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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 (3)(My Name Is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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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다시 영화 속. 프리드리히 왕이 아직 얘기가 안 끝났다며 바흐를 피아노 앞에 앉힌다. 그리고 이른바 '왕의 주제(royal theme)'를 직접 쳐 보이며 3성(聲) 또는 6성의 푸가를 즉흥 연주해 보라고 주문한다. 순간 둘러서 있던 크반츠, 아말리에 공주, 프리데만과 에마누엘 등이 모두 긴장한다. 


 바흐는 누가 만든 곡인지 물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왕은 질문은 해도 되지만 충고는 사양한다고 말한다. 바흐는 왕이 그런 작곡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단순한 음조이지만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왕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내 시간은 당신 것이 아니다"라며 "내 대답은 노!"라고 말하고 떠나는 바흐. 시종이 앞을 가로막지만 묵인하는 사인을 보내는 왕. 자존감이 상하지만 인내한다. [註: 기록에 의하면 바흐가 '왕의 주제(Thema Regium)'를 이용한 3성 푸가를 즉흥적으로 연주하자 왕은 다시 도전하여 6성 푸가를 요청했다. 바흐는 즉흥연주를 한 뒤 악보로 써서 제출하겠다고 하여 라이프치히로 돌아가서 몇 주 뒤 완성한 악보를 송부하였다. 구성은 3성, 6성 두 개의 리체르카레(Ricercars)와 10개의 카논(Canones) 그리고 4악장의 소나타로 되어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적 헌정(Musikalisches Opfer, BWV 1079)'이다. 당시 바흐는 그 악보에 "Regis Iussu Cantio Et Reliqua Canonica Arte Resoluta (the theme given by the king, with additions, resolved in the canonic style)"라고 썼기 때문에, 첫 머리글자를 딴 'ricercar'가 당시의 잘 알려진 음악장르가 되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지나칠 정도의 열정과 고집불통인 35살의 젊고 오만한 프리드리히 대왕과 그 권위와 거만함을 일격필살의 유머와 지략으로 거울을 보듯 드러내 보이는 62살의 노 거장 바흐와의 이와 같은 충돌에서 나온다. 


 새벽 4시. 시종 스툼(베르나르 리그메)이 커피를 대령하는데 한 모금을 마시던 왕은 도로 내뱉으며 하인들까지도 '따뜻한 우유'를 마시게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註: 프리드리히 2세는 커피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바흐가 '커피 칸타타, BWV 211'을 작곡할 정도로 18세기에 커피가 유행했다. 왕이 마시던 커피는 샴페인으로 끓인 물에 겨자로 맛을 낸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플루트를 불면서, 지키고 있던 골츠 비서관에게 비엔나와 그 창녀(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들의 농부들을 나의 영토인 슐레지엔으로부터 빼앗기 위해 무슨 술책을 꾸미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며 오스트리아 연락망을 중간에서 가로채라고 명령한다. [註: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제로 즉위하자 이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을 주도적으로 일으켰다. 7년에 걸친 전쟁의 승리로 공업이 발달하고 부유한 슐레지엔(Schlesien)을 오스트리아로부터 획득했다. 이 전쟁을 통해 독일의 작은 연방국이었던 프로이센은 단숨에 유럽의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프리드리히 2세는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겸비한 젊은 명군주로 전 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군주는 국가 최고의 심부름꾼'이라는 그의 명언대로 합리적인 사고와 국가에 봉사하는 태도로 국정을 운영했던 인물로 '대왕'으로 불릴 만큼 그는 러시아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1729~1796),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1741~1790)와 함께 3대 계몽군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프리드리히 2세가 혼자 남은 방에서 애견을 쓰다듬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진다. 그가 왕세자였을 때의 회상이 나온다. 부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688~1740)는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린 왕세자를 구타하기 일쑤였는데 이를 견디다 못한 왕세자는 삶에 대한 미련도 없고 왕이 되기도 싫어서 가출을 시도했다. 


 마침 사촌인 영국의 아멜리아 공주와의 혼담을 기회로 18살 때인 1730년 8월5일 이른 아침, 가장 신뢰하던 친구였던 육군중위 한스 헤르만 폰 카테(1704~1730) 그리고 소위 페터 폰 카이스(1711~1756)의 도움을 받아 영국으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폰 카이스가 이 모의를 사전에 누설하여 왕세자와 폰 카테는 국경지역 근처에서 체포되었다. 


 카이스는 이미 영국으로 도망쳤지만 폰 카테는 모진 고문 끝에 참수당했다. 부왕은 프리드리히가 그 모습을 지켜볼 것을 강요하였는데 중간에 실신했다고 하나, 영화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에 고문 현장에서부터 끝까지 지켜본다. 아무튼 프리드리히는 즉위 뒤, 그의 저술에서 "이 시련기가 나중의 고난에 커다란 훈련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 기억은 평생을 두고 괴롭혔다.


 바흐가 구두 밑창에 박힌 커다란 가시를 빼내면서 며느리 요한나에게 라이프치히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요한나는 이대로 떠나시면 에마누엘이 섭섭하게 여길 거라며 아버님이 첫아들의 대부가 되시는 것에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흐는, 대부는 부자인 대부를 정해야 아담의 평생을 잘 인도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참 현실적인 조언이다. [註: 에마누엘의 대부는 바흐와 헨델의 친구였던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이었고, 텔레만이 86세로 죽은 뒤 에마누엘은 궁정자리를 때려 치고 그의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직을 이어 받아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바흐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말리에 공주가 쫓아와 자기 음악교습본에 서명을 요청한다. 친구인 크반츠가 만든 교본이었다. 책을 받을 때 멍들은 그녀의 손톱을 보고 이 손가락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치냐며 염려하는 바흐. 그녀는 이런 바흐에게서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은 양 포옹을 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뛰면서 되돌아간다. 

 

 

 


 장면은 포츠담 궁. 에마누엘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형 프리데만에게 무슨 권리로 아담이라고 이름을 지었냐고 따지다가 궁중에 매인 몸인 그는 형의 자유가 부럽다고 말하자 프리데만은 '네가 내 자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냐'며 언성이 높아진다. 다시 피아노를 치면서 프리데만은 "나의 자유는 날마다 음악가로서의 나의 삶을 재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말리에 공주가 왕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 한 대를 크반츠의 연습실로 옮겨놓고 자기는 진부하고 유행에 뒤쳐지는 따분한 미뉴엣 같은 음악은 싫다며 하늘의 천사같은, 아직 아무도 그런 코드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자유롭고 대담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 말한다. 프리데만의 연주에 매료되어 한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9월 5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습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천하성, 한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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