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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4) (My Name Is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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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크반츠는 프리데만의 음악은 패셔너블 하지만 깊이는 없다고 평하고, 그러나 그는 음악가로서의 열정과 유혹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공주는 '그만큼 음악이 중요하다는 얘기이죠'라고 내뱉곤 방을 나간다. [註: 프리데만 바흐는 그의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성격과 스스로 거장인 척 뽐내는 기질이 있는 데다, 작곡보다는 즉흥연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페셔너블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젊은 세대 취향의 음악이라 당시 보수적인 교회나 궁정 관련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웠다. 아버지가 사망한 1년 뒤인 1751년, 그는 세금징수원의 딸이자 자신보다 11살 연하인 도로테아 엘리자베스 게오르기(1721~1791)와 할레에서 결혼하였다. 그러나 J.S. 바흐를 잃은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여 할레에서의 생활은 아버지의 악보 필사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궁핍했다고 한다. 두 명의 아들은 어려서 죽고 딸 프리데리카 소피아(1757~1797)는 후에 미국 오클라호마로 이주하면서 J.S. 바흐의 필사본을 상당수 가져갔다고 하는데 대를 이어오면서 대부분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일요일 아침 바흐 형제 간에 말다툼이 일어난다. 에마누엘이 형을 '술과 여자 생각만 하는 감동적인 천재!'라고 비꼬자 프리데만은 고정 수입이 있고 결혼해서 아이도 갖고 깨끗한 집에서 식사와 섹스를 할 수 있다며 요한나까지 들먹이자 둘은 멱살을 잡고 싸운다.

 

 바흐는 음악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에마누엘은 아버지의 형에 대한 편애 때문에 자기는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다. 사실 바흐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당시 가장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박식하고 수학과 철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남 프리데만이 자기처럼 되기를 많이 기대했었다. 프리데만은 "그게 장남의 비극적 운명이었다"고 말하는데….

 

 요한나와 바흐가 호숫가에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 그녀는 시아버지 바흐의 작품을 통해 음악을 배웠고, 그를 '위대한 신의 작곡가'로 존경한다. 바흐는 자기는 신이 아니라며 호숫가에 있는 보트 위에 올라가서 "여기 균형을 잡아줄 눈에 보이지 않는 균형장대가 있어. 그걸로 난 팽팽한 외줄 타기를 했지. 항상 추락할 위험에 처해 있지만 줄 밑에 안전망도 없었어. 그럼에도 멀리 멀리 위로 위로 올라갔지…." 그의 인생관을 잘 표현한 명장면이다. [註: 요한나 마리아 바흐(1724~1795)는 음악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확고한 역사의식까지 갖춘 아주 총명한 여자였다. 남편 에마누엘이 죽은 다음해인 1789년에 그의 작품 및 J.S. 바흐가 남긴 음악적 자산의 3분의 1을 비롯하여 텔레만, 프란츠 벤다(1709~1786), 카를 하인리히 그라운(1704~1759) 형제의 작품 등 350개의 필사본을 경매했다. 또 다음해인 1790년 남편이 소장했던 그림과 초상화 등을 포함한 나머지 자산에 관한 142페이지에 달하는 카탈로그를 제작하고 음악가 및 감정사에게 해당 작품에 대한 복사본을 만들어주는 기회도 제공했다.]

 

 바흐가 프리드리히 2세를 방문한다. 사실은 연주회에 관해 미리 상의하기 위함이었지만 왕은 대뜸 그를 러시아의 차리나가 선물로 보내준 낙타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이를 본 바흐는 재미있게도 울음소리가 음악적 교감으로 들리고 두 개의 혹을 가리키며 음악적 하모니가 잘 이루어졌으며 혹의 높고 낮은 모양은 자기가 국왕을 위해 작곡한 멜로디 같다고 언급하는데…. 이를 잡은 카메라샷이 일품이다.

