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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 (VII)-‘비발디’(Antonio Vivaldi, a Prince of Venic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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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는 과연 성자인가, 죄인인가? 

 



(지난 호에 이어]
 만토바의 시골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 '사계'는 음악적 개념의 혁명적 설정이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여러 새들의 지저귐, 개 짖는 소리, 윙윙거리는 모기소리, 양떼의 울음소리 그리고 폭풍우, 고요한 밤, 술 취한 댄서들, 사냥꾼들 파티, 얼어붙은 풍경과 얼음지치기를 하는 아이들, 화톳불 등의 정경을 소네트 시에 담아 음악적 협주곡으로 묘사한 것이다. [註: 소네트(sonnet)는 14행의 짧은 시(詩)로 각 행 10음절로 이루어지며 복잡한 운(韻)으로 짜여 있는 서양 시가(詩歌)의 한 형식. '사계'는 1725년 암스테르담의 출판업자인 미셸 샤를 르 세느(Michel-Charles Le Cene, 1684~1743)에 의해 12개 악장을 각각 3악장씩으로 묶어 4개의 협주곡으로 출판되었다.] 


 비발디는 1722년 로마 새 교황 베네딕트 13세(미셸 갈라브루)의 초청을 받고 그를 위한 공연을 하고, 1725년 다시 베네치아 피에타 음악학교에 복직한 후 4개의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비엔나, 암스테르담 등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연주회를 가졌다. 


 어느 카니발 가면무도회에 주교의 집무관과 안젤로가 참석하여 통속적이고 야한 공연을 보며 귀족 부인들의 외도를 화두로 삼으면서 재미있다는 듯 히히덕 거리고 있다. 이때 안젤로가 "베네치아 사람들은 반년은 죄짓고 반년은 회개하며 살고있다."고 이들의 종교적 도덕적 이중성을 꼬집는다. 

 

 

 


 이 무렵 베네치아는 세계 제일의 무역 항구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음악의 중심지 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거친 뱃사람들과 할 일 없는 몽상가들이 모여든 베네치아는 성적으로 문란하여 거리와 교회 문 앞에는 버려진 사생아와 고아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비발디가 45세 때인 1723년, 13살의 안나 지로(아네트 슈라이버)가 오디션을 받기 위해 비발디의 집으로 찾아온다. 공개적인 장소를 피해 비밀리에 오페라의 주연을 위한 오디션을 보기 위한 것이었지만, 집에 여자를 끌어들인 비발디에 대한 여동생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된다. [註: 안나 지로(Anna Maddalena Tessieri Giro, 1710~1748?)는 프랑스에서 만토바로 이민 온 이발사, 가발 제조업자의 딸로 1723년에 비발디에게서 성악을 배운 제자였다. 메조 소프라노 가수인 그녀는 1722년 가을에 트레비소에서 데뷔하여 그 다음해에 알비노니의 오페라 "Laodice"를 통해 베니스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 후 1726년 "Dorilla in Tempe"부터 시작하여 1733년 "Motezuma" 등 비발디의 많은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으면서 비발디의 뮤즈라는 염문을 뿌렸다.] 


 오페라 "파르나체(Il Farnace, RV 711)"는 1727년 베네치아의 산탄젤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안나 지로가 폰투스의 왕 파르나체의 왕비 타미리 역으로 출연한다. 

 

 

 

 


 영화 속 아리아는 "Da quel ferro che ha svenato (From that sword which has killed)"로 실제 호르디 사발(Jordi Savall•77)이 제공한 음악이다. 이 오페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둬 1730년에 프라하의 스포르크 극장에서 재공연되었다. 


 안나 지로가 존경한 비발디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그의 집에 그녀의 이복 언니인 파올리나(디아나 페르티크)와 함께 1724년부터 기거하면서 그의 수발을 돕는가 하면, 비발디가 그녀를 자기 오페라에 주역으로 등장시켰고 함께 여행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당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성직자로서의 도덕성 문제가 되어 1738년 페라라의 주교 루포(Tommaso Ruffo, 1663~1753)에 의해 '페르나체'의 페라라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비발디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6세 황제의 초대로 비엔나로 간다. 황제는 베네치아를 떠나 비엔나에 정착하면 시 가극단을 맡겨 평생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의하는데….


 한편 비발디가 없는 동안 몰려든 채권자들에게 안나 지로와 파올리나는 빚은 갚아야 한다는 상식쯤은 알고 있다며 다만 비발디에 대한 험담을 거두어 줄 것을 당당하게 주문한다. 


 주교의 집무관이 베네치아 주교에게 프랑스 대사가 루이 15세의 쌍둥이 딸 생일을 맞아 비발디에게 콘서트를 부탁했고 주교도 초청했다고 보고한다. 교회와는 무관한 속물적 행사라며 내키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체면 때문에 만찬에 참석하는 주교. 

 

 

 

 


 주교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대사(베르나르 피에르 도나디유)가 루이 15세는 비발디의 맑고 밝은 선율과 싱싱하고 상쾌한 리듬의 곡을 좋아하고 친숙한 나머지 그를 자주 초빙하여 연주회를 열었다며 비발디를 극찬한다. 

 

 

 

 


 하지만 정작 주교는 "교회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얻었지만 주님의 신복을 잃었다"며 자기는 비발디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다며 애써 그를 폄훼하고, 괜한 언쟁 벌이지 말고 딴 얘기를 하자고 에둘러 말한다. 말하자면 그는 '비발디를 칭송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채우기 위해서 멀쩡한 성직자를 꾀어내 오페라로 현혹시키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프랑스 대사가 비발디는 부친과 함께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암스테르담 국립극장 100주년 기념 연주회도 갖는다, 또 1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묶어 '라 체트라'를 출간했다는 둥 마치 무성영화의 연사처럼 설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후에도 이런 장면이 두 번 더 나오는데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 차라리 자막처리를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註: "라 체트라(La Cetra, Op. 9)"는 1727년 출간돼 카를 6세 신성로마 황제에게 헌정되었다.] 

 

 

 

 


 1728년 5월6일 비발디의 헌신적인 어머니 카밀리아가 집에서 사망한다. 성직자인 비발디가 간단한 장례집전을 한 후 곧 아버지와 함께 베로나로 갔다. 그 곳 필라르모니코 새 극장에서 오페라 "La Fida Ninfa"를 1732년 1월6일 초연했다. [註: 비발디가 작곡한 오페라 "라 피다 닌파(The Faithful Nymph, RV 714)" 중 유명한 아리아 'Alma oppressa da sorte crudele (Soul oppressed by cruel fate)'를 안나 지로가 부른다. 대본을 쓴 프란체스코 시피오네 마페이(1675~1755)는 당시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발명한 '피아노포르테'에 관한 기사를 도표와 함께 1711년 베네치아에서 처음 발표하고 1725년 독일어로 번역됨으로써 피아노 발전 및 보급에 기여한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알림)
8월 1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습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천하성, 한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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