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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영화 시리즈 (XII)-'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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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부 시대 사나이들의 의리•우정에 대한 '진혼곡'

 

 

 

 

 이제 서부 영화 시리즈의 12번째로 이른바 '서부 영화의 만가(輓歌)'로 일컬어지는 "와일드 번치(Wild Bunch)"를 소개할까 한다. 


 "와일드 번치"는 미국영화협회(AFI, 2008년)가 선정한 '서부 영화 톱 10'에서 6위를, '100대 명화(2007년)' 중에서 79위를 차지한 명작이다. 


 1969년 워너 브라더즈사 배급. 감독 샘 페킨파. 출연 윌리엄 홀든, 어니스트 보그나인, 로버트 라이언,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워렌 오츠, 벤 존슨, 제이미 산체스 등. 음악감독 제리 필딩. 러닝타임 145분.

 

 

 

 


 그런데 '와일드 번치'라는 이름은 서부 시대 말기에 실존 인물이었던 부치 캐시디(1866~1908, 본명 로버트 르로이 파커)가 30세 때 만든 갱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와이오밍 열차 강도, 은행 강도 등 무법자였던 부치 캐시디와 해리 알론조 '선 댄스' 롱어바우가 볼리비아로 도피하여 1908년 총격전 중 둘 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조지 로이 힐 감독이 만든 영화가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이다. [註: 42회 아카데미에서 이 두 작품이 최우수 각본상과 작곡상 부문에서 경합했으나 모두 '내일…'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의 유명한 주제곡이 B.J. 토마스가 부른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이다.] 


 "와일드 번치"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무법자 시리즈'보다 5년여 뒤에 나온 작품으로, 헐리우드 서부 영화 시대의 황혼기이며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의 황혼기인 20세기 초엽,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를 떠돌며 은행 및 열차 강도를 일삼는 최후의 총잡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던 배우들이 출연하여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절묘하게 연기하여, 선과 악이 대결하고 영웅이 악당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했던 기존의 서부극을 전혀 다른 방식, 이른바 '수정주의 서부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된다. 1913년 무렵, 멕시코와 인접한 텍사스의 한적한 마을. 카키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6명의 기병대 군인들이 말안장에 꼿꼿이 않은 의젓한 모습으로 먼지 날리는 산 라파엘(스타벅) 마을에 등장한다. 철도회사 은행에 보관중인 은을 털기 위해 군복으로 위장한 파이크 비숍(윌리엄 홀든) 일당들이다. 


 이때 오픈 크레디트가 스네어 드럼과 심벌즈만으로 연주되는 음악에 맞춰 컬러에서 흑백 명암으로 바뀌며 '정지 프레임'으로 나온다. 이제 막을 내리는 서부 시대에 설 무대를 잃어버린 무법자의 위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길거리에 마을 아이들이 장난삼아 통 속에 있는 불개미떼에게 전갈을 먹이로 던져주고, 전갈이 먹히는 것을 보며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웃고 즐기다가 나중에는 지푸라기를 던져 불을 질러 태워 죽이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곧 매복한 바운티 헌터들(불개미떼)에 의해 유혈이 낭자한 총격전에서 희생 당할 '와일드 번치'(전갈)에 대한 은유적 상징이다. 


 바람에 먼지 날리는 텐트 속에서 남부 텍사스 금주 연합회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스타벅의 시장이 구약성서의 레위기와 잠언을 들어 금주 연설을 한다. 


 "'약한 술이든 독한 술이든 술을 가까이 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잔에 따른 술 빛깔이 아무리 빨갛고 고와도 거들떠 보지 말아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모사처럼 쏠 것이다.' …용기와 자존심을 잃게 만드는 게 바로 그 대가다.…" 


 이때 파이크의 무리가 그 옆을 지나 남부 텍사스 철도 관리 사무소 앞에 멈춰 말에서 내린다. 


파이크가 철도회사 직원들을 인질로 잡은 후 "움직이면 모조리 사살하라"고 명령한다. 이는 유명한 대사이다. 그러나 철도회사 책임자 팻 해리건(알버트 데커)은, 예전에 파이크의 동료로 유마 교도소에 수감 중인 디크 손튼(로버트 라이언)을 가석방시켜 30일 내에 파이크 일당을 붙잡기 위해 현상금 사냥꾼들과 함께 건너편 건물 지붕 위에 매복시켜 놓았다. 

 

 

 


 드디어 은자루를 거머쥐고 나오던 파이크 무리와 손튼의 패거리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총알과 유탄이 튀고, 황량한 거리에 피가 튄다. 파이크 일당들은 때마침 금주 연합회 가두시위 행렬을 틈타 그들을 방패 삼아 도망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흉탄에 맞고 쓰러진다. [註: 이 첫 강탈 시퀀스에 한 명이 전속력으로 말을 타고 가면서 땅에 떨어진 돈자루를 낚아채는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두 어린이 중 남자 아이가 샘 페킨파 감독의 아들 매튜(1962~, 당시 7세)이다.] 

 

 

 

 


 한편 찬송가 "Shall We Gather at the River?"(youtube.com/watch?v=El7QNtXqavo)를 부르게 하면서 3명의 인질을 잡고 있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크레이지 리(보 홉킨스)는 해리건과 손튼의 총격을 받았지만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응사하여 바운티 헌터 3명을 나란히 죽이고 해리건의 총에 장렬하게 죽는다. [註: 크레이지 리는 나중에 나오는 프레디 사익스의 손자이다. 이 찬송가는 존 포드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예컨대 '역마차(Stagecoach•1939)'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1946)' '수색자(The Searchers•1956)' 등에서 이 노래를 삽입했었다.]

 

 

 


 시장을 비롯한 마을의 책임자들이 마을을 전쟁터로 만든 책임을 묻고 '피의 발레'에 대해 항의하자 해리건은 "무법자를 잡기 위해… 우린 법을 대표하고 있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공권력이라는 대의 명분이 살생의 비열함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종전의 서부영화들은 갈등의 당사자들만이 총질을 하지만 "와일드 번치"에서는 목적과 수단이 혼동되어 전혀 관련없는 민간인들을 방패삼아 총질을 해댄다. 범법자들과 기존 공권력 모두가 사악한 살인자이고 그들의 폭력은 똑같이 독단적이고 파괴적일 뿐인 것이다. 더욱이 죽은 시체로부터 전리품을 챙기는 바운티 헌터들은 손튼을 빼고는 다들 악당에 다름없는 추악한 녀석들뿐이다. 그래서 존 웨인은 '이 영화가 서부 시대에 대한 신화를 망가뜨렸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TMMT'에서 3월14일(토) 오후 5시 '가방을 든 여인'이 상영되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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