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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VI)-'샤넬과 스트라빈스키'(Coco Chanel & Igor Stravinsky)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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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No.5'를 탄생시킨 재봉사와 전위적 
'봄의 제전' 작곡가의 불륜의 사랑을 그린 작품


 

 

(지난 호에 이어)
 샤넬이 친절하고 관대한 여자였는지는 몰라도 관습, 전통, 타인의 시선 등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샤넬인지라 한집에 사는 스트라빈스키 부인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없는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그라스에서 세기의 향수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카테리나는 남편 이고르에게 매일 아침 일어나면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걸 보면 삶은 결코 공평•공정하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보는 듯하다.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은 서로의 창작에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데 다음의 대화를 보면 샤넬은 분명 스트라빈스키의 창작에 영향을 미쳤지만 반대로 이고르가 '샤넬 No.5'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싶다. 


 샤넬은 "난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남자 한 명이 여자 두 명의 가치일까요. 부인이 수정해 주지 않으면 당신은 작곡도 할 수 없어요. 나도 당신만큼이나 힘이 있죠. 게다가 더 성공했고요.… 당신의 정부(情婦)가 되진 않겠어요." 


이에 이고르가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라 가게 주인일 뿐이야."라고 대꾸한다. 결국 천재가 가는 길은 서로 달랐고 둘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카테리나는 남편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그의 음악에 대해선 남편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이해하고 멘트를 할 수 있었다는 건 맞다. 한편 코코 샤넬이 그의 음악을 이해했다는 증거는 없다. 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삼각관계에서 두 사람의 이기적인 사랑 유희는 아내인 카테리나를 수동적인 위치로 전락하게 만들고, 네 아이에게는 샤넬이 엄마보다 생물학적 우위에 있는 것으로 믿게 만들 뿐이었다. 

 

 

 

 


 드디어 이 참기 어려운 사실 앞에 절망한 카테리나는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저택을 떠난다. 샤넬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그 편지는 그 동안 가족을 지내게 해준 호의에 감사를 표시하고 "다음 주제는 꽤 힘들 거예요. 언급하기 힘들 정도겠죠.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두 분의 친밀함 때문에 제가 더 병들고 말라가고 있어요. 독립적인 여성으로 강인한 성격 때문에 사모님을 존경하긴 했지만 도덕성까지 흠모하긴 어렵겠어요. 간청 드리건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아이들에겐 아버지가 필요해요. 아마 사모님보다 우리가 그를 더 필요로 할 거에요."로 끝을 맺는다.


 샤넬이 디아길레프 사무실을 찾는다. '봄의 제전' 재공연 건 때문이었다. 봉투를 하나 건네는 샤넬. [註: 자료에 의하면 샤넬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재공연을 위해 발레 뤼스의 디아길레프에게 익명으로 30만 프랑을 개런티 해줌으로써 1920년 12월에 재공연이 성공리에 이뤄진다. 샤넬이 이런 식으로 '고급 예술가'를 후원한 것은 미샤 세르트와는 달리 빈약한 출신성분을 커버하려 했던 것이라는 비판적인 설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봄의 제전'의 수정된 새로운 발레를 성공적으로 직접 지휘한 스트라빈스키가 로열석에 있는 샤넬에게 감사의 눈인사 목례를 하고 이를 감격으로 화답하는 그녀와 디아길레프, 미샤 세르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술적 승리와 걸작으로 자리매김하는 끝마무리를 한다. [註: 사실은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직접 지휘한 것은 1926년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공연이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은 1971년 같은 해에 사망했다.]

 

 

 

 


 실제 상당한 시차가 있지만 그의 아내 카테리나가 죽는 장면과 늙은 스트라빈스키가 피아노 멜로디를 치며 옛날 샤넬을 추억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잠깐 사실적으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자. 1920년 봄은 샤넬의 연인 아서 보이 카펠이 죽은지 몇달도 안 되어 아직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을 때였고, 스트라빈스키보다 한 살 아래인 샤넬이 30대 후반 무렵쯤이다. 스트라빈스키 가족은 1920년 9월 중순경부터 1921년 5월까지 약 8개월을 샤넬의 저택에서 머물고, 파리에서 약 800㎞ 떨어진 앙글레(Anglet)로 이사한다. 


 1921년 2월에 베라 드 보세를 파리에서 만난 스트라빈스키는 어쩌면 그때부터 코코 샤넬에게서 흥미를 잃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샤넬도 이 무렵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관계를 맺는다. 스트라빈스키는 가족이 보금자리를 튼 이후에도 카테리나가 죽기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앙글레와 파리를 오가며 베라 드 보세와 애정행각을 벌였다. 


 그렇다면 일 년도 안 되는 이고르와 코코의 불륜 관계는 사실일까. 스트라빈스키의 둘째 부인 베라와 이고르의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로버트 크래프트(Robert Craft, 1923~2015)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으며, 이고르 자신도 이에 대해 언급한 일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샤넬 패션 하우스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할 자료가 전혀 없다고 했다. 


 다만 샤넬의 친구이자 자서전 작가인 폴 모랑(Paul Morand, 1888~1976)이 1946년 펴낸 '샤넬의 매력(L'Allure de Chanel)'에서 샤넬이 이고르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 것이 침소봉대(針小棒大)되어 소문으로 전해졌을 뿐 불륜관계는 허구이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이 영화의 각색을 맡았던 크리스 그린할(Chris Greenhalgh•55)의 2002년 픽션 소설 'Coco and Igor'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샤넬' 측은 제작에 적극 협조하여 회사의 문서보관소 및 코코 샤넬의 아파트(31, rue Cambon, Paris)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같은 해인 2009년 오드리 토투(2006년 영화 '다 빈치 코드'에서 주인공 소피 느뵈 역) 주연의 프랑스 영화 '코코 샤넬(Coco avant Chanel)' 개봉 직후에 칸 영화제의 종영작으로 상영되었다. 참고로 샤넬 관련 첫 번째 영화는 1981년 헝가리 출신 캐나다 감독 조지 카센더(1933~2016)의 '샤넬(Chanel Solitaire)'이었다. 


 어찌 보면 통속적이기 짝이 없는 예술과 불륜의 경계를 네덜란드 출신 얀 쿠넹 감독은 잡스러운 원색 없이 흑과 백으로만 꾸며진 샤넬의 드레스처럼 건조하고 간결하게 그려냈다.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발명해 사용했다는 오선지 그리는 롤러스탬프가 등장하는 것이다. 


 아무튼 스트라빈스키의 애정행각은 첫 부인의 병 때문에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위대한 작곡을 위해서는 영감을 주는 뮤즈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카테리나가 정작 비난해야 했던 인물은 코코 샤넬이 아닌 둘째 부인이 된 베라 드 보세가 아니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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