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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영화 시리즈(III)-'수색자' (The Searchers) (5)
youngho2017

 
종전의 야만적 인디언과 영웅적 백인으로 구분짓는 2분법적 구도를 탈피한 인본주의적 서부극

 

 

(지난 호에 이어)
 [註: 이 영화에서 그래도 가장 점잖은 편인 로리마저도 이 장면을 통해 역겨울 정도의 백인 우월의 인종차별주의자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공격을 하기 전 이선이 코만치를 정탐하러 계곡을 올라간다. [註: 이곳은 지금은 'John Ford's Point'라고 불리는 명소다. 거기서 보면 왼쪽부터 Sentinel Mesa, West Mitten Butte, Merrick Butte 등 세 봉우리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그런데 마틴이 이선과 클레이튼에게 이대로 공격하면 코만치족이 데비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이선이 대꾸한다. "그럴지도 모르지(That'll be the day). … 코만치족과 사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야. … 데비가 목에 차고 있던 뼈목걸이는… 바로 네 엄마(마르타)의 것이야!"

 

 

 


 결국 클레이튼 대위의 결정으로 마틴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몰래 스카의 캠프에 잠입하여 데비를 찾게 된다. 그러나 데비와 만난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마틴은 스카와 마주치게 되자, 먼저 세 발의 총을 쏴 그를 사살한다. 이 총소리를 신호로 민병대와 얼떨결에 합류한 양키 중위는 정면 총공격을 개시한다.

 

 

 


 장면은 야만적인 인디언들에 대한 백인들의 응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디언들을 혐오하는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집단 학살에 다름 아니다.

 

 

 


 죽은 스카를 발견한 이선은 인디언처럼 그의 머리채를 잡고 한 손에 칼을 쥐고 머리가죽을 벗기는데…. 이때 이선을 본 데비가 놀라 도망치자, 마틴은 이선이 한 약속대로 그녀를 죽일까봐 그가 탄 말을 죽을 힘을 다해 제지하지만 역부족이다. 


 도망치다 동굴 앞에서 쓰러진 데비!… 그러나 그녀를 두 팔로 들어안고 "이제 집에 가자, 데비!"라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선! 인종차별주의라는 표면상의 동기를 넘어 제수(弟嫂)를 건드려 낳은 딸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일말의 죄책감 때문에 그녀를 구출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父情)은 살아있다'고나 할까….

 

 

 


 드디어 이선과 마틴 일행은 데비를 데리고 요르겐센 가족의 집으로 돌아온다. 요르겐센 부부와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모스 하퍼가 기뻐한다. 로리가 반기며 마틴에게로 달려간다. 이선이 데비를 말에서 내려 안아 요르겐센 부인에게 넘겨준다. 그 뒤를 따라 마틴과 로리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선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붙잡고 문 밖에 잠깐 서 있다 쓸쓸히 발길을 되돌린다. 술에 취한 듯, 실성한 듯 조금 비틀거리면서 마치 황야가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고향인 것처럼 서서히 멀어져 간다. 카메라가 트랙 백 하면서 집 문이 닫히고 화면은 암흑이 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註: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잡는 연기는 전설적인 서부극 스타, 해리 캐리(Harry Carey, 1878~1947)에 대한 오마주다. 그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에서 상원의장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역마차'의 토머스 미첼에게 돌아갔다. 그의 부인 올리브 캐리(Olive Carey, 1896~1988)는 이 영화에서 요르겐센 부인으로, 그의 아들인 해리 캐리 주니어(1921~2012)는 아들 브래드 요르겐센 역으로 캐스팅됐다.]

 

 

 


 이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 그가 도착해 출입문이 열리며 집 안으로 들어오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또 첫 장면에 나왔던 주제곡 'Ride Away(떠나라)'가 마지막에 다시 나온다. "남자가 사랑과 영혼을 찾아 갈 때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멀지가 않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알고 찾을 거야. 하지만 어디에, 신이여 어디에서?" 


 문 안은 문명의 세계이자 안식처이며, 문 밖은 그것을 위협하는 황야를 의미한다. 결국 더 이상 '영웅'이 아닌 이선은 문 안의 세계가 자기가 머물 곳이 아님을 느끼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아 방랑할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여운을 남긴다. 


 '수색자'의 뛰어난 영상미는 수많은 후배 영화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오손 웰스(Orson Welles, 1915~1985)가 '시민 케인(Citizen Kane•1941)' 제작을 위해 40번이나 봤다던 '역마차(1939)'로 잘 알려진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John Ford, 1894~1973) 감독은 6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비서부극 4편, 즉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40)' '내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1941)' '밀고자(The Informer•1935)' '말 없는 사나이(The Quiet Man•1952)' 등으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다. 


 포드 감독은 역시 모뉴먼트 밸리에서 촬영한 낭만적이고 흑백 영상시적 서부극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1946)'를 비롯하여, '아파치 요새(1948)' '황색 리본을 한 여자(She Wore A Yellow Ribbon•1949)' '리오 그란데(1950)' 등 이른바 '기병대 3부작'을 연달아 만들었다. 


 6년 후 '수색자'로 다시 서부극에 손을 대면서 당시 유행하던 서부극들과는 차원을 달리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1962)' '서부 개척사(How the West Was Won•1962)' 등을 제작하였다. 


 존 웨인(John Wayne, 1907~1979)은 35년 간의 배우 경력 중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24편이나 출연하여 서부영화의 대명사였는데, 이 '수색자'에서 그의 연기는 역대 최고였다고 평가된다. 존 포드 감독과의 마지막 영화는 '도노반의 산호초(Donovan's Reef•1963)'였다. 


 제프리 헌터(Jeffrey Hunter, 1926~1969)는 '수색자' 촬영 당시 29세였다. 잘 생긴 청춘 스타로 각광받던 그는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왕중왕(King of Kings•1961)'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배우인데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는 33살의 목수였는데 나도 33살이었다. 신약성서에 묘사된 예수님의 건장한 체격은 바로 나의 것과 일치했다." 그러나 42세에 뇌출혈로 요절했다.


 베라 마일즈(Vera Miles•90)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에서 라일라 크레인 역으로, '오인(The Wrong Man•1956)'에서 헨리 폰다의 아내 로즈 발레스트레로 역으로 우리와 안면있는 배우이다. 그녀는 네 번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모두 단기간에 끝나버렸고 지금은 캘리포니아의 팜 데저트에서 살고 있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는 7월27일은 휴강하고, 8월10일(토) 오후 5시에 있을 예정이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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