엘리어트 역으로 유라시언 의사 한수인(제니퍼 존스)과 홍콩에서 만나 사랑했지만 또 한국전쟁에서 죽는 비극적 주인공으로 나와 우리와 친숙한 이미지로 잘 알려진 유명 미국 배우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글로리아 스완슨과 공연한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1950)' 및 오드리 헵번과 공연한 '사브리나(Sabrina·1954)', 조수아 로건 감독의 킴 노박과 공연한 '피크닉(Picnic·1955)',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1957)',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1969)' 그리고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Network·1976)' 등이 있다.

 

 특히 필자는 그가 출연한 영화 중 이탈리아 배우 비르나 리시, 프랑스 배우 부르빌과 공연한 테렌스 영 감독의 1969년 프랑스 드라마 작품인 '크리스마스 트리(L'Arbre de Noel)'를 꼽고 싶다.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노련한 배우의 중후한 연기가 돋보였을 뿐만 아니라 방사능 노출로 백혈병에 걸린 소년 파스칼이 크리스마스 이브 날 갑자기 죽을 때, 나르시소 예페스 작곡의 '금지된 장난(Jeux Interdits·1952)' 주제곡인 '로망스'가 애잔하게 울려 퍼지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재미있는 일화 몇 가지. 윌리엄 홀든의 본명은 윌리엄 프랭클린 비들 주니어였는데, 그가 1939년 '골든 보이(Golden Boy)'의 주역으로 스카웃되자 당시 콜럼비아사 조감독인 해롤드 윈스턴이 그의 첫 부인 글로리아 홀든(Gloria Holden)의 이름을 따 윌리엄 홀든으로 작명하였다고 한다.

 

 윌리엄 홀든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 사이라 1952년 낸시 여사와 결혼할 때 베스트맨(신랑들러리)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1981년 11월12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아파트에서 사망했다. 카펫 위에서 미끄러져 침대 탁자에 머리를 부딪쳤으나 의식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구급요청을 하지 않은 채 있다가 뇌출혈로 63세로 타계했다.

 

 죽은 지 나흘 만에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는 가수이자 작곡가인 수잔 베가(Suzanne Vega)였다. 그녀는 1987년 '톰의 만찬’(Tom's Diner)을 작곡했는데, 6년 전 아침에 윌리엄 홀든이 사망하기 전 술을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 일련의 시퀀스를 노래했다.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1929~1982)의 영화 경력 및 생애에 대하여는 이미 서부영화 '하이 눈' 하편(2019년 5월17일자)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모나코 레니에 3세 대공(大公)과의 결혼에 얽힌 얘기만 살펴보기로 한다.

 

 1955년 4월 칸 국제영화제에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레니에 3세의 초청을 받고 5월6일에 칸에서 55km 떨어진 모나코의 '왕자의 궁(Prince's Palace)'에서 그를 접견한 후 결혼하게 된다.

 

 결혼식은 두 번 거행되었다. 첫 번째는 1956년 4월18일 모나코의 민법에 의해 16분간 시민 결혼식을 올렸는데 남편을 따라 142개의 공식 타이틀이 부여되었고, 피로연에는 3천 명의 모나코 시민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두 번째 로만 가톨릭 예식이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이뤄졌는데, 이 세기의 결혼식은 전세계에 TV로 생중계 돼 3천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그레이스 켈리의 웨딩드레스는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 수상자인 MGM의 헬렌 로즈(Helen Rose, 1904~1985)가 디자인했는데 36명의 침모(針母)들이 6주 동안 만들었다고 한다. 신부들러리 의상은 텍사스 댈러스 소재 백화점 체인인 니만 마커스사의 패션디자이너 조 앨런 홍(Joe Allen Hong, 1930~2004)이 디자인했다.

 

 참석한 700명의 명사 중에는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캐리 그랜트, 데이빗 니븐, 글로리아 스완슨, 에바 가드너, 파키스탄 무슬림 지도자 아가 칸 3세, 멕시코 패션 아이콘인 글로리아 기네스 등이었으며, 프랭크 시나트라는 초청 받았으나 참석하지 못했다.

 

 성당예식이 끝난 그날 밤, 둘은 오나시스가 결혼 선물로 준 '데오 주반테 2(Deo Juvante II)' 요트로 7주 간의 지중해 허니문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끝으로 프레드릭 마치(Fredric March, 1897~1975)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1931)' 및 '우리 생애 최고의 해(The Best Years of Our Lives·1946)'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한 1930~40년대의 유명 미국배우.

 

 또 2018년 레이디 가가 주연의 '스타 탄생(A Star Is Born)'의 오리지널인 1937년 '스타 탄생'에서 재닛 게이너와 공연하여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끝)

 

※ 알림: 코로나-19 사태로 5월9일 '손영호의 TMMT'는 휴강하오니 다시 뵐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 남녀 혼탕의 일본 온천 문화가 소개되기도 하는데… 당시 한국전 배경의 모든 미국 영화는 은근히 일본문화를 홍보하는 듯하다.

▲ 짧은 휴가를 끝내고 아내 낸시(그레이스 켈리)의 전송을 받으며,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떠나는 브루베이커.

▲ 브루베이커는 비행단장인 웨인 리 중령과 정찰비행을 한 후 항공모함 '사보 아일랜드'로 성공리에 귀환한다.

▲ 3개 편대 12대의 전투기가 도곡리에 가설된 교량들의 폭파작전에 나서고 있다.

▲ 적군의 주요 보급로인 도곡리의 좁고 험준한 계곡에 가설돼 있는 다리들을 공격하는 해리 브루베이커 대위(윌리엄 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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