 

 둘은 낙타를 타고 프리드리히 2세가 새로 짓고 있는 포츠담 교외의 여름별장 상수시 궁으로 간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의 애마와 함께 묻히기를 바랐는데, 자기도 애견과 함께 묻히기를 바란다는 프리드리히 대왕. 그는 한참 공사 중인 개 묘지에 직접 들어가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내가 여기 들어오면 모든 비애(悲哀)는 사라지겠지." [註: 상수시 궁(Schloss Sanssouci)은 불어로 '근심, 걱정(souci)이 없는(sans) 곳'이라는 뜻. 그의 유해는 독일 통일 후인 1991년에서야 유언대로 상수시 궁전 정원 개묘지에 안장되었다. 사망한지 205년만이었다.]

 

 다수가 참석한 연주회에서 바흐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끝낸 후 '왕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악보를 왕에게 보여주면서 정중하게 합주를 청한다. 왕은 내일 오찬에서 보자며 떠나려는데 바흐는 못 들은 척 벌써 파이프 오르간 반주를 시작하고 이때 크반츠가 잽싸게 플루트를 건네주는 바람에 얼떨결에 합주를 하게 된다.

 

 시작부터 놓치고 엉거주춤 플루트를 연주하던 왕은 또 템포를 놓치는데 바흐가 "걱정할 것 없으십니다, 폐하"라고 웃으며 "다시 시작하시지요."라고 말하는데 아말리에 공주의 사색이 된 얼굴이 잠깐 비치더니, 아니나 다를까 왕은 플루트를 바닥에 냅다 집어던져 박살을 낸다.

 

 왕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아말리에 공주는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시쳇말로 스타일 구긴 건 틀림없다. 이에 바흐는 "악기를 부수는 행위는 참을 수 없다. 장인이 공들여 만든 악기를 부수다니!"하며 고래 고래 고함친다.

 

 왕은 크반츠 교수에게 "그건 나의 주제였고 바흐와 합주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면서도 "당신이 나의 주제를 망쳤고 바흐는 귀신 들린 듯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크반츠가 제작한 플루트는 음조율이 맞지 않았는데도 값은 우라지게 비쌌다고 힐책하는 왕.

 

 크반츠는 악기는 손에 잡으면 열과 땀 때문에 변질될 수 있으므로 플루트는 최고사령관의 지휘봉처럼 막 다루면 안 되고 존경심을 갖고 잘 다뤄야 한다고 찬찬히 설명한다. 그리고 바흐가 연주한 카논은 악마 같은 곡이 아니라 잘 분석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바흐 자식! 난 그를 증오해!"라고 내뱉는 왕….

 

 한편 바흐는 '왕의 주제'에 의한 6성 푸가 카피에 여념이 없는데, 점점 악화되는 시력 때문에 애를 먹는다. 여기서 오선지를 그리기 위해 5개의 발이 달린 포크 모양으로 다듬은 나무펜과 잉크 제조 과정이 재미있다. [註: 후대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더 발전된 롤러스탬프로 오선지를 그렸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9월 5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습니다.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천하성, 한호림

 

 ▲ 왕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 한 대를 크반츠의 연습실로 옮겨놓고 자기는 진부하고 따분한 미뉴엣 같은 음악은 싫고 자유롭고 패셔너블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아말리에 공주(카롤리네 헤르푸르트).


 ▲ 요한나 마리아 바흐(안체 베스트라만)는 음악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확고한 역사의식까지 갖춘 아주 총명한 여자로 바흐를 '위대한 신의 작곡가'로 존경했다.


▲ 바흐는 보트 위에 올라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균형장대로 안전망도 없는 외줄 위를 멀리 멀리 위로 위로 올라갔다."며 며느리 요한나 마리아에게 그의 인생관을 표현하는 명장면.


 ▲ 바흐(바딤 글로브나)가 '왕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악보를 왕(위르겐 포겔)에게 보여주면서 정중하게 합주를 청하는데…. 오른쪽에 크반츠(필리프 뷔유미에)가 보인다.
 

 ▲ 시작부터 놓치고 엉거주춤 플루트를 연주하던 왕은 또 템포를 놓치자 바흐가 뒤돌아보며 "걱정할 것 없으십니다, 폐하"라고 웃으며 "다시 시작하시지요."라고 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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